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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동포 정체성의 다변화

-인구이동과 가치관의 변화를 중심으로-

 2009년 06월 08일

                            김범송   (중국 흑룡강신문 논설위원)

 

이 글은 지난 531일 6.15유럽공동위의 강연회에서 발표(연사 김범송 교수)된 내용 전문다.

<목차>

1. 머리말

2. 조선족의 인구이동과 거주지의 변화

1) 조선족인구의 연해도시로의 대량 이동

2) 인구이동으로 인한 새로운 거주지의 형성

3) 한중 수교 후 중국동포의 고국 진출과 국외 이동

3. 인구이동에 따른 조선족 정체성의 변화

1) 거주지 및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정체성의 변화

2) 국내 이동에 따른 민족교육의 위기와 민족정체성의 약화

3) 국외 이동에 따른 고국관 변화와 자아정체성 확인

4. 맺음말

 

1. 머리말

 

개혁개방 후 30년간 중국사회는 고도성장의 경제발전과 함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조선족사회도 전방위적이고 다방면의 발전·변화와 더불어 각종 사회적 문제들에 직면했으며, 그중 민족의 존폐와 관련되는 중차대한 사회문제로서 가치관의 변화와 인구이동에 따른 민족공동체의 해체와 조선족사회 아이덴티티(정체성)의 다변화를 꼽을 수 있다.

중국이 1978년 이후 시장경제시스템을 도입하는 체제개혁과 사회개방을 실시하고, 1992년에 한중(韓中) 수교가 이뤄지면서 조선족사회는 대변혁을 가져왔다. 최근 농촌의 민족공동체가 붕괴되고 민족어 기반의 민족교육이 위축되면서, 조선족사회의 존폐 및 정체성의 위기가 사회문제로 부상한 것은 조선족사회의 대량적 인구이동이 초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개혁개방의 산물로서 도시화·산업화의 결과이며,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사회와 고국(한국)과의 새로운 유대가 이어지면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중국동포·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 있지만,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자 한민족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이 중국조선족의 ‘공통분모’인 것만은 확실하다. 조선족을 ‘중국에 시집온 며느리’로 비유한 조선족의 석학이신 정판룡 선생은 조선족은 이중문화와 이중성격을 가진 한민족이면서도 중국의 소수민족일원이라고 말했다. 조선족은 이제 “중국을 자기 삶의 고장으로 여기고 조선족의 운명과 중국의 운명을 함께 생각하며, 이중문화와 이중정체성을 가진 중국의 소수민족인 ‘중국조선족’이 되었음”을 명백히 저적했다.

한편 연변대학의 후배교수이며 조선족학자인 김강일은 ‘며느리론’을 비판하면서, ‘시집’과 ‘친정’을 구별하는 것은 책임회피의 자세로 중국국민의 자세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변연문화론(邊緣文化論)’을 사용하여 “조선족의 문화와 정체성은 중국과 조선(북한)의 문화와 정체성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문화로 만들어진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선족은 “중국 내의 평등하면서도 구별되는 특수한 문화공동체이며, 한반도와 혈연적인 유대가 있는 특수한 문화공동체”라고 하였다. 또한 일부 조선족학자들은 ‘키워준 정이 낳아준 정보다 크다’고 주장하면서, 민족정체성보다 국민정체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한국학자 윤인진은 이러한 조선족지성인들의 논의를 종합하여 ‘친가와 시가’, ‘낳은 정과 기른 정’, ‘며느리론’ 등은 민족정체성과 국민정체성이 서로 공존하는 관계로 보는 이중정체성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김강일의 ‘변연문화론’, 이른바 ‘중국과 조선의 정체성이 융합된 정체성’에 대해서는 ‘제3의 정체성’으로 분류하였다. 그 외, 중국조선족의 정체성과 조국·모국관의 개념을 정리한 ‘조국과 고국 및 조선족의 정체성’이란 필자의 졸문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주로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인구의 국내외의 대량 이동과 가치관의 변화를 중심으로 중국동포·조선족의 정체성과 조선족사회의 정체성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대량의 인구이동이 조선족사회의 민족교육의 위기를 비롯한 민족정체성의 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주요인이며,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의 충격을 받으면서 조선족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변화 또한 민족정체성을 약화시키고 국민정체성을 강화시키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조선족의 집거지 연변자치주와 동북상성(三省) 산재지구 조선족의 국내이동이 지속되면서, 대도시와 연해도시에 이동한 인구는 55~60만에 달한다. 한중 수교 후 대량의 조선족 인구가 국외로 유동했고 2007년부터 재외동포정책의 일환인 방문취업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2008년 9월까지 한국에 진출한 중국동포는 38만에 달한다. 게다가 국제결혼과 귀화인구 8만여 명을 합치면 재한중국동포는 46만이 넘는다. 그 외, 일본과 미국 등에 진출한 출국인원 15만을 합치면 국외에 진출한 조선족은 60만이 넘는다. 이는 조선족 인구 192만 중 60%를 넘는 120만이 이미 이동했다(귀화 포함)는 말이 된다.

이러한 인구변동과 대량적 인구유실은 민족공동체의 해체와 새로운 거주지의 형성 및 도시공동체의 특징을 나타내고,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이 약화되면서 전통적 민족문화가 상실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민족집거지의 해체에 따른 민족교육의 위축 및 주류민족에 동화되는 등 민족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편 중국동포들의 취업 위주의 한국 진출에 따른 고국관의 변화 및 자아정체성의 확인은 기존의 조선족 이중(민족·국민)정체성의 상호관계를 다변화시키면서,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국내이동에 따른 새로운 거주지의 조선족들의 민족정체성은 갈수록 약화되고, 중국국민으로서의 국민정체성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고국·한국에로의 인구유동이 급증되면서 중국동포의 (이중)정체성은 한국인의 (단일)정체성과 충돌되었고, 중국동포의 특유한 정체성과 한국 단일민족의 국가관과 생활관습 및 문화차이에 따른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동포의 정체성은 복합적이고 다변화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본 논문은 조선족 인구이동이 농경사회 특징의 민족공동체 붕괴에 따른 민족정체성의 약화 및 조선족 정체성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연구의 포커스를 맞춘다. 또한 인구의 국내 이동에 따른 새로운 거주지에서의 민족정체성 변화와 한국 진출에 따른 중국동포의 고국관 변화 및 정체성의 다변화를 살펴본다. 궁극적으로 도시화·산업화에 따른 도시의 민족공동체 형성 및 민족문화와 정체성 유지에 ‘적합한 대안’을 제시하는데 취지를 둔다.

 

2. 조선족의 인구이동과 거주지의 변화

 

1) 조선족인구의 연해도시로의 대량 이동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의 도입과 농촌개혁으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로, 농촌의 잉여 노동력은 서비스산업과 건설업계에서 대량의 노동력을 소요하는 도시에로 진출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1980~90년대의 농촌인구의 인근 도시 진출과 1990년대 이후 조선족 집거지구의 도시 및 농촌인구의 연해도시 진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노무송출 등 취업위주의 국외 진출 등의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1980년대 시장경제 도입 후 경제건설 중심의 전략으로 활성화된 도시화는 농촌인구의 인근 도시 진출을 촉진했다. 예컨대 조선족사회의 가장 큰 집거지구인 연변지역은 1984년까지 농업인구가 비농업인구를 초과하였지만, 1985년부터 역전되어 2003년에는 비농업인구가 140만으로 연변자치주 총인구의 64%에 달했다. 도시에 진출한 농민들은 인근 도시에 진출해 요식업을 운영하거나 상업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일부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잠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영세직업에 종사하면서 도시의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족의 인구이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사회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1990년 중반 이후 조선족 집거지구 도농(都農)인구의 국내 연해도시로의 대량 진출이다. 한중 수교 후 한국기업이 중국의 연해도시에 대거 진출하면서, 조선족젊은이들은 연해도시로 진출해 한국기업에 취직하였다. 특히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선족들에게 있어 한국기업은 선망의 직장이었고, 일부 조선족기업이 연해도시에 진출하면서 동북삼성을 비롯한 조선족 집거지의 젊은이들은 대량으로 연해도시로 이동했다. 한국기업과 조선족기업의 연해도시 진출은 현지의 제3산업을 촉진시켰으며, 대량의 조선족농민들이 연해도시에 진출해 한국기업과 음식 및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면서 새로운 거주지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10여 년간 조선족들의 국내와 국외에로의 대량적인 인구유동으로 조선족인구의 집거지 길림성·흑룡강성·내몽골의 조선족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되고 있지만, 요녕(辽宁)성의 경우는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기업이 대련과 심양 등에 대량 진출함에 따라 국내 대학생들의 외자기업 취직이 늘어났고, 외성에서 온 조선족기업들의 정착이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녕성(23만)은 떠난 사람보다 주변 성시의 유입인구(5만)가 더 많았기에 인구증가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인구의 국내 이동 상황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연해도시로 진출한 연령층이 18~50세 사이의 청장년층 인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둘째, 인구이동의 규모는 크고 분포지역이 넓지만 경제가 발전한 연해지구에 집중되어 있다. 셋째, 인구의 직업 특성은 요식업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한국기업 및 한국인 관련 직업에 주로 종사하고 있다. 넷째, 인구의 이동이 한국기업의 진출 지방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족젊은이들의 연해도시 진출은 민족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화시키고, 특히 가임여성의 고향이탈은 조선족의 인구감소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2) 인구이동으로 인한 새로운 거주지의 형성

 

1992년 한중 수교 후 한국기업들이 중국의 연해도시에 대거 진출함에 따라 조선족의 국내 인구이동 중심이 한국기업과 관련한 연해지역으로 옮겨졌다. 따라서 중국의 조선족인구분포는 더욱 넓어졌고, 최근에는 수도권과 연해도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현재 조선족은 기존의 동북지역과 수도권·산동·화동·화남 등의 지역에 5대 집거지구를 형성, 동북을 제외한 지역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총 인구수는 55~60만에 달한다.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의 생활관·가치관이 점차 변화되면서, 한중 문화에 익숙한 모두 조선족젊은이들은 한국기업의 진출한 곳에 집중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다. 대표적인 조선족의 신집거지로 문화와 교육여건이 좋은 북경·천진 중심의 수도권, 생활환경이 양호하고 한국기업의 대거 진출로 취직여건이 좋아진 산동성의 청도 등 연해도시를 꼽을 수 있다.

 

한국의 대중국 투자 1위, ‘조선족 도시진출 1번지’라고 불리는 산동성에는 청도·연대·위해시를 중심으로 18만 명의 조선족과 한국인 약 12만 명이 상주하고 있다. 최근에도 인구유입이 지속되면서 30만이 넘는 한민족이 집중 및 산개된 도시공동체를 형성한 산동반도에는 청도를 중심으로 각지에 코리아타운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기업의 진출과 조선족인구가 대량 유입되어 한민족의 새 삶의 터전으로 주목받는 산동성에는 교육·문화 인프라가 기본적으로 마련되었고, 자체적인 조혈기능을 가진 코리아상권도 형성되고 있다. 청도의 대표적인 코리아타운은 이창구 이촌이다. 향후 한국인의 진출과 해외조선족들의 유입 가세로 이 지역의 도시공동체는 연해도시의 가장 중요한 한민족 집거지로 거듭날 것이다.

북경·천진 중심의 수도권지역에는 약 17만의 조선족과 13만의 한국인이 생활하고 있다. 중국의 정치·문화·금융·교통 중심지인 수도 북경의 특수지위와 4대 특구 천진시의 지정학적 위치 등의 우세로 향후 더욱 많은 인구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어, 한민족 도시공동체로서의 규모가 현재 ‘제2 한겨레 공동체’ 산동성을 추월할 것이다. 북경의 조양구에 위치한 왕징(望京) 코리아타운은 수도권의 가장 큰 한민족의 도시공동체로 유명하다. 이 지역에는 현재 7~8만의 조선족과 6~7만의 한국인이 집중해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2010년 이후 타운의 인구가 30만에 달해 중국 최대의 코리아타운으로 발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외, 상해·남경·항주 중심의 화동지역에는 약 8~9만의 조선족이 진출했고 그 중 상해시에 6만이 거주하고 있다. 화남지역에는 심천·광주·동관지역을 중심으로 약 6만의 조선족 상주하고 있다. 서부대개발의 프로젝트 시행으로 서부지구에 진출한 조선족 인구수도 점차 증가되고 있다. 2005년의 통계에 의하면 서안시에 상주하고 있는 조선족이 3000명에 달하고, 사천성의 조선족 인구수는 2000여명으로 그 중 성도시에만 천명이 넘는다.

조선족의 대도시 이주는 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거주지를 형성한 반면, 연변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조선족의 집거지구는 총체적인 해체 위기를 맞게 되었다. 비록 새로운 거주지의 형성으로 (집중)산개된 도시공동체가 촉성되고 있지만, 민족어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민족교육의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다. 따라서 민족동화가 갈수록 심화되어 도시에서의 민족정체성 위기가 새로운 거주지에서의 조선족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3) 한중 수교 후 중국동포의 고국 진출과 국외 이동

 

조선족 인구이동의 또 하나의 특징은 국외이동이며, 주로 취업이동과 혼인이동으로 나눌 수 있다. 1992년 한중 수교는 조선족의 한국 진출에 여건과 계기를 마련했다. 최근 한국의 재외동포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방문취업제가 본격적으로 실행되면서, 조선족의 고국 진출은 더욱 용이해졌다.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가 약 38만(2008년 9월), 국적취득자 8만여 명을 합치면 실제 중국동포수는 46~47만에 달한다. 그리고 일본·미국·러시아 등지에 진출한 조선족(15만)을 합치면 국외로 이동한 조선족은 60만을 상회한다.

중국동포가 한중 수교 후 노동취업과 국제결혼 방식으로 한국에 진출할 수 있게 된 요인을 네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한국의 노동시장의 저임금 노동력의 수요와 중국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임금수준은 조선족을 유인하는 요인이 되었다. 둘째, 한민족의 일원인 중국동포들은 문화와 언어우세로 취직이 상대적으로 쉽고, 민족적인 요소로 한국과 다양한 형태의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 셋째, 진출 초기 한국의 폐쇄적인 출입국정책으로 입국이 매우 어려웠지만 산업연수와 노무송출 및 외국인고용정책으로 완화되었고, 2007년 방문취업제가 실행됨에 따라 중국동포들의 고국 입국이 용이해졌다. 하지만 재외동포정책의 차별화는 조선족사회에서 브로커들의 활약과 비리 속출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중국동포여성들의 국제결혼 급증은 초기 한국 진출의 어려움을 조성한 한국의 출입국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는 조선족사회에 위장결혼이 난무하고 브로커에게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이뤄지는 비법 입국에 빌미를 제공했다. 많은 중국동포여성들은 중국에서 가짜 이혼하고 한국국적을 취득해 자녀와 친지들을 고국에 초청하기 위해 결혼한 것이다.

한중 수교 후 중국동포들의 한국 진출은 경제적 부를 이뤘고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전환 등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지만, 조선족공동체의 해체를 촉진시키는 부작용을 갖고 있다. 조선족여성들의 대량적 혼인이동은 조선족사회의 저출산 현상과 인구감소의 원인이 되었고, 이는 성비(性比) 불균형으로 이어져 농촌총각들의 타민족과의 결혼을 촉성시켜 민족동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산가족의 양산은 가족 해체와 자녀들의 교육문제 및 사회일탈을 유발했고, 결손가정의 증가는 민족교육의 위기로 이어져 민족공동체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한마디로 조선족의 한국 진출은 개개인의 발전을 촉진했고 조선족사회의 부를 창조하는데 일조했지만, 조선족사회 민족공동체를 해체시키는 궁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동포들의 한국 진출은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했고 민족정체성의 다변화를 불러왔다. 일부 중국동포들은 결혼과 귀화의 방식으로 ‘한국인’이 되었고, 일부는 민족허무주의로 발전해 국민의식과 가족 의무를 포기하고 이기적인 개인주의로 발전해갔다. 노동취업으로 한국으로 이동한 중국동포들은 사회적 기시와 차별을 받으면서, (중국)조국관을 강화하는 동시에 고국관도 변화되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중국조선족’이라는 자아정체성을 확인하면서, 고국에서 돈을 번 후 시장과 정책이 있고 ‘차별이 적은’ 중국에 돌아와 발전 할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 및 다변화는 조선족사회 가치관의 변화와 중국 호구정책의 완화를 전제로 한 인구이동, 한국 재외동포정책의 차별화와 폐쇄적 출입국정책에서 기인된 것이다.

 

3. 인구이동에 따른 조선족 정체성의 변화

 

1) 거주지 및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정체성의 변화

 

개혁개방 이후 중국사회가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진전됨에 따라 기존의 농촌공동체는 점차 해체되기 시작했고, 대량의 농촌인구가 도시로 유동하면서 조선족들의 생활관과 가치관에 급속한 변화를 초래했다. 1990년대 이후 조선족젊은이들이 대도시와 연해도시에 대량 진출하여 새로운 거주지를 형성하였고, 그들의 인생관과 민족관은 점차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즉 조선족의 국민정체성은 강화되는 반면, 민족의식과 민족정체성은 약화되었다.

인구의 급속한 이동과 거주지의 변동은 조선족의 직업관을 크게 변화시켰다. 개혁개방과 함께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조선족들은 과거의 공무원이나 국가기업소에서 근무하는 명예보다는 실리적인 경제수입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직업관과 금전관의 변화는 조선족의 인구이동을 부추겼으며, 경제적 부를 이룬 긍정적인 측면과 기존의 민족공동체가 해체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조선족들의 가치관과 직업관은 국내와 국외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국내에서는 구조조정과 실업으로 집에서 놀지언정 허드렛일은 하기 싫고, 출국해서 목돈 벌 궁리만 하면서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출국한 조선족에게는 일의 귀천이 따로 없으며, 공무원 출신도 힘든 공사장에서 일해야 하고 근무시간이 길어도 불평이 없다. 이러한 직업관의 변화는 거주지의 환경과 가치관의 변화에서 기인된 것이다.

최근 대량의 조선족인구가 연해도시로 진출하면서 새로운 집거지구가 형성되었고, 거주지의 생활환경이 변화되면서 조선족의 민족성과 가치관도 크게 변화되었다. 일부 조선족젊은이들의 전통적 가치관·도덕관의 급격한 변화는 기존의 전통적인 가족관과 민족관이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들은 주류문화에 적응되면서 민족전통과 생활습관에 대해 별로 큰 관심이 없으며, 과거의 민족전통이 새로운 거주지 생활환경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특히 중국문화가 주도적인 연해지구에서 음식 등 생활습관이 변화되면서 민족전통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의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기존의 가치관을 대체하였고, 따라서 민족전통을 고수하는 부모세대와의 갈등과 괴리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인구이동으로 인한 거주지 변화와 경제적 활동무대의 세계적 확장은 결과적으로 조선족의 정체성을 단일한 민족공동체에서 다양한 성격의 도시공동체로 변화하게 하였다. 조선족공동체의 해체 및 변화과정에서 일부 조선족들 가운데는 민족허무주의와 극단적인 민족주의 경향이 엇갈리고 있다. 민족허무주의는 조선족사회와 중국 주류사회와의 괴리현상을 지적하면서 폐쇄적인 민족공동체의 성찰과 더불어 민족의 존재의미를 부정하며, 나아가 조선어 무용론을 거론한다. 반면 극단적인 민족주의는 기존 조선족 특유의 (이중)정체성을 무시하고 고국인 한국을 구세주로 보면서, 심지어는 국적회복까지 운운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는 세계화의 추세와 더불어 인구이동에 따른 새로운 거주지의 형성 및 정체성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의 폐쇄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지역공동체가 해체됨에 따라 민족정체성은 갈수록 약화되고 민족교육이 따라가지 못하는 여건 속에서 (중국)국민정체성은 강화되고 있지만,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은 퇴색되고 있고 중국의 주체민족에 동화되는 민족정체성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2) 국내 이동에 따른 민족교육의 위기와 민족정체성의 약화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 이후 새로운 발전을 추구하기 위한 인구이동은 조선족의 민족교육을 더욱 심각하게 위축시켰다. 농촌의 조선족학교들은 학생들이 부모를 따라 도시로 들어감으로써 폐교되었고, 도시에 들어온 조선족학생들은 민족교육시설의 미비로 부득불 한족학교에 진학해 민족어를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민족어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교육의 위축이 가져온 가장 큰 문제는 조선족의 언어와 문자를 대대손손 후세에 물려주던 전통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통계에 의하면 북경 등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3~4세들 중 민족어의 사용을 포기한 인구가 80%에 달한다고 한다. 지속되는 인구이동은 조선족후대들이 민족어를 상실하고 주류민족에 동화되어 민족정체성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역·문화·언어 등의 공통성을 배경으로 형성된 공동체, 민족 형성의 객관적인 요소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언어이다. 언어는 그 민족구성원들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언어의 의사소통은 구성원간의 동질성을 형성하고 민족정체성을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민족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공동언어의 사용이고 언어의 공용이 중요한 민족특성이라는 점에서, 민족어의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조선족집거구의 적지 않은 조선족어린이들이 한족학교에 다니고 있다. 2005년 연길시의 통계에 따르면 한족학교에 다니는 조선족학생이 3000명이 넘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조선족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중국 국민과 한민족 정체성 사이 갈등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인구이동과 거주지의 변화로 인한 조선족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문화의 인프라의 부족이다. 현재 북경·청도 등 일부 대도시에는 조선족학교가 설립되었지만, 대부분 지역에는 조선족초등학교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북경 등지에서 한족학교에 다니는 조선족 학생들을 상대로 주말 한국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예상외로 학부모들의 호응도가 높다고 한다. 연변의 일부 한족학교에서는 1~3학년까지 학급에 조선어 과목을 설치해 조선족 학생을 모집하고 있는데, 학부모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형식으로도 조선어를 가르쳐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다면, 그나마 차선책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많은 조선족들은 연해도시의 한국기업에서 일하면서 한민족의 동질성을 느끼면서도, 이념과 문화적 차이로 점차 이중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중국의 다른 민족들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에 공헌했고, 경제발전과 나라건설에 기여한 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한편 한반도의 한민족과는 다른 이중의 정체성을 지닌 해외동포로 문화의 뿌리를 고국에 둔 한겨레임을 인지하고, 이중(중·한)언어의 우세를 이용해 중한 경제발전에 중개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다. 아울러 민족어의 상실은 민족정체성을 잃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을 동시에 감지하게 된다.

 

3) 국외 이동에 따른 고국관 변화와 자아정체성 확인

 

한중 수교 후 중국동포들은 한국에 대거 진출해 한국인들과 상대하면서 문화적인 이질감과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자아정체성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적 기시와 일상적 차별을 감수하면서 중국동포의 고국관은 점차 변화된다. 그들은 한민족이면서도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라는 자아정체성을 감지하면서 (중국)조국관도 강화된다. 수교 초기의 감성적이고 긍정적인 태도에서 제도·가치관 등 다방면의 문화 차이를 절감하면서, 객관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따라서 조선족 1세의 고국관과 2~3세의 조국관 견해 차이가 엇갈리고, 국민정체성과 민족정체성간의 갈등과 괴리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개혁개방 후 조선족사회는 중국의 사회변혁과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이중의 충격을 받게 되었고, 1990년대 이후 조선족사회는 대규모의 인구이동이 진행되면서 삶과 문화의 요람이었던 농촌공동체가 해체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는 조선족에게 새로운 도전과 발전의 기회가 되었다. 개혁개방 이전의 조선족은 폐쇄된 지역공동체 속에서 민족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지만, 수교 후 대량적인 한국 진출은 그들이 자아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되었다. 진출 초기 많은 중국동포들은 한민족이란 이유로 한국의 구성원으로 된 듯 착각하면서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자본주의 이념과 생활방식을 체험하면서 국민과 민족의 차이를 인식하였고 ‘중국국적을 가진 한민족’이란 자아정체성을 확인하였다.

중국동포들이 고국에서 받은 ‘외국인노동자’로서의 사회적 기시와 차별은 (중국)조국관 강화와 중국동포로서의 자아정체성을 확인하고, 고국관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조선족의 자아정체성의 확인은 그들이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의 우월성을 재확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방침은 민족평등·단결 정책이다. 중국정부는 민족의 대소와 경제·문화발전에 관계없이 중국 내 소수민족의 합법적 지위와 권리를 인정하였으며, 민족정책의 제정에서도 민족평등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중국의 민족구역자치제도는 중국 내 각 민족의 평등·자치·자주권을 충분히 인정하였으며, 이는 민족 간 단결을 도모하고 소수민족의 경제·문화·사회발전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시장경제 도입과 한중 관계의 발전은 조선족사회의 (이중)정체성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개혁개방으로 조선족문화가 지켜 왔던 폐쇄적 성향은 전례 없는 충격을 받게 되었으며, 급격한 인구이동은 농촌을 집거지로 한 폐쇄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중국 내륙문화와 해외문화를 대폭 수용하게 되었다. 중국문화에 대한 수용은 조선족문화의 이중성격을 더욱 강화시켰고,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고국문화를 대폭 수용함으로써 민족문화와 민족성을 진일보 강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족의 문화는 중국문화와 한반도 문화의 새로운 융합으로 특징을 이루면서, 조선족의 (이중)정체성은 더욱 선명하게 확립되었다.

고국에서의 문화적 위화감을 체험한 중국동포들의 자아정체성이 진일보 확인되면서, 고국관의 변화와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족’이라는 조국관과 국민정체성이 더욱 강화되었다. 요컨대 중국동포들은 문화·혈통적으로는 한반도와 이어져 있으면서도 중국의 국민임을 실감했고, 중국에서의 우수한 소수민족 일원과 한민족 일원으로서의 당당한 해외동포로 살아가야 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다수 중국동포들이 ‘중국 조선족’이라는 자아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국적과 ‘정책(시장)이 있는’ 중국 땅에 기탁하게 될 것이다.

 

4. 맺음말

 

개혁개방은 조선족사회를 크게 발전시켰지만 조선족사회로 하여금, 새로운 현실문제에 직면하게 하였다. 급속한 인구이동에 따라 조선족집거지 농촌인구의 격감과 수많은 부녀자들의 유출로 인한 인구감소와 성비 불균형, 전통집거지의 축소와 민족교육의 약화, 농촌총각들의 결혼문제와 장기출국에 따른 가정해체의 위기, 국제결혼의 증가로 인구의 자연감소 등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그 중 인구이동으로 조선족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집거지구의 해체, 민족교육의 위축 등은 조선족의 존폐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로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재중동포·조선족의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다는 현실이며,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인구이동과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중국동포들의 민족정체성은 약화되는 반면, 국민정체성을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한중 관계가 21세기 전략적동반자로 격상되었고, 경제교류를 포함해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에게 있어, 200만 중국동포의 정체성이 다변화되고 민족교육의 위축 및 민족동화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200만 재중동포는 한중 경제발전관계에서 중개적 작용과 유대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또한 고국인 한국이 재외동포인 중국동포사회의 정체성의 변화와 민족동화를 중시해야 되는 ‘이유’이다.

인구인동으로 조선족공동체의 해체와 정체성의 혼란, 민족교육의 위축으로 인한 민족공동체의 위기 및 민족동화의 가속화 등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언한다.

첫째, 인구이동에 따른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대한 정부의 대비책이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급격한 인구이동으로 조선족사회는 낮은 출산력과 절대인구규모의 감소, 고령화 추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활발한 인구이동과 통혼권의 확대 및 거주지역의 확산에 따른 직업구성의 변화도 지속될 것이며, 사회통합과 민족정체성도 점차 약화되고 있다. 현재의 인구감소가 지속된다면, 2020년에는 연변의 조선족 인구의 구성비율이 25% 이하로 낮아져 자치주는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도시공동체를 강화하는 측면에서 최근 연변정부가 추진하는 연용도(延龍圖) 통합프로젝트가 바람직한 대비책이 될 것이다.

둘째, 새로운 거주지 도시공동체에서의 민족어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개방된 사회에서 인구이동은 개개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도경으로, 자기재능을 과시하는 주요 수단으로 되고 있다. 특히 산업화와 도시화를 지향하고 있는 중국사회에서 주류사회에 진출하고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려면 도시진출은 불가피하다. 대도시와 연해도시의 코리아타운을 이용해 비정규적인 교육방식, 학원·야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민족어 기반의 민족교육을 강화해 민족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고 주류민족에로의 동화의 가속화를 방지해야 한다.

셋째, 고국과의 교류와 연대성을 강화하고, 민족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해야 한다. 현재 많은 중국동포들이 고국에서 경제적 부를 창조하고 있으며, 시장경제의 정수를 배우고 있다. 오늘날 조선족 사회가 급속하게 발전하게 된 데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혜택도 있지만, 고국과의 경제·문화교류 속에 얻은 실익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010년이면 재중한국인의 100만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수년 후 출국했던 조선족들이 연해도시로 돌아와서 이들과 함께 새로운 도시공동체를 형성해 갈 것이다. 중국국민이자 한민족이라는 이중정체성을 지닌 중국동포에게 있어 고국과의 연대는 삶의 영역을 확장하고,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는데 불가결의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새로운 거주지에서 코리아타운을 형성해 민족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도시공동체에서 연대 확보와 민족성을 지키려면, 코리아타운을 만들어 민족문화와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에서 조선족과 한국인이 공생·공존하는 집중촌을 만들어 민족의 문화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현재 북경의 왕징, 심양의 서탑, 청도의 이촌 등은 성공적인 한겨레의 타운이다. 요컨대 도시공동체에서 ‘민족의 상징’인 타운을 형성하는 것은 (조·한)한민족의 단결과 융합을 의미하고, 공생공영을 이뤄가는 ‘상생의 길’이 될 것이다.

다섯째, 경제·문화적 유대를 강화하는 한민족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21세기는 국적과 이념을 초월하는 세계화시대이며, IT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정보화시대이다. 따라서 글로벌시대에 걸 맞는 한민족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를 교류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민족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도시공동체에서의 민족정체성의 유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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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유럽공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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