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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들은<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옮겨온 글들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동포들의 현장과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찾아보기로  합시다.

 

일본서도, 한국서도 소수자로 살며.... 림 혜영

 

[<일다>는 ‘재일조선인 여성들이 말하는 정체성과 경험, 그리고 역사’ 이야기를 통해 일본사회 속 재일조선인, 한국사회와 재일조선인, 그리고 한반도 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되물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컬럼을 연재할 조경희씨와 림혜영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삼십 대 재일조선인 여성이며,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편집자 주]


 
나는 경계인이다. 한국 시민운동 현장에서 한국사람들하고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3년 반 전에 도쿄에서 서울로 생활거점을 옮겼다. 한국사회를 안쪽에서 알고 싶었다. 훗날에 ‘그 때 조국에서 살걸 그랬다’라는 식으로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이든지 간에 현장을 모르고서는 배울 수 없겠다고 생각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 숙집, 친구와 살았던 반지하방, 2층에 있는 원룸을 거쳐, 지금은 3층에 자리 잡은 원룸에서 살고 있다. 순조롭게 상승기류에 올라타고 있다. 현재 조국의 약동감을 체감하기 위해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문득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감개 깊게 느껴질 때가 있다.
 
‘조선인’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10대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 자신에게는 잘 믿기지 않는 대변화이다.
 
“림혜영”이라는 나의 이름
 
나는 도쿄에서 나서 자랐다. 조선학교를 다니는 조선인들도 있지만, 나는 보육원(부모가 둘 다 일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부터 대학교까지 일본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다.
 
일 본에서 태어나 일본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겠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버젓이 드러내는 ‘림혜영’이라는 이름 때문에 나는 항상 곤혹을 치러야 했다. 나는 ‘림혜영’이라는 조선식 본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본명을 사용하며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나의 학창시절엔 이름과 관련된 좋은 추억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 리나라(조선반도)다운 이름은 한국에서는 ‘예쁜 이름, 좋은 이름’이라는 말을 듣겠지만 일본에서는 그냥 이상한 이름일 뿐이었다. 일본사람들이 가지는 ‘아시아 멸시’적인 시각을 일본 학교사회에서 내면화시키며 자란 어린 나로선, 내 이름이 좋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집에서 부모가 아무리 칭찬을 해줘도 소용이 없었다. 한걸음만 밖으로 나가면 내 이름을 이상하다고 하는 일본사회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한 국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사회의식에 눈뜨기 시작한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때 참여했던 재일동포학생들의 동아리에서 우리말과 역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재일조선인 친구들과 마음껏 조국이나 일본사회, 또는 서로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때까지 그런 공간을 만나지 못했기에, 동아리활동이 있는 날이 기다려지고 밤새 이야기를 하는 일도 많았다.
 
그 러다가 서울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받는 기회가 생겼다. 한국인 친구도 사귀고 뭐든지 다 재미있고 즐겁고 신선했다. 일본에서 조선인으로서 맛본 힘들고 슬픈 마음이 다 사라지는 것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갓 배운 우리말로 또래 한국친구와 어울려 다니기도 하고, 그때까지 직접 말도 못했던 친척들과 사전을 들고 어쩌다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느꼈던 감격스러움은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싫기만 했던 우리말 울림이 아름다운 음률로 들리기 시작했고, 우리말의 느낌을 알기 시작한 덕분에 부모가 좋은 이름이라 해준 내 이름의 뜻을 알게 되었다.
 
‘진짜 한국인’으로 살 수 없는 경계인
 
나는 또한 ‘일본군위안부’지원단체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활동을 하거나 재외동포지원단체가 여는 교류모임 등을 통해 다양한 공간에서 한국사람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서서히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엄을 되찾게 되었다.
 
그 동안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거부하고만 살았다면, 한국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는 긍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러나 재일조선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반면에, 한편으론 한국 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이 ‘진짜 한국인’으로 살 수 없다는 생각, ‘진짜 한국인’이 아니라는 생각에 시달리기도 했다. 우리말도 공부하는 것에 비해 별로 실력이 늘지 않아서 한때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예 전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에 대해 동경심이 컸던 날도 있었다. 후에 우여곡절을 지나면서 이제는 재일조선인으로서 ‘경계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단일민족사회로 인식되어 있는 한국이나 일본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틀에 자신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당사자로서는 당연히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소수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들의 고통은 침묵 속에 놓이게 된다.
 
일 본사회에선 ‘구식민지 출신자’로, 한국사회에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등시민으로 보는 시선이 있고, 재일조선인들의 발언은 귀 기울일 만하지 않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아직은 많은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도,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유지하고 싶다. 더불어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꾸준히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나는 어떤 경계를 넘은 것일까 [특별기획] 재일조선인 여성 조경희로부터 듣다① 2319-02072008

여성주의 저널 "일다" 에서 옮겨온 글들 2315/260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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