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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과 독일역사와 우리

 2009년 06월 08일

615유럽공동위원회   김 원호

 

6  1  5  유  럽  공  동  위  원  회  세  미  나

2009년 5월 30일 – 6월 1일,  Rüdesheim

 

615유럽공동위원회는 원근에서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통일운동에 전념으로 집착하고 일사불란하게 추구하는 일은 우리의 중요한 목적이겠지만, 그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다 성숙되고 다양한 총체적 자아인 Homo politicus(정치적 인간)가 해야하는 과제 중의 하나요, 그 자세라고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더구나 남북 양 정권들이 통일 진로에서 후퇴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그들을 비판 질타도 해야겠지만, 동시에 이 기회에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우리 모두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면서, 반성과 성찰과 관조를 통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도 해보고, 통일운동이라는 객체와 그 행위 주체인 우리 자신을 서로 상호 호혜( Reziprok)의 시각으로 한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중요하리라 봅니다. 그것은 통일 운동의 의기 소침이나 위축 또는 중지의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시야 확장과 다양화, 자아성숙을 통해서 보다 낳은 통일운동을 위한 재충전의 창조적 시간을 갖는 것을 의미 합니다. 진정한 정치적 인간은 문화, 교양, 대화, 교제, 윤리, 인격도야, 건강 등 모든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총체적이며 성숙된 자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오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앞에 흐르고 있는 라인강과 독일역사와 우리를 잠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독일역사, 특히 독일 민족운동사의 한 단면 약사

독일 역사는 B.C. 8세기 부터 시작 한다지만,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역사는 A.D.3-4세기 훈족의 침략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고텐, 프랑켄. 앙글로 작센, 랑고바르트족들이 유럽 각지역으로 이동해 가고, 독일에는 라인강을 중심으로 서 게르만족의 분파인 동 프랑켄족이 정주 서식함으로 시작 됨. 독일은 자고로 중앙 집권국이 아니고 지방 제후들이 지배하는 지방 분권국임. 라인강 주변에는 게르만족 이전에 벌써 켈트족이 서식했으나, 게르만족에의해 영국쪽으로 퇴치 당했음. A.D.9년 Teutoburg  숲에서 Varus 로마군대를 섬멸한 게르만족  케루스커의 장군 Armenius 와 그의 승리는 독일 민족운동사의 신화적 인물과 사건이요 그 효시가 됨. 현재 그를 기념하는2000주년 축제가 활발히 진행 중임.

A.D.8세기 칼 대제(786-814)는 불, 독, 이를 포괄하는 프랑켄국을 설립. A.D.10세기 초 Heinrich. I.가 다진 초석위에 오토 대제(912-973)가 독일 제 1 제국인 „독일 민족 신성로마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962-1806)“을 건설함. 중세 전 기간동안 선제후(Kurfürsten)에 의해 뽑힌 독일 왕들은 교황에 의해서 비로소 황제로 인준 임명되었고, 이러한 독일 정교일치정치 전통은 독일을 종교국으로 특색  지움

.

1789 혁명 이후 불란서는 1806 독일을 정복하고 독일 남부 와 서부의 몇 개국을 모아 라인동맹(Rheinbund 1806-1815)을 설치한 후, 그 곳을 동 유럽 팽창정책의 근거지로 삼음. 불은 보수 종교국 독일을 점령하고 인간 중심적인 근대국가 체제를 강요.1814 나폴레옹의  하야와 유배. 유럽에 팽창하는 자유주의에 대비해서 메텔닉히는 1815 비엔나 회의(Wiener Kongress)의 결정으로  라인동맹을 해체하고, 38개국을 모아서 보수주의, 복고주의, 경찰국가, 자유억압. 언론통제, 선동자 추격, 침묵과 질서(Ruhe und Ordnung)를 표방하는 독일연합(Deutscher Bund)체제를 설치 함.

독일은 특히 교수, 학생, 작가등의 지식층에 의한 자유해방과 민족해방운동을 1815, 1848에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 대신 민족국가사상과 국민주권운동의 구호아래에서 몇 10만 명이 참석하는 학생조직(Burschenschaft, Studentenbund), 남성합창단, 체조단체, 사격단체, 카톨릭의 민족교회운동, 사회주의운동 등 간접적인 문화운동을 펼쳤고, .Grimm형제, Humboldt, Büchner, Heine, Marx , Börne, Lassalle, 등 교수, 작가, 언론인들은 지하와 망명지에서 왕성한 저항운동을 전개함.

 

17세기부터 대선제후들인 Friedrich Wilhelm, Friedrich I., Friedrich Wilhelm I., Friedrich II들이 기반을 닦았고,19세기 중엽부터 급속적으로 산업화를 통해서 강대국이 된 프러시아국은  1870-1871에 비스마르크수상의 영도하에서 보불전쟁에 승리를 거두고,

38개국 제후국들을  통일해서, Wilhelm I.는 황제(1888-1918재위)로, 비스마르크(1871-1890재임)는 수상으로 임명된 제2의 독일제국(Deutsches Reich 1871-1938)을 건립.

보수정당 출신인 비스마르크(1815-1898)는 남독 4개국을 제외한 22개 영주들을 모아 맺은  북독연맹(Norddeutscher Bund 1966-1871)을 기반으로 해서 제2의 독 제국을  수립 한 것 이외에도, 내정으로는, 1848 프랑크푸르트 국회의 헌법을 형식적이지만 근대식으로 수정 보완 하고 참의원(Bundesrat)과 의회 (Reichstag)제도 제정, 사회보장제도 도입, 선거법 도입, 국민주권주의 시행, 신분제도 완화와 시민자유결혼법 제정, 언론억제 완화, 관세보호, 철도망 확창 등과 같은 근대식 국가제도를 시행 했음.

외정으로는 경쟁국인 오지리와의  오랜 대립주의(Dualismus)를 극복했고, 유럽중앙에 위치한 독일의 위험한 지정학적인 약점을 주위 강대국들인, 불란서,오지리,영국, 러시아들을 주변으로 몰아 부치고 그들과 힘의 균형과 조화를 유지 시키는 수많은 상호 복합적인 불가침조약정책과 유럽 중앙의 평화와 안전을 견지 시키는 명 외교정책들을 통해서 지양했음. 초기 자본국가가 생성되고 그 모순들이 들어나기 시작하는 그의 재임기간 중에 Marx의 초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실현이 시작됨. 독일에서는Lassalle Bebel, Liebknecht, Rosa Luxemburg들에 의한 독일 사회민주당(SPD)이 벌써 탄생했음.

그의 준 독재적이고 상부 하달식 정치(예를 들면, 그는 포로가 된 나폴레옹 III세에게 „프러시아에서는 혁명은 왕이 한다“ 라고 자랑 함)는 1차 대전 전후로는 민족주의의 이상으로 격찬을 받았으나, 2차대전 이후로는 근대 독일의 민주주의 도입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고 비판을 받았음. 그러나 그의 준 독재정치가 주위 강대국들의  침략저지와 프러시아국의 유럽 재패권을 위한 필요한 악이었다는 주장은, 마치 현재 중국의 정치 경제 성공이나 남한의 박정권 경제부흥정치에서 처럼, 경제성장과 민족통일과 민주주의 문제의 토론 대상은 될 수있다고 본다. 우리는 보수나 진보의 차원을 넘어서, 조국의 민족 자주와 통일을 위해서 노력하고 또 성공시켰던 비스마르크와 같은 능력있고 훌륭한 정치가가 한 반도에서도 나올 수있는 터전을  만드는 일도 통일운동 못지않게 중요시 해야 한다고 본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때늦은 식민제국정치를 폈고 1차대전을 감행한  Wilhelm II..(1859-1941)에 의해서 1890 수상직에서 파면됨. 1차 대전에서 패전한 Wilhelm II는 홀랜드로 망명한 후 황제권을 박탈 당함.

1919-1933까지 독일에는18개국이 연합된 Weimar 공화국이 서고, Friedrich Ebert가 첫 대통령으로 추대됨.

1933-1945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인 나치정권이 독일과 유럽을 지배했음.

1949 독 연방 공화국(BRD)이 탄생되고, 1948 쏘련연방국 점령지인 동독에는 공산국인 독일민주공화국(DDR)이 탄생. 1990  동독이 서독에게 합병된 통일이 이루어졌으나, 동 서독이 동등한 차원이 아닌 흡수통일이었기에,양국가 모두에게는 아직도 많은 문제점과 그 악 영향들이 잔존하고 있음. 우리는 이런 식의 통일을 거울로  삼아서 장래의 우리의 통일은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상생적인 통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줄안다.

 

  1. 라인강

알프스산에서 홀랜드 앞 대서양까지 흐르는1340Km 길이의 독일 최대의 긴 강이고, 유럽 최대의 수송로이며, Neckar, Main, Mosel, Ruhr등 수 십개의 지류를 가졌고, 수많은 신화와 전설과 동요를 간직한 라인강은 독일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에 독일을  상징하는 강이요, 독일의 „아버지 강“(Vater Rhein)이라고도 불림. B.C.1세기부터 로마제국이 독일을 침공 점령하고 라인강과 도나우강 사이의 500Km되는 국경방어장벽(Limes)을 건설, 라인강과 그 주요도시 들인 Trier, Mainz, Köln, Bingen을 교두보로 삼고 북 동유럽을 공략시도 함. 근대사에서도 이 강은 전쟁과 정치의 전략지 역활을 함. 강 양 언덕에 서있는 수많은 성터들은 켈트족과 독일 영주들의 성들이었으나, 중세이후에는 폐허가 되어 Raubritter(도둑으로 전락한 기사들)의 소굴이 되었지만, 라인강 낭만에 빼놓을 수없는 유물들임

19세기 초에 한 세대를 지배한 독일의 낭만주의는 이 강없이는 상상을 불허함. 이 강 속에 숨어있다고 하는 보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북구와 독일 신화 Nibelungen 보물, 젊은 남자를 뇌살시키는 운명을 지닌 요정Loreley, 쥐 탑, 고양이 성 들의 신화, 전설, 민요, 동화들은 수많은 문학과 음악작품을 배태 시켰음. 낭만주의 작가들, Clemens Brentano, Achim von Arnim, Bettina von Brentano,  Karoline von Günderode,  Josef von Eichendorff, Heinrich Heine 들의 시와 산문들,  극 오페라 작곡가인Richard Wagner의 유명한 오페라 “ Der Ring des Nibelungen“, 그리고 Robert Schumann, Clara Schumann의 많은 음악들은 낭만의  라인강이 그 주 소재요 무대임.

     

A)    Rüdesheim

라인강의 주옥도시 뤼데스하임은 두 유명한 역사적 유적지 힐데가드 수녀원과 니더바르트 동상, 세계 최대 최고의 포도주 박물관, 포도밭, 그리고 유명한 관광지역 때문에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도시. 

B)성Hildegard 수녀원

독일의 첫 여류 신학자, 작가, 작곡가,  첫 „여의“, 그리고 여 선지자로 불리우는 성 힐데가드(1098-1179)가 태어난 11-12세기는 동서 카톨릭의 분열, 교황과 황제들의 권력다툼, 십자군 원정, 각 종 수도교단 창시, 동서문화, 즉 아랍과 희랍문화의 교류가 활발히 진행된 유럽 역사와 문화의 변혁기였음.

귀족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아일랜드 선교사 Disiboden이 세운 Bingen의  Rochusberg 수녀원에서 고등교육과 학문을 수학한 후 베네딕트 수녀가 됨. 14세기 독 문화권에 첫 대학들이 설립 되기전 까지는 수도원이 인재양성의 유일한 기관이었음.

11-12세기의 유럽 카톨릭에서는 기존하던 전통적인 성경봉독(Lectio), 명상(Meditatio), 기도(Oratio), 영적신앙을 중요시하는 성경과 교회중심의 신학(Monastische Theologie)에 도전 하면서 성경봉독(Lectio), 질문(Questitio), 토론(Disputatio), 논리적 사고를 통해서 비판적으로 신에 접근하는 초기 숄라스트 신학( Scholastische Theologie)이 Peter Abaelard(1098-1142), Thomas von Aquin(1225-1274), Bonaventura(1221-1274)와 같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참고: 서양 수도교단) 서양카톨릭의 대표적인 수도회는 529 불란서 Nursia의  Benedict가 세운 베네딕트교단이 가장 오래되고 큰 단체로서 기도와 일(ora et labora)의 강령을 세우고 기독교의 이상을 전수하는 동시에, 기독교에, 철학, 문학, 음악, 예술같은 학문연구와, 농업, 정원, 의학같은 실용적 노동을 접목 시켜서 서양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 교단은 이 후에 은둔, 금욕, 탁발승 생활을 강조하는, 910 불란서의 클뤼니교단, 1209 카멜리트교단, 13세기 이태리의 어거스틴교단(루터가 속했음)들을 파생 시켰다.

두번째 큰 교단그룹은 이태리 아시시의 Franz(1182-1226)가 금욕, 탁발동냥, 고행, 영혼구원, 노상순회설교를 중시하면서 세운 프란치스코교단과, 스페인 Dominicus(1170-1221)가 창시했고 십자군파송과 이단교를 제거하는 종교재판을 감행했으며, 또한 신학, 학문연구, 신부양성을 활발히 한 도메니코 교단이다. 이 두 교단은 근세에 서양의 식민지 정책에 선봉역할을 해서 비판을 받았다. 그 이외에는 1098 불의 Citeaux에 베네딕트 분파요 Bernhard Clairvaux(1090-1153)가 중흥 시킨 Zisterzienser 교단, 칼메리트교단, 칼테우스교단 등은 은둔과 고행 중심파이며, 1534 Ignatius von Loyola가 세운 예수회는 엄한 군대식 조직과 잔인하고 과격한  방법으로 지상의 하나님나라건설을 주장해서 자주 금지를 당했음. 그러나 문학작품 생산, 학문연구에는 많은 기여를 했다.

 

 

힐데가드는 애초부터 교조적이고 전통적인 교회신학계열의 마지막 신학자로서 성경봉독, 명상, 기도, 그리고 일, 즉 학문에 전념한 베네딕트 수녀였지만, 새 시대의 흐름인 숄라스틱 영향도 많이 받았다. 42세때, 바울처럼, 영적이고 신비스러운 강한 빛의 경험을 한 이후 부터는, 교회로 부터 세상과 인간과 현실로 눈을 돌리고, „신의 나팔“이면서도 인간 들에게는 „살에 박힌 가시“로서  인간구원에 주력함. 감성과 이성, 신앙과 학문, 신과 자연, 신과 인간의 일치와 전체성을 추구했다. 그녀는 신은 인간의 창조주이지만, 인간은 신의 영상(imago dei)이요, 대우주(Makrokosmus)인 신의 대칭인  소우주(Mikrokosmus)이며, 피창조물(Opus)로서의 책임을 가졌기에, 신의 구원사에 함께 동참하는 신의 „공동 창조자“(Co-Operarius)라고 보았다. 그녀는 벌써 생전에 살아있는 권위자(authority)로 인정되었고, 그녀의 신학서는 교황과 추기경들이 숙독했고,  수많은 설교여행과 390통 넘는 서한을 통해서 독 황제 바바로사, 정치인, 추기경들에게 신이 우주를 통치하듯 세상을 통치하라고 비판, 경고, 조언을 했으며, 수많은 도시를 방문하고 구원, 신의 임재와 본보기(imitatio christi)를 상기시켰음.

신, 인간, 자연의 조화관계가 단절되고, 인간절대주의, 기술과 물질, 소비주의, 자연파괴, 이기주의, 그리고 인간소외, 고립 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현대 서양인들은 10년전 힐데가르드의 탄생 1000주년을 기해서 그녀의 종교관, 우주관, 자연관의 가치 재인식과 부흥을 꾀했다. 특히 현대에 화학 독성물로 오염된 육체와 건강을 위해서 대안의학을 찾는 독일인들은 그녀의 식물과 약초를 통한 자연요법과 대안의학을 재발견하고 높이 평가했다.

그녀의 의학관은 간단한 진리, 즉 신과 인간과 자연의 일치와 그 파괴, 영혼구원과 병치유의 일치성, 총체성에 있다. 그녀의 병개념은 건강상태에서 병으로의 이전과정이 아니라, 신,인간, 자연과의 건전한 조화의 붕괴요, 그것의 상실과 부족상태라고 정의했다. 그녀는 병 치료술이 아니고, 건전한 인간관, 자연관, 경건, 성실, 절제, 중도, 사랑, 진리, 희망, 언어와 음악과 같은 긍정적인 윤리관과 생활방식을 소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수많은 그녀의 의학서에 제시했다. 그녀의 의학서는 희랍, 아랍의학, 중세의 민간요법등을 종합정리 한 것이지만, 식물학, 약초학, 식이요법 등의 이론과 지식을 수도원에서 약초 등을 재배하면서 생활화도 시켰다. 중세 수도원은 병원, 약국, 약초재배지 역활도 했다.

끝으로 그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녀의 종교의 비판적이고 강한 정치참여다.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국가보다는 자신의 종교 집단이기주의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국의 종교인들과는 달리, 그녀는 비록 보수 교조적 수녀이었지만, 불의의 권력자와 종교지도자들을 과감히 비판 질타하고, 신의 의도는 신과 인간과 민족과 자연의 분열아닌 통합과 일치라고 강조했다. 민족의 분열과 분단을 재차 추구하고있는 현 한반도의 정치가들, 종교인들이 그녀에게서 배우고 각성 해야할 만한  인물이다. 

 

B)    니더발트의 게르마니아 상

동상 전체높이는 38m, 여인 상은 10m, 무게는 32t, 1877년 Wilhelm대제가 1871 보불전쟁의 승리와  독일통일을 기념하면서 건립함. 이 동상은 전 독일의 각 지역에 산재한 독일민족들의 결속과  민족주의, 그리고 독일의 통일을 상징한다. 게르마니아는 게르만족이 사는 지역의 라틴명이지만, 이태리는 이탈리아, 불란서는 갈리아, 바이에른 주는 바바리아 등으로 불리는 여성 이름의  비유 (Allegorie)명이다. 그러나 이 동상조각가들의 구상은 북구신화의 전쟁과 죽은 영웅들을 초혼당(Walhall)으로 모시는 여신인 발퀴레(Walküre)와 조국을 품는 어머니를 결합한 여인상으로서 라인강과 조국을 지키고(라인 강은 불란서의  북동쪽의 경계선)전사자들을 기억하게 하는 일이었다. 동상의 전면에는 독일 통일 주역인물 들의 부각상과 1840 대중 애국가인 „Die Wacht am Rhein“ (라인강의 수비자. 노래의 핵심은 그 후렴이다: Lieb Vater magst ruhig sein, fest steht und treu die Wacht, die Wacht am Rhein.(조국아 안심하라, 라인강 수비자는  변함없이 충성하노라.))을 새겼고, 측면에는 민족 통일전쟁에 참가하는 각 지역 병정들의 출정장면이 부각 됨.

그녀의 오른 손에는 황제의 왕관(민족국가 상징)이 높이 들렸고, 왼 손은 검을 땅에 세우고 있다(왕관을 보호는 하지만, 전쟁의도가 없는 평화의 몸짓을 암시).  

이 동상은 토이토부르크의 Hermann(Luther가 독일 이름으로 개명시킨 Armenius의 독일명) 동상과 베르린의 개선문과 함께 독일 민족주의와 통일운동의 산물이요, 그 것을 기념하는  상징물로 거의 동시기에 건립되었다.

 

현금의 독일에서는 이런 동상 들이나, 민족주의라는 개념들은  나치정권의 쓴 경험 때문에 부정적이고 조롱적으로 취급 당하고 있다. 이해 할 만하다. 더구나 글로벌 시대에 지역중심적인 민족주의를 고수 주장함은 독일이던 한국이던 시대착오적으로 보여질 수도있다. 그러나 한 반도에서의 민족주의는 독일과는 달리, 부정적인 역사적 부담도 없고, 무엇 보담도, 마치 비스마르크 시대처럼,  민족 존망과 조국통일의 관건역활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떳떳이 그리고 자랑스럽게 민족주의를 주창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민족주의는 서양의 제국주의, 일본의 국수주의나 나치독일의 광신적인 우월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먼 우리 민족 생존권의 순수한 요구요, 권리며 의무라고 본다.

 

615유럽공동위원회 김 원호

(이 유인물은 세미나 행사에 속한 관광을 위해서 작성한  일종의 관광 안내서이지만, 필자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도 내포 되어 있음을 양해 하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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