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시대 진보의 기준에 대하여’-김세창  

<기획연재> ‘새로운 민족사를 열어나가는 6.15시대’ ⑦

2007년 06월 26일 (화) 13:37:09

김세창

 

김세창(범민련 남측본부 조직위원장)

지난 2000년 남과 북은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이후 이른바 ‘6.15시대’를 맞아 남과 북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길을 걸어 왔다. 한때 6.15선언은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200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 정동영 통일부장관’ 특사면담을 계기로 제2의 6.15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6.15공동선언 발표 7주년을 맞아 지금 시대를 ‘새로운 민족사를 열어나가는 6.15시대’로 규정하면서 아래와 같은 십수 개의 사안들을 정리해 연재하고자 한다. 이 기획연재에는 서너 명의 필자들이 참가할 것이며 소제목들은 연재 중에 다소 바뀔 수도 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기획연재 순서>

1. 6.15시대란 무엇인가?
2. 6.15시대의 목표
3. 6.15시대의 자주통일운동의 특징
4. 6.15시대 민족대단결운동의 현황과 과제
5. 6.15시대 남북부문간 교류운동의 과제
6. 6.15시대 자주통일운동의 추동력

7. 6.15시대 진보의 기준

8. 6.15시대와 민족문제
9. 제2의 6.15시대
10. 6.15공동선언 이행의 걸림돌을 살펴본다.(3대장벽을 중심으로)
11. 6.15민족공동위원회의 강화발전을 위한 과제
12. 남북정치협상 개최를 위한 몇 가지 조건
13. 6.15시대와 남북공동투쟁문제
14. 6.15시대와 통일방안
15. 민족통일기구에 대하여

우리 사회에 대두되는 쟁점 중 ‘진보’에 대한 개념만큼 격렬한 쟁점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진보라는 말만 꺼내도 학살과 투옥을 감수해야 했던 때가 있었고, 아직도 진보는 친북, 좌파, 반미, 반체제 집단으로 낙인찍혀 활동을 구속당하는 극단적인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벗어나 있지 못하다.

주목할만한 것은 색깔시비 속에서 공안세력들의 사냥감 찾기와 정세 반전용으로 악용되던 지난 이념논쟁이 6.15시대에 들어 와 통일과 반통일, 자주냐 친미냐, 평화냐 전쟁이냐 하는 대단히 실천적으로 임박한 사회적 화두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의 개혁이 개혁다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진보좌파정권이니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니 하는 사면초가의 공세에 눌려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마치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 또는 무능력인 것으로 호도되고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친미수구세력들이 재집권을 위해 우익수구세력들의 총집결을 노리는 저열한 정치적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과연 이 시대의 진보는 무엇이며, 무엇이 진보다운 것인지에 대한 규명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분명한 것은 단 한 번도 진보세력이 집권해보지 못한 남측사회의 미증유의 현실 속에서 분단고착화와 전쟁위협이 중첩되고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현실에서도 숱한 민중들의 투쟁과 정치적 진출은 꿋꿋하게 진보정치, 진보시대를 열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략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진보라는 개념은 ‘평등과 연대’ 또는 ‘신자유주의 반대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범주에서 이해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민주노총 기획실(2007년 정세전망. 01. 22) 자료에는, 진보란 일반적 의미에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적 관점을 취하는 것을 의미하며, 한국사회 진보세력의 실체는 민주노총과 전농 등 민중적 사회운동, 민주노동당 등 근본적 개혁을 지향하는 진보적 정치세력이 주축을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다. 진보라는 규정이 계급해방세력이나 민족자주세력 일방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와 방향을 총체적으로 대하며 진보라는 틀 안에서 통 큰 단결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데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은 대단히 고무적인 상황이라 하겠다.

이에 반해 식자들의 견해를 종합해 볼 때 수구, 보수는 기득권체제를 유지강화하는 입장으로써 신자유주의찬성, 한미동맹 강화, 분단의 지속과 흡수통일 추진,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등을 내용을 자기 정체성으로 하는 세력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진보는 변화한다. 더 엄밀히 말하면 진보의 내용은 변하되, 진보의 기준은 변하지 않으며, 진보와 보수의 계선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사회역사는 낡은 것과 새 것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발전변화한다. 진보란 낡은 것을 새 것으로 교체하기 위한 모든 인식과 실천행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본질적으로 말하면 사람과 사회의 자주성을 속박하는 낡은 것과 이를 옹호실현하려는 새 것과의 투쟁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어제의 진보가 오늘에는 낡은 것이 되어 투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진보의 내용은 사회역사의 발전 정도에 따라 그 내용이 변화하는 것이다.

사회역사적 운동은 평등, 해방, 독립, 자주, 통일, 번영 등의 가치와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지만, 이것은 사회성격, 주체적인 역량, 사회정치적 제관계에 기초하여 일정한 전략전술적 판단과 방법에 의해 전개된다. 예를 들어 보자. 봉건체제를 반대하던 부르조아혁명 시기의 신생자본들은 토지를 매개로 신분을 예속해왔던 절대왕정체제를 반대한다는 의미에서는 진보였으나, 그 신생자본들이 산업혁명을 거치고 임금노동-자본가 관계로 새로운 억압체제를 형성함으로써 자본에 의한 인간의 억압과 착취라는 새로운 모순을 만들어냄으로써 투쟁대상이 되었다.

구한말 이조봉건체제의 무능부패와 거듭되는 당쟁에 환멸을 느낀 신흥 민족부르조아지 세력들은 일제로부터 자주독립과 근대국가를 희망한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이었으나, 민중에 의거하지도 않거니와 계급해방을 부정하였기에 그들의 진보성은 새 시대를 여는 진정한 원동력으로 되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일제식민통치 하에서 민중의 해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는 것이 선차적인 과제였다. 따라서 반일민족통일전선에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을 묶어 세워야 했다.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봉건적 차별과 제도를 없애며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목표아래 반일대전의 결정적 승리를 위하여 전민항쟁을 조직해 나갔다. 계급적 억압을 반대하고 생존권투쟁을 전개하면서도 모든 수탈체제를 철폐하고 모든 지주를 타도하는 급진적 투쟁보다는 반일애국과 친일매국의 기준아래 외세를 몰아내는 광폭한 역량을 준비해 나갔다.

1987년 군사독재 퇴진 직선제 쟁취는 최소한의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투쟁으로서 기층민중들의 거대한 민주민권투쟁의 새 시대를 열어 내었으나 반미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강력한 단결의 구심을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군부가 다시 정권을 장악해 버리게 되었다.

이렇듯 진보의 내용들은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끊임없이 열어내게 된다.

진보의 목표는 당연히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고 궁극적으로 민중의 해방을 실현하는, 즉, 사람의 자주성을 실현하는데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적인 것, 새 것은 모두 좋은 것인가라고 반문해 볼 수 있다. 여기에 진보의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진보의 기준은 첫째는 사회성격과 운동단계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하며, 둘째는 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하여 지지를 받는가, 아닌가에 따라 구분된다고 할 것이다. 즉, 사람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방향에서 운동단계에 부합 여부와 대중의 지지가 진보성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구호라 할지라도 사회성격에 따른 운동단계에 부합하지 않거나 주체의 준비 정도를 뛰어 넘거나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것은 진보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급진적 과제와 구호를 내걸어 선명성을 부각할지는 몰라도 대중의 지지를 획득해 내지 못하면 진보운동으로서의 생명력을 갖기 어려운 것이다. 진정한 진보성이란 급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 과학성, 대중성을 갖추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진보세력이 다수의 대중의 지위에서 참다운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계와 경로가 있다는 것이다.

덧붙일 것은 진보의 기준을 사적 소유의 철폐, 자본주의 착취제도의 일반적 철폐로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협소하며, 우리 사회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진보라는 개념을 당면해서 민중정부 건설이라는 관점으로 봐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진보는 계속되며 사람이 존재하는 한 영구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 문제이다.

진보의 기준이 이렇다 할 때, 2007년을 기점으로 민족사의 새로운 단계를 개척하며 민중의 새 정치를 열어나가는데서 선차적으로 나서는 과제는 6.15공동선언의 고수이행과 ‘우리 민족끼리’를 전면에 구현해야 하며, 반미를 중심으로 반보수대연합을 실현하여 수구세력들을 청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6.15시대 진보의 기준이다. 민족의 자주성은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며,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은 곧 민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본래 역할은 의제와 구호개발이 아니라 국민적 실천을 포용하고 주도해내는 참신함과 완강한 정치력과 헌신성에 있다. 주택, 세금, 양극화와 차별해소 등의 계급적 문제를 통해 기본계급의 단결과 민중의 투쟁력을 고양시키면서 영토조항, 국시문제, 한미동맹, 통일헌법과 같이 다른 집단은 결코 할 수 없는 정치적 시도와 합의를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광대 강연(6.8)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는 약자도 같이 함께 사는 것이라 했다. 민주주의는 공존과 통합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고귀한 영역에 신자유주의마저도 포용하고 미국의 지배정책마저 허용하고 말았다. 재벌에게는 80을 주고 서민에게는 20을 주고, 미국에게는 경제의 목줄을 넘겨주면서 이게 바로 상생이고 진보적 사상이라고 기만하였다. 87년 대투쟁을 훼손하고 6.15시대의 진전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참다운 진보는 자주의 정치이며 연대연합의 정치이다. 진정한 진보사상은 민족자주사상이며 민중해방의 사상이다. 외세를 걷어내지 않고, 수구냉전세력을 청산하지 않는 한 참정치를 실현할 수 없다. 민중들의 굳센 단결과 투쟁에 기초하여 각계각층의 평화통일ㆍ신자유주의 반대ㆍ개혁세력들을 강력히 견인하는 것이 6.15시대 진보의 역할이며, 다가오는 대선에서 남측 진보세력은 전인미답의 새 정치를 열어 나갈 시대적 책무를 부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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