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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열린 민족주의

한국의 민족문제와 민족주의를 둘러싼 성찰과 전망*

 2009년 06월 08일

 김귀옥 / 한성대, 사회학

 

이 글은 지난 531일 6.15유럽공동위의 강연회에서 발표(연사 김귀옥 교수)된 내용 전문다.

탈경계 인문학』제2권 1호

(2009. 02): 41-75

 

1. 들어가며: 불편하지만 열광하는 민족주의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민족 문제나 민족주의라는 말은 썩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20세기 민족 또는 민족주의를 서구적 민족주의와

비서구적 민족주의(Anarson, 1990)로 나누어 보면, 서구의 근대국가 수

립과 동시에 출현한 서구적 민족주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앞장

세우며 소수민족(ethnie)들에 기반하여 하나의 ‘민족(nation, 또는 국민)’

을 만들어 내었다. 또한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제국주의화되어 열강의 전쟁을 벌이며 이성을 마비시키고

패권적·인종주의적 양상을 띠면서 양차 세계대전을 야기했고 극단적으

김귀옥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 이 글은 처음에 2007년 7월 한국사회포럼측의 ‘민족주의’ 문제와 관련된 발표

요청에 따라 에세이 식으로 작성되었다. 그 후 비판사회학회 2008년 1월 워크샵

과 2008년 9월 4~5일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원에서 주최한 “Globalization

and Cultural Borders” 국제학술행사에서 발표한 후 여러 논평자들의 소중한 논

평을 경청한 후 논문의 형태로 재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부족한 글을 위해 훌륭한

논평을 해주신 논평자들과 익명의 심사위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42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로 제노사이드까지 자행하기도 하였다.(Barlibar, 1991) 이것이 서구적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적으로 역사에 나타난 모습이다. 이와

다른 맥락에서 서 있는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와 나치즘으로서의 민족주의

의 대립항이라고 할 수 있다. 비서구적 민족주의의 맥락에서 민족은 간절

히 찾고 회복해야 할 것, 이것이 없으면 그림자 없는 영혼과 같은 존재이

며 빼앗긴 민족성을 되찾는 행위는 개인과 집단이 혼신의 힘을 바칠 만큼

가치 있는 일로 간주되곤 했다. 그래서 영혼을 잃어버린 민족들은 제국주

의에 의해 잃어버린 나라와 언어, 역사를 되찾는 일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인식하였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어떻게 읽힐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족 문제

나 민족주의는 세련되지 못한 채, 고지식하거나 보수적이며 과거 회귀적

으로 인식되어 세계화 시대에 낙후된 것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일반 대중에게 우리 민족의 반쪽인 북한 동족은 애증으로 얽혀

있는 관계이며, 김일성·김정일로 대변되는 사회주의적 민족주의를 표방

하는 북한 정권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 불편한 이면에는 여전히 민족은 회복되어야 할 것, 분단국가에서 근

대국가 수립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통일’과 북한은 민족 문제 해결에 있

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민족주의는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요소를 안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대회에서 본 바와 같이 붉은 악마, ‘Be the Reds’가 외친 “대한민

국” 함성과 함께 떠있던 태극기의 물결은 대다수의 한국인을 감동과 열광

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이나 한국과 중국의

갈등과 대결 과정에서도 한국인의 열광하는 모습은 여실히 나타났다. 또

한 1990년대 중반 본격화되던 세계화 과정에서 시장 개방과 현지화를

주도했던 한국 자본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보여준 공격적 또는 유사 패권

적 모습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해외 관광지 현지인들에게 보여주는

한국인들의 외국인을 차별하는 모습, 민족배타적인 태도에서 서구적 제

국주의의 한 얼굴을 떠올리게 하였다.

어느덧 한국도 서구의 민족주의처럼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적인 성격

을 닮아 있는 것일까? 일제 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의 동력으로서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퇴색하고 상실되고 만 것인가? 과연 한국에서 그간 민족주의

의 전형으로 지적되어 왔던 박정희 대통령의 민족주의는 그 실체가 무엇

인가? 또한 최근 한국에서 언급되고 있는 민족주의적 담론들은 어떤 내

용을 가지고 있으며, 그 또한 민족주의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21세기

한국의 민족주의는 진보적 가치를 응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만 것인가? 열린 민족주의는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에서는 ‘민족주의는 반역

이다’라는 말로 대변되듯, 민족주의에 대해 불편해 할 뿐만 아니라 불필

요한 것으로 여기는 탈근대적(post-modern)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민족주의가 불편하거나 낡은 것일 수 있을지언정

여전히 중요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는 민족문제,

분단문제와 같은 근대국가의 미완의 문제를 안고 있다. 설령 탈근대적

의식이 팽배해 있을지라도 탈근대적 의식에 의해 근대적 과제를 해결하

기란 요원하다. 예컨대 남북 분단 체제를 탈근대적 인식에 기반하여 분단

관리론적 두 국가 체제로 전환한다고 할 때, 과연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

할 수 있는가를 의문시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분단 관리를 위한 인

적·물적 비용은 항구적이 될 수밖에 없어서 북한체제에는 말할 것도

없고, 남한체제에도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글은 한반도가

안고 있는 근대적 미완의 과제 중 하나인 민족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용하거나 중요하다는 입장

으로 출발하려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이 글에서는 우선 민족 문제와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쟁을 간단히 짚어보고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공식적 민족주의

담론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다. 또한 1990년대 민주화 이후 탈근대적

44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담론과 결합되어 출현하고 있는 민족주의적 담론들을 살펴보며, 마지막

으로 열린 민족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2. 민족과 민족주의를 둘러싼 이론적 검토

민족 문제를 둘러싼 서구 학계의 논의는 오래되었다. 반면 한국에서

민족 문제 논쟁은 1970년대 문학계에서 백낙청, 염무웅, 최원식 등이 주

도한 민족문학1) 논쟁과 박현채(1980) 등의 민족경제론 등이 있었고

1980년대 초반 인문사회과학계열에서도 민족주의 문제가 백낙청과 송건

호, 강만길, 박현채, 정창렬에 의해 주도되면서 창작과비평 등에서 제기

되기 시작하였다.2) 1970년대부터 신용하의 민족주의 논의도 시작되었

다.3) 그들 간에는 민족의 주체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민족 기원과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는 차이는 있었으나, 크게 보면 민족은 언어, 지역,

혈연, 문화, 정치, 경제, 역사를 공동으로 결합된 역사적 범주의 공동체

(신용하, 1988: 46)라고 보는 데에는 합의한 듯이 보인다.

이러한 논의 지형에 새로운 틀을 제시한 것은 자본주의 운동의 확대와

1) 1960년대 순수-참여문학 논쟁의 결과 1974년 민족주의와 민주화를 앞장세운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창설되었고, 1987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창립하였

다. 작가회의의 긴 논쟁 끝에 2007년에는 극우 국수주의와 친북단체라는 인식을

고려하여 ‘한국작가회의’로 개칭하였다. http://www.hanjak.or.kr/참고.

2) 1980년대 민족주의 논쟁의 성과는 서구의 민족주의 논의를 소개한 백낙청의 㰡”민족주의란 무엇인가㰡•(창작과비평사, 1982)와 송건호·강만길의 㰡”한국 민족주

의론 I, II㰡•(창작과비평사, 1982, 1983), 박현채·정창렬의 㰡”한국민족주의 III㰡•

(창작과비평사, 1985) 등으로 집약된다. 이들의 논의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저항

적, 민중적 민족주의로 개념화되었다.

3) 신용하의 논의는 독립협회-3·1독립운동-상해임시정부 등으로 민족주의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의 㰡”독립협회의 민족운동연구㰡•(서울: 韓國文化硏究所,

1974)와 㰡”독립협회의 사회사상연구㰡•(서울: 韓國文化硏究所, 1974) 등은 강만길,

정창렬, 박현채 등의 민중적 민족주의 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귀옥_세계화 시대의 열린 민족주의 45

현실사회주의의 해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소수민족집단(ethnic group)의 등장과 소규모 국가의

출현은 근대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논의를 던진 것은 베네딕트 앤더슨(B. Anderson, 1991)과 홉스

봄(E. J. Hobwbawm, 1994) 등의 구성주의적 민족 정의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1990년대 민족이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본질주

의’와 ‘구성주의’ 또는 ‘주관주의’라는 이원론적 논쟁이 벌어졌다.(임지현,

1999)

즉 1990년대 이전까지 민족을 ‘대자적 민족’(신용하 엮음, 1988)으로

보는 시각은 다소 본질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민족주의가 민족을 창조”(E. Gellner, 1988)했고 그러기에 민족은 ‘상상

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B. Anderson, 1991)이기도 하며 나

아가 “상상의 공동체(imaginary community)”(E. Balibar, 1999)로 인

식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입장은 크게 보아 구성주의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다소 대립적인 이 논의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두 논의에서 모

두 취할 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본질주의적 민족관의 기저에 깔린 혈연적

공통성은 비역사적 사실일 수밖에 없다. 즉 민족의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가족만 해도 여러 피가 섞여서 이루어진 집단이기 때문에 민족의

하나의 혈연이라는 개념은 허위의식일 수밖에 없다.(김낙중, 2008) 따라

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

에서 본질주의적 시각에 문제점이 있다. 반면 앤서니 기든스의 얘기처럼

“민족적 정체성을 개인적 정체성의 요소로 경험하는 것은 환상”이 아니라

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즉 그것은 역사적이고 상대적이며 구성

적인 요소를 갖춘 개념이되 주의·주관적 개념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

한 점에서 스미스(Anthony D. Smith)의 “‘민족’은 이전에 존재하던 에스

니(ethnie, 소수민족)의 속성을 물려받아야 하고 여러 가지 신화와 기억,

46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상징을 합체시켜야 하며 그 자신의 것들을 고안해야 한다. 민족 형성은

단순한 근대화 과정의 일부인 것은 아니며 민족적 선조에 의해 결정된다”

는 말이 한민족에 대한 정의로서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A. D. Smith,

1996[1986])

민족이란 개념은 생물학적·본질주의적 개념이라기보다는 구성주의

적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한국의 민족은 서구적 민족과 달리 근대국가

형성기에게 구성된 것이라기보다는 더 오랜 종족적 기억을 가지고 있으

며, 아무리 최소화시켜도 고려조 때 현재와 유사한 지역과 역사, 언어,

문화 등의 공통성을 형성시켜왔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산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민족이 근대 민족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몇 가지 환경적 조건이

필요하다. 사회신분제의 폐지, 자본주의의 발흥과 국민 경제의 성립, 민

주주의의 발흥과 국민 국가의 성립, 국민 교육의 보급과 민중의 문화적

발전, 민족의식의 고양과 민족주의의 발흥(신용하, 1988: 47~48)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이러한 조건을 아우르는 것은 수평적 평등과 수직적 통합

이다.(Arnason, 1990)

구체제(ancient regime), 즉 봉건제적 질서가 존재하는 한 ‘우리’라는

관념을 갖기 곤란하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처럼 다른 민족에 의해 하나의

민족이 억압받는 상황에서는 다른 민족과 하나의 민족이 평등한 민족이

될 수 없고 다른 민족은 반민족 개념을 발생시킴으로써 민족 간 분열이

발생하게 된다. 다시 말해 독립된 자주 정권이라는 민족 국가의 형성

및 존재는 근대 민족 형성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런데 국가는 민족을

수직적으로 통합시킨다. 통합에 의해 ‘애국심’을 국가 주위로 모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는 근대 민족의식, 즉 민족주의를 각성시켰으나 근대 민족

의 형성은 해방의 과제로 주어졌다. 그러나 해방은 분단으로 이어지고

분단 정권의 탄생으로 인해 같은 민족이지만 근대적으로 같은 정치, 경

제, 사회,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 것이다. 또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차용된 ‘민족주의’는 사실은 ‘분단 국가주의’(강만길,

1999)이었다. 따라서 자주성을 갖춘 남북민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진정

한 근대 민족공동체의 탄생, 민족주의의 회복은 통일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3. 공식적 ‘한국 민족주의’의 실체

분단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에 의해 주도된 공식적 민족주의와

국가에 의해 배제당한 채 시민사회에서 형성된 민족주의가 여러 가지

모습을 띤 채 형성되어 왔다. 그나마 1980년대까지 시민사회가 최대한

억압을 당해 있을 때에는 민족 문제를 은폐시킨 채, 민족주의를 차용하여

쓴 것은 국가였고, 공식 담론으로 민족주의 색채를 띠었다. 이제 국가에

의해 주도된 한국 민족주의의 실체에 접근해 보기로 한다.

1) 박정희 신드롬과 민족 없는 민족주의

“각하는 곧 국가이다.”

우리 사회에서 ‘각하’를 아는 세대와 모르는 세대로 나눈다면 틀림없이

‘아는 세대’=구세대 대 ‘모르는 세대’=신세대로 나눠질 것이다. 그런 구세

대 중 이 말이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경호실장인 차지철의

불후의 명언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 말은 영화 <효자동

이발사>(감독 임찬상, 2004)에서도 향수 어린 친숙한(?!) 말로 등장하기

도 했다.

1970년대 각하를 향한 수많은 찬사들이 바쳐졌다. 이러한 ‘각하 애국

주의’는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 당시에도 계속된다. 1979년 12·12 쿠

데타와 1980년 5·18로 수천 명의 피를 손에 묻히고 출범한 전두환 대통

령의 말년에 시인 서정주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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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송시(1987. 1. 1.)”를 바친다. 한 대목을 보면,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4)

시인 서정주에게는 일제 강점기의 일본 왕이나 이승만,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에 대하여 구체성은 사라진 채, ‘용’으로만 인식되어 용에게 ‘용비

어천가’를 바치는데 부끄러움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각하를 국가로서 인식하며 받쳐지는 애국주의적 태도

는 과연 몇몇 지식인(한상범, 2004)만의 전유였을까? 위로는 서정주 선

생으로부터 아래는 국민가요, 어린이들의 동요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각

하를 향한 존경심, 애국심으로 들끓었다. 1972년 10월유신 이후에 어린

이 사이에는 동요 “산토끼”가 다음과 같은 노래로 노래 가사가 바뀌어져

널리 불려졌다.

10월 17일 유신은 김유신 같아서

삼국통일 하듯이 남북통일 되고는

근대화 목말라 바가지에 물 떠서

목마르자 물주는 바가지를 밀어요.(김귀옥·윤충로, 2007: 124)

일인지존의 자리에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과 같은 군인이라는 점

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성웅(聖雄)이라는 극존칭을 헌사하였다.5) 1970년

대 후반 성웅 이순신의 노래도 국민가요로 텔레비전 공중파를 타고 세뇌

되듯 오래도록 애창되었고, 1980년대 대학생들은 이 노래 역시 패러디하

4) 서정주,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1987년 1월 18일)”,

《한겨레 21》, 1996년 1월18일, 제92호, 34~35면.

5) 이순신 장군을 극찬했던 또 하나의 배경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원죄의식, ‘천황’의

군인 콤플렉스가 작동한 것은 아닐까 싶다.

여 애용하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 우리의 최고 영웅은 박정희 할아버지였

고,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어 답장을 받은 친구는 교장선생님 이하

모든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종종 언론기관 등에서는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은 누구입니

까?”라는 것을 묻는 조사를 실시하곤 한다. 특히 대통령선거철이 되면

그런 조사 결과가 시중에 회자되기 일쑤인데, 그때 등장하는 앙케트 결과

의 1~3순위에는 으레 박정희 대통령이 포함되었다. 그 결과를 민심의

향배라고 판단한 몇몇 대선 주자들은 내가 그 ‘적통’이라면서 ‘그분’을 전

면에 내세워 자신의 이미지와 중첩시키고 있다. 어떤 주자는 머리 모양,

선글라스 등을 ‘그분’처럼 착용하여 그분 이미지를 재현하기도 한다. 또

어떤 여성 주자는 ‘국모’의 이미지를 재현하며, 국모를 기억하는 층 속으

로 파고들기도 한다.

1997년 연초부터 영국에서 복제 양 둘리가 탄생하였다는 뉴스로 세계

가 들썩거렸다. 그해 3월, 㰡”고대신문㰡•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앙케트 결과가 발표되었다.

“복제하고 싶은 인물”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복제해서는 안 될 인물”에

는 김영삼 대통령이 각각 1위로 꼽혔다.

고대신문이 최근 재학생 1백80명을 상대로 “인간복제에 대한 의식”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김구 선생과 김 대통령이 각각 13표와

36표를 얻어 각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복제하고 싶은 인물” 2위에는 7표를 얻은 테레사 수녀가, 3위에는 6표

를 얻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올랐다.

다음으로 자기 자신(5표), 세종대왕(4표) 순이었다.6)

왕년의 ‘민족 고대’생들의 이러한 여론을 담은 고대신문사의 기사는

두고두고 박정희 향수의 좋은 증거자료로 활용되고 있다.(임지현·사카

6)《한국경제》, 1997년 3월 18일자.

50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이 나오키, 2003: 175) 2008년 8월 15일, 건국 60년을 맞아 각 언론사가

조사한 역대 최고 대통령 1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았다.

이러한 제 현상을 박정희 신드롬이라고 한다면, 박정희 신드롬의 원인

이 뭔지, 과연 소위 박정희 향수 현상이 박정희 체제 또는 통치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2007년 어느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박정희대통령의 공과 문제를 둘러싼 토론을 진행했다.

박정희의 역사적 궤적과 사상, 1960, 70년대 통치 전반에 걸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던 학생들이 약 40퍼센트 정도인데 반해, 절대 지지자는 5퍼

센트도 안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간 지대에 놓인 학생들이 50퍼센

트가 넘는데, 공과론, 필요악론 등등 분분한 주장이 나온다. 마지막에

교수가 질문을 한다. “앞으로 우리가 요구하는 리더십은 박정희와 같은

독재형 리더십인가, 아니면 민주형 리더십인가”라는 질문에 80% 넘는

학생들은 민주형 리더십을 선택하였다.

지난 2007년은 1987년 민주화항쟁 20년이 되는 해였고, 한국 사회에

서 ‘각하’라는 말이 사라지기 시작한 지도 20년쯤이 되는 해이다. 요즘은

각하라는 말 대신 비공식적으로 대통령을 지칭하는 말로 ‘VIP’를 사용하

고 있다. 다시 말해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면서 관용적으로 ‘귀빈(貴賓)’

쯤으로 해석된다.

각하와 VIP, 둘 모두 극존칭에 해당하지만,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

가 있다. 각하는 폐하, 전하에 버금가는 극존칭일 뿐만 아니라, 1970년대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대, 무소불위의 권능의 상징어이며, 천상천하

의 독존자였다. 반면 VIP는 귀빈이라는 뜻인데, 귀빈이 제 아무리 귀빈

일지라도 손님에 불과하지, 주인은 아니다. 누구도 현재의 VIP가 내일의

VIP라고 여기지 않고 있다. 최고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5년 단임제 대통

령제를 못박아둔 제6공화국 헌법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고 모든 권력을 한 손아귀에 쥐고 국민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난 게 분명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성장

신화를 차용하여 개발 신화를 만들어 내어 등극한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에도 이미지를 차용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유신헌법으로 회귀할

수는 없다. 그야말로 대통령의 제왕적 권위주의가 사라졌다. 더 이상 대

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 애국주의는 약발이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당연시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상징

되는 소위 ‘한국 민족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소위 ‘각하’의 시

대, 각하에게 모든 걸 충성하는 것이 곧 애국이며 한국민족주의의 본질이

었고, 각하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애국자이며 그런 범주의 사람이 동족이

었다. 그 시기에 우리는 북한, 괴뢰도당이 같은 민족이라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반공법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했던 세월이 아닌가? 2002년

12월 시청 앞에서 벌어진 미선이 효순이 진상 규명을 위한 촛불 시위에

서 미국 ‘성조기’가 찢기는 사건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을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북한은 동족이 아니라 차라리 미국

이 동족이고 우리의 구원신이었다. 북한이 같은 민족이라는 것은 상상만

으로도 불온한 것이었다. 따라서 지난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공식

적 ‘한국 민족주의’에는 민족 없는 민족주의, 대통령과 정권을 향한 충성

심, 또는 극우적 친일적 국가주의가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 반공민족주의의 내면화

해방 후 1980년대까지 국가이데올로기로서의 공식적 민족주의가 있었

다면, 그건 유사 반공민족주의7)라 불러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사

회에서는 반공을 하지 않으면 결코 ‘동족’이라고 할 수 없다. 흔히 ‘동란’,

‘동족상잔’이라 불리는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서만도 100여만 명 가까운

7) 임지현 교수 역시 한국에서 반공주의는 내셔널리즘과 결합했다고 보고 있다.

그 연원을 이승만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갔다.(임지현·사카이 나오키, 2003:

158) 더 엄밀히 본다면 이승만은 진보적 민족주의자=빨갱이로 취급한 우파였으

며, 그의 반공주의는 철저하게 친미주의에 기초하고 있었다.(정병준, 2005: 713)

52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민간인의 상당수가 반공의 기치 하에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학살을 당했

다. 그런데 당시 빨갱이를 동족이라 불렀을까? 거꾸로 빨갱이들이 쳐내

려 올까봐, 한강다리를 끊어 서울시민들을 한강에 쳐 넣은 지도자는 동족

일까? 또한 한국군이 적인지 아(我)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하여 쏴

죽인 후, 또는 미군이 황인종 피난민이 적인지 아(我)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하여 쏴 죽인 후,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며 항의하는 유족을 향

해 반국가 행위라고 사형을 언도8)했던 지도자는 동족일까?

한국전쟁 시기 국가폭력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아군=선, 빨갱이=적으

로 설정되어 사실상 적으로서의 북한 사람에 대한 ‘동족’ 개념이나 최소

한 인간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김동춘, 2000: 235) 한국전쟁 시기 이

후 분단 이후 세대들은 북한 사람에 대한 상상력의 여지는 완전히 박탈당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당시에는 민족을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불온한 것

이었고, 박정희 체제하에서도 반공적 민족이 아니면 곧 빨갱이였다.

1961년 5·16쿠데타 당시 ‘혁명공약’ 제5조에서는 “민족의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고 하여 본격적으로 ‘반공민족주의’를 선언하였다.

반공민족주의 하에서 자라난 세대들은 북한 사람에 대해 같은 민족이

라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 최근 글쓴이는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사람을 구술하였다.9)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 형성은 교과서나 방송 등 공공기관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의 하나로서 나는 1970, 80년대

어린이들의 놀이에 각인된 간첩놀이에서 일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8) 1960년 4·19항쟁 직후 구성된 ‘경상남북도 피학살자 유족회’ 등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 직후 구성대 혁명재판부에 의해 좌익용공적 행위로서 판결을

받고 그 대표였던 대구의 이원식은 사형, 노현섭은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은 바

있다.(서중석, 1999나: 801~803)

9) 아래 내용은 2006년 시작된 “희망제작소”의 여러 가지 프로젝트 중 하나인 ‘하나

된 평화의 나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20여명을 구술 조사를 한 결과보고서 중

한 대목이다.

김귀옥_세계화 시대의 열린 민족주의 53

분단 2세대들의 대표적인 놀이 가운데 하나는 간첩 잡이 놀이가 아닐

까 싶다. 어린이들의 놀이 속에는 세상이 가장 잘 반영이 된다. 가령

부부싸움이 잦은 부모를 가진 아이는 소꿉장난 놀이에 반드시 부부싸움

의 메뉴를 넣기 마련이고, 사랑의 동작을 많이 나누는 부모를 가진 아이

는 소꿉놀이 상대방에게 입맞춤이라거나, 포옹이 잦을 수밖에 없다.

어린이 놀이에는 시대상도 반영이 된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에 아이들

은 독립투사와 순사를 주제로 한 놀이를 종종했다. 아이들의 영웅은 단연

독립투사였고, 순사는 번번이 투사를 놓치고 혼난다. 그런 주제를 담은

아동요로 「순사돼지 꿀꿀」이란 것이 있다. ‘유격대의 기습에 혼비백산한

일본 경찰 하나가 돼지우리에 숨었고, 유격대가 퇴각한 뒤에 마을 주민들

이 다가가도 겁에 질린 채 돼지인 척 꿀꿀댔다’(한홍구, 2003: 154)고

풍자한 노래이다. 또한 1980년대 대학가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데모를

하는 대학생과 그들을 쫓는 경찰을 주제로 놀이를 하였다.

그러나 전후 태어난 분단2세대들이 어린이였던 1960, 70년대에는 간

첩놀이가 유행이었다. 손정연(가명)의 치기어린 놀이 속에 깊이 배여 있

는 반공의 힘을 경청하자.

우리가 간첩 잡기 놀이를 했어요. 그러니까 뒤에 야산들이 많으니까

학교 이제 일찍 좀 마치고 나면 초등학교 때에는 보통은 인제 뭐 곤충

채집 이렇게 하면 몇 명이 독특했던 애들이 뭐 곤충채집이냐 간첩

잡으러 가자, 좀 더 멀리 들어가 보면 있다,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뭐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그 다음에 뭐 버스 요금 모르는

사람, 그 다음에 말투가 뭐 이상한 사람, 옷을 계절에 맞지 않게 입은

사람 뭐 몇 가지 유형을 펼쳐 놓은 게 굉장히 많았어요. 이런 사람이

있으면 신고합시다, 열 가지 유형 쫙 붙여놓고, 그거를 떼 가지고 우

리가 들고 다니면서 간첩 잡으면 포상금 얼마다, 이러니까 간첩 잡기

놀이를 하자, 이래서 주로 우리가 여자 애들이 좀 성격이 좀 별로

여자애 같지 않아가지고 주로 산에 봄이 되면 나물 캐러 많이 가거든

요(손정연, 가명, 강조는 인용자).

54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그 시대 어린이 치고 간첩놀이 하지 않았으면 ‘간첩’이거나 너무도 얌

전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구술자인 김혜영

(가명)의 경우에는 간첩잡기놀이를 하면 “나쁜 놈은 ‘너 괴뢰군이구.’ 도

둑놈도 함께. 그게 거부감 없이 당연히 그게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간첩잡기 놀이가 상대적으로 활동성을 필요로 하는 남성적 놀이라면,

여성성을 갖춘 어린이 놀이 중의 하나는 고무줄놀이이다. 1960, 70년대

고무줄놀이의 단골 레퍼토리는 “무찌르자 오랑캐 몇 해 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 길 승리 뿐”(김혜영)이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

고서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이라는 군가성 노래였고, 그 노래

에 맞춰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여자 어린이도 반공의 대열에 동참하였다.

이제 간첩잡기놀이를 하기 위해서 한 가지 갖춰야 할 것이 있다. 간첩

이 누구인지, 소위 ‘빨갱이’나 북괴군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분단 1세

대와 달리 분단 2세대는 냉전시대에만도 북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본 경

험이 전무했다. 그러기에 정부에서는 친절하게 간첩은 어떤 사람임을 홍

보해줘야 했다. 1960년대 이래로 우리 사회에는 간첩이 누구인가를 가르

쳐주는 각종 정보 당국 홍보물이 넘쳐났다. 그 홍보물에서 말하는 간첩

유형은 새벽이나 야간에 산에서 내려오는 자, 계절이나 유행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다니는 자, 자주 이사하거나 변장하는 자, 출처불명의 많은

돈을 가지고 귀국한 자, 정부시책을 은근히 비난하고 북괴를 지지 찬양하

는 자 등을 들고 있다.

그러한 홍보물 덕분에 웃지 못 할 소동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넘쳐나

는 간첩신고가 그것이다.

국민 학교 때, 한 3학년 땐가 4학년 땐가, 간첩신고 한다고 파출소에 간

적이 있어요, 그 때 산에서 뭔가, 아저씨들 세 명이 내려오는데 인상이 좀

험악했어요. 그리고 뭐 이게 막 그리고 그 불룩하게 뭐 그래서 뭐 숨겨놓

은 거 같은 인상이 어렸을 때 들어서, 친구들이랑 한참 고민하다가 이제

파출소에 가서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신고는 했는데, 그 때 간첩 같

아 보였어요. 근데 아저씨들이 시끄럽다고 빨랑 집에 가라고 그러대요.

그래서 굉장히 무안해 하면서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김선민, 가명)

김선민과 같은 경험을 최하영도 비슷하게 하였다.

저처럼 기억을 못 하는 사람도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데, 그-, 고런 의식들

이 있었던 거 같애요. 인제 (인왕산에) 삐라 아까 주으러 다녔다고 말씀

을 드렸는데, (……) 북쪽에 이런 간첩이다 뭐 이런 얘기들이 있었었던

거 같애요. 그래서 삐라 주으러 다니면서 그 때 동네 애들이랑 얘기를 했

던 것 중에 하나가 저희가 인제 산으로 잘 놀러를 다녔는데? 이렇게 좀,

좀 긴 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봤을 때 ‘저사람 혹시 간첩 아니야‘

라는 그, 내재적으로 간첩에 대한 경계의식을 갖고 이렇게 의심해 볼려

는 거는 계속 내재화 됐던 거 같애요(최하영, 가명).

최하영이나 김선민은 어려서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더 유난스러웠느냐면 그것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1960년대 후반

부터 전면적으로 실시된 반공윤리교육은 초등학생들의 반공의식을 깊숙

이 내면화시켜, 민주적 준법정신=반공의식으로 일치시켜 두었다. 따라서

김선민의 개별적 신고의식의 투철성이나 적극성 또는 손정연이 말하듯

간첩 포상금의 존재와는 별도로, 이러한 신고의식을 통하여 몇 가지 당시

사회에 관통되고 있었던 몇 가지 함의를 꺼내볼 수 있다.

이러한 신고의식은 첫째, 반공주의적 애국심의 척도로 비춰졌다. 반공

의식을 갖는 것은 국가와 민족을 향한 민주의식, 애국심과 충성심의 표상

이었다. 1968년 12월 5일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에서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임을 밝힌 대로 학생들이나 공무원,

시민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일상적으로 암기하게 되었다. 특히 민감한 감

수성층이라고 할 수 있는 초, 중등학생들에게는 깊이 내면화될 수밖에

56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없었다.

둘째, 이러한 간첩신고의식의 형성의 기저에는 간첩=북한사람=빨갱이

에 대한 동일시의 인식이 깔리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최하영이 얘기하듯

간첩에 대한 ‘경계의식(red alert)’이 자리 잡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혜

영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자.

전쟁이란 걸 우린 겪어보진 못했지만 늘 어려서부터 전쟁이 얼마나 무서

운 거에 대한 거, 빨갱이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니에

요. 꿈도 많이 꿨고. 전쟁 나면 도망가는 꿈은 저는 다 커서까지 꿨어요.

그래서 그게 굉장히 그게 컸던 것 같아요 어려서. 그래서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그때 당시 너무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

생해요(김혜영, 가명, 강조는 인용자).

김혜영의 공포에 대한 기억에는 전쟁과 빨갱이에 대한 기억이 얽혀

있다. 전쟁에 대한 공포심은 흔히 염전사상으로 발전되는 데, 한국의 그

것에는 특별한 데가 있었다. 즉 1, 2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서구에서는

전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즉 염전(厭戰)사상은 주로 사회주의나 아나

키즘이 염전사상을 주도하여, 흔히 전쟁 반대와 함께 평화에 대한 기대감

으로 발전되었다.(Zinn, 1980: 355, 409) 그러나 한국의 염전사상은 평

화사상으로 발전되기 보다는 그와는 거리가 먼, 반공·반북의식(한길사

편집부, 1994: 362)의 고취로 진행되었다. 북한의 경우에는 염전사상은

곧 패배주의로 인식되었다.(남원진, 2004: 298) 아무튼 전쟁을 싫어하는

것은 곧 북한과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되었고, 북한 보다는 북괴,

북한 사람보다는 북괴군 등으로 통했다. 그러기에 1972년 남북조절위원

회가 남북을 오가는 동안 텔레비전이나 신문지상에 나타난 북한 사람의

얼굴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똑같은 얼굴, 똑같

은 말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발화하는 것

은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김청기 만화영화감독 같은 사

람은 “(북괴군은) 알고 봤더니 돼지, 또는 여우, 늑대가 사람의 탈”을 썼

다고 㰡”똘이장군㰡•에서 동족임을 부정하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교과

서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비로소 민주화가 시작된 이래로 북한 사람을

동족이라고 하면서, 북한 사람을 그야말로 ‘괴뢰도당’ 아니라, ‘북한 사람’,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허용되기 시작한 것 같다. 황석영의 㰡”사

람이 살고 있었네㰡•(시와사회, 1993)도 1989년 처음 북한기행문의 형태

로 정간지에 게재될 당시만 해도 정간지 주간이 구속될 정도로 위험한

것이었다.10) 심지어 재일동포 가운데 ‘조선적’ 소유자들에 대해서는 일본

에서 만남만으로도 간첩이 될 수 있다는 강박을 심어놓을 만큼 그들은

경계1호 해외동포 중 하나였다. 그들을 포함하여 상당수의 해외동포들이

오랫동안 동족으로 인식되기 어려웠다.

이제 1990년대가 되면서 비로소 민족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93년 2월 26일,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식사로 유명한 말, “어느 동맹국

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를 통하여 북한 사람이 동족임을

공공연히 선언하였다. 이제 북한 사람을 사람이라거나 같은 민족이라고

부른다고 하여 국가보안법에 걸리지는 않을 수 있게 되고 있다. 아직

제약은 있지만, 해외동포들을 한민족으로 인식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워

졌다. 따라서 분단 정부 수립 이후 1990년 이전까지 한국에서 한민족을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민족주의 담론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인식은

국가적 수준에서만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의식 심연에도

내면화될 수밖에 없었다.

10) 황석영의 북한기행문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게재했다는 혐의로『창작과비평

사』주간 이시영이 구속되었는데, 정작 이 글은 㰡”신동아㰡•에 1,2회 게재되었을

때는 시비가 일지 않았으나 ‘창비’의 게재분만이 문제가 되었음은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프레시안》2003년 8월 25일자.

58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4. 19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하는 민족주의 담론

1990년대 민주화가 본격 전개되면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왔던 민족문

제와 민족해방운동은 통일운동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비록 한반도

분단은 여전히 구조화되어 있으나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탈근대적 담론들

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친일민족주의 문제와 국제적 민족주

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한다.

1) 친일민족주의

1990년대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남한에는 한민족을 전체적으로 포용하

였던 민족주의는 그야말로 금기시된 것이었다. 즉 오늘날 한국 민족주의

의 전형으로 언급되고 있는 박정희 식 민족주의는 친일파를 포섭하고,

한반도 역내외 많은 동족을 배제한 관제 민족주의 또는 공식적 민족주의

(official nationalism)에 불과하다. 따라서 1980년대까지 국가에 의한

공식적 민족주의가 있었다면, 북한 사람을 포함한 수많은 동족을 망라할

수 없었던, 즉 ‘반공민족주의’가 한국의 공식 민족주의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종래 억압된 상황에서 ‘구속될 각오’,

‘죽을 각오’를 해야만 뛰어들 수 있었던 통일운동이 나름대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평화통일 정책을 내걸었던 정치인 조봉암은 간첩

혐의로 사형을 당하였고, 같은 시기 평화통일론을 설파하였던 김낙중은

간첩이 되거나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하였다.(김낙중, 1985) 또한 1970년

대 통일론을 폈던 장준하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의문의 실족사를 당하였

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시민사회에서 나오던 통일론은 여지없이 탄압

당하였다. 1987년 6월민주화항쟁과 곧 이은 세계적 탈냉전의 영향 아래

억눌려져 있었던 시민사회의 통일론이 보다 분출되기 시작했고, 대학생

들이 선도한 통일운동은 사회적 변화를 서서히 가져왔다. 그러한 흐름에

따라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래로 햇볕정책 하에서 시민사회에

서의 통일운동은 마치나 ‘관제’적 운동―물론 나 자신은 동의하지는 않지

만―이 된 듯, 과거에 탄압받던 통일단체들이 정부의 ‘남북교류기금’ 등

과 같은 국고의 지원을 받으면서 남북통일사업이 추진되는 역설적인 상

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무튼 통일운동의 지향점 중의 하나는 갈라진 민족을 하나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즉 민족주의의 회복이다. 그런데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민족주의는 무엇인가? 1990년대 초반까지 음성적으로 논의되었던 민족

담론은 1990년대 이후 통일운동이 분출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도 않았고, 민족주의에 대한 합의도 이끌어 내지 못하였다. 드러난 현실

을 가지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민족주의는 하나인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종종 재향군인회의 역전 노장들이나 자유총연맹(1988년 이전까지 반

공연맹) 회원들의 민족주의적 발언을 보면 경외감이 인다. 그들이 설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 심지어 강

정구 교수를 향해 불타는 적개심을 내뱉고 간혹은 인공기를 불태울지라

도 그 역전 노장들은 젊어서 국가의 부르심에 무조건 헌신했고, 상해를

입히거나 입더라도 오로지 ‘반공’만이 애국이라고 외쳤으며, 반공의 이름

으로 수많은 궂은일을 기꺼이 했다. 1970, 80년대 흔하던 여의도광장

반공궐기대회의 자리에서는 단지(斷指)를 하며 혈서를 작성하던 열혈 애

국적 모습을 보면서 중고등학교 시절 소름 돋는 감격에 젖은 기억이 난

다. 그들의 민족적 언설은 철저하게 반공주의로 무장되어 있었다.

민주화시대 이후 오랫동안 잊어졌던 그들이 2000년 6·15남북공동선

언 이후 소위 ‘남남갈등’이라는 신조어의 실천적 전위들로 등장하였다.

노세대의 새로운 출현이라고나 할까? 그때 이후 그들은 뉴라이트 계열의

청년들과 함께 3·1절이나 8·15광복절, 심지어 2008년 촛불집회의 자

리에 출현하여, 군복 등으로 성장을 하며 왕년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

60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들이 광장에 나올 때면 한손에는 태극기, 또 한손에는 성조기를 휘날리고

있었다. 왕년의 반공적 민족주의자가 성조기주의자, 소위 ‘친미주의자’로

변신을 한 것인가? 아니면 태생부터 태극기 민족주의자와 성조기주의자

는 동전의 양면으로 존재하고 있었는가?

강만길은 현재 남북 민족주의 모두를 ‘분단민족주의’라고 했다. 크게

보면 박정희의 1970년대 유신헌법을 배경으로 한 민족주의나 북한 김일

성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 모두 분단민족주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박

정희에게 있는 것이 김일성에게는 없었고, 박정희에게 없는 것이 김일성

에게 있었다. 즉 박정희의 유신헌법에 기초한 ‘분단민족주의’의 한 가운

데에는 외세로서의 미국과 일본이 자리 잡고 있고,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분단민족주의’에는 외세인 소련과 중국이 사라졌다. 그리고 박정

희의 민족주의에는 북한 동포에 대한 민족으로의 인식은 부재했고, 김일

성의 민족주의에는 남한 동포에 대한 민족으로서의 인식이 존재했다. 그

러한 흐름을 재향군인회나 전직 반공청년단체들의 역사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분단구조 속에서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명실상부한 민족주의는 부재

하지만, ‘민족주의’로 호명되었던 분단민족주의, 반공민족주의로부터 최

근에는 ‘친일 민족주의’까지 등장하였다. 혹자는 이광수의 주된 사상을

‘친일내셔널리즘’이라고 칭하고 있다(조관자, 2006). 최근에 주장되고 있

는 이광수의 ‘친일내셔널리즘’에서 놓쳐버리고 있는 것이 친일인지 내셔

널리즘인지 모르겠으나, 소위 친일내셔널리스트라고 하는 이광수가 썼던

시를 한편 보도록 한다.

모든 것을 바치리

이광수

아아 조선의 동포들아

우리 모든 것을 바치자

김귀옥_세계화 시대의 열린 민족주의 61

우리 모든 땀을 바치자

우리 모든 피를 바치자

우리 충성에 불타는 머리 속을, 심장을 바치자

동포야 우리들, 무엇을 아끼랴

내 생명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지 말지어다

내 생명 그것조차 바쳐 올리자

우리 임금님께

우리 임금님께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5년 1월 18일자)

이광수에게 조선 동포들이 모든 피와 땀, 머리와 심장을 받칠 우리의

임금은 일본 ‘천황’이다. 그러고 보면 이 시는 전혀 친일의 시가 아니라,

조선 동포는 바로 천황의 백성이니, 이 시는 ‘용비어천가’류의 충성의 시,

‘황국신민’화의 전형이다.

그 연구자가 ‘친일내셔널리즘’을 이해하는 방식은 대단히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에게는 ‘조선민족’과 ‘일본민족’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개념으로 이미 ‘민족’이라는 개념의 경계가 허물어뜨려 진 것이거나

이미 내선일체가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일본 왕이 소위 ‘우리의 임

금님’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을 친일파의 전형으로 보지 못한 채, 친일내

셔널리즘으로 해독하는 것은 지극히 몰역사적 발상이거나 이광수에 대한

과잉 해석일 수밖에 없다. 만일 그러한 이광수가 친일내셔널리스트라면

이완용이나 송병준 역시 친일내셔널리스트들은 아니겠는가? 또한 한국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이나 뉴라이트들은 한손에는 태극기를 든 채, 또 다른

손에는 성조기를 든 채, 과거 친일내셔널리스트들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2) 국제주의와 민족주의

한편 21세기 세계적인 진보적 핵심어는 반세계화이고, 반-신자유주의

이다. 21세기 금융자본의 세계화와 시장독재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에 대

62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항하는 민중적 대안은 무엇인가? 진보의 세계에 속하는 사람 가운데 그

대안을 민족주의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양한 진보의 축에 모여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언어가 보편적이기를 바란다.

쉽게 말하면 국제적이길 바라는 거다.

1990년대 이래로 지식인, 특히 진보적 지식인 사이에서 민족주의자는

진부하거나 후진적으로 이해되어 오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화 시대 민족

주의는 반역이고, 진보의 반역이며, 21세기 국경 없는 세계에서 위정척

사(衛正斥邪)의 띠를 두른 대원군쯤으로 여겨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돌아보면 국제주의는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의 산물도 아니고,

진보주의의 유사어도 아니다. 예컨대 1950년대 사회를 보면서 서중석은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배웠다는 청년들 상당수가 민족주의를 경멸하고 지금은 국제주의시

대라고 외쳤던바, 기개도 없었고, 매사에 회의적이고 방관적이었으며

동고(同苦)하기를 싫어하였고 할리우드 영화나 쫓아다녔다. 한 집 건

너 다방, 당구장이 있었고, 밤이고 낮이고 취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0, 30대가 심했지만, ‘주의’자 붙는 것, 심각하고 엄숙

한 문제들은 덮어놓고 기피하였다. 총체적으로 무력증에 시달렸고,

장래가 보이지 않는 실의와 방황의 시대였다(서중석, 1999가: 6).

이 모습이 1950년대의 총체적인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적어도 지식인

들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서구화된 지식인

들은 일본을 통한 서구화에 쫓아가기에 급급하였고, 그들에게는 빼앗긴

조국의 현실, 민중들의 비참한 삶도 없었다. 예컨대 1930년대 초반부터

해방 전까지 연희전문학교 교수였던 이양하의 수필 「송전(松田)의 추억」

에는 “탁구도 하고 정구도 하고, 저녁이면 총총한 별 아래 화톳불을 두르

고 이야기도 하고, (…) 점심을 장만해 가지고 오매리 뒷산에도 가고,

고저총석을 찾기도 하고, 좀더 멀리는 삼일포까지의 하루 원족을 나서기

도 하고-”(이양하, 1972: 104)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또한 1961년

5·16쿠데타 이후에도 전통적인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하며 서구화

를 촉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21세기 초 현재, 우리 사회에는 국제주의가 넘쳐나는 것은 사실

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국제주의자는 한미동맹주의자이다. 미국 없이 못

살고, 미국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 미국은 ‘스타워즈’나 ‘007

시리즈’처럼 세계의 중심이자, 구원신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홍성태, 2008). 성조기를 마치 태극기와 동의어이며 미국

식 영어를 국어인양 여기며 맥아더 장군을 한국의 장군으로 섬기는 사람

들이 있다.(한홍구, 2003: 202) 그들은 북한 사람을 동족이라고 부르거

나 북핵 위기를 한반도 전체의 위기로 인식하고 우려하는 사람을 민족주

의자라고 부르기 보다는 친북주의자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러한

사람에 대하여 진보진영에서는 친미사대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국

에서는 친미사대주의자 조차도 민족주의로 부르는 경향도 있다.(임지

현·사카이 나오키, 2003: 159) 애써 언어화 시키자면, ‘국제적(또는 친

미적)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형용모순인지 몰라도, 주변에서 꽤나

볼 수 있는 군상이다.

그렇다면 국제주의자들과 문화적 친미주의자들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지구촌화, 즉 세계화=미국화로 표상되고 있는 시대에 소위 진보

적인 사람들 가운데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식들을 어려서 조기유학에

보내어 기러기가족이 되어 있다. 지난 정부의 교육 3불정책을 지지하면

서도,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지 못할까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 이중 국적

―물론 그 중 하나는 미국 국적을 의미함―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부심

(?)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넘쳐나고 있다. 미국 문화를 모르는

것을 무식의 소치로 여기고, 미국식 영어발음이 안 되는 사람을 촌사람

취급하는 분위기는 ‘영어몰입교육’을 강변하던 2008년 초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만의 분위기가 아니라, 진보진영에도 암암리에 활개치고 있

64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다. 진보주의자들은 우리 안에 만연되어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진보적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는 즈음, ‘내’가 누구

인가를 안다는 것은 거의 절망적이다.

세계화 시대 국제주의는 보편어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민족주의를

‘강한 혈연적, 문화적 유대를 기반으로 내부의 이해 갈등을 철저히 은폐,

봉쇄하고 타민족과의 대결과 충돌을 지향’(권혁범, 1999: 30)한다고 보면

서 권혁범은 국제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서구 중심적 보편주의는 서구의 약육강식적 민족주의의 세련된 표현

이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편적

이상이지 또 하나의 민족 중심적 이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타민족

의 불행과 고통에도 귀기울이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고 ‘냉엄한’ 국

제 정치의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환상일까?(권혁범, 39)

즉 그에 따르면, 국제주의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을 수용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인식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인 것은 무엇일까? 예들 들어 사람들은 흔히 보편성의 대명사로서

‘인권’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많은 인권 문제 전문가 역시 인권을 바라보

는 관점은 절대적 인권 개념으로부터 상대적 인권개념까지 다양한 스펙

트럼이 있다고 하여 보편 인권 개념만을 따르지 않는 경향이다.(Jack

Donnelly, 2002[1998]: 73~74)

물론 보편적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하는

방식은 역사적이고 공간적이며, 그래서 보편성은 항상 특수성과 공존하

고 있다. 열린 지구촌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자신만을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적 태도는 당연히 지양해야 한

다. 그러나 자기의 해체를 통해서만이 보편성이 실현되는가?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한국의 국제주의자들이 과연 보편주의자들인가? 오히려 우리

사회에는 미국 또는 서구가 보여주는 영상자아(looking-glass self), 그

들이 말해주는 ‘한국’을 한국으로 이해하는 국제주의자들이 너무 많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가고 있다.

여전히 보편적인 것은 중요하다. 인간의 보편성을 언급한다고 하여

민족, 성별, 지역, 계급, 성적 정체성, 신념 등 현존하는 모든 경계를 해체

시킨 채 인간을 말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보편성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있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하는 허위의식의 전형이

아닌가? 오히려 자기 민족의 열등성을 극복하고, 소중함을 깨달을 때 다

른 민족의 소중함도 동시에 깨달을 수 있다. 서구 제국주의는 민족의

과잉이 아니라 사실은 민족의 부재의 결과가 아닌가? 서구의 내셔널리즘

은 역사 교과서에 있을 뿐 그것은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일부 지방

소수민족(ethnie)을 중심으로 한 다른 소수민족들을 복속시키는 사상임

은 주지의 사실이다.

5. 열린 민족주의는 가능한가

민족주의라는 사상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민족주의가 민족 문

제로 환원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민족주의는 제3세계나 피식민지 민족

에게는 저항적 에너지를 담지한 사상의 원천이 되었으나, 제국주의자에

게는 패권적·정복적 이념이 되었다.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 저항적 민족

주의 외에도 분단문제와 결합하여 반공주의를 정당시하는 분단민족(국

가)주의가 현실적으로 작동하였다.

21세기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보편주의를 수용하는데 불필요하거나 불

편하게 여기는 주장들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민족주

의는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찾을 수

있다. 첫째, 1990년대 들어 세계화나 지역화의 논리가 확산되어 ‘국경

없는 지구촌’을 주창해왔고 세계정부나 EU와 같은 지역정부의 역할이

66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중요해지고 있으나 여전히 민족국가는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

문이다. 2000년대 세계적 경제 위기에서 국가 간의 협조와 연대는 중시

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는 주체는 여전히 민족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둘째, 한국은 해방과 함께 분단되어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에 여전히

근대국가를 형성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남북분단은 각 당국으로 하여

금 막대한 분단 관리 비용을 소모하게 할뿐만 아니라 소모적 인적 물적

재원을 동원하는 동원국가체제를 만들어 내었다. 또한 남북분단은 외세

에 의해 결정되었고, 현재도 분단 과정에 외세가 개입하여 자립적인 근대

국가 형성은 요원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에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민족 문제 인식이나 민족주의는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혈통의 단일성을 기

반으로 한 민족주의적 인식은 곤란하다. 일개 가족도 더 이상 단일 혈통

이 아닐진대, 민족은 기본적으로 혼혈일 수밖에 없고, 한국의 장구한 역

사 속에서도 수많은 부족들이나 외국계통의 사람과의 혼인이 이루어져

단일 민족을 상정하는 민족주의는 비현실적, 비역사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족주의는 민족 내부적으로는 민주

주의와 평등, 인권, 통일을 보장하는 시민사회적 보편성을 갖추어야 하고

민족 외부적으로는 다른 민족국가나 다른 집단과의 호혜적 교류와 평화

지향성을 보장하는 열린 민족주의이다.

열린 민족주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필요하다. 우선 근대 국가의 완성

으로서의 남북통일이 가능하기 위서는 대외적인 개방성과 상호 공생성의

방향과 장기적 안목과 함께 민족적 가치를 가져야만 성공할 수 있다.

60여년의 분단은 체제적 수준의 차이와 함께 사회문화적 차이도 크게

만들어 왔다. 체제 수준에서 통일 방식과 무관하게 사회문화적 수준에서

차이를 무시한 채 통일을 할 경우 상호 공존하기가 곤란하다. 또한 사회

문화적 수준의 통일 시간은 체제 수준의 그것보다도 더 장구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예컨대 신탁통치를 거쳐 1955년 통일을 이룩한 오스트리

아의 경우에도 사회문화적으로, 또는 민족적 수준에서 통일이 되어 ‘하나

의 오스트리아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획득하는 데에는 4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Pelinka, 1998: 22) 지구촌 시대 폐쇄적 태도는 통일 과정이나

통일 국가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장기적 안목의

결여는 통일 과정의 혼란에서 통일과 평화의 방향으로 나가는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이때 바로 민족주의는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룩하려

는 의지를 갖게 하는데 중요하다.

둘째, 분단과 전쟁이 낳은 보다 구체적인 문제의 하나인 역내외 이산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열린 민족주의적 인식과 태도가 중요하다.

민족의 분단으로 인해 수백만에 달하는 한반도 역내 이산가족들이 고통

을 겪고 있으며 수백만 명에 달하는 해외 이산가족이 고통을 겪어 왔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접근의 원천에는 민족주의적 인식이 작

동하고 있으나 단일 민족, 단일 문화, 단일 정체성이라는 폐쇄적인 태도

로는 문제 해결이 곤란하다. 따라서 다문화적 민족주의와 다국적 민족

정체성의 인식이 필요하다. 21세기 세계화 시대 민족은 과거의 단일 코

드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주요 코드

중 하나는 ‘다문화’ 코드이다. 다문화주의에는 많은 비판이 있을 수 있으

나, 현실적으로 다문화 코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대세이다. 다문화적

인식은 한국 사회를 넘어서서 남북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 160개국에

흩어져 있는 소위 한민족들에게도 적용된다. 2007년부터 시행된 ‘세계

한인의 날’에 모인 수많은 지역의 한민족들 가운데는 얼굴은 비슷하게

생겼으나 언어나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설령 한민

족이라고 해도, 수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와 사회경제적 경험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문화적 실천을 이해하

고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한국에 급증하고 있는 국제 결혼자들에 대한 이해에도 열린 민

족주의, 다문화적 민족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제결혼을 해서 들

68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어온 소위 ‘베트남 며느리’는 어떤 면에서 이민족이지만, 그를 통하여 얻

은 자식은 베트남 문화와 한국 문화를 동시에 수용하고 키워져야 할 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더 크게 보아 베트남 며느리조차도 한국 문화를 정도

에 따라 다양하게 수용하게 살아가게 될 사람이다. 나아가 북한 사람들이

나 새터민에 대한 통일의 논리에서도 다문화적 이해 코드가 요구되고,

다문화적 공존과 통일논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민족주의는 과거의 저항적이거나 민중적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다문화적이며 다층적인 ‘열린 민족주의’로서 요구된다고 할 수 있

다.

나아가 진정한 국제주의자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일 때 가능하다고 했

다. 허무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결국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도 허무주의

적 인식을 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에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를

아낄 수 있을 때 비로소 남의 자긍심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타자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수 있다. 한국인은 조선조의 사대주의로부터 일제강점기 식

민사관, 해방 이후 서구와 미국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빠져서

사실상 자신의 가치를 부정당하기만 하였을 뿐, 스스로 비판적으로 성찰

하며 자율성을 쌓는 훈련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였다. 1990년대 이후 급

작스런 경제적 성공에 의해 왕성한 해외 경제적 진출과 국제 사회에서의

발언권은 얻었더라도 스스로 무엇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우고 만들어 내지 못하였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이 된다.’는 국제

적 동맹의 원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한미동맹을 초역사적인 것으

로 인식하고 분단을 당연시하여 국민에게 분단을 강요해 역사 속에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열린 민족주의가 될 수 없었다.

또한 보편적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열린 민족주의는 세계화에 대한 해

법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많은 한국 진보주의자들의 탈근대적 지식의

원천으로서 수용되고 있는 것은 유럽적 탈민족주의적 지식체계이다. 유

럽의 탈민족주의론의 확산에는 몇 가지 힘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 유럽보편(중심)주의 이념은 국민국가 간 차이와 차별을 넘어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실현했던 복지제도와 민주주의를 EU적 지평위에서 보편적

으로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11) 또 하나의 탈민족주의론은 리

스본아젠다12)로 대표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초국적 자본주의 실현의

정당화 기제이다. 전자는 이념적으로는 인류의 이상인 사해동포주의, 만

인평등주의 표방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유럽공동체(EU)를 구성하기

위한 이념으로 사용되고 있고, 또한 서유럽 중심주의에 갇혀 있다. 당장

경제 수준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동유럽 국가조차도 EU에 수

용하고 있지 못한 현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유럽이 상당한

책임을 지고 있는 아프리카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조차 있다. 오히려 유럽의 탈민족주의에서 힘을

점차 발휘하고 있는 것은 사해동포주의보다는 신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한

리스본아젠다와 같은 것이다. 2008년 가을 미국의 금융위기, 경제위기가

강타하고 있는 유럽공동체 소속 국가들이 그 위기에 대하여 어떤 반향을

일으킬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지만, 국가를 뛰어 넘어 유럽 공동 번영,

공동 복지 체제를 발전시키게 될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1990년대 이래로 한국은 시장만능주의에 몸과 영혼을 맡긴 채, 신자유

주의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해 쫓아온 이래로 최근 경제위기를 맞이하

고 있는 어떤 해법으로 갈 것인가? 시장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을 방어하여 시장의 무정부성을 막기 위해서는 고용 창출 프로그램

을 지속적으로 가동하고 개인 복지로 확대하여 구매력이 살아나고 노동

력이 지속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시장

11) 사실 유럽의 탈민족주의론은 EU 형성의 중요한 사상으로서 단위 민족국가를

벗어난다는 의미를 가지면서 동시에 유럽중심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다.

12) 리스본 아젠다는 유럽식 자본주의, 유럽공동체를 허물로 신자유주의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에 많다. Amable, Bruno, “The Lisbon

Agenda: The End of the Europena Model(s) of Capitalism”, Diversity and

Dynamics of Globalization: Socio-Economic Models in Global Capitalism,

한국사회학회 주최 국제학술회의, 2007년 9월 13일.

70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만능주의로 가는 것은 문어발 대기업에 경제를 독점당하는 구조를 열어

놓게 되고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민족 국가

단위에서 적절히 시장과 계획의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고 대기업과 중

소기업 간의 균형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 일을 시장이 할 수 없다. 또한

국민들의 불균등한 소득을 재분배하고, 여성층과 청년층의 비정규직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 프로그램을 취하

기 위해서도 민족 국가가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 금모으기 운동이나 달러

모으기 운동을 사회적 소수자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누진세 등을 통하

여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해서라도 현실적으로

민족주의의 호소가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열린 민족주의의 모습이다.

6. 맺음말

민족은 본래적으로 진보의 개념도, 보수의 개념도 아닌 역사적 개념일

뿐이다. 서구에서 민족이 태동할 당시 민족은 과거 봉건 영주 시대 에스

니 개념과 신분 개념을 넘어서는 진보성을 갖고 있었다. 한국에서 민족은

외세의 침략과 피억압 속에서 재발견되고 재구성되었고, 일제와 친일반

민족에 대한 대항 개념으로서 진보성을 갖고 있었다. 모든 구성원의 형식

적 평등과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민족 또는 민족주의 개념이 현실로 작동

하는 과정에서 실재로 수많은 불평등과 차별이 표출되었다. 일제 강점기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차별을 받았으나, 차별 속에서도 여성이나 피지배

계급은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곤 하였다. 서구나 미국의 페미니즘에 영

향을 많이 받은 현대 한국 여성주의자들은 민족주의가 성차별성을 내장

하고 있는 것(김은실, 1994: 40~43)으로 이해하고 그를 비판하고 있지

만, 본원적으로 민족주의가 가부장적 요소, 성차별적 요소를 안고 있는지

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오히려 주변부 유럽이나 식민지, 탈식민지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 민족주의와 결합할 때 여성의 이익이 민족의 이

익에 희생하면서도 여성의 지위가 제고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정현

백, 2003)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는 낡은 것이거나 매력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안으로는 남북문제, 밖으로는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

문제를 풀어 평화통일을 실현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동북아

와 세계의 ‘평화’는 결국 한반도에서는 ‘통일’이라는 문제로 맞닿아 있다.

(김창수, 2000)

한국이나 한반도에 있어서 민족문제는 여전히 풀어야할 문제로 남아

있다. 민족 내부의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실현하는 문제나 민족 외부

간 경쟁과 공존13)의 관계를 실현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남북의

통일문제뿐만 아니라, 650만 명 해외동포와의 관계 재설정의 문제도 중

요한 문제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충분히 지구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

하는데 수많은 제약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사해동포주의 인식

을 갖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술적 수준에서 민족주의는 활용

할 만하다. 예컨대 라이따이한이나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여성의 문제

를 소수자 인권의 문제로 한정지어 보는 것보다는 민족문제로 결부지어

푸는 것은 보다 구체적 실천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해외동포 문제 역시

해당 국가의 소수자 인권문제로 관심을 갖게 하는 데에는 큰 한계가 있

다. 따라서 한반도 분단국가주의를 넘어서서 전체 민족주의적 인식을 갖

게 될 때, 오히려 분단적 사고와 국가적 사고를 뛰어넘을 수 있다. 나아

가 민족적 문제가 곧 국제적 문제라고 했던 레닌 식의 사고나 철저한

민족주의와 사해동포주의가 일맥상통한다고 보았던 김구 식의 사고는 충

분히 다르지만 보편적 인식이 닿아 있다. 따라서 민족문제는 현실적으로

풀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운데 하나이고,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13) 예컨대 한미동맹은 민족간 경쟁과 공존을 해치는 중요한 힘으로 작용해왔다.

미국의 절대적 우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한미동맹은 결국 경쟁과 공존의 논리

조차 파괴해왔다.

72 탈경계 인문학_제2권 1호 (2009년 2월)

방어 기제 중 하나로서 민족주의는 가용자원일 수밖에 없다.

이제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반동일 수 있는 역사 속에서 내가 택

하고자 하는 길은 진보를 위한 진보의 길이 아니라, 민중적 생존의 길이

며, 평화의 길이다. 그것을 위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연대, 즉 솔리다리떼

를, 다른 경우에는 관용, 똘레랑스를, 때로는 비폭력 저항을, 또 때로는

개인적 고독을 택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희망하는 진보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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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옥_세계화 시대의 열린 민족주의 73

 

ABSTRACT

‘Korean Open Nationalism’ in the Global Era:

Reflections and Prospects

Kim, Gwi-Ok

(Hansung University)

In today’s globalized world, buzzwords like national ethnic

conflicts or nationalism seem to have lost their appeal. While

Western nationalism played an essential role in building modern

nation-states, it played a negative role as Imperialism led these

states to occupy other countries and to scatter other nations. But

non-western nationalism has shown the characteristic of resistant

nationalism against imperialism and colonialism. In the case of

modern Korea, its nationalism has two contradictory characters,

old-fashioned or inconvenient.

First of all, this paper examines theories on national problems

and several nationalist issues, and it tries to examine closely the

official nationalist discourse as a state-ideology of Korea. Then,

it looks into several nationalist discourses in the context of

postmodernism in the Global Era. Lastly, it tries to find an

alternative in “Korean open 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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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open nationalism” is an idea that could help Korea

to overcome the results of the Korean War and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o carry out the Korean reunification.

Furthermore, it could also be a vision to solve the problems of

millions of diaspora Koreans. Additionally, it is to be the idea

against imperial Globalization and become a code to accommodate

multi-cultural families. This can be called Korean open

nationalism.

주제어: 한국의 열린 민족주의(Korean open nationalism), 세계화 시대

(Global Era), 남북통일(Korean reunification), 공식적 민족주의

(Official Nationalism), 반공주의(Anti-communism)

 

논문제출일: 2008. 11. 25

심사완료일: 2009. 01. 03

게재확정일: 2009.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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