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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와 홈에버 - 통일운동노선에 대해 문제제기

<민경우 기자의 한국사회경제 변화 탐구 24>

 2007년 07월 30일 (월) 17:57:08

민경우 전문기자

 

8.15가 다가왔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8.15 행사장에 모일 것이다. 88년 대중적인 통일운동이 시작된 이후 근 20년간 8.15는 조국통일운동을 결집하는 장이 되었다. 올해도 8.15가 가까워 옴에 따라 다양한 지역, 단위에서 조국통일과 관련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 또한 이를 쫓아다니느라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8.15가 다가올수록 적지 않은 아쉬움을 갖게 된다.

아래에서는 이에 대해 솔직하게 지적해 보고자 한다. 논쟁적이고 도발적인 문제제기일 수 있겠다. 따라서 적극적인 반론과 토론을 기대한다.

첫째. 민족 문제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현 시점에서 조국통일을 둘러싼 쟁점은 주한미군철수, 6.15 공동선언과 같은 정치강령에 있다기보다는 민족, 민족주의, 세계화, 자유주의 등 철학적인 문제, 현 세계사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조국통일의 기초가 되는 민족, 민족주의 문제는 현 시기 조국통일운동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주제이다.

민족,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조국통일문제가 현실의 과제로 다가올수록 보수세력, 화해협력세력, 진보진영의 일부 등에서 예민한 주제가 되고 있고 이와 연관된 다채로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고등학생 논술 교재의 단골 주제의 하나도 민족, 민족주의이다.

그런데 세간에서 진행되는 민족, 민족주의 논쟁의 대부분은 민족, 민족주의를 부정적인 기조로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통일진영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필자는 조국통일진영이 조국통일운동이 대중화되는 속도에 맞춰 여기에 진출.개입하기보다는 운동 진영 내부 문제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정세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고 있다.

북미관계는 비교적 확고한 협상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에 대한 공감대는 커져 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반통일적 행각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BDA 문제가 지체되고 있다는 이유로 북에 대한 쌀.비료 지원을 유보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져도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이 진행되기도 했다. 햇볕정책을 계승했다고 하는 노무현 정부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쌀.비료 지원을 끊는 만행에 가까운 행동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제도권 언론이나 범여권의 사상 관점을 운동진영이 은연중에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북미 관계가 해빙되는 양상은 긍정적으로 보도하면서도 노무현 정부의 반통일적인 행보, NLL 등에 대한 북의 공격적인 언술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남북관계는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라는 범여권의 낭만적 인식의 산물이다. 범여권이 갖고 있는 착각은 그렇다고 하지만 운동진영이 정세를 진보적인 입장에서 재구성하지 않고 범여권의 정세인식, 제도권의 언론 보도를 그냥 받아들이고 있는 경향은 우려할만 하다.

셋째. 운동 형태의 상투성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중앙통선대가 전국을 종단할 예정이다. 올해의 통선대도 88년 통일선봉대가 시작된 이래 20년 전에 진행했던 모습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이전에는 학생들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노동자들이 많아졌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88년 통일선봉대를 시작할 때와 2007년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90년대 통일선봉대는 정권의 탄압에 맞서 조국통일운동을 선두에서 뚫어내는 선봉대의 역할을 수행했다. 통선대는 산과 물을 건너 전국에서 행사장으로 집중하는 전체 대오를 선도하는 그야말로 조국통일의 선봉대였다.

2007년은 어떨까? 조국통일운동은 이미 대세가 되었다. 지방자치단체와 결합하여 합법적이고 쾌적한 공간에서 조국통일과 관련된 통일행사를 큰 규모로 벌이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펄펄 끓는 무더위를 이겨가며 전국을 순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국통일운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또한 비슷하다. 2007년의 학생운동은 80년대 중반 두루마기를 입고 횃불을 들어 양심적, 지사적 궐기를 주창했던 20년전의 선배들과 거의 다르지 않다. 그 20년 사이 인터넷이 보급되고 세계화의 파도가 밀려 들었으며 IMF 경제위기에 치를 떨었다. 그렇게 강산이 두 번이 바뀌었음에도 대학생들의 조국통일운동은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통과 역사를 계승한다고 보기에는 세월이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는가?

끝으로 대중운동의 방향에 대해 지적해 보고자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자주통일, 반전평화를 주창하는 문건에는 ‘전쟁과 평화를 가르는 준엄한 시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다’는 따위의 비장한 문구들로 장식되어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내외의 정세가 전환적 국면에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남측 운동진영의 대응은 달라야 한다. 운동은 객관정세보다는 주로 주체역량의 준비정도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주체역량에 따른 대중운동의 방향을 논하기에 앞서 다음의 세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현 정세의 특징이다. 현 정세의 특징은 북미 등이 정부와 정부간의 운명을 건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핵무기가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민간진영이 개입할 여지는 크지 않다. 시민사회, 진보민중진영이 이를 간과하고 자신의 역할과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운동은 공리공담에 그치거나 턱없는 좌편향에 빠져 들게 된다.

다음으로 한반도를 둘러 싼 정부와 정부가 벌이는 총력전의 양상은 다행히도 평화와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북미공방은 극적인 양상을 띠며 발전하고 있고 조만간 한반도 내정은 국제정세의 지각 변동과 맞물려 크게 변할 것이다. 따라서 향후 정세는 남측 내부의 힘이 외부로 분출되는 양상이 아니라 국제정세의 영향이 한반도 내정에 충격을 주는 방향에서 전개될 것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정세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반면 시민사회, 진보민중진영은 지난 2~3년간 한반도 통일정세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근거를 많이 잃었다. 우리는 2007년 3월 한미FTA를 막아내지 못했다. 한미FTA 협상타결은 이를 강행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어이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6년 10월 핵실험 직후 민주노동당은 기이한 논쟁으로 시간을 흘려보냈고 2007년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민주노동당의 통일정책은 대중의 관심권 밖에 있다.

통일운동은 위의 세 가지 점, 정부와 정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총력전에 민간진영이 개입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 북미 공방 등 한반도 통일정세의 변화가 조만간 우리 사회 정치지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 진보민중진영의 경우 지난 2~3년 한반도 통일정세가 격동할 시기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인정하고 운동의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통일운동은 정세를 대변하는 즉자적인 구호를 걸고 정세를 돌파하는 방향에서 운동을 배치하기보다는 대중운동 역량을 축적하고 강화하는 기조에서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옳다.

위와 같은 입장에서 운동의 방향을 설정할 경우 중요한 것은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과격한구호를 자제하고 대중의 공감대가 넓은 사안을 통해 대중역량을 꾸준히 강화해 두는 것이다.

또한 홈에버나 한미FTA와 같이 일견 조국통일, 반전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여도 향후 조국통일운동의 기초가 될 민중운동역량을 강화하는 관점에서 이를 의미있게 배치할 필요가 있다.

터놓고 말하면 8.15에 2만이 모이든 3만이 모이든 그것은 늘 있는 통일행사의 연장선에 있다. 반면 홈에버 싸움의 성패는 향후 민중운동의 향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민중운동의 전진과 쇠퇴는 조국통일운동의 대중적 지반과 연관된 근본적인 주제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에버 투쟁의 중요성에 비해 이에 집중하는 조국통일진영의 관심도는 현격히 낮아 보인다.

현재의 조국통일운동은 조국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운동진영을 어떻게 규합하고, 조국통일.반전평화와 관련된 정치강령을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라는 협소한 관점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국통일은 민중을 위해 있는 것이고 민중적 이해에 기초했을 때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8.15를 준비하면서 홈에버와 조국통일운동이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실천적으로 이를 결합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조국통일운동이 일부 각성된 진보적 인텔리의 관념적 운동으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민중의 이해에 복무하는 참다운 대중운동이 되는가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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