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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기구에 대하여’

<기획연재> ‘새로운 민족사를 열어나가는 6.15시대’⑮

 2007년 11월 13일 (화) 14:51:04

김세창

 

김세창(범민련 남측본부 조직위원장)

지난 2000년 남과 북은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이후 이른바 ‘6.15시대’를 맞아 남과 북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길을 걸어 왔다. 한때 6.15선언은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200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 정동영 통일부장관’ 특사면담을 계기로 제2의 6.15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6.15공동선언 발표 7주년을 맞아 지금 시대를 ‘새로운 민족사를 열어나가는 6.15시대’로 규정하면서 아래와 같은 십수 개의 사안들을 정리해 연재하고자 한다. 이 기획연재에는 서너 명의 필자들이 참가할 것이며 소제목들은 연재 중에 다소 바뀔 수도 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기획연재 순서>

 

1. 6.15시대란 무엇인가?

2. 6.15시대의 목표

3. 6.15시대의 자주통일운동의 특징

4. 6.15시대 민족대단결운동의 현황과 과제

5. 6.15시대 남북부문간 교류운동의 과제

6. 6.15시대 자주통일운동의 추동력

7. 6.15시대 진보의 기준

8. 6.15시대와 민족문제

9. 제2의 6.15시대

10. 6.15공동선언 이행의 걸림돌 (3대장벽을 중심으로)

11. 6.15민족공동위원회의 강화발전을 위한 과제

12. 남북정치협상의 성과적 개최를 위한 몇 가지 조건

13. 6.15시대와 남북공동투쟁

14. 6.15시대와 통일방안

15. 민족통일기구에 대하여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의 첫 결실로 남북 직항로를 이용한 백두산관광과 개성관광이 합의되었다. 이와 함께 남북 조선협력단지와 남북 농업협력사업 등의 추진에 탄력이 붙고 있다. 남북 총리회담이 개최되고 국방장관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총리회담에서는 각 합의분야별로 추진방향과 일정을 마련하고 필요한 공동이행기구를 구성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실상 연방연합제 통일실현의 초기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10.4공동선언에서 “6.15공동선언의 우리 민족끼리와 자주적 원칙을 재확인”하고 “연방연합제 통일과 민족통일기구수립을 위한 법률적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기초위에서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전기를 마련하고, 민족경제공동체로 나아기 위한 여러 실천적 대책을 강구하고, 남북교류와 협력의 전면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방안들이 제시”됨으로써 6.15공동선언 이행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2항에서는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하고 ‘남북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棘像?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함으로써 연방연합제통일 진입의 제도적 준비와 정치협상 본격화의 국면을 열어 나가고 있게 된 것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방안의 실현을 위한 발전적 모색이 처음 나타난 것은 1989년 4월 2일 문익환 목사와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의 공동성명이다.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우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원칙에서 연방제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천방도로서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1989년 문익환과 허담의 4.2남북공동성명서)

이후 김일성 주석이 1991년 신년사에서 “우리는 고려민족연방공화국창립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 잠적적으로 연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 높여 나가는 방향에서 연방제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하여 연방제방식의 통일 실현을 단계적이며 탄력적으로 할 수 있음을 천명하였다.

이어 1991년 4월 28일 최고인민회의 윤기복 통일정책심위원장이 “북과 남의 제도를 그대로 두고 연방통일국가를 세우자. 그러나 잠정적으로 지역자치에 더 많은 권한 즉, 외교, 군사, 내치권을 줄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91년 당시 한시해 조평통 부위원장은 “외교와 국방권한을 자치적으로 행사하는 등 연방정부의 기능을 처음에는 느슨하게 했다가 점차 강력한 연방정부를 가져 통일에 이르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93년 4월 7일 조국통일 10대강령을 발표(94년 4월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와의 대담에 의하면 10대강령은 “어떠한 우방국가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에 감명받아 발표하였다고 전해진다)하는데 여기에서는 공존, 공영, 공리의 원칙이 천명되어 민족공동의 이익과 상호존중의 원칙이 더욱 강조되었다.

국가연합이란 소련연방 해체 후의 독립국가연합처럼 두 개 이상의 국가가 각기 독자적인 군사권 외교권을 가지고 국제조약에 기초한 결합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국가연합 자체는 1국가성을 갖지 않는다. 반면에 연방국가는 두개 이상의 국가가(물론 남북은 국가간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이며 특수한 관계이다) 연방헌법에 기초해 결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성국은 국제법상 주체성을 갖지 않는다. 연방과 연합 사이에는 단일한 주권성을 갖는가, 아닌가에 따라 이렇듯 중대한 차이를 갖는다.

10.4공동선언 직후 남측정부는 “남북연합을 지향하는 남북관계의 제도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공동선언에서 밝힌 각 분야의 합의사항의 의미를 볼 때 지금 단계는 단순한 체제공존과 경제협력을 뛰어 넘어 현실적으로 “남북관계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조절해 가는 연방연합제의 초기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 추진과 북미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종전선언이 가시화되고 평화협정논의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통일기구에 대한 성격과 기능, 그리고 특히 1국가성 등에 대한 남북간의 인식차이를 좁혀내고 이를 결정적으로 추동할 남측정권문제와 남측내 각계 여론과 대중운동, 남북간 정치연합운동이 얼마나 힘있게 발전하는가”의 실천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하겠다.

남측의 역대 집권세력이 내놓은 남북연합에서 연방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선거제, 시장경제도입, 다당제 도입 등이 상당 수준 실현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3단계통일방안(71.3.24, 평화적 공존 → 평화적 교류 → 평화적 통일)을 시작으로 공화국연방제(88.9, 국가연합<느슨한 연방단계> → 연방제단계 → 완전통일)을 거쳐 남북공화국연합제(91.4, 남북연합단계 → 연방단계 → 완전통일단계)에 이르러 통일방안 3원칙을 정립하면서 ‘김대중의 3단계통일론’으로 정식화하였다.

김대중의 3단계통일론의 특징은 1단계가 대략 10년 정도 소요되며, 2단계인 연방제로의 진입을 위해서 연방헌법의 제정, 연합의회로부터 연방의회로의 전환, 연방제 하에서의 대통령의 선출방식, 남북간에 서로 상치되는 법률의 개폐, 유엔에서의 단일회원국으로의 지위전환 등을 다루게 된다. 이를 볼 때 사실상 1단계인 국가연합단계는 북의 체제변화를 유도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하에서의 남북의 체제통합적 접근을 용이하게 위한 정치적, 법률적 준비단계로서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연합제안에서 제시된 연합기구는 대단히 제한된 권한을 가지고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에서 파생되는 남북간 국제간 업무를 처리한다. 유엔에는 연합의 이름으로 단독가입하게 되는데, 연합기구에는 최고의사 결정기구로서 남북연합정상회의, 대의기구로서 양측 의회의 동수로 구성하는 남북연합회의(노태우 정부에서는 남북 각 100명의 국회대표로 구성되는 남북평의회), 집행기구인 남북연합각료회의를 둘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에 반해 6.15공동선언에 기초한 연방연합제는 두 개의 국가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통일적으로 지휘조절함으로서 하나의 국가로서 하나의 주권을 행사한다는데 특징이 있다. 2개 국가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해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개의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가지게 하고 그 우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통일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돌 기념보고대회에서 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의 연설)

또한 2001년 2월 11일 평양방송에 의하면, “민족통일기구는 국가기구이며, 남쪽의 연합제와 북쪽 연방제의 공통점에 바탕을 두고 진행해 나가는 것이며, 이 기초에는 1국가 1민족 2제도, 2정부에 기초를 둔 연합연방제가 있다. 쌍방이 통일방안에 대해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민족통일기구는 대외적으로 하나의 국가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위의 내용을 볼 때 6.15선언의 귀결은 남과 북이 외교권 군사권 등 지역주권의 핵심적인 권한을 그대로 갖는 상태에서 민족통일기구 수립을 통해 민족문제 해결의 본격적 단계로 진입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민족통일기구는 완결된 수준과 형태는 아닐지라도 분단 이후 민족적 합의에 의해 최초로 민족국가를 대표하는 기구가 되는 것이다.

민족통일기구의 구성에 대해서는 북의 안경호 조평통위원장이 “민족통일기구와 관련해서는 국회와 행정기구구성은 (남북)쌍방이 실정에 맞게 창발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밝힌 정도가 전부이다. 대체적으로 보면, 민족통일기구는 남북당국간의 합의에 의해 수립되며, 최고기구로 정상회의를 두고 남북공동위원회를 두며, 동수의 고위당국자, 일정수의 의원, 그리고 민간세력을 포함하여 구성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각종 사회분야 분과위원회가 마련되며, 모든 의사결정은 합의제로 운영될 것이다.

이제 남북총리회담을 시작으로 남북정상회담 합의이행을 위한 남북공동위원회가 이번 총리회담에서 합의되면 실질적으로 민족통일기구 수립의 기초단계로 접어든다고 볼 수 있다. 정상회담, 총리회담, 각료회담, 의회회담 등이 병행되어 남북 전반의 모든 문제를 협의실천해 나가는 과정은 결국 통일국가기구를 구성하는 역동적이고도 구체적인 과정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향후 남북관계는 정부를 대표하는 각료, 의회회담만이 아니라 해외를 포함하여 전민족적 의사를 결집할 수 있는 민족정치협상회의 소집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고 전망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급진전이 기대되는 경이로운 6.15시대의 한 가운데서 지난 1985년 결렬된 남북 국회회담 추진의 경험과 교훈, 1993년 1월 돌연 재개된 팀스피리트훈련으로 인한 남북기본합의서 정국의 파탄은 민족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정치군사적 문제해결이 남북관계 진전에 얼마나 중대한 관문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남북간의 불가침에 관한 공동선언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국회회담을 갖자고 한 북의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의 제의(1985. 4. 9)에 대해 6월 3일 이재형 국회의장이 ‘통일헌법제정을 위한 남북간 협의기구 구성문제와 통일기반조성에 필요한 사항을 토의하기 위한 남북국회회담개최를 환영한다’고 호응함으로써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국회회담을 위한 접촉이 시작되었다. 국회회담을 위한 6년여 간의 접촉은 각계 대표가 참여하는 연석회의(합동의회)로 할 것인가 아니면 국회회담에 한정할 것인가, 그리고 불가침에 관한 공동선언을 다루고자 했던 북측 입장과 이를 외면한 남측 입장차이로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90.2.8).

이 과정에서 남북불가침공동선언과 주한미군철수 연계문제(88.11.17. 6차접촉), 팀스피리트훈련문제(88.12.29. 7차 접촉), 문익환 임수경 서경원 방북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문제(89.10.15. 8차 접촉) 등은 남북 국회회담 성사여부의 관건적 요인이었다는 점을 볼 때 이번 총리회담은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법률적 제도적 정비와 군사적 긴장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의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더구나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6.15와 10.4공동선언을 되돌이킬 수 없도록 불가역적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세가 합법화될수록, 북미관계가 진전될수록 정부의 역할뿐만 아니라 민간통일운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게 된다. 이것은 남측정부가 자주적 민주정부로 되어 있지 못하며, 민간통일운동의 반제자주투쟁과 전면적인 남북정치연합을 거세 또는 규제하려는 상황, 남측사회의 극우반통일수구세력이 잔존한 가운데, 점령군인 미군의 지위역할 변경을 통한 영구적이며 합법적인 주둔을 강행하면서 한미동맹강화를 통해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을 지속시켜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남북해외 3자연대운동의 정치적 역할을 전면화하는 동시에 연방제 실현과 미군철수, 유엔사해체, 한미동맹관련조약 폐기, 헌법개정과 통일정부 건설에 대비한 각 분야 법률정비를 견인하고 추동할 강력한 진보정치세력을 시급히 요구하고 있다.

하기에 10.4공동선언 지지이행 분위기를 확산하고, 친미수구세력의 재집권을 막아내며, 6.15공동위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며, 남측 진보세력의 단합실현과 범민련 한총련을 합법화하기 위한 투쟁은 보다 가까워진 민족통일기구 수립 정세에 능동적인 역할을 다해 나가기 위한 6.15시대 주체역량의 절박한 과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간 15회에 걸친 연재글을 보아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부족하나마 6.15공동선언이 가져 온 기적 같은 시대적 변화와 추동력을 긍지 높게 확인하고자 하였다. 더 많이 실천하고 사색하여 통일실현과 새조국 건설에 기여하고자 하는 수많은 민중의 충복들과 함께 6.15시대의 참된 자주의 길을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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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민족통일기구에 대하여

14. 6.15시대와 통일방안

13. 6.15시대와 남북공동투쟁

12. 남북정치협상의 성과적 개최를 위한 몇 가지 조건

11. 6.15민족공동위원회의 강화발전을 위한 과제

10. 6.15공동선언 이행의 걸림돌 (3대장벽을 중심으로)

9.   제2의 6.15시대 2166-10072007

8.   6.15시대와 민족문제 2158-04072007

7.   6.15시대 진보의 기준 2153-26062007

6.   6.15시대 자주통일운동의 추동력 2150-21062007

5.   6.15시대 남북부문간 교류운동의 과제  2142-13062007

4.   ‘6.15시대 민족대단결운동의 현황과 과제’  2135-05062007

3.   ‘6.15시대 자주통일운동의 특징’ 060-29052007

2.   6.15시대의 목표

1.   6.15시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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