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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시대 통일운동 관점에서 본 몽양 여운형 선생

2007년 07월 19일 (목)

이경택 (6.15 유럽공동위 운영위원)

 

Lie, Kyung-Taek7월 19일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서거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1947년 7월 19일 당시 해방 공간의 와중에서 좌우합작과 중도주의를 통한 민족 대단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혜화동 로터리에서 흉탄에 저격되었다.

 

일제가 항복을 한 직후, 건준 조직 때부터 남북의 분단이 고착되기 전 까지 그가 추구한 하나의 조선 반도를 위한 민족운동은   60 년이 지난 오늘 날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이나 노력이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그의 서거 일 마 져 일반적으로 크게 기억되지 않은 것은 아직도 분단체제가 만든 냉전이념과 흑백논리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몽양 선생의 후손들이 북 쪽의 요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살아있는 남 쪽에서는 공산주의에 부화뇌동한 회색 주의 자로 누명을 씌웠다. 우익이었던 김구 선생이 남북이 공인하는 민족주의자의 반열에 훨씬 일찍 손 쉽게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서 몽양 선생의 경우는 그의 좌파적 사상과 진보적 입장이라는 기본 색깔 때문에 평가가 훨씬 뒤 늦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남쪽의 민주화가 달성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나 좌파 계열의 사상가들과 운동가들이 서서히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진정한 (좌파 진영이 아닌 우익 진영에 대한 지칭으로 무분별하게 남용된 그런 의미에서가 아닌)민족주의자라는 보다 큰 개념으로서 수용되면서 그 동안의 인색했던 평가에서 조심스럽게 탈피하고 있다.

몽양 선생이 2005년 비록 2 등급이지만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게 된 것은 그런 작업의 한 예라 보겠다.

 

많은 현대사연구가로부터 가장 뛰어난 민족주의자라는, 또는 가장 빼어난 민주주의자 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한편 통일과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업적은 원칙과 조직을 무시하는, 몽상가’요, 타협가’라는 빈축과 냉소를  사기도 했다.

그가  활동하였던 시기에는 지금도 비슷하지만 ‚중간’ 이나 ‚중도’라는 자유공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좌우 합작 위원회를 이끌면서 미군정의 후원을 받아내고 쏘련 군정과의 대화뿐 아니라 북의 지도자들과 연계했다는 그의 훌륭한 외교와 정치 능력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역설적인 평가일 수 있다. 

그를 두고 엇갈리는 평가는 앞으로 역사가들과 그 동안 파묻혔던 사료들의 발굴이 더욱 객관적인 분석으로 긍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한계점까지를 종합해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  6.15 시대에서 몽양 선생의 추구했던 중도 노선은 새로운 시각으로 우선 재 조명될 필요가 있다.  민족 대 단결과 완전한 해방을 위해 당시 우익과 좌익이 노정했던 비현실적 주장들을 원칙적으로는 배척하면서도 두 진영의 힘을 하나로 수렴하고자 했던 그의 현실감 있는 정치적 중용의 길은 많은 교훈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6.15 공동 선언 실천을 중심으로 남북이 하나로 되고자 하는 이 시대의 통일운동은 종래의 운동을 보다 대중화하고 생활화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바로 몽양 선생의 정치적 노선에서 그 실천력을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포용성과 현실성을 수용한 올바른 중도적 노선은 우리 근대 사에 아직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고 현재도 존립하기 어렵다. 그러한 정책 표방은 물론이고 개별적인 주장 마져도 양분논리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틈 사이로는 다치지 않고 날개를 펼 수가 없다.

물론 이 중도론 은 결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책임의 회색지대가 아니며 제도권 정치인들이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어정쩡한 어느 중간지점을 뜻하거나 전술적인 포장이어서는 안 된다.

6.15 공동 선언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이라는 생생한 현장 속에서 잉태 되어야 하며, 폭넓은 지지를 얻는 통일운동의 현장 속에서 성숙한 민주주의와 미래를 여는 평화적 민족주의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흔히 몽양 선생의 정치 행로 못지 않게 그의 유려한 풍채와 훌륭한 언변, 특히 운동(스포츠)과 청년들에 대한 애정이 자주 회자되는 것도, 실로 경직된 우리들의 운동가 역사에서 보기 드문 예로써 빛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선생의 자유 분망함은 80년대 ‚ 나는 갈 테야. 평양으로 가는 기차표를 내 놓으라고,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하던 문익환 목사의 운동 양식에서 일면 전승되었음을 보았다. 그러한 꿈이 병행하는 운동의 생동감과 여유를 수련한 운동가의 대중성을 이 시대는 절실히 요구 하고 있으며, 몽양에서 늦봄으로 흐르는 그 유연함과 꿈을 우리들의 자산으로 전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안으려는 우리들 같이 해외에 살면서 통일과 민족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에게는,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남북을 오가다가 극우의 희생이 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서거 60주기는 남다른 감회를 가지게 한다.

선생이 서거하고 난 다음해에 이어진 남북연석회담이라는 마지막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족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전쟁이라는 극한 국면으로 치달은 역사가  내년이면 60년이 된다.  분단체제의 종말을 평화적 통일체제로 이끌어야 하는 6.15 시대의 과제 속에 몽양 선생의 서거 6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와 교훈을 발견하여야 한다.

 

 2007년 7월 19일  글쓴이  이경택 (6.15 유럽공동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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