조급해 마라, 아직 늦지 않았다

모순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가, 송두율 교수가 진단한 정치·경제·사회

 인테넷 한계레 기사 5월 6일

송두율 교수   

 

베를린=송두율 뮌스터대 교수·사회학

‘짧은 줄에 걸린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물을 길을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첨단 제품에 속하는 삼성의 휴대전화를 보고 놀라면서,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건재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 놀라는 독일인이 주위에 많다. 사실 나 자신도 이런 한국 사회의 모습이 아직도 혼란스럽다. 민주화됐다고 하면서도 반민주적인 보안법은 여전히 살아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특별한 모순으로 받아들이지 않기에 참여정부의 등장과 함께 제기됐던 개혁입법 중 하나인 보안법의 개폐 문제가 결국 물 건너갈 수밖에 없었다. 최근엔 또 다른 개혁입법 과제였던 ‘사립학교법’의 개정을 원상으로 돌리는 ‘재개정’을 요구하며 삭발 단식하는 목사들의 비장한 태도에서 보안법을 지켜냈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 송두율 교수   (사진/ 후마니타스 제공)

독일 ‘정당명부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떤가

“한나라당의 집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386의 재집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주장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이 벌써부터 시작됐으나, 구체적인 윤곽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탄생이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기적’이 올 수도 있다는 희망을 한쪽에서는 이야기하고 있고, 다 된 밥에 코 빠지듯이 두 번이나 어이없는 실패를 경험한 쪽은 이번에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장담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것 같다.

민주사회에서 선거에 의해 정권이 바뀐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1987년 이후에서야 그러한 길이 열렸다. 1992년부터는 정권 변화가 극적으로 전개됐기에, 이번에도 그러한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정당 간의 정책 대결이 아니라, 다분히 대표주자의 상징성이 지역주의를 매개로 해서 곧바로 정치로 연결되고 있는 구조 때문에, 정치가 실종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물론 그동안 시민사회가 상대적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은 정치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역량이 부족하다.

정책정당 간의 경쟁을 전제하지만, 10년 정도의 간격으로 정권이 바뀌는 것은 사회 전반의 활성화를 위해서 결코 지루하거나 아니면 너무 빨라 불안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탈리아와 같은 예외도 있지만 사실 유럽의 많은 나라들과 미국에서는 대체로 그런 주기로 정권이 변해왔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이런 주기가 아직은 예외에 속한다. 전후에서 지금까지 대부분 자민당의 보수 체제로 일관해온 일본과 달리 대만에서는 지난 2000년 국민당 정권의 퇴진, 한국에서는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새로운 변화가 정치사회에서 일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의 변화는 1980년의 ‘광주항쟁’으로 상징되는, 피나는 투쟁의 결과였기에 아시아에서는 가장 역동적인 정치사회로 평가를 받고 있다.


△ 송도국제도시 내 오피스텔 코오롱건설 ‘더 프라우’의 청약 접수 첫날인 4월3일 인천 한 농협 지점의 청약 대기 번호표가 122번을 가리키고 있다.

오랫동안 ‘압축성장’을 주도했던 국가는 정치 엘리트와 관료, 재벌기업이 하나로 연결된 정치사회와 동의어였다. 이런 조건에서- 이른바 ‘체육관 선거’가 말해주듯- 다양한 사회계층의 이익을 관철하는 정당 간의 경쟁은 애초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경을 안고 지역주의의 구조는 더욱 견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정당 간의 정책 경쟁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독일처럼 지지 정당에 투표할 수 있는 ‘정당명부제’를 도입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정책 개발이 정당의 필수조건이 되고 이런 정책이 일관성 있고 투명하게 대중에게 전달될 때, 선거 때만 등장하는 정당 간의 이합집산에 기초한 불안정한 정치사회를 막을 수 있다. 맥줏집에 지역당원들이 모여 소속 정당의 크고 작은 정책을 토론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정치사회의 한 모습이 바로 독일 정책정당의 성립조건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필자는 종종 하게 된다.

거품 걷히지 않은 ‘탈산업사회’

그러나 37년 만에 찾은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의 정치사회에 대한 불만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많이 약화됐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불안할 지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대통령 알기를 너무나 우습게 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경제사회에 대한 평가는 그리 단순치 않았다. 필자가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부동산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흡사 전 경제사회가 부동산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수출산업 주도형의 경제사회가 그동안 고도화한 것도 사실이지만, 10년 전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부동산 경제는 확고부동한 위상을 지닌 것 같았다. 한국 경제사회의 구조가 정보화, 대량소비 사회화, 탈소재화 등 이른바 ‘후기산업사회’ 또는 ‘탈산업사회’의 일반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많은 거품이 걷히지 않은 상태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자주 연상케 한다.

세계화로 표현되는 오늘날 경제사회의 핵심적 문제는 경제사회 안에서 ‘사회적인 것’의 내용이 얼마나, 또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이곳 대학의 강의나 세미나의 주제로 자주 등장하고 있는 ‘빈곤’이나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사회적 안전장치의 그물망이 조밀치 못한 조건에서 양극화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에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견된다. 농업의 몰락과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의 도산으로 분배구조가 더 악화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미 FTA 협상 이후 여야 간의 입장과 정치담론의 구조가 뒤바뀐 현상을 둘러싸고 말도 많지만, 이는 정치사회와 경제사회가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 데 기인한다. 당 따로, 대통령 따로 노는 이런 현상도 결국 정책정당의 결손 때문이다.


△ 지난 2004년 12월29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촉구하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한국의 경제사회가 부딪히는 문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물론 선발군과 후발군의 국가 사이에서 ‘샌드위치’로서 더 많은 도전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분단이라는 특수성은 앞으로도 여전히 버거운 과제로 남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 문제가 남쪽 사회의 전망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아주 작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남쪽의 정치와 경제사회의 변화에 따르는 변수로서 보려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남과 북의 정치와 경제사회는 거의 동시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연동된다고 보려 한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이른바 ‘보수’나 ‘진보’로만 갈라볼 수 없는 구도도 보여주는데, 보수 안에도 분단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는 세력이 있고 진보 안에도 분단 문제에 전혀 관심을 돌리지 않는 세력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지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은 이미 국경의 의미가 사라져 하나가 된 ‘세계사회’의 ‘지평선’의 일부분은 아니다. 휴전선이 갖는 강한 상호 배제성과 상호 침투성 때문에 남북관계는 ‘특수한 관계’로 설명된다. ‘국경 없는 경제’로 나아가는 과정의 하나인 한-미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국산’(Made in Korea)인지의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줄다리기 끝에 긍정적으로 타결됐다고 정부는 적극 홍보했다. 이 역시 휴전선이 아직도 경계선일 수밖에 없는 국제정치적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휴전선은 하나의 방을 둘로 나누는 벽이 아니라 서로 넘나들 수 있는 문지방과 같다. 휴전선이 갖는 이런 상호 배제와 상호 침투라는 동시성 때문에 남과 북의 관계는 ‘특수한 관계’로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상호 배제와 침투의 휴전선

이러한 관계를 최근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북핵 문제’다. ‘남북 공조’냐 ‘한-미 공조’냐라는 기존의 이분적 구도를 넘어 ‘2·13 합의’는 남쪽이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중재자’로서 새로운 활동 공간을 열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세력 균형이 긴장을 이루고 있는 동북아에서 한반도가 자기의 활동 공간을 확충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물론 현 단계에서 그런 역할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강대국 중심의 긴장된 동북아 질서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자신의 이중적 역할을 적극 살리며, 그 역량을 적기에 투입하기 위해서도 남북 간의 항시적 대화와 협력은 필수적이다. 정상회담은 이런 대화와 협력의 최고 수준이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산적한 과제들이 현재 대통령 선거에 가려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정책정당의 부재 속에서 10년을 와신상담해온 한나라당에 정권이 넘어갈 상황을 맞게 되어, 진보세력이 일종의 정신적 공황에 빠져 단기적인 이합집산, 아니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비판적 지지’라는 카드를 또다시 꺼내기보다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라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레박 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다”(綆短汲深)라는 <장자>의 이야기가 있다. 긴 안목 속에서 21세기에 걸맞은 정치와 경제사회 그리고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정당을 구상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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