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화려 한 휴가>

 

 

 

1980년 5월 18일,
장교 4,727명 사병 15,590명 등 2만여 명의 대한민국 군인과 항공기 30대, 전차 7대, 장갑차 1대, 차량 282대 등이 광 주 에 투입되었다.
대간첩 작전에 준하여 ‘발포’를 포함한 무력진압이 허가 되었 으며
열흘간 지속된 이 작전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수는 아직까지 정확 히 밝 혀지지 않았다.

한국 근대사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은 5.18 민주 화 항쟁

그 봄, 일어난 믿지 못할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 은 많습니다 .
그러나 그날 그 곳에서 영문도 이유도 모른채
목숨을 잃어간 ‘사람’들 을 기억해주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 구를 위해 총 칼을 들어야만 했던
그들은 우리와 똑 같은 평범한 시민이었고 ,
다만 그들 이 살던 곳이 광주였을뿐입니다.

역사의 광풍속에서 안타 깝게 목숨을 잃은 그분들을
다시 기억하기 위한 10만 누리꾼 기억 서명에 동참해주세요 !

아래는 그 날의 사람들을 기리는 추모의 글입니 다.

[故 최미애] (당시 25세.주부) :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 시 만납시다.”

남편이 부인을 떠나 보내며 비석에 눈물 로 새긴 이별가다 .

임신 8개월의 최미애씨는 전남대 정문에서 남편을 기 다리다 계엄군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을 접한 친정어머니 는 바로 밖으로 나가 딸의 주검을 집에 옮겨 놓고 혹시나 하 는 마음에 배를 만져 봤다. 몸은 차가운데 태아는 아직도 살아 격렬하게 몸부림치 고 있었다. 태아라도 살리려고 여러 병원에 연락을 했으나 전시와 같은 상황이라 아무도 와주질 않았다 .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길 20분, 뱃속의 아기도 엄마 곁으 로 떠나고 말았다. 당 시 갓 돌이 지난 최미애씨 큰아들 진홍이도 벌써 군대에 갈 나이로 자랐다.

[故 김복만] (29. 운수노동자) :
현대교통 시내버스 운전기사인 김복 만씨는 18일부터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면서 항쟁에 가 담하게 되었다. 광 주민중항쟁을 폭발적으로 발전시킨 20일 저녁 차량시위에 참여 하고 21일 도청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숨졌다.
그는 3살 된 아이와 1개월 된 갓난아이의 아버 지였다.

[故 임정식] (20. 실업자) :
22일 집 근처에서 시민들과 함께 항쟁에 참여한 그는 총탄에 외삼촌이 다리를 맞아 쓰러 지는 것을 보고 어머 니가 달려나가려 하자 어머니를 가로막고 자기가 뛰어나가다 가슴에 총을 맞고 외 삼촌 곁에 쓰러졌다. 그는 어머니를 살리고 대신 세상을 떠 났고 어머니는 그를 가 슴에 뭍었다.

[故 전영진] (19, 대동고 학생)
대학진학을 위해 밤을 새며 공부에 매진하던 고3 수험생 전영진. 계엄군이 광주에 들이닥친 어수 선한 와중에서도 군인들의 눈을 피해 과외 수업을 받았을 정도로 학구파 학생이었 던 전영진군은 책을 사러 가다가 계엄군에 붙들렸고, 군 홧발에 나동그라졌다. 화 를 이기지 못해 분노에 몸을 떨던 영진군은 “ 엄마, 조 국이 나를 불러요”라며 도청으로 달려나갔고, 도청 옥상에서 정조준된 총탄에 머 리를 맞고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故 박기현](16. 중학생)
빈 집에서 혼자 심심해 하던 김기현은 책을 사야 한다며 계엄군이 점령한 거리로 나왔고, 막 자전거를 타 려던 그를 계엄군이 낚아챘다. 동신중학교 3학년이었던 김기현은 그렇게 데모꾼들 의 연락병이라는 누명을 쓴 채 계엄군의 무참한 방망이 질에 쓰러졌다.

"5월 18일, 그날의 함성, 그날의 슬 픔, 그날의 우리 를... 잊지마세요." 라고 외치던
그들의 모습을, 그들의 울 부짖음을,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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