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비전향 장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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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이숙의> 그리움에는 폭력이 없다

<이 여자 이숙의> 출판 기념회 소회 - 그리움에는 폭력이 없다 

2007/09/08 해우린

 생각의 뜨락에서

 


(가야금 독주, 박종근 인민군 경북 사령관과 저자 이숙의 여사의 사진이 나란히 나오도록 찍다. 내가 본 가장 성대한 풀판기념회장이었다.)

 

2007.9.7 인민군 사령관의 아내였던 <이 여자, 이숙의>의 출판기념회에 갔다. 연세대학교 알렌관 저녁 5-8:30, 출판사의 소개만 믿고 갔었다. 소개 글을 보니 국회의원 등이 온단다. 지루한 식전 행사가 있을 것 같아서 도착 시간을 1시간 늦추었는데 거의 6시 30분에 도착하였다. 멀리서 보아도 이숙의 여사의 따님 박소은 선생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침 선생님의 옆에 빈자리가 있다. 찾아가서 인사 드렸다. 선생님도 내 이름을 말한다.


(따님 박소은 선생님, 박종근의 유복자이시다)

 

도착 후에도 1시간이나 지루한 진행이 있었다. 무대에 이숙의 여사와 그의 남편이었던 박종근 인민군 사령관의 사진이 걸려 있다. 두 분의 모습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으나 가득 찬 손님 탓으로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1944년 3월 31자로 의성 중부국민학교에 첫 부임을 했다. 그때 나는 열아홉. 참으로 싱그러운 나이였다.
- <이 여자, 이숙의> 311쪽
그로부터 정직과 복직의 환난 속에서도 34년간 교직 생활을 끝내었다. 맘보, 미니스커트, 여성 정장이 미국식 투피스로 고정되는 물결 속에서도 하얀 저고리 까만 치마 무명옷만 입었던 여교사 이숙의의 삶. 결혼 6개월만에 남편과 헤어지고 유복자로 태어난 외동딸을 키우며 공산주의자의 아내라는 핍박을 받으며 사셨다. 남편과 헤어진 지 53년 후에 장기수로부터 듣는다. 죽기 전에 남편이 가족을 찾았다는 말을. 딸의 무릎에 안긴 그는 가슴에 묻어 두었던 말을 한다. "그사람이 우리를 찾았단다." 그리고 뺨을 붉게 물들이면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나는 이 부분에서 울컥 눈물을 쏟았다. 남편을 일러 그사람이라고 하다니. 53년 동안 소식 한 번 없었으니 무어라고 불러야 하나. 남편의 호칭은 많다. 여보, 서방님, 애 아범, 웬쑤..... 그런데 딸에게 그사람이라고 말하다니. 격절의 세월이 호칭마저 그사람이라고 객관화시킬 수밖에 없었을까.

모 철학 교수가 무언가 길게 말한다. 빨갱이는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사람이었다. 그런 것이 빨갱이므로 나도 빨갱이가 되겠다는 말씀을 하였다. 내 생각에는 미흡한 것 같았다. 북한의 인민군이 얼마나 신사적인 군인이었는지, 국군이 얼마나 잔학하였는지를 관객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득시켜야 했다. 마이크를 빼앗아 내가 대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박종근 선생님이 빨찌산인가. 빨찌산이란 러시아어 빠르찌잔(партизан)이 변한 말이다. 빠르찌잔이란 영어로 partisan이다. 원래 뜻은 당원이며 비정규군으로서 산림 의용군이라는 뜻이다. 그는 인민군 경북도당의 사령관이었다는데 왜 빨찌산인가. 인민군이라야 말이 된다.

<삶이 보이는 창>의 망년회에 참석하였을 때 만나곤 하였던 장기수 할아버지도 와 계셨다. 이래저래 기념회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박소은 선생님과 사진을 한 판 찍었다. 이 분은 나보다 대여섯 살 더 많으시다. 그런데 나보다 젊으시다. 맑고 깨끗하다. 사람은 의로움 때문에 세속의 시달림을 받아야 탈속의 기품을 풍기나 보다. 행사가 끝나고 가려고 인사를 드리니 준비한 음식을 들고 가란다. 그냥 가면 박정한 것 같아서 조금 들었다. 어디서건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이제 나에게는 습관이 되었나 보다. 채소 몇 잎, 밥 한 숟가락 들다. 나가는 길에 수정과라도 마시고 가려다가 박소은 선생님이 음식을 담는 모습이 보여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적게 먹으니 몸이 편안하다. 더 있거나 박소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자 애를 쓰면 실례가 되지 않겠는가. 200여 명의 하객들과 1분씩 나누어도 200분이 소요된다.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 까닭이다. 연세대학교의 교정은 그런대로 볼 만하였다.

<이 여자, 이숙의>의 문체는 <논어> 같다. 불필요한 감상에 빠지지 않고 사건 중심으로 소담하게 써 내려갔다. 그런데 왜 감동을 주는가.

53년 동안의 그리움이 행간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문득 기념사를 읊던 철학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윤리니 사상이니 그런 것 필요 없다고. 그는 그 말에 이어 미국의 폭력성과 기독교를 비판하려는 듯 말머리를 꺼내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윤리나 사상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 때문에 산다고.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이 알 수 없는 힘은 남을 해치지도 않고 자신만의 가슴에 진주를 키운다고. 기독교의 윤리와 미국 문명을 만든 사상 체계가 이숙의 여사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을 확인한 날이었다.
2007년 9월의 밤. 추기(秋氣)를 다투는 벌레 울음소리가 들렀다. 문득 연세대 교정을 걸어올 때 이한열 열사 기념 운운의 글구를 읽은 기억이 났다.

PS : 집에 와서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Guerrilla Leader, Park Chong-Gun. Commander of the 3rd Partisan Branch. 그는 빠르찌잔이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빠르찌잔을 다룬 것일까. 인민군을 다룬 것일까. 인민군을 긍정적으로 그린 최초의 소설은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이 아닌가 한다. 지금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윤흥길의 장마가 실려 있다. 이 소설에서 국군은 착한 인물로 빨치산은 나쁜 인물로 그려져 있다. 폐해가 크다.


(박종근의 사진과 춤)

 

(이숙의의 사진과 춤)

 

(서울대 철학과 송영배 교수의 축시 대독)

 

 

<담시>

 

어느 불씨의 이야기

 

사나이의 나라사랑 민족사랑

화산처럼 터져서 솟아 올랐고,

그 용암은 산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온 천지에 산불을 질러 놓았다.

 

숫처녀의 가슴에 떨어진 용암 불티하나

뜨거운 사랑의 불길을 댕겨 놓았다.

큰일하는 임과 나눈 사랑의 짧은 꿈은

반세기 동안 잔인한 이별의 벌이 되었다.

 

하루 밤 새 들이닥친 엄동설한에

용암은 식어서 찬 재된지 오래고,

비정의 겨울 공화국 서릿발 솟은 냉토에서도

청상의 여인은 자기 몸을 불쏘시개질 하며

남몰래 작은 모닥불을 지켜나갔다.

여인의 나라사랑 민족사랑은

연인을 향한 끈질긴 인고의 사랑으로 승화되었고,

나라의 정의로운 동량 키우는

선생님과 어머니의 뼈 깎는 실천이 되었다.

 

아버지 얼굴 한 번 못 본 유복 여,

반공국가의 Pariah족의 딸은

흔적 밟으며 오늘 고치고 내일 찾는

정의로운 역사의 심판을 믿고

더러운 세상 이기겠노라 굳게 맹세를 했다.

 

“당신을 찾았소”라는 전갈의 뜨거운 입김이

유복 여의 가슴에 안겼던

지친 노모의 안도하는 혼을 앗아갔을 때,

꺼져가는 노모의 모닥불에서 건진 불씨하나는

나라사랑, 민족사랑, 통일염원의

들 불을 댕기는 유복 여의 횃불이 되었다.

 

2007년 9월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6.15유럽공동위를 대표하여  김 원  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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