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자유상' 수상 연설문(2007.5.16).

 2007-05-16 19:09:16

작성자 : 다이애나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자유상' 수상 연설문(2007.5.16).

'자유상' 수상식은 5월 16일 오후 10시
(독일시간 5.16 15시)에 독일현지에서 진행됩니다.
기자분들께서는 오늘 저녁 10시 이후에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베를린 자유대학 ‘자유상’ 수상 연설, 2007.5.16. 베를린]

‘베를린 선언’과 한반도 평화.

존경하는 디터 렌첸 총장,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
드 메지에르 전 총리,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무장관,
산트 슈나이더 소장,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귀빈 여러분과 학생 여러분!

오늘 제가 영예로운 이곳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자유대학이 제정한
‘자유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어 여러분께 몇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없이 감사를 드리면서 기꺼이 이 상을 수락하는 바입니다.

세계에 많은 명문대학이 있지만 베를린 자유대학은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대학입니다. 베를린 자유대학은 사상 유례가 없는 가혹한 독재체제인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에 의해서 수십년 동안 봉쇄와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베를린 자유대학의 교직원과 학생들은 베를린 시민과 함께 추호의 동요도 없이 이러한 압박을 견뎌내고 극복해냈습니다. 외딴 섬처럼 동독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자유대학이 선두에 서서 동독 일대에 자유의 메시지를 전파하였습니다. 마침내 자유대학과 동독 시민들의 위대한 투쟁은 동독 전역에 자유를 위해 궐기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자유는 인류의 본능적인 욕구입니다. 자유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인권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와 중남미 어느 곳에서도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원초적으로 존재했습니다. 유럽에서는 17세기말에 존 로크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정립하였습니다. 존 로크는 1688년 영국의 명예대혁명을 대변하고 국민주권론을 주장하며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했습니다. 자유가 핵심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한 것입니다. 존 로크의 사상은 18세기말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투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민주주의와 자유 사상은 옛 동양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 공자의 유교 사상에는 “민심이 즉 천심이다. 백성을 가지고 하늘로 삼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2,300년전 공자의 제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 하늘은 자기 아들을 내려 보내 백성에게 선정을 하도록 했다. 만일 임금이 이를 지키지 않고 악정을 하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궐기해서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도에서 부처님은 “천상천하에 내 자신이 가장 존귀하다”는 인권선언을 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언론 자유가 열리고 닫힘에 따라서 나라의 흥망이 결정된다고 말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국민 사이에서 널리 지지를 받았습니다. 또한 한국의 민족종교인 동학(東學)은 “하늘이 곧 사람이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고 했습니다. 19세기말에 일어난 한국의 동학 농민운동은 반봉건, 반제국주의를 내걸고 싸우다 수만명의 농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16세기 독일의 아나밥티스트(Anabaptist)의 뮌췌(Müntzer) 농민혁명에 버금가는 혁명이었습니다.

자유와 인권은 인간의 천부의 권리입니다.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 생명의 위협으로부터의 자유, 정치적 박해로부터의 자유, 전쟁과 테러로부터의 자유는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고유한 권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권리로서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의무로 생각하고 나와 이웃의 자유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서 청년이 될 때까지 일본의 가혹한 식민지배 아래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자유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연이은 권위주의 군사독재자의 통치하에서 50여년을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 반을 감옥에서 살았으며, 수십년을 연금, 망명,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1973년 일본에서 납치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을 때나 1980년 한국의 신군부에 의해서 사형언도가 내려졌을 때, 독일 국민과 지도자들은 여야 없이 저의 구명을 위해서 헌신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것을 결코 잊을 수 없는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은 50여년의 장구한 독재체제 아래서도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한결같이 싸웠습니다. 수백명이 학살당한 광주항쟁, 조작된 용공 혐의로 처형당한 인민혁명당 사건, 저에 대한 신군부의 사형언도 등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독일 국민과 독일 정부는 우리 국민과 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희생을 최소화하는 데 노력해 주셨습니다.

‘동백림 사건’ 때 한국의 중앙정보부는 독일에 사는 한국 교포들을 간첩으로 조작해서 한국으로 불법 납치하여 법정에서 사형 등 중형을 내렸습니다. 이때 독일 정부는 단호한 태도로 항의하고 불법 체포한 사람들을 되돌려 보낼 것을 요구하여 끝내 그것을 관철시켰습니다. 독일의 인권 투쟁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성공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종교계는 우리의 민주화 운동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고, 독일의 많은 지식인과 정치인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오늘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독일을 비롯한 세계 자유인들의 지원의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에 힘입어서 국민과 더불어 반독재 투쟁을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반세기에 걸쳐 우리를 억압하고 지배했던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를 모두 국민 앞에 굴복시켰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국민과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랜 독재기간 동안 억울하게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명예가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회복되고 보상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 재임중에 이러한 일을 꾸준히 추진했고, 지금도 그 일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독재 치하에서 탄압을 받을 때, 여러가지 위협은 물론 유혹도 있었습니다. 1980년 군사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하루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군부 지도층이 저를 찾아와서 “우리에게 협력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협력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이겠다. 사흘 후에 다시 오겠다. 그때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흘 후에 다시 저를 찾아 왔습니다. 저는 그때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죽고 싶지 않고, 죽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당신들에게 협력하면 일시적으로는 살겠지만, 나는 영원히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죽겠지만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나는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 그러니 다시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그들의 협력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다행히 계엄령 하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보내준 소리 없는 항의와 독일과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힌 군부는 저를 사형에서 무기형으로 감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마침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해서 민주주의를 확립했습니다. 한국은 지금 세계적으로 공인 받는 자유 인권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피 흘린 노력과 세계인의 지원이 마침내 찬란한 자유의 꽃을 피운 것입니다.

저는 저와 우리 국민의 경험으로 민주주의는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열망을 가지고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싸울 때만 쟁취할 수 있고 지켜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길 외에 민주주의의 왕도는 없습니다. 저는 미얀마를 비롯하여 독재하에 신음하는 나라의 사람들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고, 제가 할 수 있는 지원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를 종식시키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외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유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쟁취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2000년 3월 이곳에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촉구하는 내용의 소위 ‘베를린 선언’을 발표한바 있습니다. ‘베를린 선언’은 즉각적으로 세계의 많은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EU는 “북한은 김 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 클린턴 정부는 강력하고 일관되게 지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은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찬성을 표시했습니다. 중국은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우리 한국에서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한편, 북한도 그동안의 의심하고 주저하는 태도를 버리고 대화에 호응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행한 ‘베를린 선언’이 이러한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를린 선언’이 있은 지 3개월 후, 분단 55년만에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큰 성공이었습니다. 남과 북은 “우리 운명은 민족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제1단계의 통일 방안은 남한의 ‘남북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다. 이를 중심으로 풀어나갈 것이다. 남북은 모든 분야에서의 교류 협력을 증진시킬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실현시킬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방문을 약속한다” 등의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남북공동선언에 대해서 미국의 저명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는 ‘한민족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결단한 사건’이라고 논평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에 있어서 베트남식의 무력통일이나, 독일식의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무력통일은 우리 전민족이 공멸할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흡수통일은 독일의 예에서 보다시피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갈등의 큰 짐을 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짐을 감당할 역량이 부족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36년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래 줄곧 ‘3원칙 3단계’의 통일방안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3원칙’은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이고, ‘3단계’는 1단계 남북연합, 2단계 남북연방, 3단계 완전통일입니다. 이것은 남북한이 공동 승리하는 통일방안으로서, 안정되고 평화적인 통일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크게 그리고 본질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물론 북미관계 악화로 표면적인 진전은 한계가 있었지만, 저변에서는 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남북 양쪽의 민심이 크게 바꿔졌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과거의 반공 일변도의 자세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와 동족에 대한 애정을 구별해서 대처하는 성숙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북한 사람들 또한 과거의 남쪽에 갖고 있던 의혹과 증오, 불신의 마음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남쪽에서 북으로 매년 40만톤의 쌀과 30만톤의 비료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의약품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쌀과 비료 포대의 상표를 보고 그것이 남쪽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남한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한에 대해 감사한 마음, 부러운 마음, 믿는 마음 등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마음의 변화가 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당국의 눈을 피해 남한의 대중가요를 부르거나 TV 드라마를 보도록 만든 것입니다. 북한에는 ‘한류’의 기류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문화적 변화의 조짐입니다.

둘째, 매년 10만명의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다녀옵니다. 이와 별도로 북한에 있는 금강산으로 관광을 가는 사람들이 이미 140만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휴전선 가까이에 있는 남북합작의 산업단지인 개성공단에는 1만 5천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서로 일하려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개성공단이 모두 완공되면 35만명 이상을 고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6자회담이 성공하면 이러한 공단들이 북한 도처에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남북간의 철도가 동서 양쪽에서 연결,개통되고 있습니다. 경제적 교류, 문화적 교류, 체육 교류, 인도적 교류 등 각종 교류가 아주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말한 대로 북한 사람들의 남한에 대한 마음은 정신적으로 바꿔지기 시작했습니다. 통일은 이미 조용히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1,300년 통일의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한반도 분단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이 우리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양분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통일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통일은 우리 국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셋째, 남북관계가 당초 기대한 만큼 발전하지 못한 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된 북한과 미국간의 경색된 관계에 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장애를 뚫고 나아갈 것입니다. 남북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쟁을 하지 않고,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의 교류 협력을 해나가면서, 단계적으로 통일을 추구하여 남북 공동 승리의 통일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의 힘을 믿습니다. 민주주의와 반(反)민주주의가 경쟁해서 반(反)민주주의가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켜 중산층이 널리 성장하고, 대외개방을 통해서 북한 사람들이 외부세계를 알게 된다면, 그들은 반드시 자유와 민주주의의 선두에 서서 평화적으로 이를 쟁취해 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은 일관되게 전쟁의 가능성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한 미방위조약은 침략으로부터 남한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지, 우리가 침략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한 것이 아닙니다.

6자회담은 오랜 정체와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2월 13일 마침내 성공적인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금년과 내년에 걸쳐서 이런 합의들이 실천되면 한반도에는 완전한 평화가 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미국과 북한이 다 같이 서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북한은 더 이상 상대를 일방적으로 굴복시킬 수는 없는 처지에 있고, 힘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북한은 그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오던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대화, 안전보장, 경제제재 해제, 국교 정상화 등에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더 이상 핵을 고집할 명분도 없어졌고, 필요성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한반도 비핵화에 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때는 중국이나 한국도 미국, 일본과 함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이때는 북한도 버티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은 미국과 일본이 경제제재를 했지만 중국과 한국의 지원으로 유지해온 것입니다.

북한이 계속 핵을 고집한다면 미국으로부터 앞서 말한 모든 대가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대만이 핵을 갖겠다고 나설 위험성이 상당히 있습니다. 일본과 대만의 핵 무장은 중국이나 한국 모두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중국에게는 악몽과 같은 것입니다. 북한은 핵을 더 이상 고집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에 미국의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은 이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응하게 되면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사태를 지연시킬 여건도 안 됩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군사력을 행사하려 해도 중동에 발목이 묶여서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일본과 같이 하는 경제제재는 이미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미국 의회 중간선거는 민주당의 대승으로 끝났는데, 민주당은 클린턴 정권이 추진한 북미 직접대화와 주고받는 협상을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중동에서 실패한 이상 한반도에서라도 성공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북미 모두 각자의 입장이 실현되게 되었고, 또 더 이상 버티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여러가지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가 임박해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6자회담이 성공하면 6자회담 당사국은 6자회담을 해체하지 말고 상설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기구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때 EU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 기구에 참가하는 것이 동북아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U의 여러 나라는 2000년 서울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 저의 권고를 받아들여 북한과 거의 전면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그후 북한에 대해 경제, 교육 등 여러 가지 지원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수로 건설에도 참여했습니다.

이 외에 EU가 한반도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바라는 이유가 더 있습니다. EU는 세계 제일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고, 평화에 대해서 가장 큰 열의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EU는 이웃과의 모범적인 화해 협력 관계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러한 EU가 우리 가까이에서 강력한 파트너로서 존재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강대국 시장의 공세에 총력을 다 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양국 중간에 위치한 한국에 EU 각국이 더 많이 진출하고 투자해서 한국과 함께 중국과 일본 시장에 진출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북한과 관계가 개선되면 한국의 남쪽을 출발하는 기차가 한반도를 종단해서 시베리아를 거쳐서 유럽에 도착할 것입니다. 베를린을 거쳐 파리, 런던이 종착지가 될 것입니다. 동서를 잇는 ‘철의 실크로드’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철도 수송은 해상 수송보다 운송기간, 운임, 안전성에 있어서 훨씬 큰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독일을 비롯한 EU 각국에 큰 혜택을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랜 진통 끝에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세계 최대의 경제시장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EU의 여러 국가가 이러한 평화와 번영의 내일을 위해서 큰 기여가 있기를 다시 한 번 부탁해마지 않습니다. 2000년 3월 제가 이곳 자유대학에서 행한 ‘베를린 선언’이 한반도에서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 협력의 길을 열었고, 6자회담을 성사시키는 단초를 만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저에게 그런 기회를 주신 베를린 자유대학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 베를린 자유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이
동서를 연결하는 희망의 교량 역할을 해주실 것을 바라고,
그러한 내일을 꿈꾸어 봅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십시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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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