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 교민

이정의 (Gelsenkirchen)

 

2006년에도 많은 재독 교민들이 정부포상의 영예를 얻게 되어 이 땅에 사는 교민으로서 기쁨을 함께 나누며 표상을 받은 분들에게 축하를 드리는 바이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총영사관에서 한국정부에 보낸 공적내용을 읽으면서 섭섭하고 분한 심정을 숨길 수 없어 여기에 내 생각하는 바를 천명하고저 한다.

이정의 선생님은 이미<검정밥>이란 제목의 자전적 회고록으로 독일 뿐 아니라 국내에도 광부, 간호원 파견의 역사를 알린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70년 초 반부터 독일에서 일어났던 반 독재 운동에 동참하면서 그리고 직접 광부로서 일하면서 체험한 생생한 일들을 담담하게 그린 <검정밥>은 많은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곳 독일 동포사의 갈등과 애환에  비판적 관심과 예리한 지적을 누구보다도 아끼지 않는 이정의 선생님의 < 2등 교민> …우리 신문 143호 (2007. 2. 24일자개재) 33쪽을 본인의 수락하에 여기 옮겨놓습니다.

6.15 유럽 공동위는 과거와 같이 공관이 동포 사회를  편파적으로 관여하거나 분열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사상과 주장의 다름에  의해서나 지식과 힘의 소유 여부에 따라서 동포 사회는 더 이상 나누어져서는 안됩니다.  냉전논리나 흑백논리에 의해서 동포들을 저울질 해서는 안됩니다.

민주화를 이룬 국민답게 그리고 6.15 시대에 걸맞게 재외 공관 인사들은 더 이상 동포들의 감시자나  감독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본국을 대변하고  해외동포들의 권익에 봉사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 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독자들은 이정의 선생님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지적에 공감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우리신문 142호 5쪽에 의하면, Frankfurt에 사는 어느 교민에 대한 공적사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되었다:

"M대학에서 홍보학 석사를 취득한 후 ... 독일법인장으로 재직한 바 있는 인사로서 광부 또는 간호사 출신이 대부분인 당지 교민과는 달리 독일사회 문화 및 언어에 정통한 지식인일 뿐만 아니라 ...."

 

이 글은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에서 한국정부에게 보낸 공문으로서 독일 주재 한국 공관원들이 독일에 사는 광부, 간호사 출신인 교민들을 어떻게 취급하며, 교민들에 대한 질적평가를 어떻게 하는지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독일 주재 한국 공관원들이 광부. 간호사로 온 교민들을 이렇게 폄하하며 업신여기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공관원들이 교민들을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는 이 기회에 먼저 우리의 처지를 심각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

공관원들이 교민들을 이처럼 업신여기게 만든 큰 이유는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 우리는 오늘까지 교민을 위한 교민의 단체라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용단체적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코딱지 같은 모임에도 대사나 영사 혹은 노무관이 와서 높은 자리에 앉으면 그 모임의 회장이 생색을 내는 노예적인 근성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했다. 교민의 모임에 공관원들이 오지 않을 수 없는 근본적인 자부심과 자주성을 우리는 갖추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광부. 간호사로 독일로 나와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광부, 간호사 출신 교민들을 독일사회 문화 및 언어에 정통하지 못한 무식인으로, 그것도 재독 공관과 한국 정부 사이에 오고가는 공문에, 이등 교민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나는 독일 주재 대한민국 외교관이 독일어도 잘 못하는 것을 체험했고,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소위 대한민국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광부 간호원으로 왔던 사람들보다 더 비천한 행위를 하는 것도 목격했다. 그리고 나는 광부로 독일에 와서 여기에서 43년을 살면서 땅속에서 피땀을 흘리기도 하고 독일 대학에도 다니면서 한국에서 온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독일에서 한평생을 사는 광부, 간호사 출신 교민들과 여기에 공부하러 와서 눌러사는 교민들 사이에 독일사회 문화 및 언어에 대한 능력에 차이점을 보지 못했다. 가령 차이점이 있더라도, 말부터 배워야 했던 학생과 일부터 배워야 했던 광부, 간호원 사이의 언어 실력을 들추어 지식인 운운하면서 내 교민들을 무시한다는 사실은 재외 공관원으로서 할 일이 못되고 해서는 안된다고 단언하고 싶다. 더더구나 이러한 폄하가 재외 공관에서 모국 정부에 상정되는 공문에 표기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우리 교민들이 군사독재 시절에 살아남기 위한 기회주의자였던 공관원들에 의한 사상의 가름아래서 신음했던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일도 체험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도 공관원 및 영사, 대사가 그들이 근무하는 주재국의 교민들을 폄하하며 업신여겨서 이 사람들은 '지식인', 이 사람들은 광부. 간호사로 왔으니까 '무식인' 하며 가름질 하는 일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사실이다.

이 모욕의 아픔은 누구에게 하소하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물론 공관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교민은 없어도 된다. 그러나 교민이 있는 한 교민들을 가르는 일은 공관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위선양은 외교관과 지식인의 의무만이 아니고 모든 교민들의 본분이다. 그리고 국위선양의 원동력은 모든 교민이 대한민국의 자손이라는 긍지와 자부감에서 비롯한다. 이 긍지와 자부감에는 무식인 교민과 지식인 교민으로 갈라 놓을 수 없다.

 

공관이 광부, 간호원 출신인 우리를 업신여긴다면 우리도 방어기제를 구성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관원에 대한 성적표 같은 것 말이다. 이곳 언론에 발표할 수도 있고 국내 신문이나 인터넷 불로그에 발표할 수도 있으며 또는 외교통상부 혹은 더 높은 다른 부서에도 보낼 수 있다.

지식인이 아닌 우리는 지식인이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무식인 지식인으로 가름하는 사람에게 우리도 그들의 잘, 잘못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줄 권리가 있다.

주독 공관의 대한민국 외교관은 얼마나 독일사회 문화 및 언어에 정통한가? 주독 공관원은 독일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어떻게 취급하며 대우하는가? 재독 대한민국 외교관은 국위선양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며 어떤 활동을 하는가? 광부. 간호사로 왔던 재독 교민들의 국위선양을 위한 문화행사에 대한 재독 공관원의 관심은 어떠하며 적극 참여하는가? 등등 독일, 한국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하여 전세계에 알릴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로워야 한다. 우리의 모임에 대사관 직원이 꼭 와야 될 필요가 없다. 그들이 교민들의 현황과 생각을 알기 위해서 그러한 모임에 오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를 마련하는 자주정신과 힘을 키워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광부, 간호사로 독일에 와서 유감스럽게도 외교관의 눈에는 이등 교민으로 보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한국의 자손이라는 긍지를 넣어주었고, 세상 어느 국민보다 더 열열한 학구열로 우리 자식들을 공부시켜서 비록 부모들은 광부, 간호사 출신이지만 2세들에 대하여는 국제 어떤 외교관들에게 비교해도 부끄러움이 없는 재독 한국 외교관의 지위를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 광부, 간호사로 독일에 왔던 교민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경야독으로 대학에서 학위를 받아 귀국하여 조국 발전에 기여하거나 현지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외국에서 사는 동안은 외교관이든 지식인이든 광부, 간호사 출신의 교민이든 그들이 나치시대의 유대인처럼 "외교관," "지식인," "광부"라는 커다란 표식을 가슴에 달고 다니지 않는 한, 다 같은 외국인으로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어떻다는 것은 고국을 떠나 바깥에서 사는 사람은 다 동감하게 된다. 더군다나 외국에서 광부와 간호사 직업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시련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렇게 사는동안 우리는 공관을 고국의 손이요 그림자로 본다. 그래서 조그만 모임에도 대사, 영사, 노무관의 그림자를 반기며 조국의 배경을 뒤에 세운 것처럼 대사, 영사가 오기를 원한다. 모임에 초대하는 사람이나 공관을 대표해서 오는 사람도 그런 의미에서 행동해야 한다. 그 이상의 것도 그 아래의 것도 아니다. 공관은 교민을 무시하거나 가름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관원들은 옛날의 관료주의적인 행동과 생각에서 벗어나 권력이라는 단상에서 내려와서 교민의 옆에 서서 서로 격려 위로하면서 국위선양에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에는 교민들을 폄하하고 업신여기는 행위와 언동이 존재할 수 없다.

등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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