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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열 목사의 모두진술서

(2008.09.10. 서울중앙지법 519호 재판장에서)

 2008년 11월 26일

peacemaker

 

한상렬목사  1차재판시 모두진술서1

 

공판일짜 - 2008년 9월19일 금요일 오전 11시
공판장소 - 서울중앙지법 519호(서초동) 

 

지금 여기 모두진술을 허락하신 재판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법정에 시간과 정성을 다하여 함께 하시는 한 분 한 분 모든 분들과의 인연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심장으로 존경과 사랑과 평화의 인사를 올립니다.

 

재판장님 저는 지금 총체적으로 저의 심정과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재판에 있어서 그 사건의 사실여부와 함께 그 사람의 사연과 삶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싶어 다소 포괄적으로 길게 말씀드리는 점을 널리 양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님 먼저 제가 경찰과 검찰에서 진술을 거부했던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침묵하면 오히려 불리할 수 도 있으니 사실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게 좋으리라는 얘기도 있었으나 유불리를 떠나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항의 작은 몸짓이었습니다.

 

먼저 체포과정입니다.

8월 14일 전격적으로 체포당하면서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8월 10일 주일예배를 전주고백교회당에서 드리고 그 다음 다음날인가 서울에 와서야 전해 들었습니다.

진보연대 사무실로 8월 9일자로 제3차 소환장이 왔는데, 바로 그 다음날인 8월 10일 주일날 출두하라고 했기에 실무일꾼이 종로경찰서에 팩스를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주에 계신 목사님과 상의하여 다시 적절한 날에 출두하면 좋겠다는 사연을 담아서 말입니다.

 

저는 8.15 이후로 생각했습니다.

진보연대의 상임대표 중에 통일 분야에 관련해서는 주로 제가 주관하여 왔기 때문에 8.15 광복 63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를 끝마치고 출두할까 했던 것입니다.

저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요 공인으로서 떳떳하게 도주할 염려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갑자기 강제로 체포하는 것은 공권력의 횡포로 여겨져 참으로 유감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사의 아픔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진술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 이 민족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민주화는 독재화로, 통일화는 분단화로, 자주화는 예속화로 치닫고 있는 이 역행 역리 역천의 행태를 어찌할 것인가?

 

이미 진정성을 상실한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던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무개념이고 비열하고 엉망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17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저는 치 떨리는 아픔으로 쓰라리고 쓰라렸습니다.

17년 전 1991년 그때 당시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음을 당했는데 지금에 와서 또 다시 백골단이 등장하는 등, 그 당시 때보다 더 극심한 공안탄압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불법으로 언론을 자획하는 경악적인 행태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려운 말도 안 되는 독재의 망령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저는 체포된 그 다음날인 8월 15일 하루 종일 단식기도를 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통한의 8.15를 맞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통일이야말로 진정한 해방과 광복일진데, 길고 긴 분단의 세월 그 얼마나 우리 민족은 피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쳐 왔습니까?

그 한 많은 고난의 세월과 함께 드디어 새시대 새상황이 열렸습니다.

6.15가 그랬고 그걸 이어서 10.4선언이 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적 성과들을 이 정부는 무위로 돌리고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소위 비핵개방 3000은 대북적대정책의 일환이요 흡수통일론적 발상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 제1항 ‘쌍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내용에도 정면 배치되는 것입니다.

이 정부가 그토록 말하는 경제운운, 실용논의도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

이념적인 잣대보다 경제적인 잣대로 생각한다해도 통일이 실용이요 통일이 경제입니다.

그런데도 냉정체제의 잔재에 매달려 실속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미친 짓 입니다.

향후 5년간이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둘러싼 4강국, 이 가운데 신냉전체제 질서 속에서 또 새로운 비극이 재현될 수 있는 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위기를 막는 길은 한미일동맹 대 이북이라는 왜곡되고 거꾸로 된 역사를 청산하고 남북 간에 분열, 파괴, 전쟁 지향적인 모든 정책을 폐기하고 6.15와 10.4선언을 실천해 나가는데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민족 대 중국, 우리민족 대 일본, 우리민족 대 미국으로 역사구조를 바꿔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 뿐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참된 길입니다.

한미일동맹을 넘어 통일지향적 평화체제의 기틀을 마련해야하는 이 엄중한 시기에 한국의 이 대통령이 영국의 블레어를 대신하여 미국 부시의 푸들노릇을 하고 있다는 외신보도는 얼마나 참담한 일입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각 분야는 뿌리 채 흔들리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이 고통하는 역사의 현장에 아픔을 안고 특히 60일 넘게 단식하고 있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의미에서라도 8.15 단 하루일망정 물도 안 먹는 단식을 하면서 침묵하였던 것입니다.

주님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 빌라도 앞에서 침묵하신 그 이유를 깊이 묵상하면서 그분의 심정을 이해할 듯싶었습니다.

 

저는 이 법정에서도 묵비할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다시 사법부의 양심에 희망을 걸며 촛불의 진실을 증언하는 뜻에서 이렇게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판장님 체포 구속된 지 오늘로 27일째입니다.

그동안 저는 저의 지나온 삶의 과정과 운동의 원칙들을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하며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제가 역사의 눈 뜬것은 5.18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전주에 있었으나 체포당하여 보안대로 헌병대로 광주 상무대로 끌려 다니며 군사재판을 받았습니다.

치솟는 용기가 솟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매를 맞고 고문당하고 특히 빨갱이로 몰릴 때는 한없이 비겁해졌습니다.

용기와 비겁의 갈등에서 죽고만 싶기도 하였습니다.

제 인격이 바스라지며 터져나온 질문은 ‘왜,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국 통일과 민주와 자주야 말로 우리민족의 시대적 과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5.18 항쟁을 통해 비로소 역사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 후 지금까지 저는 분단병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새 세상을 만나는 길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왔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이 여전히 역사에 빚진 죄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산자는 죽은 자 앞에서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민중 앞에서 또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불타는 온몸으로 절규하신 전태일님을 비롯한 모든 열사들 앞에서 다만 부끄러울 뿐입니다.

 

참 역사운동에 동참하면서 저 나름대로 다섯 가지 질문을 운동의 자세로 삼아 왔습니다.

 

첫째 진실한가?

하나님 앞에, 역사 앞에, 열사 앞에 진실한가?

 

둘째 책임지는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맡겨진 역할과 임무에 정성을 다하는가?

 

셋째 평화기조인가?

평화야말로 운동의 처음이요, 과정이요,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대동단결인가?

마침내 하나되고자 하는가?

 

다섯째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 기도, 오직 기도할 뿐입니다.

 

재판장님 제가 이렇게 저의 살아온 삶의 일단과 운동의 태도를 이야기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촛불의 총 배후이거나 최고 지휘부가 결코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책임 있는 주체로서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할 의도가 없음을 제가 살아온 삶과 운동의 자세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지난날 두 번의 구속과정에서도 그랬습니다.

5.18때 저는 제가 한 일을 숨기지 않아 고난을 자초했습니다.

91년 때에도 전민련 공동의장으로 전국연합 소집책으로 공안탄압 분쇄와 강경대 열사 대책위 총 대표자로 책임질 일은 당당하게 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아닙니다.

공안에서 저를 촛불의 총 배후로 추대해주시니 영광으로 알고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대하고 거룩한 촛불에 동참하는 모든 분들을 모독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촛불의 총 배후 이야기가 6월 초부터 나왔습니다.

몇몇의 수구언론이 사설을 동원하면서까지 구체적으로 배후로 제 이름을 찍어 떠들어댔습니다.

뒤를 이어서 한나라당 원내대표라는 자가 공식석상에서 또 제 이름을 찍어 지목했습니다.

드디어 6월 30일 진보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분명 수구언론, 한나라당, 공안이 총 동원된 기획· 조작· 표적 수사인 것입니다.

 

수구공안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렇게 흉악한 촛불의 최고 지휘부라면서 배후 말이 나온 지 한참이나 지난 이제서야 왜 체포하는 것입니까?

그림이 잘 안 그려져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잠깐 직무유기를 했던 것입니까?

 

재판장님 이제 촛불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촛불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의 저의 상황과 심정의 흐름을 밝히고 싶습니다.

대선 직후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파 삼 일간 꼬박 교회당 십자가 앞에서 철야기도를 한 바 있습니다.

장차 이 나라와 이 민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라와 민족을 보기 전에, 우리 운동의 대오각성을 말하기 전에 ‘너 한상열이는 과연 어떤가’가 문제였습니다.

저 자신이야 말로 관성주의, 패배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뿌리 깊은 분열주의에 물들어 있지 않았는가? 민중의 삶과는 너무나 유리된 생활을 해왔지 않았는가?

 

고통과 통곡가운데 회개하는 심정으로 40일 기도를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변혁이 없이 역사변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올 봄에 저는 주로 전주에 있는 고백교회당에서 40일 기도를 하며 역사와 자기 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5월초부터 위대한 촛불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촛불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간에 운동방식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운동의 주체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다 알다시피 특히 촛불소녀, 소년들이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광우병 소고기 먹기 싫다. 건강주권 찾고 싶다’는 그 청소년들의 순수와 단순성이 감동감화로 역사를 움직이며 촛불운동을 일으키는 불씨가 된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에는 살림을 도맡아 왔던 생활주부 여성들이 대거 촛불의 주체로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소위 비 운동권 학생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광장은 역사의 현장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면서도 즐겁게 나들이하는 가족들과 연인들의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각계각층,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촛불주체가 되어 나섰던 것입니다.

87년 6월 항쟁의 주체는 재야, 단체, 학생, 직장인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주권의식을 가진 자발적인 참여대중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노래처럼 모든 촛불은 국민의 힘으로부터 직접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지휘부와 배후가 없는 촛불운동이었던 것입니다.

 

한상렬목사 1차재판시 모두진술서 2

모두진술서 1에 이어

그래도 공안당국이 촛불의 배후를 찾고 싶다면 제가 한 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일산에 사는 박모씨입니다.

중국 출장 중인 그는 인터넷을 통해 소고기 문제를 알았다고 합니다.

국민의 주권을 찾고자 밝힌 촛불이 그 숫자를 더해 갈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더 없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던 그분은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에게 6월 10일 시청 앞 촛불집회에 가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면서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설명했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약속이 되어 버렸습니다.

13살배기 초등학교 6학년인 딸 주미가 물놀이 사고로 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잘 가려 행동하는 믿음스런 딸인 이 주미의 장례식을 6월 1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대신에 치러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떠나보내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딸이 오랫동안 모아온 저금통장을 발견했습니다.

아빠는 중요한 마지막 약속 그 촛불집회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아이가 모아온 소중한 이 돈으로 함께 촛불을 만들고 싶다며 딸이 생전에 저축한 629,000원을 국민대책위 후원계좌에 입금하였습니다.

주미 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보람될 것 같다며 남편의 뜻에 동의했던 것입니다.

아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아이가 모아온 소중한 정성을 보내니 부디 희망을 만드는데 사용해 주시길 바란다고 편지를 보내왔다는 신문기사를 보며 저는 가슴이.............

 

재판장님 바로 이런 분들이 촛불의 희망이 아니겠습니까?

가슴을 움직이는 엄마와 아빠들이 배후라면 참 배후요 주체가 아니겠습니까?

주체가 그러하니 집회방식도 엄청나게 달라져 버렸습니다.

과거처럼 엄숙한 시위, 누군가가 앞장서 주도하는 시위가 아니요, 진정한 문화축제가 되었습니다.

연대, 지혜, 토론, 소통의 방식으로 확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자유발언대 등 그저 각자 생각하는 대로 하면 되는 식의 축제한마당이었습니다.

국민 다수와 함께 한다는 자신감 때문에 여유와 유머, 낙천성과 자발성과 생명력이 넘쳐났습니다.

차가운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온수, 세탁비’ 라고 웃으며 외쳤다지요.

대치와 긴장을 평화와 웃음으로 바꿔 경찰의 능력을 무력화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축제와 평화는 한몸입니다.

촛불을 불법폭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6.10일 밤 명박산성 앞에서 일어난 일이 촛불의 정통이요, 진수라고 생각합니다.

10일 밤 10시부터 11시 11일 새벽 5시까지 7여 시간 명박산성이라 불리는 광화문 사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장벽 앞에서는 그야말로 대단한 토론이 열렸다고 합니다. 해 뜰 무렵에야 겨우 끝났다고 합니다.

토론 참석자 규모는 연인원 일만에서 최저 삼천여명, 주제는 저 눈 앞에 보이는  컨데이너를 넘을 것인가,

넘지 않고 광화문 사거리에 남을 것인가, 즉 투쟁의 수위를 높히자는 쪽과 계속 평화시위를 하자는 쪽의 대결이었습니다.

결론은, 깃발만 컨테이너 위로 올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와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저 자신은 직접 현장에 없었으나 보도를 접하면서 그 현장의 감동이 전달되어 왔습니다.

그렇게 날마다 수개월간 세계 운동사상 유례가 없는 연속촛불을 밝히면서도 끝내 평화축제를 유지하고자 촛불대중은 노력했습니다.

촛불자체가 평화의 상징이요 비폭력의 꽃입니다.

그동안 일어난 불상사도 따지고 보면 공권력의 횡포로 야기된 측면이 많습니다. ‘비폭력, 비폭력! 삼보후퇴!’를 외치는 평화애호시민들을  때리고 잡아갔습니다. 폭력시위감시단을 짓밟았습니다. 인권침해 감시단의 변호사마저 폭행을 당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기는 커녕  아예 무시하고 변명과 핑계와 임시방편의 속임수를 일삼으며 구조적인 폭력과 무자비한 진압폭력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이 정권이야말로 불법폭력정권입니다.

촛불의 본질은 비단 광우병쇠고기문제만이 아니라 무한경쟁교육, 의료·수도·물 민영화, 한반도대운하, 방송장악 등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이 정부의 성장지상주의, 천민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총체적인 저항입니다.

이러한 막가파정책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현정부로 인해 삶의 근간이 뿌리채 흔들리게 될 국민들의 불안과 저항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스님의 말씀대로 촛불은 과연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라 한없이 초라해지는 개인의 실존적 피해를 위로하는 인간존엄의 멧세지였습니다.

소통의 단절, 신뢰의 결핍이라는 불안한 정치토대가 키운 시대의 어둠을 촛불이 밝혔던 것입니다.

촛불의 광장은 오만과 독선과 무능력한 대의적 민주주의,  제도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직접참여민주주의 사이버전자민주주실현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생활주권수호항쟁을 통해  운동이 삶과 분리가 되지 않는 생활정치의 도래와 탈중심적, 탈위계적 성격의  신변혁공동체의 맹아를 보았습니다. 엄청난 국민대중이 촛불을 들었으나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촛불의 숫자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시민이 개인으로 고립되지 않고 진정으로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의견공동체를  구축하며 진실에 접근해가고 있는 것,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야말로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진정한 대표자들이요 진정한 주동자들입니다.

기존의 운동은 대오각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새로운 운동이 출현하기를 대망하고 있었던 저는 경이로운 촛불을 바라보며 저로서는 한없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진행과정에서 저 자신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솔직히 허망한 심정이 잠깐 스치기도 했습니다.

못된 생각이지요.

저는 주객관적인 상황을 성찰하면서 일찌감치 세 가지 정도로 제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일체 촛불의 진행과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둘째, 기자회견 등 참여기회가 있더라도 이를 최소화한다.

셋째, 문화제에 참여하는 경우라도 행진이나 시위는 하지 않는다.

8월 15일로 100차 촛불문화제라고 하는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참여했는지 돌이켜보면 참으로 대중 앞에 죄송하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물론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횟수가 손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때로는 이런 저런 일들을 보며 분노가 치솟아 전면에 나서서 주동하고 싶었으나 많이 참았습니다.

딱 한번 자유발언대에 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병렬열사의 장례식이 있었던 6월14일입니다.

5월 25일 전주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일을 보고 있는데 백화점 앞에서 어떤 분이 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예수병원 응급실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에게 ‘한목사 왔다고 내 소리 들리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습니다.

‘제발 살아야 한다고, 이제부터는 살려고 작정하라’고 절규하니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죽어야겠다는 뜻 같았습니다.

그의 유서를 보니 이미 5.18광주망월동묘역에 다녀오면서 분신을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5.18정신과 모든 열사들의 뜻을 이어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했기에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던졌습니다.

그 분의 아픔을 안고 발언대에 나선 것입니다.

아마 공안당국에서 녹취해놓은 모양입니다.

재판장님께서 수고스럽지만 그 발언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들어보시면 촛불에 대한 저의 견해를 참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판관님 이제 공소장에 관한 제 소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촛불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몇 가지를 덧붙여서 기소했더군요.

첫째, 2007년 8.15민족통일대회는 저의 주관아래 이루어진 것이 확실합니다.

둘째, 민주노총이 2007년 8월 17일 이랜드 비정규직해결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하고자 하면서 격려발언을 요청하기에 ‘누가 이 거룩한 길을 막고 있는가, 경찰은 즉시 이 길을 터라, 우리 모두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대우받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투쟁하자‘고 연설한 것도 사실입니다.

셋째, 2007년 11월11일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잠깐 참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를 인정하되 교통방해 부분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넷째, 기자회견에 관련해서도 집시법 위반죄를 적용하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제 촛불에 관해서 말씀드립니다.

공소장 내용 그 자체가 제가 배후가 아님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밝혀지리라고 봅니다.

단 몇 가지 우선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공소장을 보면 제가 광우병위험 미쇠고기 투쟁과 관련한 주요사업계획을 승인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총지도부인양 기소했는데 그 객관적인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5월9일부터 7월5일까지 촛불문화제를 거의 날마다 하루 한건씩 공모주최했다고 하는데 전혀 관여한 바가 없고 참석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특히 5월 25일, 6월 22일, 6월29일은 주일이었습니다.

전주에서 예배드린 그 날에도 그렇습니까?

특히 6월15일-16일에는 금강산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8주년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일어난 촛불문화제를 제가 공모주체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대책회의 이름으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옥중에 있는 제가 총 배후, 조종자입니까?

공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대책회의에서 아무 직책도 없었고 역할도 없었습니다.

진정 위대한 촛불의 총지도부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청하거나 자임해서 될 일이 아니요,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신성하고 거룩한 촛불대중을 더 이상 모독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9월 4일자 신문을 보니 촛불관계로 32명 구속, 1336명 불구속, 56명 즉심 총 1534명이 사후처리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것의 대부분이 너무 부당한 일이요, 일부 소수마저도 정상참작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촛불은 죄가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촛불을 든 국민과 또한 마음속에라도 지지했던 모든 분은 다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촛불이 누운 풀처럼 잦아드는 것처럼 보이나 국민의 가슴마다 횃불이 되어 타고 있고 결국 활화산이 되어 이 어둔 역사를 심판할 것입니다.

촛불혁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갑오농민혁명  3·1만세운동, 4.19, 5.18, 6월항쟁의 맥을 따라 촛불은 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물은 연대성, 유연성, 지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누가 그 무엇으로 이 촛불의 대역사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한상렬목사 1차재판시 모두진술서 3

모두진술서2에 이어

재판장님 

저는 무죄입니다.

제가 이 법정에 설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사법부의 심판을 받을 자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진짜 촛불의 배후인 행정부의 이명박대통령입니다.

이미 그의 죄가 과중합니다.

민주적 선거가 민주정부의 구성에 필요조건이긴 하나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그에 합당한 정치적 행위를 해야 하는데  법치주의 운운하면서 불법, 무법 해당위적인 발상으로 폭력에 의존하면서 독재와 예속과 분단고착을 심화시키며 수구부유층 기생세력을 대변하며 양극화로 몰아가는 반민중, 반역사의 죄가 있습니다. 자칭 대한민국 주식회사 사장이라면서 도시검역주권, 국민건강권을 미국에게 조공을 바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도 ‘도시 근로자들이 질 좋은 쇠고기를 싸게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을 믿어야지 안 사먹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말하면서 미국산쇠고기 판매과장인양 처신한, 대통령직무위기와 매국의 죄가 있습니다.

7·4·7 운운하며 거짓말로  거품을 일으키더니 한국경제를 망쳐가고 있는 경제쪽박의 죄가 있습니다.

‘그 많은 촛불은 누가 샀어, 조사하라’ 등 그는 배후괴담색깔론을 늘어놓다가 촛불의 힘에 놀라서 5월22일 ‘정부가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국민여러분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국민에게 다가가겠다. 지금까지 국정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제 탓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하여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해놓고  국민다수의 뜻인 전면재협상을 끝까지 거부한 국민기만죄가 있습니다. 

6월19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을 바라보면서 뼈저린 반성을 했다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다시 사죄를 해놓고는 -전면 재협상이 아니라 별 의미가 없기도 하지만- 정부의 추가협상에 힘을 실어 미국의 양보를 조금이나마 얻어내는 데 공로가 있는 촛불입니다.

한국국민을 쉽게 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심어주어 민족의 자존과 대의를 세운 촛불을 불법시위로 몰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배은망덕한 죄가 있습니다.

국민신뢰가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설 수 없습니다.

서울 사대문 인의예지 문 가운데 보신각, 무엇보다도 믿음, 신의 가 중심인데 상습적으로 거짓말하며 삼진치로 가득한 저 심보 때문에- 이로 인해 자기도 명박, 대통령의 명이 박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이 나라 이 민족을 불치의 병, 죽음의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미친운전의 죄가 있습니다.

불법언론장악죄 등 죄가 많은 이 사람을 긴급체포하여 법정에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판장님

저는 무죄입니다.

이미 역사가 저를 무죄로 한 경험이 있습니다.

5.18로 구속되어 폭도라고 칭해졌던 저는 지금 국가유공자입니다.

91년 민자당과 공안탄압분쇄로 구속되었던 저는 지금 공식적으로 인정된 민주화유공자입니다.

세 번째에 구속된 저는 재판부에 간절히 호소합니다.

저를 무죄라고 선언해주십시오. 촛불의 진실과 참역사를 위해서 촛불의 진실과 신성하고 정의로운 법정을 위해서라도 제가 무죄임을 확인해주십시오.

과연 일체유심조입니다.

일체은혜자족감사입니다.

저는 구치소를 국립기도원으로 삼고 깊이깊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변혁을 위한, 이명박대통령의 진정한 회개를 위한. 이 나라 이 민중 민족과 세계 인류의 참역사, 사랑·자유·정의·평화와, 통일 자주 민주 세상을 위하여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삽니다.

사람, 사랑, 삶이 하나일진대, 진실로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한몸 평화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