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비전향 장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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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53년만에 아버지 진심 전해듣자 눈감으셨어요”

‘빨치산 대장의 아내’ 이숙의씨 유고자서전 낸 딸 박소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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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우리를 찾았단다….” 청상과부로 고해를 헤쳐온 일흔 넷의 노모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밤 함께 옛일을 얘기하던 쉰 두살 외동딸 팔에 안겨 갑작스레 눈을 감았다. 2000년 8월28일 새벽 1시3분. 53년의 긴 기다림 끝에 필생의 한을 풀었기 때문일까.

‘그 사람’은 1946년 대구 10월항쟁을 주도하고 전쟁 때 남로당 경북도당위원장이자 남부군 제3지대장이었던 박종근. 1946년 경북 의성 3.1절 기념식장에서 당시 스무살이던 이숙의씨는 4살 위의 그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공주여자사범학교를 나와 모교인 의성 중부국민학교 교사로 와 있던 그는 그날의 좌우합작 행사에서 좌익대표로 연단에 섰던 박종근과 서로 첫눈에 끌렸다. 사선을 넘나드는 우여곡절 끝에 47년 6월 결혼했다. 단칸 셋방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신혼생활을 보낸 지 6개월만에 남편은 1년 쯤 뒤 올 수 있겠지 하며 북으로 떠났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음해 딸이 태어났고, 곧 전쟁이 시작됐으며, ‘빨갱이’가족들의 처참한 고난의 대장정도 막이 올랐다. 어찌된 영문인지 전쟁 때 경북지역 남로당 책임자였던 남편은 한 번도 가족을 찾지 않았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는 52년 2월17일 산에서 전사했다. 그는 아내와 딸을 저버렸던 것일까?

 

남로당 경북위원장·남부군 대장 박종근씨와 결혼
신혼 6개월만에 월북한 남편 52년 전사 소식만
부하 김익진씨 ‘가족 찾아보라 지시’ 증언에 전율

 

<이 여자, 이숙의>(삼인)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20세기 중반 질풍노도시대의 한 좌익활동가와 역사의 격랑속을 헤쳐온 그의 가족들에 관한 기막힌 사연을 담았다. 유고 자서전이 되고 말았는데, 독일에 유학가 그곳에서 결혼하고 정착한 딸을 77년에 찾아갔던 이씨가 2000년에 한국에 와 있었던 것도 자신이 직접 기록한 이 책 출간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작업은 그로부터 다시 7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마무리됐다. 이를 위해 서울에 온 딸 박소은씨는 14일 “5.18만 해도 벌써 27년이 지났는데, 50년이 더 지난 얘기가 오늘 젊은 세대들에게 읽힐지” 걱정하면서도 자신이 번역한, 동서독 모두에게 사랑받은 옛 동독출신 작가 슈테판 헤름린의 회고록 <저녁노을> 얘기를 하면서 “남북과 해외 700만 동포 모두에게 이 책이 사랑받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개인사 형식의 시대사’라고도 할 수 있는 책(관련자들 후일담까지 수록)은 경북 교육위원회 장학사에서 간첩혐의자 사이를 오고간 실존인물의 체험 위에 선 구체성과 극적인 요소로 소설적 재미까지 준다.

부부함께 해외에서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선 소은씨한테도 평생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아버지가 우리를 기억했을까?”하는 것이었고, 마치 예언이 실현되듯 극적으로 그 의문은 풀렸다. 운명의 그날 아버지 휘하 부대의 가장 나이어린 대원이었던 장기수 김익진씨가 북으로의 장기수송환을 하루 앞두고 나타나 자신이 아버지의 지시로 그들 모녀를 찾으러 몇차례나 연락병 역할을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 사람이 우리를 찾았단다”던 어머니처럼 소은씨도 전율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남편, 나에게도 가족이 있었구나…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았구나…” 어머니는 그날 밤 평안하게 운명했다. 심장마비였다.

북은 박종근씨의 가묘를 평양 혁명열사능에 만들어 두었고 이씨와 딸 가족은 그곳을 참배했다. 문부식씨와 함께 이 책의 탄생에 산파역을 한 김형수(발문을 썼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이씨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체제에 대해서, 혁명에 대해서, 사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종 변하지 않는 사랑의 약속과 책임에 대해서였다”며 “할머니의 추억이 우리들의 영혼이 혼탁해지지 않도록 끝없이 정화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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