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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경제전략

 2008년 03월 02일

우노 마사미 

 

인터넷의 정보는 접근이 쉬운많큼 력정보내지 잘못된 정보가 대량으로나돌고 있어  대체로 지나칠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때로는 도저히 간과할수 없는 일들이 있다. 
소설이나 철학서도 그 내용의 깊이에 따라 형편없이 번역된 책들도 발견하는 적도 있지만, 그려려니 한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많은 연관지식을 호도하므로, 우리는 확실하지않거나 거의 틀리다고 단언할 때에는 바로 잡아줌이 올바른 태도가 아닌가 한다.

누구나 오류는 저지를 수 있는 것이고 거짓정보에 교육 세뇌될 수 있음은 인간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심히 왜곡된 정보는 필히 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아래 첨부한 글 중에 쇼팡과 바그너에 관한 잘못된 정보다. 쇼팡은 아버지가 프랑스인이며 어머니가 폴란드인인데 유대계와아무 연관도 없으며, 바그너는 고아로서 부유한 유대인에게 입양되어 유대인일 수 있다고 추측한 것이지, 그역시 유대가계는 아니다.

 또한 Rothschild 를 미국인들이 로스차일드라 발음하므로서 마사미씨는 '롯칠트' '로칠드' 가문과 다른 가문으로 착각 하는 것이다.  마치 김씨가 기무씨나 가네씨가 되는 이치이다.

또다른 문제는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함으로서 유대인들이 주로 개신교인들과 카톨릭교도들이 생각하기에, 타민족에 의해 핍박받은 민족으로 여겨지는 데, 일부는 타당한 말이나, 유대인의 팔레스타인지방이탈이나 핍박은 자신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타민족과의 이기적, 배타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는 이들의 옛고향으로 여겨지는 수메르 ㅡ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항상 타민족의 피를 빨아먹고 더이상 먹이감이 없으면 탈출하는  식이 아니었던가?
 
구약성서를 읽은 분들은 유대인들이 어떤 종족이란 걸 알 것이다.  세상의 어느누가 자기나라에 타민족이 집단으로 들어와 기존세력과 융합하지 않고 자기들 만의 세력을 구축하도록 눈감아 주겠는가?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시각도 우린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독일국민은 오늘날도 그렇지만 유럽에서 가장 양심적이고 배포가 큰 사람들이다.  나치 전까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나 베를린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너그러운 곳이었다.  1.차 대전으로 가난해진 독일이 시온의정서를 발견하므로서 히틀러가 머리가 돈 것이다.  물론 바이에른 공국에서는 18세기에도 이미 유대인의 시온의정서를  알고 있었다.

유태인의 경제전략

우노 마사미 (Masami Uno)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세력

IMF사태 이후 한국의 증권시장에도 외국인의 바람이 거세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항상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은 외국인의 사재기는 언젠가는 반드시 갑자기 빼간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익이 꼭지점에 이를 때 사들인 주를 급히 팔아버린다. 그때 주가가 몽땅 떨어지면서 소액투자자인 국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알거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십년전만 해도 서울근교의 땅값이 마구 올랐다. 지금까지 비닐하우스를 하던 땅도 이른바 토지 시세대로 평가하면 몇십 배, 몇백 배나 뛰어올랐다. 우리는 땅값이 올라가면 큰돈을 번 것같이 착각을 하게된다. 그렇지만 그 땅에서 야채를 재배하는 한 이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땅이다. 이와 같이 금이 뒷받침되지 않는 달러는 단순한 종이조각이지만 한국에 인위적인 이변(IMF)이 일어나자 이 종이조각이 한국의 알짜기업을 사들이고 한국을 맥없이 돈의 종이 되도록 하고있다.

1997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동남아와 한국의 외환위기는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유태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하였다. 즉, 마하티르 수상은 말레이시아의 돈인 링깃의 갑작스러운가치 떨어짐은 국제 유태자본의 숨은 음모라고 주장하고, 국제 환 기업인 소로스가 미국 및 국제통화기금(IMF)과 짜고 개혁에 미온적인 태국 경제에 대한 악성소문을 퍼뜨림으로써 바트화의 값어치를 뚝 떨어뜨렸다고 밝히었다.

유태민족은 서기 70년에 나라를 잃은 이래 1948년 이스라엘 건국까지 1,900년간 박해와 추방의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그 고난 속에서 신과 구약성서에 대한 신앙, 자기 민족 재건에 대한 확신 위에 서서, 예술, 문화, 경제, 정치 등 각 분야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세계에 이바지해왔다.

예를 들면 종교-사상계에는 모세로부터 예수-그리스도, 스피노자, 칼-마르크스, 베르그송, 국부론의 아담-스미스를 들 수 있고 예술계에는 음악가 바그너, 작곡가 멘델스죤, 쇼팡, 화가인 샤갈, 영화배우인 찰리-채플린이 있으며 학계에는 아인슈타인, 독가스 발명자 하버, 법의학자 롬브로조, 정신분석학의 프로이드 등이 있다.


재계에는 영국의 로스차일드, 프랑스의 로칠드, 오스트리아의 호프만슈탈, 미국의 록펠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세계적인 대기업인 록펠러, 모건, 듀폰, 로열더치, GE, GM, ATT, IBM, 보잉, US스틸, 제록스 등도 유태인 자본가들이 이룬 대기업이다.

이와 같이 미국은 1차 산업에서부터 제조, 서비스업까지 유태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으며, 유럽의 로스차일드, 해운왕 오나시스 등 각국에 퍼져 있는 자본까지 헤아리면 세계 경제는 뉴욕의 월가에서 홍콩자본까지 그물 같은 유태 자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북미대륙의 자유경제 블록과 유럽의 경제통합, 아시아의 경제몰락 등은 모두 유태재벌의 입김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미국의 정치에서 유태인 조직의 영향은 경제, 방위, 문화면에서 더욱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후 미국의 대통령은 유태계 시온주의자나 이스라엘 압력단체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들도 이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언제든지 케네디나 닉슨처럼 말로가 비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루즈벨트정권 이래로 미국의 정책 결정에 크게 관여해 오고 있는 것이다.

전직 배우출신의 대통령 레이건은 1985년 12월 2일 미국 하원의원 연설회에서 자신이 처해있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물원에 취직한 사나이가 죽은 고릴라의 후임자가 올 때까지 봉제 옷을 입고 고릴라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리하여 누워있는 것도 대단히 지루하므로 구경꾼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늘어져 있는 로프에 매달려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너무 심하게 흔들자 옆에 있는 사자의 울에 떨어져 버렸다. 사자는 침입자를 노려보았다. 그 바람에 겁이 난 가짜 고릴라는 '여기서 내보내 줘요.'하고 큰소리로 구원을 요청하자 사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조용히 해. 떠들면 우리 둘 다 실직하게 될 것이 아닌가.' 종이 고릴라가 되어있는 자신의 울분을 익살스럽게 말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과 유태자본

한반도는 1945년까지 36년간 일본의 식민지였다. 그동안 한국인들은 철저히 착취당하여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일본문화를 강요당하였다. 게다가 관동대지진 때에는 무고한 한국인이 대량으로 학살당했을 뿐만 아니라 태평양전쟁 중에는 50만이 넘은 동포들이 전쟁이나 노역에 동원되어 많은 희생을 치렀다. 한국인은 식민지 시대에 당했던 이러한 온갖 고통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패전 후 일본이 크게 번영하는데 반하여 한국은 국토가 분단되고 서방측의 군사요충지가 되어 경제발전이 두드러지게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전후에도 일본의 번영을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렇듯 외부의 압력으로 계속 짓눌렸던 한국의 내부에는 불을 당기기만 하면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 경제성장에 대한 폭발적인 에너지가 쌓여갔다. 유태자본은 한국이 일본에 대한 잠재적인 에너지를 끌어내 이를 뒷받침해 줌으로서 뒤늦게나마 한국은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유태자본의 격려를 받은 한국정부가 일본에 대해 기술이전을 끈질기게 요구하자 일본은 기를 쓰고 이를 거부하고 유태자본과 대립하며 타협하여 경제적인 부를 일부 희생하면서 한국에 금융공황을 일으켰다. 이렇듯 한국의 경제발전도 유태인의 경제전략 안에서 허용되는 것이며 어느 순간 제동을 걸어버리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로서 한국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부터 미국의 전초기지로 미국의 사정에 따라 뒤늦게나마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다가 IMF라는 세계화의 파도에 휩쓸려 경제주권이 국제 투기자본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유태인은 2000여 년간 떠돌이생활을 통하여 싫든 좋든 국제적인 감각과 적응력을 터득한 반면 우리는 오랜 기간 외세와 담을 쌓고 폐쇄적으로 지냈으므로 국제사회에 대한 감각이나 적응 속도가 매우 떨어진다. 또 유태교는 유일신 신앙 아래에서 신분에 구애됨이 없이 모두가 평등한 개념으로 교육시켜 실질적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반면 우리의 오랜 유교전통은 인위적인 위계질서와 형식에 치우쳐 국가나 민족의 힘을 모으지 못하였다.


가짜 유태인

유태인은 혈통적으로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 아들 야곱의 자손이 진짜 유태인이다. 서기70년 로마군에 의해 에루살렘이 함락되었다. 그곳에 있었던 유태교 신전은 모조리 부서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땅을 버리고 떠났다. 서기135년에는 발-코호바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유태의 제2전쟁이라고 일컬어진다.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한 전쟁이었지만 도리어 로마군으로부터 가차없는 타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에 남아 있었던 소수의 유태인들도 모두 다른 나라로 흩어져갔다. 물론 그들은 로마에 가는 것을 피하고 주로 북아프리카로 향했다.

시대는 흘러 622년, 사라센 제국을 수립한 아랍인들은 유태민족에 대하여 매우 너그러웠고, 심지어 존경까지도 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평온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많은 유태인들은 점차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따라서 그 후 스페인은 유태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스파라디는 이산한 유태인 중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을 말한다. 이베리아 반도로 옮아간 스파라디는 중세에 세계 유태인의 약 절반을 차지했고 라디노어를 사용하며 이슬람 문화와도 동화하는 등 활동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옛날 스페인에서 공동체를 이룬
스파라디가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1492년 바로 그 스페인에서 유태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스페인은 그 때 이미 강력한 카톨릭국가가 되었다. 유태인들은 카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며 만약 개종하지 않으면 스페인에서 떠나라 명령하였다. 이때 약 25만 명이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오스만제국으로 떠났다.

이에 반하여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북동 유럽계 유태인으로 옛날 카자르 왕국을 세웠던 터키계 카자르인의 자손이다. 카자르 지방은 남러시아의 평원을 말한다. 8세기 경 이 광대한 초원에서 터키계의 사람들, 즉 카자르족이 상인, 직인, 무사로서 살았다. 이 무렵 카자르 왕국은 비잔틴의 기독교와 이슬람교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었다. 보통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면 어느 강한 쪽의 세력을 선택하지만 카자르 임금은 용케도 양쪽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태교로 개종하였다.

만약 이슬람교를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교가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며, 반대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다면 이슬람교도가 불쾌해 할 것이다. 그러나 양파가 다같이 예언자 모세를 위대한 인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인종적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유태인이 된다면 이슬람교 및 그리스도교 양파로부터의 미움을 잘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래서 강제로 모든 국민이 개종되었다. 그리고 유태교를 국교로 삼은 결과, 수십 년 안에 민족 전체가 유태교도가 되었다. 더 나아가서 자기들은 혈통적으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유태의 탈을 쓴 셈이다.

카자르 왕국은 9세기부터 국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슬라브족의 침략을 받게 되었으며 마침내965년 우크라이나 스비아토스라브의 침략을 받고 몰락했다. 그후 아시아로부터 온 몽고군이 유럽으로 원정을 하자 그들은 몽고의 대군을 피하여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러시아, 그리고 더 나아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독일 등의 지역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동체를 구성하여 카자르인이 아니라 유태인으로서 생활하게 되었다.

사실 그들은 유태교를 믿는 종교집단이지 유태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아리안족의 발상지인 코카서스로부터 왔던 것이다. 유전학적으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이 아니고 백인계로서 셈족계열이 아니다. 셈족 계열은 스파라디나 아랍인 등이다. 그렇지만 이들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을 우리는 진짜 유태인으로 알고 있다. 이들은 오늘날 전 유태 인구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큰 수난(포그롬)

18세기말의 프랑스 혁명을 전환점으로 하여 유태인들의 국제주의 추세는 강렬한 기세로 유럽 전토를 휩쓸었다. 각지에서 그들과 민족이익을 지키려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끊임없는 충돌이 이어졌다. 19세기초에는 유럽전역에 약 330만 명의 유태인구가 있었다.
이들의 중심무대는 오늘날처럼 미국이 아니라 동구, 그 중에서도 폴란드였다. 그리고 러시아에도 많은 유태인이 살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 러시아에서 유태인에 대한 큰 박해(포그롬)가 있을 당시 중-동부 유럽 아슈케나지는 650만 명에 이르렀으며 대학살 바로 직전인 1939년 유럽의 유태인구는 약 850만 명이었다.

제정 러시아 시대, 러시아의 유태인들은 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공직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의 이동조차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짜르 압제하의 밑바닥에서 억눌려 살고 있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 군비부족에 허덕이던 일본의 국채를 인수하여 당시의 돈으로 2억 달러를 빌려준 사람은
아슈케나지 유태인 시프였다. 그는 돈으로 일본 군인들의 피와 목숨을 사서, 일본을 러시아와 싸우게함으로서 러시아 정부를 맥빠지게한 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려 하였다. 그 혁명은 아슈케나지 유태인의 해방을 의미했다. 또한 그는 미국에 망명중인 트로츠키에게 혁명자금을 주고 노르웨이 배로 그를 뉴욕에서 핀란드로 보냈다. 또한 미국의 참전을 늦추어 러시아 혁명을 돕고 연합국 측에 대량의 탄약과 무기, 식량 등을 팔아 엄청난 돈까지 벌었다.

당시 러시아는 독일에게 너무나도 큰 적이었다. 그래서 독일 황제 카이저는 함부르그의 유태계 재벌과 결탁하여 러시아 볼쉐비키 지도자 레닌을 봉인열차로 페테스부르그에 보냈다. 이와같이 러시아혁명은 그 뒤에서 짜르의 탄압하에 있는 동포를 구하려는 유태인들에 의해 크게 지원 받았다.
러시아 혁명의 중추세력은 모두 유태인으로 혁명의 지도자 50명중 레닌과 트로츠키를 비롯해 44명이 유태인이었다. 노동자의 단결, 지배 계급의 타도, 그리고 노동자 독재국가의 수립, 러시아에 있어서의 유태인은 바로 마르크스가 그려낸 그 노동자요, 피지배 계급이었다.

공산주의 사상은 계급투쟁 이론으로부터 시작한다. 착취당하고 있는 무산계급은 착취하고 있는 자산계급을 타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착취의 정황을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 대하여 분노를 느꼈으며, 그리하여 러시아를 비롯해서 온 세계에 마르크스의 이론이 실행된 것이다. 그렇지만 온 세계가 공산화되면 누가 다스릴 것인가? 마침내 새로운 계급이 나오게 될 것이다. 공산혁명의 실상은 계급투쟁이론을 실천함으로서 세계의 모든 질서를 부수고 그 위에 유태인들이 세계정부를 세워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아슈케나지 유태인 블루멘솔은 1929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최근에 우리 유태민족은 새로운 예언자를 세계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는 두 개의 얼굴과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로스차일드이며, 그는 세계 자본가의 지도자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칼-마르크스이다. 그는 자본가들이 죽이고싶어하는 이데올로기의 주창자이다." 이 둘은 어느 쪽도 다 세계적이라는 점에서 같다. 한쪽은 부를 지배함으로서 위로부터, 다른 한쪽은 혁명에 의해 밑으로부터 세계를 새롭게 하는 것으로 사실은 둘 다 똑같은 것이다. 세계가 하나로 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 경제, 정보 등에 있어 세계가 하나가 되었을 때 누가 그 세계를 다스릴 것인가?

레닌이나 트로츠키는 사회주의 체제는 한 나라에서만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사회주의 제도는 어디까지나 세계적인 규모로 실현된다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사상이다.
그러나 그루지아 출신의 스탈린은 그 생각에 맞서 국가 사회주의를 제창하였다. 스탈린이 정권을 잡자 유태인의 일부는 타협하고 일부는 학살되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인질과 다름없는 상태로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국내에 억류되었다.


홀로코스트(대학살)

세계 제1차대전 후의 독일은 초 인플레, 막대한 배상금, 대공황의 모진 비바람, 엄청난 차관의 일시불, 550만 명으로 불어난 실업자, 그 한편에서
나라의 경제를 지배 조작하는 것으로 부를 늘려오기만 했던 유태계 자본가들... 더 이상의 방법이 없을 것 같던 비참한 상황에서 독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1933년 히틀러는 독일인의 피와 땀의 결정은 독일인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그가 맨먼저 착수한 것이 실업자의 해소였다. 지난날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말을 들었던 게르만의 왕국, 거기다 비스마르크가 통일한 독일, 그처럼 뛰어난 독일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하여 히틀러는 국가 사회주의를 제창하고 독일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그때 독일의 민족 이익을 지키려는 독일의 국가주의 세력과 유태인과의 사이에 큰 충돌이 생겼다. 금세기에 있은
인류의 3대 학살사건이라면 1915년 오스만-터키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1975-80년간 있은 캄보디아의 학살,그리고 2차대전 중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을 들 수 있다. 이때 나치에게 박해를 받았던 유태인들은 거의 아슈케나지였다. 희생된 사람들은 아슈케나지 뿐만 아니라 집시와 아시아계의 러시아인이 많았다. 유럽의 유태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가장큰 과제로 생각한 히틀러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히틀러는 사회주의체제의 소련, 이 체제를 주도적으로 이끈 유태인 그리고 슬라브족, 이 세 가지 요소를 없애려 유럽 각국에서 잡아온 유태인, 집시, 공산주의자 및 노약자(비유태인) 등을 무더기로 학살하였다. 중세기부터 시작된 기독교사회의 유태인 박해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었지만 홀로코스트(대학살)만큼 그 규모나 잔혹성이 두드러진 적은 없었다.

이러한 행태는 독일에서 만의 일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인권국가라고 자처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을 비롯한 모든 유럽 나라들도 그들을 박해하였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부자이고 금권정치의 대가인 로스차일드도 프랑크푸르트의 가난뱅이촌에서 살 때, 길거리를 지나다가 독일인 어린이를 만나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해야 했을 정도였다. 유대인들이 유럽 각지에서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고 박해 당하였다.

그러면 왜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독일이나 러시아, 동유럽에서 그 땅의 주민들과 충돌했는가? 그것은 그들 종교의 근본이 되는 탈무드가 원인이다. 유태교는 구약성서를 토대로 그 성서를 알기 쉽게 풀이했는데, 그것을 탈무드라고 일반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탈무드를 실제로 읽어보면 구약성서와 탈무드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충돌은 탈무드에 있었다. 탈무드에 따른 유태인의 우위의식이 생활이나 상업에서 그대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독일에서 그처럼 박해를 받은 것은 성공한 일에 너무 신바람이 나서 유태인이 독일의 일에 지나치게 깊이 개입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너무 기분을 내다보면 주변이 보이지 않고 다른 민족이 유태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하며 무엇이건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지는 것이다.

유태인을 탈무드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탈무드적인 인간이었기에 유태인은 성공할 수 있었다. 키신저는 탈무드적인 인간이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도 그랬다.
탈무드적 인간이었다는 데 성공의 비밀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올 21세기에도 탈무드적인 인간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는 유태인임을 그만둔 아슈케나지 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이스라엘의 적으로 간주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과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으므로 그들이 이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어렵게 되어 가는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한편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스파라디 유태인은 친척관계이다. 왜냐하면 다같이 조상 아브라함이 직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68년의 6일전쟁의 결과 그 스파라디들도 아랍세계에 있을 수 없어 어쩔수없이 떠나야만 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살았던 그 정든 땅을 두고 이스라엘로 향했던 것이다. 스파라디가 유태인들을 주도한다면 그들은 혈통적으로 같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공존 공영하여 왔으므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스파라디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도 가난하여 아슈케나지의 하층을 이루고 있어 영향력이 크게 떨어진다.


제2의 가나안 땅 미국

유럽은 현대 문화, 문명의 발상지이며 역사도 오래된 말하자면 거인의 나라들이다.
미국은 유럽에서 가난에 시달리던 이들이 몰려가서 자리잡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의 유태인의 역사는 지금부터 320년 전에 시작되지만 이주자가 많이 는 것은 19세기 중엽부터이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태인이 많은 나라이다. 1890년부터 1924년까지 불과 35년 동안 러시아와 동구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슈케나지 유태인은 약 200만 명에 이르렀다. 이민 초기에는 게딱지같은 집에 두 세 가족이 빼곡하게 몰려 살며 한 개뿐인 뒷간을 함께 사용하였다.

미국에 유대인들이 크게 몰리기 시작한 것은 세계 제2차 대전 직후부터이다. 그전까지는 폴란드와 소련 땅에 6백여만 명이 살고있어 전 유럽에 60% 정도가 살았다. 이른바 쉰들러-리스트가 설친 시절인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태인들은 미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여 대부분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3D업종에 종사했다. 유태인 봉급자의 3분의2가 봉제업에 종사하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주일간 뼈빠지게 일해봤자 손에 쥐는 돈은 남자는 6달러, 여자는 3-5달러였다. 장사도 싼것 위주였다. 이들 유태인들은 미국 시장에 잡화, 인조보석 등 값싼 물건을 들여오기 시작하였다.

탈무드는 구약성서보다 유태인이 더욱 중요시하는 경전이다. 특히 오늘날 온 세계 유태인의 70%를 차지하는 아슈케나지에게 탈무드는 거의 독보적인 교육, 신앙서로 인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 즉 지식과 돈을 갖는 것만이 유태인이 살아갈 수 있는 절대조건이었다. 국가, 민족, 계급, 지위 등 인간의 개별적 속성을 넘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가치 그것이 지식과 돈이었던 것이다.

만일 유태인들이 유럽과 미국에 분산 이주하지 않았다면, 근대 자본주의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사업수완이 십분 발휘할 시기가 찾아온 것은 자본주의 사회, 특히 20세기의 미국에서였다. 여기에서는 돈벌이 자체가 선이다. 유태민족이 자본주의 챔피언으로 발전하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1,300만 유태인들 중, 약 600만 명이 세계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 살고 있다.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독점자본가들의 그룹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는 나라로서, 미국의 독점자본가 그룹의 상위 5개 기업이 유태계 자본이다.

유태인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인구와는 전혀 비례하지 않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초대국 미국을 지배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세계도 저절로 움직일 수 있다. 그들은 오늘날 온 세계에 흩어져 정치, 경제, 금융, 학술, 문화예술, 영상산업, 정보산업, 유통 들에 큰힘을 행사하고 있다.
지금 이 종교집단의 향방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 또한 모든 나라에 돈을 빌려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들의 뜻대로 국가를 손에 넣을 수가 있다. 이미 중요한 은행, 온세계의 어음, 모든 정부의 신용은 우리의 손에 있다.' 유태인 랍비 레이콘의 말이다.

로스차일드집안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어났다. 제1대의 마이야-암세르-로스차일드는 아들이 5형제가 있었다. 그의 아들들을 모두 어릴적부터 상인으로 철저하게 훈련시킨 다음, 당시의 유럽 5대 도시에 배치했다. 5대 도시는 프라크푸르트, 비엔나, 나폴리, 파리, 그리고 런던이었다. 5형제는 모두 각 도시에서 금융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로스차일드집안은 돈을 꿔주는 입장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더욱더 큰 발언권을 얻게 되었고, 강력한 세력으로 중앙은행을 지배했다. 로스차일드집안의 금융 지배력은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엄청난 힘을 덜치게 되었다. 그것은 FRB(연방준비제도 이사회)를 통해서였다.

연방 준비은행은 상업어음의 재할인이나 공개시장의 조작으로 각 지구의 금융통제를 맡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 전체의 금융통제이다. 따라서 백악관은 의회를 거치지 않고 언제나 사립은행의 집합체인 FRB로부터 돈을 빌려 썼고 그 결과 FRB에 의해 통제되는 오늘의 상태가 빚어지게 되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오늘날 FRB가 공정수수료를 얼마만큼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일희일비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FRB를 지배하는 놈이 세계의 금융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FRB는 지금 직접적으로 록펠러가 지배하고 있으나, 그 배후에는 창설자 로스차일드가 있다.

대중매체라고 말하면 흔히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일을 공평하게 전달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다민족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려우나
미국의 신문, 잡지, TV의 보도를 보면 이스라엘 또는 유태인 문제가 미국의 국내문제와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미국 국민의 정서와 합치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적어도 정치권이나 언론은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다. 또한 선거에서 필요한 공통적 요소는 후원금과 언론의 지원이다. 많은 미국 시민은 국내외 정치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한 성향을 보이고 있음으로 유태로비로서는 주요 언론을 통해 일단 여론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면 대다수 미국 국민은 이를 받아들이고 있고 이는 또한 유태로비의 성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된다.

닉슨, 카터, 부시, 클린턴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당선될 때 유태계의 적극적 또는 부분적 지지를 받았거나 아니면 취임 초기에 유태계와의 관계가 좋았다. 그러나 이들은 점차 미국 대통령, 나아가서는 세계의 대통령이란 위치를 인식하여 계속 충실한 이스라엘의 일방적 후원자가 되는 대신 세계의 대통령다운 명분있는 역사적 업적을 이루려 하였다. 명분있는 업적을 이루려면 사고나 정책의 치우침은 없어야 하므로 자연 친유태 일변도의 성향은 지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강력한 유태로비의 반감을 샀으며
우연하게도 모두 정치적으로 불운한 결과를 맞았다. 이들은 재선 문턱에서 넘어(카터, 부시)지거나 또는 재선된 임기중 시련(닉슨, 클린턴)을 겪었다.

유태문제는 민감한 것이라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금기사항이다. 알고 있기 때문에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입을 열지 않는 것은 무지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유태인이 미국의 정치와 경제를 쥐고 있다고만 말해도 아슈케나지 유태인의 그룹은 그 사람을 바로 법원에 고소할 수 있다. 세계화시대에 한국이 이 세계의 금기를 알지 못한다면 국제사회라는 깊은 물 속에 빠져 죽을 것이다. 하지만 금기를 터부로 알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이스라엘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세워졌다.
그 공로자는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이었다. 그 이전부터 팔레스타인 개간을 위해 옮겨 온 사람들도 아슈케나지 유태인이었다. 당시 러시아로부터 온사람들 중에는 데이비드-벤구리온과 골다-메이어도 있었다. 이들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이 이스라엘에 왔을 때 그들은 러시아 혁명의 이상을 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실현하려고 했다. 이스라엘에서 옷이나 음식물은 아주 값싸고 사회보장제도도 잘 되어있다. 그 유명한 키부츠라는 공동 집단농장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재건은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의 땀과 노력의 결과다. 거기에 로스차일드 등 미국이나 유럽의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이 돈을 투자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4백60여만 명의 유태인이 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 두 나라는 유태인 생활의 양대 축인 셈이다. 본토 이스라엘이 전통을 보존하는 일을 맡는다면 미국은 본토 밖에서 세계의 유태인을 지원하는 구실을 맡는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워싱턴이 아닌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만들어진다. 미국은 세계인구의 1/1000밖에 안되는 이스라엘에 미국 대외원조의 1/5을 할애한다. 경제, 군사적 지원과 아울러 외교적 지원은 거의 절대적이다.

유태인들은 자기의 생존과 민족의 존속을 그들의 가치추구의 2대 명제로 삼아왔고, 경제활동의 기본으로 추구해 왔다. 즉, 사업이란 절대로 돈벌이만이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민족이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다. 그들은 중세 그리스도교도가 절대로 금기시하였던 돈놀이, 징세인, 국왕, 귀족의 재산관리인, 유통업 등의 직업으로 사람들의 반감과 원망을 한 몸에 받아왔다. 특권이 없다는 것은 반대로 최대의 특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비밀리에 돈을 움직이는 기술, 임금이나 귀족의 개인적, 가정적 비밀을 알아냄으로써 뒤에서 국가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어떤 유태인 부자가 병에 걸렸다. 그는 죽을 때가 가까웠음을 알고 가장 충직한 종에게 유언을 말하여 유언장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나는 이 유언장을 내 자식에게 전해줄 충직한 종한테 모든 재산을 준다. 그리고 내 자식에게는 나의 재산 중에서 한가지만 자기가 선택한 것을 주기로 한다." 부자가 죽자 종은 유언장을 랍비에게 보였다. 랍비는 종과 함께 아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유언장에는 모든 재산을 이 종한테 준다고 했고, 당신에게는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선택한 것을 주겠다고 되어 있어요. 당신은 무엇을 고르시겠소?" 그러자 그 아들이 말했다. "저는 이 종을 선택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아들은 종을  상속받고 그 종이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째서 이와같은 번거로운 절차를 통해서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시켰을까? 일부러 이와같은 유언장을 남긴 것은 아버지가 이 이방인 종을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즉, 자기가 죽으면 종은 재산을 자기 멋대로 처분해 버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태인의 세계 경제지배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들에 속해있던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서로 핏줄의 고리가 맺어져 늘 열린 굴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미국에서 원폭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그 기술은 곧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의 굴을 통해 몰래 소련으로 들어갔다. 이리하여 소련도 원폭개발에 성공하였다. 이어서 수폭, 운반수단, 미사일, 끝내는 우주경쟁 등, 이렇게 하여 유태인의 연출로 무서움이 일어나고 미-소는 엄청난 자금을 무기개발에 아낌없이 소비하고 끝없는 군비확대경쟁에 제정신을 잃어갔다. 이렇게 굴을 통해 교환되는 정보로 두 초강대국은 서로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세계 정복을 위해 필요한 조건은 다음의 5가지이다. 즉, (1) 세계 최대의 정치력과 군사력을 가진 국가의 지배, (2) 세계의 에너지 석유시장 지배, (3) 세계 식량시장의 지배, (4) 세계 금융시장의 지배, (5) 세계의 정보 통신의 발신원과 정보 통신망의 지배이다. 이미 금융, 정보통신, 석유, 곡물, 그리고 미국 정부등 이 5가지를 지배하고 있는
국제 유태자본은 세계 정치와 경제의 실권을 잡고 있다. 그들은 막강한 이면국가로서 있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시온주의자 유태인의 세계 지배의 연출은 3가지가 있다.
첫째는 환란이다. 미국의 은행들은 국제 네트워크 체제, 순이익, 유로시장에의 점유율 등에서 남이 딸아올 수가 없다. 미국은행의 가장큰 5개 은행가운데 체이스맨하탄과 J..P. 모건의 유태재벌이 직영하고 있고 뱅커 아메리카는 영국의 가장큰 유태재벌인 로스차일드와 손잡고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또 월거리에 본거지를 둔 투자은행도 가장큰 돈줄인 메린-린치를 비롯 솔로몬-브러더스, 모건-스탄제이, 파스트-보스톤 등이 모두 유태자본 경영이다. 한마디로 유태인은 세계 최대의 자금조달과 운용체계로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금융시장은 의문의 여지없이 유태자본이 경영권을 잡고 있는 미국의 은행이 지배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의 민족국가에 대하여 이러 저러한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둘째는 에너지의 위기이다. 세계의 에너지원의 중심인 석유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오일 메이저이다. 이들 각사는 옛날부터 유태재벌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엑슨, 모빌, 스탠다드는 록펠러가가 지배하고 걸프는 메론가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록펠러가의 소카르에게 매수되었다. 로열-더치-쉘은 로스차일드가와 그리고 텍사코는 노리스가가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로리엄은 국책회사인데 역시 유태자본의 큰 영향 아래 있다. 한 나라의 혁명이나 내란에 미 CIA가 개입해 온 것처럼 기름값 변동에도 그런 공작이 있었다. 미국의 정치, 경제의 실권을 틀어쥐고 있는 유태자본이라면 불가능이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유위기의 연출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셋째는 곡물기근이다. 세계에서 일기예보가 가장 정확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많은 기상관측 위성을 띄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곡물생산자가 1년 앞의 날씨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와 같은 확실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입수하는 까닭에 그들은 기근에 대하여 미리 무슨 수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기근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 사람들은 공평한 분배를 부르짖으며 세계적인 힘을 가진 어떤 기관이 설립될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곡물을 정기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4나라 즉,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그리고 호주이다. 이들 나라의 곡물을 5개의 생산자가 지배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의 손아귀에 있다. 이중 확실히 유태계로 알려진 것이 콘티넨탈-그레인, 카길, 루이-드레픽스 등의 3개다. 특히 콘티넨탈-그레인과 카길사는 미국 곡물수출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유태인들은 그 긴 고난의 역사를 거치면서 곡물, 먹거리를 쥐는 자가 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입에 넣을 음식이 없다는 상황만큼 사람들을 착란상태로 빠뜨리게 하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과도 타협할 수 있다. 지구는 이상기후가 계속되고 있다. 아마 연출되는 지도 모른다. 곡물생산자들과 그 뒤에 있는 세계지배의 몽상가들은 물론 이것을 잘 알 것이다.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