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비전향 장기수>

시작    6.15정신    6.15유럽공동위    유럽운동사         종합     문화      6.15 Forum      독자마당

                                                                                                                                               건강 | 음식 | 살림 | 예술

 

한 그루의 갈매나무 - 이 여자, 이숙의

생각의 뜨락에서 2007/08/17 13:00 해우린

 관련기사

<이 여자, 이숙의> 그리움에는 폭력이 없다 2210-19092007

     <축시>  어느 불씨의 이야기 2210-1-19092007

"기다림! 그것은 나에게 생명,희망"  2205-07092007

[화제의 책] 이념이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 여자, 이숙의> 2204-06092007

“사람의 운명이 종이장 앞뒤” 2203-04092007

빨치산 아내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2202-29082007

[서평] <이여자, 이숙의>를 읽고서 2200-28082007

[출판] 혁명의 시대, 찬연한 사랑 2196-24082007

한 그루의 갈매나무 -  '이 여자,이숙의'  2195-24082007

분단의 비극이 고스란히 투영된 한 여자의 일생 2190-17082007

[이사람] “53년만에 아버지 진심 전해듣자 눈감으셨어요” 2188-16082007

<사람들> 모친 유고집 낸 '빨치산의 딸' 박소은씨 2186-16082007

<'빨치산의 아내' 이숙의 자서전>  '이 여자,이숙의' 출간 2185-14082007

Y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한겨레신문을 샀다. 경북 오지의 중소도시에서 한겨레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공자는 중인 이상이 되지 않으면 높은 수준을 말해 줄 수 없다고 하였다(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論語> <옹야>). 경북의 Y시에도 중인 이상이 살고 있다고 보아도 좋은가. 개상도의 수구꼴통들이 사는 이 동네에도 한겨레를 사는 사람이 있다니. 내가 신문 한 장을 사면서 Y시 시민 전부를 폄하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이들을 무시하지 말자. 공자는 겨우 25가가 사는 마을에도 경건한 인사를 올렸다. 나 공구보다 덕이 높은 선비가 살리라. 무엇보다 공자는 인간성을 신뢰하지 않았던가. 

버스는 서울로 간다. 날씨가 개었다. 신문을 뒤적이다 소름이 끼치는 제목을 본다.

“53년 만에 아버지 진심 전해 듣자 눈 감으셨어요”

(사진, 이숙의 선생, 한국일보)

이숙의(李淑義1926-2000)씨는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헤어진다.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은 소식이 없다. 떠날 때 돌아옴을 의심이나 하였겠는가. 광복 전후의 저 미친 세월이라지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였을 것이다. 딸을 키우면서 53년을 기다린다. 74살의 나이에서야 남편이 자신을 기다렸다는 말을 듣는다.

운명의 그날 아버지 휘하 부대의 가장 나이어린 대원이었던 장기수 김익진씨가 북으로의 장기수송환을 하루 앞두고 나타나 자신이 아버지의 지시로 그들 모녀를 찾으러 몇 차례나 연락병 역할을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 사람이 우리를 찾았단다”던 어머니처럼 소은씨도 전율했다.

여인의 사진을 본다. 까만 저고리일까 흑백사진이니 색깔을 알 수 없다. 하얀 동정이 그녀의 애절함을 더한다. 대구중앙초등학교 교사 시절이었단다. 저 앳된 얼굴로 창상과부가 되어 53년을 살았단다. 남편이 자신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남편이라 부르지 않고 ‘그 사람’이라고 한다.

“그 사람이 우리를 찾았단다….” 청상과부로 고해를 헤쳐 온 일흔 넷의 노모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밤 함께 옛일을 얘기하던 쉰두 살 외동딸 팔에 안겨 갑작스레 눈을 감았다. 2000년 8월28일 새벽 1시3분. 53년의 긴 기다림 끝에 필생의 한을 풀었기 때문일까.

» 1946 남편 박종근의 사진.                   1956 대구 중앙국민학교 교사 시절 이숙의씨.                1954 대구 약전 골목에서                                                                                                                                                 딸  소은씨와 함께.

요즈음 위조로 말썽 많은 학벌을 훑어본다. 이숙의씨는 공주 사범 출신이다.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말에 입학하였으리라. 저 시기에 사범학교는 조선을 통 털어 수백 명의 엘리트만 뽑혔다. 더구나 여학생이라니, 저 미모에 조선 최고의 규수감이렷다. 요새로 치면 하버드 출신의 재원이다. 결혼의 경력이 있으나 수만 남성들의 구애를 받을 수 있었으리라. 청마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은 죽는 날까지 이영도(李永道, 1916~1976)를 사모하여 하루에 한 통의 편지를 17년이나 쓰지 않았던가. 이영도가 사범학교 출신인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교사였으며 상부(喪夫)한 처지였다. 청마가 사랑한 이영도의 모습을 제자들이 남겼다.

 

이영도 시인은 그때 30대 초반쯤 됐었는데 딸 하나를 둔 미망인이었어요. 저는 이영도 시인에게 시조와 자수를 배웠었는데 선생님이 차― 암 이뻤어요. 언제나 한복을 곱게 입고 머리는 이렇∼게 올림머리를 하고 진짜, 나비처럼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어요.

 

미모는 이숙의씨가 이영도보다 한 수 윗길이다.

왜 이숙의 선생님은 소식조차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매진하였을까. 남편에게서 기별이라도 와야 남편의 뜻이라도 지켜 나갈 거 아닌가. 한겨레를 들추어보면 이숙의 선생님도 ‘그 사람’ 못지않은 사상가였던 것 같다. 요즘 와서 좌빨이니 무어니 하지만 그 당시만 하여도 좌경을 사상가라 불렀다.

‘그 사람’은 1946년 대구 10월항쟁을 주도하고 전쟁 때 남로당 경북도당위원장이자 남부군 제3지대장이었던 박종근. 1946년 경북 의성 3.1절 기념식장에서 당시 스물 살이던 이숙의씨는 4살 위의 그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공주여자사범학교를 나와 모교인 의성 중부국민학교 교사로 와 있던 그는 그날의 좌우합작 행사에서 좌익대표로 연단에 섰던 박종근과 서로 첫눈에 끌렸다. 사선을 넘나드는 우여곡절 끝에 47년 6월 결혼했다. 단칸 셋방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신혼생활을 보낸 지 6개월 만에 남편은 1년 쯤 뒤 올 수 있겠지 하며 북으로 떠났다.

달포 전에 나의 초대로 나의 우거를 찾은 D 대학의 K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경제학을 가르치는 사회과학 교수인 데에도 인문학에 밝아 최근 우리 역사 관계의 책을 냈다. 그 책은 잘 팔린다. 이런 곳에 혼자 자다니 무섭지 않나요. 하기야 선생님은 기가 세어서 나쁜 기가 침범치 못할 거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적자생존설인가. 내가 세고 약함으로 다툴 대상이라도 있는가.  마음속으로만 반문하였다. 기가 ‘세다 약하다’라는 물리량으로 따진다면 통속적이지 않나요. 맹자왈 호연지기란 마음으로 키우는 곧은 심지라 하였어요. 진실로 곧은 氣는 누구도 무엇으로도 누를 수 없지요. 예를 들면 신영복, 김지하, 김중태 등의 기는 박정희라는 사악한 기로는 이기지 못하는 거요.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사형선고로 협박하였어도 당해내지 못했어요. 이숙의 선생님의 행적을 읽으면서 저 분들과 같은 氣가 충만되어 있음을 느끼는데요. 나요, 나는 더럽게 살아온 적이 많으니 곧은 기를 지녔다 하기 어렵지요.

사진을 들여다보면 맑은 기가 환하게 흐른다. 이숙의씨의 고운 氣는 못 남정네의 혼탁한 기와는 절대로 섞을 수 없는 거다. 이 여인은 내면의 깨끗함으로 53년을 혼자 살아온 거다. 여인은 무엇으로 혼자 사는가. 문득 시인 백석의 연인 자야가 생각난다.

시인의 애인이었다는 엉뚱한 이유 때문에 1987년 서울 성북동에 7000여 평에 가까운 땅과 건물 40동을 내놓고 죽은 여인이 있다. 당시의 시가로 약 1000억이며 지금 시가로는 1조여 원에 이른다고 한다. 본명은 이영한(金英韓), 기명(技名)은 진향(眞香), 시인 백석이 불러준 이름은 자야(子夜), 그리고 나타샤이다.

 

미스터 백은 자식도 낳고 결혼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총각이 기생과 결혼하면

남자 집안이 망하던 세월이야

그래서 나는 당신 첩, 소실이나 될래요- 했지요.

거기서 실망한 거야.

"사랑을 버려도 괜찮아? 말 다한 사람이군" 하면서 떠났어요. "

(사진 설명, 18세 때의 김영한=나타샤)

시인 이생진의 시로 감상해 보자.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 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 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중략……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

……

나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를 좋아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938.

 

백석과 나타샤가 마가리를 찾아다니며 사랑을 나누었다는 3년 세월이 떠오른다. 어쩌면 백석의 시에 나오는 갈매나무도 나타샤의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사진으로 본 나타샤는 앙증맞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작았으며 갈매나무 역시 키 작은 떨기나무 이다.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의 시 중에서

고속버스는 막힘없이 달린다. 휴가 나온 아들은 학교 친구들이랑 여행 갔다고 한다. 대전 국립묘지에 가볼래. 애국지사 묘역에 외할아버지 산소가 있다. 군 입대 후 아직 못 가 본 곳이다. 아들은 대답이 없었다. 나이 예순이 가깝도록 애송시 한 편 없는 내가 부끄럽다. 애송시는 없어도 괜찮다. 시를 열심히 쓰기라도 하였는가. 아들은 아비를 시인으로 기억할까. 아니 시인이기를 바라지도 말자. 몇 번의 인터뷰에서 내가 기자에게 말한 것이 있다. 자신이나 아들이 무엇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가 중요하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 이게 제일 어려운 겁니다.  그 어떤 기자도 나의 이 말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나는 거짓말을 하거나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나와 주변을 속인 일이 있다. 내 여건의 한계 앞에서 어쩔 수 없다면서 거짓말을 하곤 했다. 아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벌을 속인 탓으로 사퇴하거나 변명 하는 일이 화제가 된다. 평소에 정직하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탓이라오. 하물며 저 이숙의나 김영한 선생님 같을 수 있겠소. 내 마음에 좋은 선생님으로 모시겠다. 서울 가면 책부터 사리라.

공자가 말한 중인 이상과 이하는 무엇일까. 중인 이하는 왜 수준 높은 경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였을까. 이숙의와 김영한 같이 더 높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인 이상의 목표를 설정하고 살 때에 중인 이상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숙의 선생은 대학 출신의 중매가 들어와도 초연하였다. 초등학교 졸업의 남자를 택하였으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였다. 세속적 평가를 버리고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평생을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중인 이상의 사람됨이다. 김영한은 시인 백석과 나눈 3년의 사랑에 생의 의미를 모두 바치었다. 이 역시 중인 이상의 사람됨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높은 수준의 인간만이 얻을 수 있는 성취를 이루었다.

누구나 저렇게 살 수는 없지만 저런 삶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세태가 되었다. 부도덕한 세력을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아, 그대들의 삶은 중인 이하의 삶에 불과하다.  
거짓된 사람 이숙의 선생처럼 김영한 선생처럼 살지 못한다.

문화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