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비전향 장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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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십자가의 <주검> 과 <부활>          이영빈 목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의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여자 네 사람과 유일한 제자 요한 만이

현장에 있었다.

 

예수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그의 제자들은 어떤 집에 숨어서

문들을 다  닫아걸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백성을 선동하는

갈릴리 사람, 예수의 제자들이라고 해서

잡아 없애라는 현장의 무시무시한 분위기는

너무나 험악하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었던 예수의 십자가 주검으로 인해,

그의 진리의 말씀, 약속, 축복, 표적, 행적 같은

그 모든 것은 하나의 꿈처럼 허사가 되었다.

 

예수의 말씀을 믿던 그들의 신앙도,

그에 대한 신뢰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을 지배하는 유일한 “현실”이란

<주검>이라는 캄캄한 사실 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달라에서 온 마리아 는 아주 다르다.

예수와 그의 관계는 예수의 십자가 주검 앞에서도

끊어지지 않았고 굴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사람들을 “악령들”로부터 해방시킨 예수의 업적,

가난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과 연대하신 예수의 업적,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신 그의 사랑의 행적,

절망한 자들을 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신 것, --

이런 모든 사건을 통해 마리아는

뭇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이 예수님에게서 배운 이런 경험을 힘입어

마리아는 세상을 달리 보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즉 세상을 사랑과 희망과 참삶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는 사랑의 힘을 믿게 되었다.

사랑의 위력은 악의 세력보다, 절망의 암혹세계보다,

만사에 무관심한 이기적인 태도보다,

훨신 위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주검이라는 현실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리아는 비로써 깨달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삶>이 <주검>을 승리하여

사람들을 참으로 살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삶>이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의식하여

이것을 위해서 만사를 희생할 수 있다는

참 희망을 얻게 되었다.

 

바로 이것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배웠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이 배움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다.

아마 약한 자들, 여성들의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나보다!

 

그래서 마리아는 천사의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드릴 수 있었으리라!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 나셨다”

마리아가 예수의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라고 하겠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그를 불심임한 제자들을

부활한 예수는 그들을 다시 찾아가 일으켜 세워주었고,

과거에 가르치신 진리를 다시 새롭게 하셨다:

즉 주검이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점.

그래서 이 삶을 위하여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 주검으로

우리들에게 그의 참 <삶>을 보여 주셨다.

부활 이라는 참 삶은 오직 진리를 위한 희생과 주검을

통하여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부활>의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가?

 

제일 먼저: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복음 20장 29절).

 

예수의 부활은 주검을 극복하는 삶의 승리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반드시 ‘빈 무덤’을 보고서야, 또는

제자 도마 와 같이 “내 눈으로 그 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 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고  하듯이.....

주검과 부활은 내 눈으로 보고서야 믿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부활은 구약에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를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모든 계시의

총괄이다: ‘종의 형상’을 입고 우리 인류 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나추우신 그 자체가 부활 이다.

 

예수의 <부활의 삶>은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모든 “악령”에서 해방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업적인 것이다.

이 삶은 우리가 현제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각종의 “악령”과 투쟁할 때에만,

경험할 수 있고 선물로서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악령”은 인간적 관계에서 나 사회구조에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즉 남보다 자기를 높이려는 교만,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욕심 등.....

 

우리 그리스도인, 예수의 제자들은 이제

이런 위협하는 “악령 들을” 배격할 능력과 과제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기이한 언어로 말을 하는”(마가16,17)

집단이 될 것이다.

 

“이제 만방은 그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제왕들조차 그 앞에서 입을 담을지 못하리라.

이런 일을 일찍이 눈으로 본 사람도 없고

귀로 들어 본 사람도 없다“ (이사야 52,15).

 

이 같이 삶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무시하려는

주검의  한계성을 극복하였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홀로 우리를 위하여 보여주신

독자적 선행역사요 선물이시다.

 

바로 이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를 항상 위협하는

주검의 공갈에서 우리는 해방되었다.

강한민족은 약한 민족을 항상 위협하는 수단방법으로

지배하고, 그리고 세계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동물적 세계관에서

우리는 해방되었고 자유하게 되었다.

 

2008년 예수의 고난과 부활절에

 

이영빈 목사

 

 

GEDANKEN zu OSTERN    Young Bin Lie  Pfr. i.R.

Ich lebe, ihr sollt leben!

 

Bei der Kreuzigung Jesu waren vier Frauen und

ein einziger Jünger, Johannes dabei.

Nach dem Begräbnis schlossen sich die Jünger ein.

Sie spürten die Feindseligkeit der Außenwelt.

Sie hatten Angst, als Anhänger des Gotteslästerers

und Volksverhetzers beseitigt zu werden.

 

Durch den Tod des Meisters waren alle guten Worte,

Verheißungen, Seligpreisungen, Taten und Zeichen,

die er gesprochen und getan hatte, weggeflogen wie ein Traum.

Sie hatten keinen Glauben mehr an sein Wort,

kein Vertrauen mehr auf ihn.

Der Tod bestimmte ihre Wirklichkeit.

 

Für Maria aus Magdala war das ganz anders.

Ihre Verbindung zu Jesus trotz des Todes nicht zu Ende.

Sie erlebte ihre Befreiung von den ‚bösen Geistern’ durch ihn,

sein Zusammenleben mit den Armen und Hilflosen,

die Erquickung der Traurigen, Ermutigung der Hoffnungslosen –

also die Liebe!

 

Diese Erfahrung lehrte Maria, die Welt anders zu sehen:

Die Welt der Liebe, der Hoffnung, des Lebens.

Sie glaubte an die Macht der Liebe, die stärker ist als

die des Bösen, der Resignation, der Gleichgültigkeit.

Sie weiß, dass der Tod nicht das letzte Wort hat.

Das Leben lässt den Tod im Grab liegen,

hilft den Menschen auf die Beine,

lehrt sie hoffen, zeigt, wie kostbar es ist, wie es sich lohnt,

sich dafür zu opfern.

 

Das lernte Maria aus Magdala bei Jesus und

vergaß es auch nach der Kreuzigung nicht.

Nicht vergessen, ist ja die Stärke der Frauen!

Deshalb konnte Maria die Mitteilung des Engels

ohne Schwierigkeit vernehmen:

„Er ist nicht hier; Gott hat ihn vom Tod erweckt!“

So ist sie – und das ist kein Zufall – der erste Zeuge

der Auferstehung Jesu.

 

Auch die Jünger, die in ihren Unglauben zurückgefallen waren, 

richtete der Auferstandene wieder auf und gab ihnen die Überzeugung,

dass der Tod nicht das Entscheidende ist, sondern das Leben,

das Leben, für das Jesus mit dem Tod bezahlte.

Auferstehung gibt es nur durch den Tod hindurch.

 

Was bedeutet diese Osterbotschaft für uns heute?

Zuerst dies: „Freuen dürfen sich alle, die mich nicht sehen

und mir trotzdem vertrauen.“ (Joh. 20, 29).

Die Auferstehung, d.h. der Triumph des Lebens über den Tod

wird nicht durch das Zeichen des leeren Grabes und

das Sehen, wie Thomas gesehen hat, begreifbar und glaubhaft.

Die Auferstehung des Lebens ist der ganze Weg Gottes,

wie ihn die Propheten und Jesus zeichneten und praktizierten.

Gottes Erniedrigung in der Gestalt des Knechtes  war,

ist und bleibt bereits die Auferstehung.

 

Diese Auerstehung des Lebens befreit den Menschen von den ‚bösen Geistern’,

die die Menschheit versklaven.

Leben wird für uns dann erfahrbar und geschenkt,

wenn wir die ‚bösen Geister’ unserer Zeit bekämpfen,

die uns unterdrücken und ausbeuten,

sei es in der zwischenmenschlichen Beziehung oder

in gesellschaftlichen Strukturen.

 

Wir Christen haben nun die Vollmacht, den Auftrag,

diese ‚bösen Geister’ zu vertreiben

und die „unbekannte Sprache“ zu sprechen (Mk 16,17),

so dass die Mächtigen das, was sie nicht gehört und gesehen haben,

nun hören und sehen (Jesaja 52, 15).

Das Leben hat die Schwelle des Todes, der den Menschen beherrschen,

unterdrücken und vernichten will, überschritten.

 

Das ist Gottes Vorleistung, sein erster einseitiger Schritt.

Durch ihn sind wir aus der Todesbahn der Abschreckung,

aus dem Verhängnis, den Frieden durch das Gleichgewicht des Schreckens

sichern zu wollen, befreit.

 

 

Karfreitag und Ostern 2008  

                                     

Young Bin Lie  Pfr. 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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