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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의 부활' 문익환 목사 시비 제막식 열려

각계 인사 400여 명 참석, 수유리 한신대 모교 교정에 건립

 2008년 11월 11일 (화) 19:29:32

고성진 기자  

 

 

 

11일 오후, 서울 수유리 한신대학교 교정에서 '늦봄 문익환 목사 시비제막식'이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이 땅의 민중을 섬기기 위해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일생을 바쳤던 늦봄 문익환 목사. 그 염원이 겨울 초입, 고인의 모교 교정에서 다시 부활했다. '늦봄'을 부르고 있다.

늦봄 문익환 목사 시비(詩碑)건립추진위원회(건추위)는 11일 오후 2시, 서울 수유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정에서 '늦봄의 부활, 민족의 부활, 민중의 부활 늦봄 문익환 목사 시비제막식'을 열었다. 시비는 ‘6월 항쟁’ 2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 건립이 결정돼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이날 제막식을 갖게 됐다.

'늦봄의 부활, 민족의 부활, 민중의 부활'

이번에 세워지는 시비는 일반적인 기념비 형태가 아니라 문익환 목사가 통일의 염원을 노래한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 글자 하나하나가 가로 1m 80cm, 세로 2m 40cm의 놋쇠조형물로 형상화된 점이 특징이다. 전태일의 동상을 제작하기도 했던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의 작품으로 시비 기단에는 시비 건립에 참여한 1,420명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임옥상 작가는 "목사님의 열정과 낭만적이고 예술가적인 상상력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며 "어떤 작가도 누리지 못한 저에게만 주어졌던 소중한 기회"라고 소감을 밝혔다.

건추위는 건립 배경에 대해 "87년 6월 항쟁의 함성이 20년의 세월을 넘어 민주화와 통일시대로 접어들었고 민족화해. 평화통일의 염원을 문익환 목사님의 시비를 건립함으로 실천하고자 한다"면서 "단순한 시비건립을 넘어 다양한 대중들이 참가하는 국민참여형 통일맞이 어울림을 통해 '평화로 한마음, 통일로 한걸음'의 염원을 하나로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장영달 건추위 상임추진위원장은 "문익환 목사님은 저희들에게 '통일은 다 됐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라가 차디차게 갈려져 있는데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었다"며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분단이 있는 것이지 이 분단만 넘어서면 통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말씀을 던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는 남북을 다시 막아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겠다고 하는 세력들이 우리 사회에 엄연히 버티고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며 "이런 시점에서 시비 건립은 우리 사회를 가로 막고 있는 철조망처럼 이런 문제들을, 시비 건립을 통해서 모든 부스러기를 휩쓸어 떠내려가게 만드는 물결이 있듯이 모든 민족의 가슴에 분단을 밀어내고, 통일을 다시 밀어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20여 명으로 구성된 빈들 '아름나라' 예술단의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사단법인 통일맞이 이사회는 2007년 1월 26일, 87년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경의선 남쪽 지역 최북단역인 도라산역에 늦봄 시비를 세우는 사업을 위해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6.15남측위, 한신대학교 등과 협의해 공동추진위 구성을 합의하고 4월 17일 '늦봄 문익환 목사 시비건립추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당초 시비건립을 희망했던 도라산 역의 경우, 통일부에 장소사용 승인 요청을 하여 통일부로부터 허가공문을 받았지만 그 해 5월 25일, 국방부가 '군사시설보호법' 등을 이유로 불허 입장을 통일부에 전달했고, 이에 따라 건추위는 대체 부지를 물색하게 됐다.

이후 차선책으로 임진각 평화누리를 선정, 2008년 상반기 경기도에 협력을 요청했으나 이도 승인이 나오지 않아 최종적으로 서울 수유리 한신대학교 교정에 설치하기로 결정된 것. 이에 따라 지난 9월 19일, 한신대학교에서 시비건립 장소 사용승인을 통보, 시비 제막식 최종장소로 선정됐다.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이 1989년이 가기전에 진짜 갈 거라고'

 

무대에 올라선 민주화 운동의 '대부' 박형규 목사는 지난 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대해 "(문익환 목사가) 이북에 간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노상예배를 한 지 3년쯤 될 것이다. (문익환 목사가 찾아와서는) 그거 그만 두고 내 후계자 좀 되라 그래요. 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것을 그만두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란 말이요. 난 못합니다. 그리고 형님의 후계자는 제가 아닙니다. 저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여야지 저 같이 나약한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래? 다음 주에 자네 교회에서 설교해도 되겠나? 설교하십시오. (문익환 목사는) 설교를 하시고 그 다음날 이북으로 가셨다. 정경모 선생님과 함께."

 

 

황석영 작가도 이날 행사에 참석, 문익환 목사와의 방북 추억들을 꺼내놓았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인 황석영 작가도 문 목사와의 방북 추억들을 풀어놓았다.

"(방북한) 문 목사님이 떠나시는 날, 아침에 목사님이 계시는 대동강 공개초대서에 찾아갔더니 안 계셨다. 그 안에서 정경모 선생님이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 듣고 있던 이어폰을 내 귀에다 딱 꽂아줘. 들으니까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연가곡이 주르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밖에 나왔더니 마당 끝에 정자 위에서 나를 막 오라고 했다. 내가 시를 썼네. 한 번 들어볼래? 정자 위에서 시를 읽어주시는 것이었다. 제가 아주 그 낙천적이고 로맨틱한 모습에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그는 "방북 20주년이 되는 내년까지는 미국이, 이명박 정권이 어떻게 결정하든 여러 가지 정책적인 변화를 우리가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20주년에는 유라시아 대열차를 타고 저 파리에서부터 출발해서 시베리아를 지나서 블라디보스크를 통해, 한북열차를 타고 평양도 가고, 도라산 역을 뚫고 내려오는 그런 거창한 이벤트를 해낼 것이다"고 기원했다.

89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 통일의 기운을 북녘 땅에 전한 정경모 일본 '씨알의 힘' 대표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고국 땅으로 돌아올 수 없는 입장을 밝히며 문익환 목사에게 마음을 담은 시를 보내왔다. 두 '벗'의 이야기는 장내를 숙연케 만들었다.

"그 아름다운 꿈을 꾸고자 兄님과 제가 손을 맞잡고 평양 땅을 밟았을 때, 兄님이나 저나 얼마나 야비한 욕을 얻어먹고 얼마나 흑심한 규탄의 돌팔매를 받았습니까."

"그 때 형님을 매도하고 돌팔매질을 하던 그 무리들은 지금 희미하게나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꿈의 실체를 어떤 눈초리로 보고 있는 것일까요. 아직은 兄님으로부터 이어 받은 그 커다란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며 자나 깨나 같은 맘으로 빌던 그 꿈이 완전한 현실로서 우리를 찾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계속 싸움터의 한 모퉁이를 지키고자 합니다."


"촛불, 문 목사님의 부활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결코 사그러들지 않는다"

 

 

 

백낙청 6.15남측위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축사를 위해 자리를 함께 한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요즘 6.15공동선언 실천이 주춤거리고 있어서 면목이 없고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잘못은 딱히 어느 한 쪽에만 있다 말할 수 없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하건대 가장 큰 직접적인 책임은 우리 한국의 새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실천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럴 때 문익환 목사님 같은 지도자가 계셔서 우리 남측위원회를 이끌어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된다"며 "문 목사님께 배워야 할 것이 그 분들의 열렬한 투쟁정신과 투쟁경력만이 아니고 그런 가파른 싸움을 하시는 도중에도 항상 여유를 갖고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하셨다는 점이다. 우리 상황도 조금만 여유를 갖고 둘러보면 낙담할 일은 아니다"고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는 또 "촛불이 잠잠해지면서 이 정권이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나 기타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마치 자기들이 승리한 것인 양 기고만장해서 날뛰고 있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촛불 같은 그런 사건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며 "문 목사님과 관련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활, 그 부활이 이 사건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것을 몰라보고 잠시 사그러들었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것은 두려워할 일도 아니고 어리석다. 딱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고 개탄했다.

북미관계에 있어서도 "새로 당선된 오바마가 미국 내에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큰 움직임을 타고 당선되었기 때문에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있게 될 것이다"며 "문 목사님들이 보여주신 여유를 잃지 않고, 그 분이 보여주신 헌신성과 열정을 이어받아서 계속 노력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온갖 장애를 뚫고 목사님이 말씀하신 '통일은 됐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될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고 '변화'와 '노력'을 강조했다.

박순경 한국진보연대 고문은 "그는 기독교와 남한의 고질적인 반공주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분단의 철옹성을 단번에 뛰어넘었다"며 "바로 그의 시적인 상상력과 예언자적 상상력이 그의 그러한 비약적인 행위예술을 감행하게 한 것"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그러면서 박 고문은 "통일은 다 됐어? 아니다. 분단의 질긴 멍에는 아직도 우리의 운명을 짓누르고 있다"며 "통일을 다 이루어내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라고 호소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 등이 축하화환을 보내왔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이날 제막식에는 문익환 목사 시비 건립을 축하하는 10여 개의 각계 인사들이 보낸 화환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화환을 보내왔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고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등도 마음을 전해왔다.

문익환 목사의 가족을 비롯해 정계. 시민사회진영 등의 활동가 및 원로 400여 명도 참석해 시대의 큰 '스승'의 정신을 기렸다. 문 목사의 부인인 봄길 박용길 장로와 차남인 문성근 씨 등 가족 내외는 앞자리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는 김근태 전 장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우상호 민주당 전 의원, 정범구 전 의원 등 정계 인사들과 백낙청 6.15남측위 상임대표,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박중기 추모연대 의장,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회장, 이소선 여사, 임기란 민가협 전 상임의장도 모습을 보였다. 전대협 초대의장이었던 이인영 전 의원이 사회를 맡았고, 윤응진 한신대학교 총장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문익환 목사 시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참가자들. 박용길 장로의 모습도 보인다(오른쪽 두번째).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제막식이 끝나고 기념사진 촬영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잠꼬대 아닌 잠꼬대 -문익환

 

 

시비는 글자 하나하나를 놋쇠조형물로 형상화했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풀어버리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살 스무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한마음
그래 그 한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사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문익환 목사 시비 기단에는 시비 건립 참가명단자 142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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