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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워싱톤 회의 참관기

2009년 2월 22일 (일)

                                김 원 호       

 

1.        미국, 꿈의 나라?

작년 10월 말 워싱톤에서 해외 각 주의 6.15 해외실천위원회 대표들이 모여 10.4 공동선언1 주년 기념식을 겸하면서 중요한 회의를 한다고 하기에, 나도 유럽위원회 대표들 틈에 끼어서 함께 참석할 기회를 가졌었다.

여러 딴 훌륭한 통일 운동가들이 공유하는 통일에 대한 확신, 열정, 활동이 빈약한 나는 그들에게서 자극과 고무를 받아보겠다는 심정도 있었고, 무엇 보다도 한 줌의 6.15유럽위원회 회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과 주장 때문에 분열이 되어 내용대신 형식과 대의명분에 급급하는 퇴행적이고 비 생산적인 통일운동에 식상하고 있던 차에, 딴 대륙에서는 어떻게 하고들 있는지 호기심도 있고, 답답한 유럽아닌 바깥세상에서 불고있는 신선한 공기나 한번 마셔 볼 생각도 있고해서 참가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이번 모임은 권위와 권력을 내세우는 관이 아닌 시민단체의 모임이긴하나, 해외각국의 유능하고 이름있는 인사들이 모인 국제회의이기에, 나에게는, 서울 처음가는 시골뜨기처럼, 우선 두려움이 앞섰다. 어눌하고 겁 많은 위인인지라, 이번에도 뒷전에 앉아서 소극적인 청중 노릇만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0여년 전 처음 방문했던 미국. 자유와 민주주의, 모험과 개척정신, 자아실현과 가능성의 천국이었다고 인식했던 나의 긍정적인 미국의 상이 그 동안 어느새 정복욕, 지배욕, 전쟁, 침략, 소비주의, 공해와 경제공황의 주범이라는 부정적인 상으로 변한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그 것이 나 때문인지; 미국 때문인지 알수가 없다. 아마도 야누스 얼굴처럼 상존하는 미국의 두 얼굴 중 좋은 쪽만 바라 볼려고 했던  내 욕심 탓이리라. 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환상과 매력을 잃어버린 나라, 더구나 부패와 악 속에서 정치싸움, 로비활동 등을 일삼는 정객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사는 미국 수도에는 왜 가겠다는 것일가?  그런 나라 속에 살면서도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 활동하는 재미동포들과 타 대륙 동지들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가 답변에 궁한 나의 입장을 변명해  주었고, 또 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주었다.

 

그러나 공항 도착과 함께 가까스로 억제했던 나의 미국 혐오증이 제 보라는 듯 다시 고개를 바짝 치켜든다. 활주로 근처에 정지한 비행기에서 멀리 떨어진 공항청사까지 버스인지, 전차인지, 기선처럼 연통이 두개 달린 배인지 알 수없는 왕복 연결차가 여객을 날라 주었다. 여러 대의 버스들이 쉴 새없이 즉시 즉시 날라다주는 독일공항의 편리한 서비스와는 달리, 이 곳에는 연결차가 한 두대만 운행하는지, 여행객을 오래동안 기다리게하는 불편을 끼쳐주었다. 게다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곳 미국 수도의 국제공항에는 시내와 연결되는 전철, 버스, 기차도 없고, 택시나 개인 자동차로만 타고 가라는 듯, 가난한 외국여행자나 도시 서민들을 배려하지않는 교통정책을 펴고있다. 전 도시인구의 2/3가 유색인종이 산다해서 이 도시가 인종차별 정책을 펴는 것일가? 아니면 사회민주정책을 펴는 독일과는 달리, 이 나라가 잘 사는 사람들을 더 위해주는 자본주의 나라이기 때문일가?

그러나 정작 나 이외에도 딴 여행객들을  더욱 화나게 해주던 일은  입국심사실로 들어서는 순간 부터였다. 여느나라처럼 외국인 들이 서서 기다리는 줄이 서너 개가 아니고, 다만 한 줄뿐이었고, 그 줄은, 마치 중학교 생물교본에서 본 징그러운  촌충처럼, 길면서도 겹겹으로 감겨져 있어서, 사람들은 그 긴 줄을 따라서 느릿 느릿하게  오락가락 했으며, 섰다가, 움직였다가, 다시 서는 굼뱅이 걸음을 해야만 했었다. 대선을 한 주 앞두고 고작 서너 명의 심사원들이 백여명이 넘는 „잠재적 외국 테러리스트(?)“들을 철저히 심사하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서늘한 가을 날씨이지만 좁은 방에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체온이 발산하는 열과 땀과 탁한 공기는 건강한 사람도 참을 수없게 만드는데, 하물며 아우성치는 갖난 애기들, 환자들, 노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생지옥 같았으리라. 세계에서 가장 부한 나라가 외국 여행자들에게 주는 이 불친절의 원인이 이 도시 시청의 무능함 때문인지, 아니면 9..11 테러리스트 들에게 당한 분노와 치욕에 대한 심리적인 대응행위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딴 대륙에서온 동지들은 세 명의 심사원 배정때문에 무려 두시간 이상의 곤욕을 치룬 것에 비하면 우리는 다행히도 한 시간 반만 고생하다가, 드디어 심사원의 코앞에  닥아서게 되었다. 미국에는 왜 왔느니, 어디에서 며칠 간을 머무느니, 누구를 만나느니 등의 상례적인 질문들을 가까스로 삼키고 났더니, 느닷없이 열 손가락, 엄지, 인지, 손바닥까지 지문을 찍으라고 했고, 마지막엔 얼굴사진도 찍는다. 평화를 사랑하는 „얌전한(?)“ 시민인 내가 미국에와서 갑자기 테러리스트가 된 것같은 묘한 착각이 들었다. 대선 전이라는 초 비상 형국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쨋던 외국인에 대한 미국의 불친절한 정책을 피부로 느끼는 것같아서 기분이 매우 상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입국심사에서 풀려난 이후부터 다시 출국할 때까지 내가 줄곧 만난 사람들은, 호텔이던, 택시이던, 백화점이던, 우리 동포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이 아니면 미국 흑인들이었다. 이 들에게서는, 마치 독일인 들에게서 처럼, 백인들의  교묘하게 숨겨진 인종차별,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친절, 또는 노골적인 외국인 차별대우같은 것들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이 한결 편했다. 물론 이들도 백인들 없이 자기들 끼리만 있는 곳에서는 그들 자신들도 백인들에게서 배운 인종차별 대우와 우월의식을 서로 과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백인들의 불의와 싸우는 장소에서는 분명히 그들에게서 외국인 들끼리의 암묵적인 동등감과 연대감을 더 기대할 수있으리라 믿는다.

 

2.    이념의 때 묻지않은 재미통일 운동가들

 

첫날 저녁 모임에는 해외 각지 대표자들의 자기소개와 인사말 교환이 있었다. 오륙십명 참석자들의 대부분을 이루고있는 미국위원들의 연령, 직업, 신분들은 실로 다양했다. 30대 청년들부터 80대 노령들 까지, 작은 자영업자부터 실업가, 의사, 언론인, 학자, 교수, 변호사, 목사, 원불교 비구니 교감까지, 그리고 미주 각 지역 6.15대표자 들로부터 각 지역 한인회 회장들, 평통자문 위원들,  심지어 이 곳의 영사까지 참관인 겸 동조자로서 격식없이 참석을 했다.

이 처럼 다채 다양하고 풍부한 인적자원 자체가 벌써 여러 면에서 제한되고 단조로운 사회계층 출신들로 구성된 우리 유럽 대표자들의 눈에는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이러한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인사 들사이에 이루어지는 통합과 공동협력이었다. 남한 외교관리들과 밀접한 종속관계에 있으면서 6.15실천위원회와는 의도적으로 거리감을 두는 유럽 한인회 들이나, 대통령 직속기구요, 관에서 임명받고 관과 보조를 맞추는 유럽 평통자문회나, 아직도 반공하는 국가의 유럽주재 외교관리 들과는 달리, 그들이 6.15통일운동가들과 스스럼없이 손을 맞잡고 사이좋게 통일운동에 가담 하고있는 모습은 우리 들에게는 도저히 상상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진기하고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특히 과거에 함흥의 한 남한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고, 자신도 통일운동에 관심이 많다는 그 영사가 이 단체에게 자신의 연대감의 표시요, 장래의 성공을 염원한다는 뜻으로 축하의 노래까지 자처해서 불러주는 장면은 나에게는 아직까지도 수수께기로 남아있다. 

재미 한국외교관 들에게는 유럽동료 들과는 달리 개인의 정치적 자유가 더 부여되어 있다는  것일가? 아니면 그것은, 독일에서처럼 사회적으로 불리한 계층에 속하고, 게다가 반공법과 관에 충실 하기까지해서 쉽게 제압 군림할 수있는 노동자들이 아니고,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또는 학문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로 구성된 만만치않는 미국교포사회의 구성원들 앞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경외심 때문일가?

그 이유야 어찌되었던, 옆에 동석한 한 미국교포가 재미한국외교관들은 자고로

교포들을 업신 여기지않고, 그들과 같은 눈 높이에 서서 그들과 항상 부드러운 관계를 갖는다고 하면서 그 기현상을 나에게 확인 시켜주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들의 상호협력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가? 나 나름대로 생각해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은, 주지하듯,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들을 배태했고, 그 실현화를


시도한 역사를 가진 유럽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없이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단일이념과 정치체제를 견지해온 나라이다. 따라서 이들 재미한인 동포들도, 비록 외국에 나왔건만, 또 다시 두 이념으로 분열된 땅, 독일에서, 그리고 반공주의의 위협과 감시,불신, 질시, 적대감으로 팽배해진 동포들의 오염된 분위기 속에서 또 한번 살아야만 했고, 또 현재에도 그렇게 살고있는 재독한인동포 들과는 달리, 이념의 갈등과 모순과 분열이라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부담없이 자유롭게 정치적인 생활과 통일운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 아닐가 한다

40여년전의 독일교포사회는 양분은 되었으나 서로의 왕래가 비교적 자유스러운웠던 동서독 관계 때문에 남북한 외교관리들, 반공법을 맹종하는 교포들, 그리고 이상적 사회주의국가 추종자나 통일운동가들의 삼각지대 내에서는 은밀하지만 격렬한 축소판 이념전쟁이 치루어지고 있었다. 남한 군사독재정권은 1966년 동백림사건을 조작하고 교포들 머리속에 위협과 공포심으로 반공법을 더욱 깊히 주입, 마취시켜 놓았기 때문에, 분단극복시대인 오늘까지도 교포들은 선입관과 편견, 불신과 경계심으로 서로 들 사이에 높은 담을 쌓아놓고 살아간다. 정치의식, 민족의식, 통일의식을 외면하는 교포들의 무관심 내지, 그들이 신성시하는 주물(呪物, Fetisch)인 반공사상, 남한 외교관들의 쉴새없는 감시와 간섭은 교포들의 자의적이고 건전한 통일운동 참여를 방해하고있다.

 

둘째, 미국교포사회는, 주로 노동자, 연금수령자, 그리고 소수의 자영업자, 유학생들, 한국 상사직원 등으로 구성된 사회적으로 불리하고 제한된 계층 출신의 독일 교포사회와는 달리, 생활에 여유가있는 한국의 중산층과 고학력 소유자들 출신으로서 미국사회의 각 방면에서 성공한 교포들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재미 통일운동권에도 이 현상이 반영되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다양하고 다채로운 인사들이 많았다. 평생을 노력해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물심양면으로 통일운동을 돕고있는 부유한 사업가, 부동산 실업가, 다재 다능한 의사요, 수필가이면서도, 통일운동에 몸 바치고있는, 정열적이면서도, 투명 투철한 통일 실천가, 고령에도 „네가 살아야  내가산다“라는 상생철학과 열정과 아이디어와 미래의 비젼으로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참다운 지도자형의 위원장, 명료한 통일관과 치밀한 전략과 조직력을 갖춘채 역시 위원회를 이끌고있는 수학자, 교포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민족의식과 통일의식을 북돋우고 개발하는 실천 언론인, 종교적, 정치적 관념과 구호대신 방송사업같은 실천사업으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목사 아닌 목사, 탁월한 통일 분석가요 정치 이론가, 교수, 학자, 그리고 통일운동과 현실참여 속에서도 부처를 찾고있는 듯한 원불교 비구니, 등등 실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인물 진이었다.

그들에게서는 유럽에서 흔히 볼수있는 이론과 현실 갈등의 함정들인 좌절, 실의, 회의같은 비관적인 태도대신, 미국 자신이 그러하듯,  확신감, 모험심, 역동성, 추진력이 넘쳐흐르는 신선한 낙관적 모습들을 엿볼수 가 있었다. 

 

유럽의 민주, 민족, 통일운동은 애당초에는 지식층인 유학생들과 노동층 출신들이 계급차이라는 의식없이 모두 한 마음으로 뭉쳐서 미국보다 앞서서 활동을 했었고, 또 이들의 운동상의 질적수준, 열정, 의지, 투쟁의 일관성, 그리고 활동 실적들은 모두가 인정하듯 괄목할 만 했었다. 물론 통일과같은 이념문제 앞에서는 각 계층 속에서 뿐만 아니라, 두 계층 사이에서도 항상 서로 다른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많은 유학생들은 장기체류나 시민권획득이 불가능 하게되자, 학업이 끝난 후, 남한 정보부에 진술서를 제출하고 귀국을 했으며, 나머지 통일운동을 시종일관 하겠다는 지성인들의 많은 숫자는 그들의 이상을 만족 시켜주지 못하는 현실 사회주의에 불만감과 거리감을 두기 시작했다. 특히 현금과 같이, 북 정권은, 남한 정권 못지않게, „통미봉남“과 같은 반 민족적인 통일정책을 고수 하고 있고, 남쪽 보수정권은 10년 전의 이념전쟁과 분단의 시대로 환원하려고 하면서 스스로 약속한 6.15 선언과 원칙들을 어기고 자기기만을 범하고있는 한반도의 정치현실에 실망과 좌절을 맛 보면서 침묵 속으로 침잠해 버리기도 했다.

 따라서 노동자 계층이 숫자적으로 우세한 현재의 6.15유럽위원회는 이렇게 6.15통일 선로에서 탈선한 한 정권을 비판없이 신봉하면서, 일방적이고 편향적이며 성급한 통일운동을 펼치려는 자들과, 남북의 형평성, 복합성, 자기비판, 그리고 완만하지만 다수의 시민참여운동 정책을 옹호하는 자들로 양분된 채, 화해를 통한 통합을 할 수없는 자신들의 무능 함과 분열의 아픔과 치부를 자기자신 들뿐만 아니라, 딴 교포들에게도 적나나하게 보여주면서, 심기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있다.

이 분리된 단체들이 다시 화해 통합할 낌새는 아직까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화해 통합 시킬만한 인적역량, 도덕적인 자아비판, 통합시킬 직접적인 동기와 계기, 힘과 용기, 아량들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통합의지와 능력의 부재는, 인간적인 약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들 마저도 오히려 깊게 파여져 있어 쉽사리 지워질 수가 없는 이념의 잔재를 역시 극복 못했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닐가?

 

그러나 내가 만난 6.15실천 재미교포운동단체는  이념적으로 구애받지않는 동질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 그들은 새롭고 이상적인 통일운동방법을 모색 창출할 수있는 지적인 잠재능력도 소유한 단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남북정권들이 제삼의 세력없이 자체적으로 통일할 의도가 현실적으로 거의 부재하고있는 현금에서는, 적어도 경색되어있는 남북관계를 해빙시킬 수있는 6자회담이나 북의 원자무기해결을 유도해 낼 능력이있는 미국정권에게나마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영향을 줄수있는 지역적 특수성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 아닐가? 풍부하고 질 높은 동질성의 인적자원의 구도가 렌즈를 통해 집산되는 태양광선들 처럼 한 다발로 묶여져서 움직일때에 그 효과는 사뭇 희망적이 되리라 본다. 이튿날 저녁 강연을한 젊고 유망하고 경험이 풍부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 외교관과 오래전 부터 맺은 그들의 밀접한 교제와 교류와 영향력 행사는 재미 6.15실천인들이 가진 특수성의 그 한 좋은 예라고 본다

 

지금까지의  재미통일운동가 들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인상과 판단이 속모르고 겉만 본 외부인의 오판일 수도 있고, 또 그 저의에는 유럽통일운동가들에 대한 의도적인 폄하의 시각이 내포되어 있다는 해석과 비판과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왜냐하면 비록 반공법이라는 바이러스는 지식층, 노동층 구별없이 꼭같이 감염을 시키긴 하지만, 재독교포 노동자들은 그러나 반공국가가 취업 알선했고, 그 관리들이 감시 통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반공에 대한 비판과 저항문화를 모르고 살았던 불행한 전통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분명한 소신은, 미국은 미국대로, 독일은 독일대로, 지식층, 노동층, 부유층, 빈곤층을 막론하고, 각 대륙과 지역과 민족공동체들은 각자 자기들에게 주어진 조건과 특수성과 장점에 따라서 능력껏 조국 통일에 최대한의 자기기여를 하고 있는 곳에는 서로 간에 그 가치의 차이와 우열은 없다는 점이다. 통일은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묻지않기 때문이다.

 

3.                  분열과 통합의 의미 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필자가 지금까지 긍정적인 눈으로 보았던 6.15 미국위원회도 실은 몇년 전에 6.15유럽위원회가 겪었던 유의 아픈 분열의 진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자가 만난 이 단체가 타 단체를 분열 시켰는지, 아니면 타 단체가 이 단체를 분열 시켰는지, 그 내막은 속속들이 알 수가 없고, 또한 그 분열의 이유가 이념전쟁의 유산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자신들의 도덕적인 불완전성 때문인지도 알 수가 없지만, 어쨋던 이 단체도 분열이라는 오점이 유럽위원회처럼 찍혀져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원래 분열이란 부부, 친구, 동업자, 종교단체, 정당, 민족과 국가같은 사회공동체에서 보편적으로 늘 일어나는 사회적, 역사적 현상이다. 인간에게 이기심과 배타심의 속성에서 벗어나고,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사고의 구조에서 탈피할 능력이 없는 한, 분열은 늘 상존하는 법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게 한 줌의 관용, 양보심, 이타심과 현명한 이성이 그래도 존재하는 한은 통합도 가능하다.

분열은 그 이유가 대부분 권력의 이해관계나 이기주의같은 저속한 동기에서 오지만, 그러나  서로 넘을 수없는 정당한 의견과 주장의 차이 때문에 차라리 상대방과 자신의 이로운 장래를 위해서는 아프지만 분열해서 상생공존하는 것이 낫다는  고매한 동기에서 오기도 한다.

분열의 방법과 과정도 두 단체가 비민주적이고 불의로운 방법이나, 증오 멸시, 폭력사용과 같은  과격한 감성적인 대립과정을 통해서 분열이 되어, 서로 원수관계로 남게 되는것이 대부분의 경우이지만, 그러나 때로는 이성적인 토론과 상호이해와 타협과 양보와 합의에 의해서 평화적으로 분리되어, 분리 이후에도 친구로 또는 미래의 재통합 가능성의 상대자로 남아있기도 한다.

따라서 분열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그 이유와 목적과 방법에 따라서 오히려 치유하고 창조하는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6.15 유럽위원회는 기존하는 단체를 의견이 다른 한 단체가 민주적인 절차를 어기고 불법적이고 비순리적인 방법과 과정으로 분리시켜 놓은 기정사실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은, 비록 이념대립을 극복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단체이지만, 바로 그 단체 스스로가  이념전쟁의 유산때문에 분열 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힘든 징후를 가진 점이다. 왜냐하면 분리해 나간 단체는, 우연인지, 아니면 약속된 의도인지는 몰라도, 일본 동경위원회 사무국 처럼, 이념전쟁 때의 사고의 도식 들, 즉 남북의 형평성을 무시하고 한 쪽에만 중점을 두는 일방적이고 편향적이며 독단적인 통일운동의 시각과 방법을 아직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반면 분리당한 단체는, 그와는 반대로, 남이나 북이 처해있는 상황과 입장을 꼭같이 고려하고, 또 꼭같은 차원에서 서로를 고민 해주어야 하며, 동시에 잘못된 남북 정권은 꼭같이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있다. 또한 통일이라는 정치행위는 남북 정권들이 하지만, 그 동력과 추진력은 모든 시민들과 민족 전체의 강한 의지와 노력과 연대에 있기 때문에, 정권들이 성급하게 추진하는 불안정한 통일보다는, 느리지만 인내와 좌절과 아픔의 성숙과정을 거치면서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보다 안정되고 확고한 통일정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전자와 후자 단체의 차이점이다

 

필자가 이념극복을 실천하는 우리 단체 자신에게 이념전쟁 잔재의 혐의를 고발하는 것이 오류이거나, 도덕적으로 온당하지 못하고, 집안 망신을 스스로가 시키는 짓일 수도있다.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남과 북 뿐만이 아니라, 해외 각 지역의 특수성, 다양성, 복합성을 인정 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자아비판적인 자세 마저도 결여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무엇 보다도 먼저 극복해야 하지만 아직도 하지 못한 지난 세기 이념대치 시대의 진부한 잔재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는 유럽과 미국위원회의 분열이 항간에 떠도는 동경사무국의 조종하에서 이루어 졌다는 소문을 동지적인 차원에서 믿을려고 하지도 않고, 또 믿어서도 않되겠지만, 만약에 그것이 기정 사실이라면, 그것은 해외위원회가 범하는 중대한  오류요 수치이며, 또한 그들 자신들이 바로 분열주의자라는 지탄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동경 사무국과 그 지지 단체들은  이 단체의 이번 회의를 „분열행위“라고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가능한 객관적인 눈으로 보려고 노력한 이 회의 인상은 동경사무국과의 분열의도가 없이 상생주의 원칙에 따라 그와 병존 하면서, 통일운동을 분담하고, 통일운동을 좀더 효과적으로 해보자고 시도하는 회의였다. 그 근거는 마지막날 오전에 있었던 회의에서 밝혀졌었다.

회의의 의결사안은 해외사무국의 새로운 조직편성이었다. 장시간의 토론끝에 도달한 결론은 워싱톤에 기존하는 동경사무국과 병존하는 동위의 새로운 워싱톤 사무국의 개설이었다. 이 안은 그 역사적 배경과 의도를 모른다면, 격분하고있는 동경사무국은 말할 것도없고, 속모르는 제 삼자, 그리고 심지어는 의아해하는 우리 회원들의 눈에 조차도 분명히 기존하는 조직의 „분열행위“라는 인상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 동안 오랜 통일운동의 역사를 가진 동경 사무국이 2005년 해외위원회가 조직되었을 당시에, 일본과 미국에 위원장을 각 각 한 명씩 두자는 의도와 약속을 어기고, 미국이나 유럽전체를 아우르는 폭넓고 조화와 균형있는 조직과 운동을 외면 내지 무시하면서, 일방적이고 부분적이며 독단적인 해외통일운동을 시행해 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회의 이번 결정은 애초에 서로 약속한 두 위원장제도라는 공동 착상의 부활과 조직의 정상화를 시도한 것 뿐이다. 새 사무국의 설치의도는 기존 조직의 파괴적인 분열이 아니고, 평화적이고 협조적이며, 새로운 통일운동의 아이디어와 힘과 인력의 제공을 통해서 보다 새롭고 창조적이며 효과있는 기능 수행을 6.15해외위원회에게 약속하고, 미래의 통일운동에 보다 낳은 기여를 하겠다는 긍정적인 조직의 분담작업에 있었다. 그래서 이 회는 새로운 조직을 탄생시키면서 동경사무국과 보다 더 밀접한 상호협조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또 스스로도 약속을 했었다.

 

물론 단일화되고 통합된 통일운동은 바람직하나, 현실적으로 그런 능력이나 성숙성이나 순수한 목적의식들이 부재하면서 하는 허식적이고 형식적인 통합은 오히려 분열되어서 각자가 자기 특수성을 살리면서 하는 동질적이고 집중적인 통일운동만도 못할 것이며, 오히려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 선의의 분열은 물론 각자가 그 들의 동일한 공동목표에 유보없는 최대의 가치를 둔다는 점과 그 것을 서로가 서로에게서 기대할 수있는 신뢰를 전제로 해야함은 말할것도 없다.

 

 이 회의가 끝난 일 주 후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예상하고 고대했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그의 높은 지적 수준, 평화애, 개혁정신들이 그의 성공의 동력들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의 포용성과 통합성도 그 못지않은 성공의 비결이 아닐가 생각한다. 그는, 그의 정신적, 정치적인 멘토인 링컨 대통령처럼, 대선에서 그와 치열한 선거전을 벌렸던 정적들을 배제하지않고, 오히려 자기 정권에 수용하는 아량과 포용과 통합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민주적이고, 인격적이며, 정치적 통합 능력이있는 인물은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군사적인 위험지수가 고조된 오늘의 한반도는 말할 것도없고, 이념전쟁의 잔재와 정치의식의 미숙성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있는 우리 해외통일위원회가 절실히 필요로하는 인물이다. 다만 그런 인물은 그러나 오랜기간 동안의 정치적, 민주적, 도덕적, 인간적, 사회적인 훈련과 경험과 숙성이 없는 곳에서는 나올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오바마같은 인물을 거울로 삼고 각자 모두 우리 자신들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의 동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후세들에게 사회 공동체의식, 민주, 민족, 통일의식의 교육사업에 한 층 더 투자를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적대자들과의 화해는, 종교인들이 주장하듯, 종교의 전매물만은 아니고, 비록 불완전하고 비 영속적이긴 하지만,  인간 들에게도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 민족이 가슴 속 깊숙히 간직하고 있으면서, 역사적으로 위기 때마다 보여준 강한 형제애, 동지애, 동포애, 민족애, 그리고 무엇 보다도 화해정신이 번쩍이는 6.15정상회담이나 10.4공동성명같은 용단들은, 비록 현금에서는 잊어 먹은지 오래 되었지만, 그 좋은 예들이라고 할 수있겠다. 이러한 우리 민족이 소유한 고차원의 감성적 행위는, 서양세계와는 달리, 차디찬 이성적인 분열과 대립과 대결을 놀랍게도 능히 극복할 수있는 우리 민족의 특수성이요, 장점이며, 잠재된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6.15해외 실천 단체들이 비록 서로들 분열이 되었지만, 외적 여건과 동기가 주어질 경우, 같은 통일실천이라는 목적을 가졌기에, 다시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때가 오리라 믿는다. 그 때까지는 헤어진 각 단체들은 통일을 위해서는 각자가 선의의 경쟁과 자신 들의 최선의 기여를 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점장(占杖, Wünschelrute)을 들고 미개척지를 헤쳐가면서 민족의 수맥과 혈맥을 찾아 낸 개척자 문 익환 목사나, 소떼를 몰고 38선을 넘어 남북을 잇는 통로를 닦은 통일도로 건설인 정주영 사장같은 개혁과 개척과 화해정신이 강한 한국의 위대한 오바마들이 남과 북, 해외 곳곳에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고대한다.

 

악의 축을 선언하면서도 스스로 전쟁의 악을 저지른 대통령과 그의 신 자유쥬의 보수세력 들을 일축하고, 대화윤리, 평화와 평등과 개혁과 희망을 신조로하는 새  대통령, 더구나 흑인 대통령을, 뽑을 줄 아는 성숙된 미국의 민주시민들을 보면서, 그 동안 팽개쳤던, „꿈의 나라“라는 미국의 상를 다시 한번 줏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2009.2.16.  김 원호

6.15정신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