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넘어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아시아 신학모색

  -남한여성신학자의 관점에서-

 

김애영 (한신대학교 신학과 조직신학 여성신학교수)

 

이 논문은 2006년 11월 일본 교토에서 열였던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아시아 신학모색>  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  한국을 대표했던 한 사람인 김애영 교수 (한신대학교 신학과 조직신학 여성신학교수)의  발표 논문입니다..
4월 14일 열리는 6.15 유럽공동위 강연회에서 송두율 교수가 다루게 될
<탈민족시대의 민족담론>에  참조가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독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 편집자주

1. “민족과 민족(국민) 국가”의 기원과 해체에 관한  탈근대적 담론 1)

 1) 각종 Post 담론과 지구화, 그리고 탈민족 혹은 초민족 기획

  동구권의 몰락과 옛 소련연방의 해체라는 세계사적 대격변과 더불어 전개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신자유주의적 지구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로 요약될 수 있다. ‘지구화’ 문제가 경제 및 정치와 함께 문화의 영역에서 어떻게 설정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 탈근대(postmodern)에 관심하는 영미 계통의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라는 담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구에서 등장한 1960년대의 구조주의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탈구조주의(poststructuralism) 운동은 로고스 중심적 서양 철학의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신념 체계를 상대화 시키는 비판 작업을 수행하였다. J. Derrida의 말로 하자면 탈구조주의로, F. Lyotard의 말로 하자면, 철학이란 modernism 이후의 삶과 문화의 양태를 반성한다는 점에서 postmodernism으로 일컬어진다.

  1980년대를 거쳐 1990년에 이르러 전 세계로 그 범위를 넓힌 운동으로 도약한  탈근대주의적 해체주의라는  지적 작업은 모든 것을 전복시키고 지배관계를 역전시킨다는 것인데, 육체/정신, 남/녀, 형식/내용과 같은 이른바 이항대립적, 게다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지배력과 우월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 것들의 관계들을 해체하고 점복한다는 의미에서 다중적 주체를 설정함으로써 오늘의 페미니스트 담론들에게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즉,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동질화된 페미니즘이 내세웠던, 따라서 제국적 페미니즘이라고 비판받는 그런 과거의 안정적이고 자기 동일적 여성 주체 대신에, post 담론가들은 권력 또는 담론의 결과물인 바, 분해되고 분산된 주체를 강조한다. 대문자 H로 시작되는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소문자 h로 시작되는 ‘역사들’이 온 세계에서 떠오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패러다임의 붕괴는, 메타이론적인, 총체화하는 실천이 이제 미세 정치적이고 비전략적 형식으로 이행했음을 대변했다. 단일한 틀과 규범을 꿈꾸는 대신, 하위층들은 전략적 실천 행위의 뿌리를 혼돈과 비확정성에 둘 것이라고 하는데, ‘억압된 지식들’과 정체성들의 확산을 통해 달성된, 뿔뿔이 흩어지고 나뉜 산만한 ‘네트웤들’에 둘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Noman Rush 가 단언하건데, ‘현존 자본주의에 대한 실천이고 윤리적인 비판은 단편적으로 등장할 것’ 이니, “사회주의를 잊으라, 이제 사회주의자들이 둘러보곤 하던 지형은 아주 포스트모던한 양상을” 취할 것이라고 한다.2) 내용에 있어서 관념적인, 형식에 있어서 지나치게 장식적인 양태를 지니게 된 이론들의 범람으로 인해 사회모순 극복에 있어서 그 유용성이 매우 저하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나, 각종post 담론들은 이러한 비판 자체에 대해 냉소적이다.

  민족주의는 독이라는 주장을 해 온 대표적인 미국의 탈민족주의자로 알려진, 인도 출신의 시카고대학 Prasenjit Duara 교수에 의하면 postmodernism은 후기 자본주의를 반영(reflect)하는 것인데, 근대는 정치ž경제 구조에 대한 관심 하에서 역사를 고려한다면, 탈근대의 기획은 그 구조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이다. 근대로 번역되는 modern 기획은 ‘자아-타자’의 이분법적 구분을 통하여 주체를 형성했다면, 탈근대적 기획은 이런 이분법을 거부하며, 민족주의라는 것은 근대 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이분법적 논리라 하여 탈근대적 역사학자들의 비판이 행해지고 있다.3)  “nation이란 독자적 nation 의식을 가지는 인간집단이다”라는 정의에 의거해 볼 때 이러한 nation 의식이 생겨난 것은 근대의 여명기에 유럽에서 먼저 출현했다는 통설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출구를 알 수 없는 지구화 논쟁의 다중적인 성격, 그 다의성”4)에도 불구하고 Ulich Beck은 하나의 공통된 개념을 추출해내는 데, 그것은 국민국가와 이에 상응하는 국민사회에 대한 부정이 그 공통점이라고 한다.5) 영국 ‘신노동당’(New Labour)의 이론가 Anthony Giddens와 독일의 Ulich Beck을 비롯한 일련의 사회학자들은 붕괴된 베를린 장벽과 더불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했던 민족국가 단위의 정치와 경제도 사라졌다고, 즉 지구화의 충격이 탈민족화 혹은 탈국민화 (Denationalisierung)의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주장한다.6) 한편 영국의 P. Hirst와 G. Thompson은 Globalization in Question 이라는 책에서, 민족국가야말로 지구화된 시장 위에 군림하는 ‘새로운 전체주의적 독재’에 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주체라고 강조하며, R. Gilpin은 더 나아가 ‘지구화’는 민족국가들이 허락하는 상호의존적인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7)

  탈근대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인종ž민족ž제국의 문제를 계급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관리해 오던 제3세계 민족주의는 이제 민족주의가 대대적으로 매판 부르주아와 결탁되어 있다는 혐의로 비판받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지구화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초국적 자본을 등에 업은 탈근대는 아리송하면서도 그럴듯한 이론을 내세워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8) 또한 민족이라는 이름아래서 어떻게 특정 내국인 집단이 희생양이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제3세계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하는데, 이들에 의하면 민족 정체성과 민족주의 개념이란 지배계급과 그 계급에 속한 ‘그들’ 남자들-엄밀히 말하면 소위 WASP(백인 앵글로 색슨 프로테스탄트)에 속한 남자들-에 의해 그 남자들의 헤게머니를 공고히 하도록 정의되어 있다는 것이다. 민족 (국민)국가란 민족주의의 발명품이라고 Ernest Gellner가 주장하는데 이런 류의 이론에 의거해서,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오늘날 남한에서 여러 각도에서 비판되고 해체되는, 즉 탈민족, 혹은 초민족, 국사 해체론이 주장되고 있다.9)

 

2) 오늘의 탈민족 혹은 초민족 이론

  20세기 후반부터 서구 인문ž사회과학계는 미시와 거시의 날카로운 대결과 공존을 위한 모색을 탐구해 왔는데, 정체성, 근대 국가의 모형, 이야기체 서술, 역사적 진보 및 인과론등이 논의의 주제로 떠올랐으며, 역사학계에로 그 불길이 옮겨 붙었다.10) ‘민족을 넘어서’라는 주제도 이러한 학계의 큰 흐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1980,90년대의 서구 문화 이론(cultural theory)11)의 주요흐름이었던 탈식민주의 발전적 형태로 논해지고 있는 오늘의 민족이론에 대하여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남한에서 탈근대주의 ž탈식민주의 인식 틀과 방법론에 입각해서 탈민족, 혹은 초민족, 국사 해체론을 주장하는 임지현, 고부응, 탁석산과 같은 논객들은 Benedict Anderson의 민족 이론, 특히 그의 Imaginat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을 원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12) B. Anderson은 민족 공동체의 성격을 역사적이기 보다는 문화적 차원에서 찾는다. 그에 의하면 민족 공동체, 민족 형성, 민족주의란 “역사적 동력들이 복잡하게 교착해서 나온 우발적 증유물” 인 것으로서, 그러므로 ‘상상의 공동체’, 즉 ‘가상적’ 실체들이라는 것이다. 그의 강조점은 정체성의 심리학과 ‘인쇄 자본주의’적 상황에 우연히 결부되어 있고, 이것이 민족적 정체성의 근원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독일이 독일인 것은 독일이 프랑스가 아니기 때문인데, 이렇게 다름에 의해 규정되는 민족 정체성은 기존의 민족 이론가들도 의식하고 있었으나, 그 이론가들은 그들이 전제하고 있는 제한적 특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민족의 특성을 논의의 출발로 삼아 근래의 민족담론의 영역을 펼치고 있는 B. Anderson의 이론에 의거해서, 고부응은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만년 혹은 오천 년의 유구한 역사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길게 보아 100여년이 좀 넘는, 그리고 국가 체제로 본다면 50년이 좀 넘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따라서 우리 민족 공동체의 짧은 역사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수사 사이의 거리가 있는데, 그 거리를 지배 체제 혹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노출시키면서 민족 정체성을 새롭게 논의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13) , 탈민족 혹은 초민족을 주장하는 논객들의 주장은 고부응과 대동소이하다.

  Ernest Renan이 1882년에 “민족이란 무엇인가?” 라는 강연을 한 이래로 민족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려는 수많은 학자들의 시도가 있었다.14) ‘민족’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해도 특정 집단의 사람들 혹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하나의 민족을 구성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할 만 한 단일한 객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이러한 주장에 있어서 구좌파의 E. Hobsbawm, 신좌파의 B. Anderson, 자유주의적 학파에 속한 E. Gellner, 계간지 International Socialism 의 이전 편집자 N. Harris 등은 모두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단일한 통치권에 충성을 표하며, 단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동질적 시민집단이라는 이상에 기초하고 있는 근대 민족은 자본주의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최근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15)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민족주의를 자본주의의 경제적 발전과 무관한 자의적 구성물로 착각하는 경향이 최근에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이 N. Harris의 책, National Liberation (London, 1990)의 취지라는 것이다.16) 이 책에 대해 Alex Callinicos는 매우 큰 실망을 피력하였다. Harris의 일관된 주장은, 민족국가의 활동이란 전 지구적으로 이동하는 자본의 이익과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민족국가를 하나의 정치적 현상으로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의 전 지구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민족국가를 극복함에 따라 민족주의가 서서히 쇠퇴할 것이라는 Harris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을 A. Callinicos는 한마디로 망상으로 규정하며, 민족주의 없는 세계로 이르는 유일한 길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17)

 앞에서 언급한 대표적 탈민족주의 이론가 P. Duara는 탈근대주의가 담론에 대한 분석을 정치ž경제 체제에 대한 분석과 결합시키는데 실패했으며, 불완전한 기획이라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세계 체제에서 민족주의는 유용한 생존전략이지만, 내ž외부의 적을 향한 독을 품고 있는 것으로 간파한다. Duara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한국인들이 성찰적 민족주의(reflective nationalism)를 갖고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면서, 이 점에서 성찰적 민족주의는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성찰’의 의미란, 한국의 대중적 민족주의는 통일과 사회 평등성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의제를 갖고 있고, 이는 보수적 민족주의와는 차별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Duara는 대내외적 연대를 지향하는 민족 국가를 지향하고 민족 사회변혁과 통일운동을 수행한다는 것은 현 세계체제하에서 매우 복잡다단하겠지만, 한국이 이를 실천할 수 있다면, 한국은 아마도 새로운 근대적 실천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써 한국의 민족주의가 지닌 중요한 임무에 대한 기대를 피력했다. Duara 교수를 인터뷰한 기자는 한국의 탈민족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Duara는 왜 한국의 탈민족주의자들과 ‘다른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는가라고 묻고, 기자 스스로 판단하기를, Duara는 민족주의 전체를 싸잡아 폐기하는 것이 아닌, 한국적 상황에서 발생한 ‘성찰적 민족주의’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했으며, 국내의 탈민족주의자들이 들먹이는 유럽연합의 사례와는 다른 방식의 ‘미래’를 한국 민족주의에 기대했다고 평가하였다.18) 

 

2. 민족문제와 남한에서의 문화 전쟁

   남한에서 전개되고 있는 탈민족 혹은 초민족 기획은 2004년에 들어서서 남한 역사학계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1990년대에 수입된 탈근대주의에 그 뿌리를 둔 것으로서, 거대 담론에서부터 일상사ž구술사ž미시사에로의 강조점이 전환된 풍조와 맞닿아 있다. 이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탈근대주의/탈식민주의 방법론과 역사인식을 수용하여, 국가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민족이라는 허구적, 억압적 정체성을 벗고, ‘세계 시민’의 구성원으로서의 연대를 구상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탈민족 혹은 초민족 기획은 민족주의에 내재해 있는 억압적 측면과 우리 학계의 관성을 예리하게 비판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약소국의 다수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기제로 동원될 수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탈민족 혹은 초민족 담론이 어느새 보수 언론의 단골 의제로 등장하였다는 점에서 각종 post 담론에 의거한 탈민족 혹은 초민족론 자체에 대한 긍정적 검토와 반성이 적잖이 요구되고 있다.19) 이제 우리는 민족 혹은 민족주의가 지닌 해악적 요소에만 매몰되어서, 민족주의가 지닌 저항성, 변혁 실천성을 간과하거나 거세하려는 의도가 탈민족, 초민족론 기획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탈식민주의론, 해체론, 다문화주의론을 비롯한 오늘의 각종 이론들이 한갓 유행적인 ‘무장해제론’으로 얼마든지 오용되어 아무런 실천적 역할도 하지 못하다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 남한의 보수 세력들은 2005년 경 부터 ‘문화 전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소위 신우익(new right)으로 분류되는 저들이 벌이는 문화 전쟁의 범위는 진보적 근현대 역사, 교육, 시민운동, 언론 매체 등에 대항해서 벌어지고 있다.『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으로 표기)프로젝트가 그 대표적인 작업이다.20) 이외에도 남한에서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1950년 7월 17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D. MacArthur UN군 사령관에게 작전 지휘권을 이양한 이래로, 남한 정부가 1994년에 평시 작전 통제권을 환수하였다. 이제 미국으로부터의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남한에서의 보수파와 자주파 사이의 논쟁은 냉전 체제의 붕괴와 중국의 급부상, 한반도 내부 변화로 지난 1세기 동안 한반도와 그 주변을 좌지우지해온 한-미-일 삼각동맹 질서의 해체나 재조정이 불가피해진 상화의 변화에 따른 진통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전쟁’을 언급하고자 한다. 1973년 R. Nixon 정권 하에서 UN주재 대사를 역임했던 아버지 G. Bush가 미국의 Vietnam 전쟁 개입범죄를 옹호하고 있을 때 그의 장남 Bush는 Texas 주 방위군 입대로 Vietnam 전쟁을 피해갔다. 그들이 나중에 ‘Bush Family’를 이루고 미국 보수 정치의 핵심 power를 이루게 되었다. 바로 그해에 그들을 출세시키고 그들을 중심으로 미국 사회를 총 보수 우익체제로 우경화하는데 있어서 총본산 노릇을 하게 된 우익 두뇌집단인 Heritage 재단이 출범했다. 1960년대 이후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물결이 미국 기성체제를 뒤흔들게 되었고, 이 위기에 직면해서 미국의 기득권 계급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Louis Falwell의 1971년 문서는 “공산주의자, New Left, 혁명주의자들이 미국 정치ž 경제체제 전체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대학, 성직자, 언론, 언론인, 지식인, 예술가, 과학자, 정치인 등” 거의 모든 여론 주도 그룹들을 쳐부수고 대항 세력을 양성하라고 촉구하였으며, 장기적인 계획과 전국 규모의 조직화, 교과서와 TV, 법조계 등에 대한 철저한 감시체계 확립을 요구하였다. L. Falwell의 저 문서는 바로 보수 우익의 ‘문화 전쟁’ ‘이데올로기 성전(holy war)’ 포고였다. 문화 전쟁의 엔진들은 수많은 두뇌집단들과 Jerry Falwell의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Pat Robertson 주도의 Christian Coalition 등 우익 기독교 조직들이며, 이 기구들에게 천문학적 자금을 제공한 것이 미국 재벌들이었다고 한다. 이 문화 전쟁이 바로 R. W. 레이건 대통령 시대의 1차 중흥기를 거쳐 30년만인 아들 Bush 시대에 절정에 다다른 미국 보수우익 성전 승리의 비결이었다는 것이다.21)

  그러나 우리는 보수 우익이 추진하고 있는 문화 전쟁과는 다른 방향에서 진행되는 급진적인 ‘문화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놓쳐서는 안된다. 미국의 경우, 그것은 state histories에 대한 민족주의적 또는 패권주의적 해석이 어디에서나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 전쟁’이 한창이다. state histories와 관련된 이 논쟁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역사에 관한 공적 담론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최근 National History Standards, Smithsonian 박물관에 히로시마 원폭투하에 동원된 B-29 폭격기 전시 문제, 노예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전람회를 둘러싼 격론이 표면화되면서 ‘문화 전쟁’의 양상을 지닌다는 것이다.22)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이 천황제 비판의 맥락에서 탈민족 담론을 현실화시키고, 서구의 급진적 지식인들이 미국 주도의 지구화에 대한 비판 속에서 탈근대 기획을 발전시켰다는 점, 또한 아프카니스탄 사람들과 이라크인들을 수없이 살육하고도 아무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잘못된 광기에 찬 애국적 미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진보적 논객들에 의한 또 하나의 ‘문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민족을 넘어서’라는 우리의 주제는 이러한 방향에서 진행되는 탈민족, 혹은 초민족론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국의 변방민족의 역사로 강제 편입시키려는 소위 “동북공정”과 같은 문제로 일으키는 중국과 한반도와의 갈등, 독도를 둘러싼 한일 사이의 갈등, 러시아ž중국과의 일본의 영유권 다툼 역시 ‘국민 국가의 역사 만들기’가 그 갈등의 근원에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의 주제는 민족주의가 갖는 과도한 자민족 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며, 민족과 애국주의 담론이 어떻게 지배계급의 이해에 복무하는가에 대한 비판이니, 즉 오늘의 탈근대주의적 탈민족 혹은 초민족적 기획을 말해주고 있는 주제이다.


3. 넘어서야 할 미국에 종속된 일본의 신군국주의와 우파 민족주의의 문제

  광신적 주문에 걸린 우매한 대중들이 최면에 걸린 듯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졌던 20세기 초 일본, 패망을 향한 일본의 폭거에 대해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고 한다. 즉, “일본이 정상적인 나라였던 것은 러-일 전쟁까지였다. 그 후로는,...술에 취해 말을 타고 달리는 여우와 같은 나라가 되었다. 태평양전쟁의 패전으로 여우의 환상은 무너졌다.”  남한의 국제법학자 이창위 교수 역시 러-일 전쟁을 일본 군국주의가 출발한 분기점으로 삼는다. 유럽 열강을 제압한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일본 군부는 자신감과 착각에 사로잡혔고 여기에 우매한 대중들이 동조하면서 일본을 광기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이 교수에 의하면, ‘7인의 교수회’로 일컬어지는 일부 도쿄 대 교수들이 국수주의적 선동으로 일본 국민들을 현혹시켰으니, 이들은 일본 군국주의 탄생의 주범에 있어서 대표적 지식인들이라는 것이다.23)

   고이즈미(小泉) 일본 총리가 한반도와 중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동북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바, 주변국들과의 영유권 분쟁, 역사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강행이라는 일련의 사태들은 ‘평화 헌법’으로 일컬어지는 일본 헌법 제9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에, 미 점령 하에서 미국의 강요에 의해 제정 된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포기와 전력 보유 금지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제 자위대의 수준을 넘어 일본군을 보유하고, 더 나아가 세계분쟁 지역에 마음껏 일본군을 파병할 수 있는 이른바 ‘보통’ 국가로 가는 길을 착착 밟아 나가고 있다. 미국은 1996년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을 통해, 전후 일본에 씌워졌던 전범국의 굴레를 벗겨주고 일본의 정치적ž군사적 역할 확대의 길을 열어주었다. 최근에는 미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저지하는 법적 마지노선 구실을 해온 헌법 제9조의 개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미-일 동맹은 ‘강화’ 수준을 넘어 ‘군사 일체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하고 한-미 동맹을 보조축으로 해서 미-일-한 삼각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중국을 봉쇄한다는 미국의 세계전략과 동북아 정책구상은 남한과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경화 바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이 벌인 여론조사에 의하면, 2006년 60돌은 맞은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 전범재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일본인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20대는 90%가 모른다는 것이다. 도쿄 전범재판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찬성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야스쿠니 참배 찬성자 대다수는 승전국의 횡포라면서 도쿄 전범재판에 대한 정당성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한승동 기자는, 2005년부터 일본과 한반도ž중국 사이에 과거사 갈등이 거세지자 미국 일각에서 발끈하여 일본 우익의 태도에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즉 그것은 미국이 주도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제, 이른바 전후체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과 일본의 관통하는 흐름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과거만을 부정하는 것인데, 미국과 일본의 보수 우익들이 오락가락하지만 자기이익 실현이라는 한 가지 원칙에는 초지일관이라는 공통점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행태는 나라야 어디로 가든지 과거를 묻지 말라며 오직 권력탈환, 집권 기대감에 매몰되어 있는 남한의 보수적 우익 역시 자기이익 실현에만 충실하다는 점에서 미일의 보수 우익과 공통점을 지닌다는 것이다.24) 바로 우리가 넘어서야할 민족주의는 이렇게 잘못된 민족주의이다.


4.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아시아 신학의 모색:  남한 여성신학자의 관점에서

   주한 미군에 이어 주일미군의 재편과 재배치에 대한 합의가 마무리됨에 따라, 중국을 억제하고 봉쇄한다는 미국의 아시아 패권 전략이 완성단계에 접어들면서 동북아에 있어서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이 더욱 더 고조되고 있다. 오늘의 국제관계에 있어서 누가 동북아 패권을 장악할 것인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국가전략으로서 ‘동북아 장악’을 내걸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적 상황에 직면해서 어떻게 개별 국가적, 자국 중심적 폐쇄적인 민족과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국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민중적 교류를 증대해 차별 없는 새로운 연대를 통해, 동북아를 휘잡으려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미ž일의 군사 패권주의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의 한-미-일 신우익 세력들이 철저히 자기 이해만을 관철시키려는 의도에서 지배계급에 의한 각축이 고조되는 현 상황 속에서 우리가 넘어서야 할 민족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존속되어야할 민족적 요소는 무엇인지를 규명하지 않는다면, 한일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아시아 신학의 모색이란 추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민족이 존속해야 한다면 그 존속의 목표는 모든 민족들을 자본의 지배 틀 속에로 몰아가면서 세계를 적극적 양극화로 분열시키는 지구 자본주의의 불의한 지배세력들과 투기자본의 변혁일 것이다.

  나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신학모색”이라는 우리의 주제는 1.한일관계는 특히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36년간 식민 지배를 경험하였고 아직도 과거사에 대한 청산이 매우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한반도와, 이미 모든 과거사 청산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하는 난제를 직시하지 않고서 민족을 넘어서자고 한다면, 그것은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2. 남한ž미ž일로 구성된 해양세력과 북조선ž중국ž러시아로 구성된 대륙세력간의 패권다툼이 날로 극심해지는 동북아, 나아가 세계상황에 대하여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구화라는 불의한 세계문제와 연동된 관계의 철저한 혁명적 전복 없이는 개별 국민국가 사이의 관계 개선의 추구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먼저 과거사 청산 문제를 보자면, 1990년이래로 남한 식자층에서 동아시아론이 쏟아져 나왔다. 문제는 과연 동아시아는 국가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하고 있는가, 이보다 앞서서 과연 ‘동아시아’라는 실체가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니, 이러한 물음은 아시아 신학의 모색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물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25) ‘민족을 넘어서’라는 주제를 올바로 전개하기 위해서 우리는 특히 정선태의 글 “그 동아시아론은 끔찍했다: 피비린내 나는 19세기 초 ‘일본발 동아시아론’...한국 지식인들은 역사의 경험 잊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동양평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던, 조선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유지한다고 약속을, 조선ž중국ž일본 세 나라가 연합 동맹하여 동양의 대세를 영원히 보전한다는 대의를 이토 히로부미가 어떻게 헌신짝처럼 팽겨쳐 버렸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쟁취한 일본이 철저히 ‘제국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하자, 안중근은 동양평화의 전도사에서부터 배신자로 돌변한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에 총을 겨누었다.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다시금 ‘동양 평화’를 내세우고 아시아 민중들을 고통에로 내몰았으니, 소위 영미귀축(英米鬼逐)의 기치가 아시아를 뒤덮으면서 아시아 근대사는 죽음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정선태는 제2의  안중근이 제2의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겨누지 않아도 되는 세상, (동)아시아 민중들이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진정한 ‘대동아공영’의 세상을 꿈꿀 수 있기 위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26)

  2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도 동남아는 포기하더라도 한반도와 만주를 일본이 언젠가는 다시 지배할 수 있기를 꿈꿨던 영원한 ‘대동아공영권’ 신봉자 기시 노부스케를 생각할 때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갖는 의구심은 결코 지나치지 않다.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으로 처형당할 운명을 극적으로 모면한 뒤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의 기반을 닦았으며, 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 재무장을 외치며 차기 일본 총리로 거의 화정되기에 이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외조부이다. 이제 우리 한일 신학자들도 과연 (동)아시아의 실체가 있느냐, (동)아시아 전체는 국가주의와 자본주의 혹은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수행하고 있느냐는 물음을 회피할 수 없다. 타민족이나 타국에 대한 멸시를 내면화 시키며 국가 이기주의를 노골화 해온 일본 침략사상이 ‘아시아연대론’, ‘동아연맹론’ 환상으로서의 ‘대동아공영권’으로 발전해갔으며,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역사, 정치, 경제적 컨텍스트를 무시한 채 탈근대주의를 비롯한 각종 post 담론들에 의거한 기만적 탈민족ž 초민족론의 추상적 신학적 논의에 휘말려서 우리가 그러한 오늘의 문제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고 ‘민족을 넘어서’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새로운 관계개선은 불가능하다. 2006년 6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친일ž대독협력과 기억의 정치학’이라는 학술대회에서 나치 독일치하에서 나치 정권에 협력했던 프랑스 국민들의 청산 문제가 발표되었다. 프랑스는 1944년 8월 해방직후의 대독협력청산을 모면했던 범죄자들에 대한 2차 청산을 1990년대에 이르러 진행했다. 이러한 조처는 조국에 대한 배신 때문이 아니라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기소와 처벌이었다.27)  반인륜적 범죄는 특정국가의 범위를 넘어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ž기소되는 방식으로 그 추세가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2006년 9월 13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촉구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사실에서 입증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한일관계 개선의 모색이란 철저한 세계변혁과 연동된 얼마나 엄청난 주제인가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K. Barth는 그의 Kirchliche Dogmatik Ⅳ 전체에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 활동을 하나님의 혁명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Barth에 의하면, 화해란 인간과 세계 상황의 변혁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혁명적, 급진적, 전체적, 보편적 변혁을 말한다. 철저하고 보편적인 세계의 변화, 그것의 전적인 개혁, 그것의 역전, 회개, 방향전환, 갱신으로서의 화해를 의미한다. 그는 ‘화해되지 못한 사회’와 ‘화해된 사회’ 라는 개념을 논하고 있는데, 화해되지 못한 사회란 재물을 움켜쥐고 취하여 획득한 것으로 타자들을 굴복시키고 방해하고 강탈하는 사회, 즉 평화롭지 못하고 적대 관계의 사회, 계급이기주의에 물든 사회, 화해의 은총에 저항함으로써 은총을 상실한 사회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바로 화해되지 못한 사회의 현대적 출현 형태로 간파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신랄하기 그지없다.28)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류가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않은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오늘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혁명은,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라는 stagflation으로 대표되던 1970년대 경제 위기가 발생하자 계급질서의 최상층부를 틀어쥔 금융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수익회복을 위해 과거의 제도와 정책들을 자신들의 계급이익에 맞게 뒤바꿔놓은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1979년의 쿠데타’에 의한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폭력성에 의해 1990년대 초반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들의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을 자유화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는 저축율이 30%가 넘었던 이 나라들에게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재무부의 압력을 비롯한 국제적 압력 때문이었다. 일본이 지난 10여년간의 극심한 장기침체를 겪고, 아직도 그 회복이 어려운 것은 이처럼 불의한 세계자본주의의 폭력성에 의한 것이다.

  평화 운동가로 유명한 오다 마코토에 의하면, 일본이 주변국들과의 심각한 마찰을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모양은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 ‘신 보수’ 세력의 등장과 관련된 것으로서 이는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 즉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의 위상이 흔들리는데서 나오는 현상으로서, 오늘의 일본 사회는 일본 전후 사회와 비슷하다는 것이다.29) 어쨌든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한 세계패권 장악의 마수로부터 우리가 벗어나 불의한 지배세력들과 투기자본의 변혁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한 올바른 한일관계 ž세계의 관계개선이란 불가능하다.

  1975년에 대중 민족주의의 출현과 파시즘의 상관성에 관한 책30)을 쓴 바 있는 George L. Mosse는 1985년에 Nationalism and Sexuality 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와 ‘점잖고 올바른’ 예절과 도덕을 지칭하는 동시에 sexuality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가리키는 고결함, 체면으로 번역되는 respectability 간의 관계를 해명하였다. 민족주의와 고결함은 모든 이들에게 각각의 삶의 위치, 즉 남과 여, 정상과 비정상, 토착과 이국의 위치를 부여했다. 또한 남성성과 이상화가 국가가 사회의 토대로 인식된 것과 나란히, 종종 천박하다고 비난받아왔던 여성이 다른 한편 공적ž사적 도덕 질서의 수호자로 이상화되었다. 19세기 말쯤 이르면 민족의 표상과 상징으로서의 여성은 국가 전통 질서와 국가의 수호자이며 고결함의 구현체로 간주되기에 이르렀으니 ‘민족의 순결’ 이라는 신화가 이를 말해준다.31)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19세기 사회의 모든 계층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부르주아적 이상을 강화시키게 되며 여성이 이상화되는 동시에 여성의 위치는 고착화됨으로써 이러한 이상에서부터 벗어난 여성들은 사회와 국가라는 기존질서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간주된다. 고결함과 민족주의는 부르주아 사회가 성립된 것과 동일한 시기인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남자와 여자가 인식되는 방식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행사해 왔다. 게다가 인종주의가 고양된 민족주의와 결합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 즉 인종청소 혹은 말살 이데올로기(scavenger ideology)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폐해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비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대동소이하다고 본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계급해방과 여성해방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면, 제3세계 여성들에게는 서구 문화제국주의와의 싸움과 여성해방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가 하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민족해방 투쟁 기간 동안 여성들이 수행한 역할과 해방이후에 그들이 재차 억압적 가부장제 가족 구조로 되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식민주의에 대항한 해방투쟁 동안에 그 가부장적 틀에 도전하고 이를 소멸시켰는가의 여부에 관심을 집중한다.

  페미니스트들과 여성신학자들은 지난 50년 동안 하위층과 피억압자들의 경험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기우려 왔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래로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의 메타담론의 부정을 주창하는 프랑스 철학에서 시작된 post 담론 이데올로기에서는 경험의 제거가 일어났으니, 이는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Homi Bhabha 의 관념론적 탈식민주의에 이르면 “갈고 다듬어 낼 힘을 쥐는” 주체는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기호다.32) 이처럼 탈근대주의/탈구조주의/탈식민주의 담론에 있어서 주체에게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기 까지 피와 살을 지닌 인간 (여성), 특히 땅과 집과 가족을 빼앗긴 인간 존재의 고통의 경험이 희석화 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민족을 넘어서’라는 주제를 논하는 오늘의 탈민족ž초민족 이론들은 총체성이라는 거대 전략이라는 버거운 꿈을 덜어버린 역사, 역사적 통사론(syntax)의 붕괴, 곧 의미와 사회적 경험의 파편화, 불연속, 정치적 현실감의 상실, 맥락의 상실이라는 담론들의 맥락에서 논의된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전개되어야 할 여성신학은 정의로운 새로운 동북아 사회ž새 세계 창출이라는 과제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여성들은 남성지배의 세계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취급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지배구조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세력들과 얽혀있는, 소위 과학기술 혁명과 접합된 오늘의 불의한 지구화 문제와 씨름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거대 세력에 대항하는 국제민중의 연대 투쟁 역시 전 지구적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세계 민중 연대적 투쟁에의 여성들의 동참 역시 전 지구적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니, 여성해방이라는 주제와 실천 자체가 전 지구적 정치를 의미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기적인 개인주의를 전 세계에 유포하는, 따라서 인종적ž경제적 평등에 대한 관심을 묵살하는 서구 중심의 신자유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멈출 수 없다.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이에 동질화된 채 아시아를 비롯한 비서구에로 유입되는 페미니즘이 비서구의 다양한 형태 및 다중적 형태의 페미니즘을 부정하고 억압하게 된다는 문제를 주시하면서, 우리는 동북아 혹은 아시아 신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의 각종 post 담론 주창자들이 민족문제를 이미 끝난 것으로 간주하며, ‘지구화’ 과정에서 ‘민족’이라는 실체가 희석화 되어간다. 그러나 남북 민족분단이라는 멍에로 인하여 많은 제약과 문제들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북조선인들과 남한인들 모두는 민족문제를 가지고 끊임없는 씨름을 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통일운동에 함축된 새로운 민족개념과 운동은 지구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동북아와 세계변혁을 지향하고 있다. 이점을 앞에서 언급한 대표적 탈민족주의 이론가 P. Duara 교수는 주목하고 있으나 남한 교계와 신학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는 대체로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민족개념은 사회변혁운동에 투신하는 민중과 여성들을 포괄하여 새로운 동북아 건설을 지향한다. 한국 신학계를 비롯한 일본 신학계는 그러한 새로운 운동과 동향을 주목해 주길 바란다. 특히 일본이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적대시하며 붕괴만을 도모하는 한 일본은 결코 민족을 넘어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동북아를 기대할 수 없다. 동북아 패권주의에서부터 벗어나 잘못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하여 우리는 실질적 민주주의, 협상을 통한 갈등해결, 희망적 미래사회 건설, 지속가능한 사회와 세계 발전의 추구, 국제연대를 성취하기 위한 국제 이해교육과 평화교육, 한-중-일 문화를 비롯한 세계의 다문화 이해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세계평화 네트웤을 시급히 구축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기반에서 행동하는 아시아 신학을 수행해야할 것이다.

                        

주제어: 탈민족 혹은 초민족 담론, 문화 전쟁, ????

(                          , Culture W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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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Ae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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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