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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극복과 통일을 향한 소통과 연대를 꿈꾸며…

 2009년 06월 10일

오제욱 선생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2009년 5월 23일, 우리는 우리의 귀를 의심할만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한 서거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국세청을 동원한 노무현 전대통령 후원기업의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해서 검찰의 노 전대통령 주변인물들과 가족들에 대한 전 방위적 수사, 그리고 그 칼끝이 결국 '포괄적 뇌물죄' 라는 죄목으로 노 전대통령 본인을 향함으로써 노 전대통령은 하나의 딜레마를 맞이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끝까지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함으로써 결국 가족을 팔아 넘긴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 그것이 아니면 스스로 죄를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파멸과 함께 가족들 처벌은 물론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개혁세력 전체에 큰 타격을 주는 상황. 뚜렷한 증거는 없이 박연차씨의 구두진술에만 의지해서 연일 쏟아져 나오는 검찰의 수사진행상황 발표, 또 그것을 받아서 확대재생산하는 언론. 어느 누리꾼의 분석대로 무죄라고 주장해도 도덕적 죄인이 되고, 유죄라고 인정하면 법적 죄인이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설계한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따라서 이것은 정치적 타살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 인식이 현재 이 사건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 대다수의 인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현 사건을 놓고 일부 극단적인 진보세력의 노 전대통령의 재임시절 정책에 대한 비판, 그리고 노 전대통령의 시신을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등 극우세력의 극단적인 발언들도 나왔고 또 일부는 범 진보세력의 반등의 기회, '제2의 탄핵정국' 등을 거론하기도 하며, 한편에서는 인터넷 왜곡선동 등의 정치적 이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노 전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이른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서와 함께 현 정권 및 보수언론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반면 보수언론들은 노 전대통령의 추모열기를 북핵위기로 치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고, 그것을 기회로 이명박 정부는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전면참여 카드를 꺼낸 상황입니다.

무현 전대통령은 어찌 보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 경계선에서 항상 살얼음판을 걸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서 애석함과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에게서만큼은 그가 비록 대통령이라는 자리까지 올랐던 사람이긴 하지만, 차가운 이념이나 냉혹한 정치적 계산 따위의 것들이 아닌 그야말로 사람의 향기, 그리고 비주류의 비애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이라는 한 개인이 가지는 위치와 의미는 바로 남한이라는 사회 내에서 존재하는 경계인으로서의 모습이라고 보여집니다. 대통령 재임시절, 그 결과의 성공여부를 떠나서 좌우를 넘나드는 소통의 노력을 보였던 점과 그로 인해 양쪽으로부터의 비판 내지는 비난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점 등이 바로 경계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닌가 감히 평가해봅니다. 반면 그러한 경계인 층을 두텁게 형성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그 안에서조차 또 다른 분열 내지는 분화를 가져왔던 상황들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음과 함께 현재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의 소통과 연대를 위한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분단 현실에 대한 각 진영의 성찰 요구 제기

노무현 전대통령 재임시절, 인터넷에 많이 떠돌던 유행어가 하나 있습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인터넷 위키백과사전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이 말은 모든 사회문제를 노무현 전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것에서 시작했다가 후에는 보수언론들의 과도한 참여정부 비판 내지는 왜곡보도 등에 대한 반발 패러디로써 작용했던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분단현실에서 자라온, 남 탓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낙청 교수님은 이러한 오늘의 분단현실이 바로 남북이 서로를 탓하고, 각 내부의 비판자 마저 상대방 내지는 외세의 앞잡이로 따돌리는 일이 습관화된 문화를 조성했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설사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와 분리시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한다 해도 분단체제의 성격상 한쪽에서 수구세력이 득세하면 상대편에서도 역시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마련이고, 결국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은 서로 상대에게 있다는 '남의 탓' 습성이 새로 힘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남의 탓' 습성의 전형적인 성찰 부재의 유형들로서 백 교수님은 분단상황을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에 활용하는 수구세력과, 세월이 흐를수록 강해지는 분단체제의 범 한반도적 성격을 무시하고 남한의 극우세력과 주한미군만 사라지면 자주통일이 된다고 믿는 공상적이기만 하고 성찰이 없는 통일운동 진영, 그리고 남북의 점진적 재통합을 수반하지 않는 평화국가 내지는 남한의 독자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건설을 주장하는 이른바 '후천성 분단인식결핍 증후군'에 걸린 무책임한 진보주의 등을 거론합니다.

이런 유형들은 6.15 공동선언을 접근하는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백 교수님은 계속해서 주장합니다.

수구세력은 6.15 공동선언 제 2 항이 북측의 '고려연방제'를 수용했다고 비난하며 국론분열의 주범으로 낙인 찍으려 하고, 반면에 IMF 사태 이후 민중생활의 궁핍화를 특히 중시하는 진영에서는 6.15 공동선언을 그다지 획기적인 것으로 보지 않음과 동시에 본질적인 문제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서민경제의 파탄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갖가지 편향된 입장을 떠나 중도를 찾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반도의 분단현실에서 그 어떤 극단적 노선도 남북 주민들의 진정한 삶의 자유를 옥죄고 있는 분단체제의 족쇄를 풀어줄 수 없다는 성찰을 바탕으로 정립되는 '변혁적 중도주의'라고 백 교수님은 주장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 '변혁적 중도주의'가 곧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만남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곧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존의 낡은 이념적 잣대에 얽매이지 않고 분단체제 내에서의 여러 한계적 상황들을 인정하면서 남북화해의 진전과 결부된 현실적인 개혁노선에 대한 합의, 그리고 세계시장으로 열린 한반도경제권의 건설과 남한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서 현재 민생과 민주주의, 남북관계의 '3중위기'를 조장하는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막아내야 하고 결국 한반도의 통일에 있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가운데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가 한결 두드러지는 '시민참여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분단체제의 온갖 퇴행현상은 분단체제의 흔들림이 더욱 심해지는 말기현상이지 분단체제가 안정을 되찾는 사태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하면서 그럴수록 평상심을 갖고 분단현실을 성찰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이승환 통일맞이 정책위원장 역시 같은 주장을 합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보수층 결집, 경제위기와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방어기제 확보 차원에서의 남북관계 악화를 방치함으로써 냉전시기의 공생적 적대관계로 회귀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적대적 공생의 고리를 끊기 위해 '중도 연합'이 필요한데, 그것은 성찰하는 진보와 합리적인 보수가 만남으로써 폭넓고 줏대 있는 중도세력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합리적인 보수와의 소통은 기다린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먼저 가능한 정당-시민사회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이들에 의해 남북관계의 정책결정 과정 속에 지속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합리적 보수와의 소통의 장을 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상의 주장들에서 나타나는 흐름으로 보건대, 앞서 제가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남한사회 내에서의 정치적 경계지점이라 할 수 있는 중도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킴으로써 경계인 층을 두텁게 만들어가기 위한 소통과 연대의 필요성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현재 남한의 정치질서 및 정당구조라는 부분에까지 적용을 시킨다고 했을 때, 기존의 지역 및 낡은 이념에 얽매인 정당구조가 아닌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변혁적 중도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킬 수 있는 정계개편이 새롭게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교회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 선언

이렇게 각 운동 진영의 변혁적 중도를 향한 성찰과 합리적인 대화의 소통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또 주목해 볼 만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우선, 지난 2007 12 1 6.15유럽공동위의 연말 좌담회에서 발표된 심은정님의 <박순경의 통일신학>이라는 발표문에서 인용된 두 인용문을 여기서 재인용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며 시위할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6.25 때 공산군에게 쫓겨 부산까지 밀려갔지만 적화 통일되지 않도록 유엔군과 미군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지난 50년 동안 미군을 주둔시켜 이 나라의 공산화를 막아주신 하나님. 평화적으로 통일될 때까지 미군이 철수하지 않도록 주여 붙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또한 수많은 교회를 파기하고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투옥하고 핍박하는 김정일 정권이 어서 무너지고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날이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문은 2003 1 11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에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기도문의 일부입니다.

두 번째 인용문입니다.

<...6.25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동포들을 살상한 북한은 56년이 지난 오늘도 반성과 회개 없이 핵무기 및 대포동 미사일 기지 건설 등으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북한의 인권에 대해 말조차 못하면서 민족통일을 이루겠다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아직도 적화통일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는 김정일 집단이 속히 무너지길 기도하자...>

이것은 2006 6 19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가 주최한 "6.25 상기 56주년 교계지도자 특별기도회"에서 참석자들이 채택한 결의문 중 일부입니다.

하나는 국민의 정부가 끝날 무렵, 또 하나는 참여정부 시절에 나온 한국 보수기독교계의 당시 정세에 대한 상황인식들입니다. 모든 한국개신교 진영들의 상황인식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현재까지도 한국사회에서 비쳐지는 대다수 한국개신교 진영들의 한반도상황에 대한 인식은 대체적으로 위와 같이 극우적인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9 3 1 한국개신교 진영에서 특별한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한국교회의 진보와 보수, 복음주의 진영과 진보주의 진영이 함께 뜻을 모아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 3.1 선언>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3.1절 9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가 3.1운동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면서, 오랜 세월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서로 대립해 온 것을 참회하고 3.1운동 당시 기독 선열들이 시작하였던 민족독립 운동이 민족분단의 평화적 해소와 통일된 새 나라를 통하여 완결되는 것임을 믿으며,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사명을 완수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사랑과 정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라는 하나님의 복음명령에 따라 모든 분파성과 이념대결을 극복하고 서로 협력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사회를 향해서 남북의 상호이해와 평화공존 및 공동번영을 모색해 줄 것을, 남한정부를 향해서는 흡수통일을 추진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언행을 자제함과 동시에 미국 오바마 정부와의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줄 것을, 북한당국을 향해서는 민족분단에 대한 공동책임의 당사자로서 남북협력 및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요청을 단계적으로 수용할 것을, 그리고 한반도 주변 4국과 국제사회를 향해서 한반도의 분단상황에 대한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선언문의 서명자 공동대표 면면을 보면 일부 극단적인 진보 및 보수 진영을 제외한 한국개신교의 대부분 진영이 이 선언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前) 국사편찬위원장이신 이만열 교수님은 이 선언의 배경에 대해 한국교회의 진보 및 보수 진영에 속한 젊은 학자들이 여러 차례 만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도하고 신앙과 사상을 공유하면서 문장을 다듬어 내놓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국민의 정부 및 참여 정부 시절, 한반도 상황에 대해 극우적인 태도를 보였던 대부분의 보수 개신교가, 오히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진보 개신교와 소통하고 위와 같은 선언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한국개신교 내에서도 이제 각 진영들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연방대통령 호르스트 쾰러의 연설

지난 3월 24일 베를린에서는 <자유의 신뢰성>이라는 주제로 현재 세계금융위기의 향후 전망에 대한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의 연설이 있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까지 지냈던 경제계 출신 정치인이 시장 규제와 윤리,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아 박수를 여러 번 받았던 연설입니다.

이 날 연설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현재 많은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으며 시장경제시스템의 가치와 존속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 금융피라미드의 확산으로 인해 실물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혼란을 가져온 시장의 주최자들과 책임자들의 자기반성과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금융시장의 자정능력 상실이 가져온 방종과 탈선이 결국은 시장의 제도를 확립하고 관철시킬 의지를 가진 정부를 필요로 하게 됐다는 것, 이러한 위기는 자유와 책임을 조화시키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가치를 증명함과 동시에 경제성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3세계 국가들과의 파트너쉽 형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 자유는 강자의 권리에까지 허용되는 특권이 아니며 다른 이웃에게도 실현되는 자유를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것, 기후변화나 생태문제 등의 여러 복합적인 위기극복을 위한 소통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 등입니다.

독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것과 정치인의 연설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내용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역설적으로 경제계 출신의 보수 정치인으로서 기존에 지향해오던 방향에 대한 수정의 필요성과 함께 소통과 연대를 강조하는 공식적인 발언이라는 차원에서, 우리 역시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소통을 통한 변혁적 중도노선의 경제정책 수립 가능성을 연구해 볼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대통령이 어느 강연회에서 연설 중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을 향하여 보수진영에서는 '좌파'라는 비판을, 진보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하길래 스스로는 '좌파-신자유주의자'라 칭한다고 우스개 소리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좌파-신자유주의자'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노 전대통령이 지향했던 방향이 쾰러 대통령이 말한 "사회적 시장경제"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경계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명

이상의 4가지 사례를 통해서 저는, 세계경제위기와 더불어 우리의 조국 한반도가 현재 처해있는 여러 정치적, 경제적 위기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우리는 더 이상 소모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노선을 지양하고 중도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가는 방향을 지향하는 소통과 연대에 있어서의 새로운 방법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던져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를 통해서, 그간 이명박 정부에 실망했던 민심이 새롭게 '노무현 재발견'이라는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보면, 이 흐름은 어떤 이념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감성들을 자아냄으로써 앞으로 민심이 어디로 흘러갈 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성들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껍데기뿐인 감성이 아니라 기존의 이념잣대로는 분석이 되지 않는 상당한 모멘텀을 동반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하나의 힘(Power)으로 보여질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더군다나 새로운 젊은 세대들의 출범과 아울러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재의 분단현실 속에서 이제는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는 기존의 낡은 이념논리나 진영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낙청 교수님 등이 제기하고 있는 오늘의 분단현실 속에서의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만남이라는 소통과 연대의 과제는 특히 오늘 경계인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과제로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경제체제에 있어서도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순과 한계가 더욱 드러남으로써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 등과 같은 중도적인 경제모델을 지향하는 소통의 기회와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보여집니다.

경계인이라는 정체성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관용'(Tolerance)일 것입니다. 경계인의 층이 아주 얇을 때에는 이 길이 곧 십자가의 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양쪽으로부터의 비난과 공격을 묵묵히 감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인의 층이 합리적인 소통과 연대를 통하여 더욱 두터워진다면, 이는 바로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바로 이 경계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이 곧 예수의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서에서도 화평케 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경계인이라는 사명감 아래에서 대립적인 양 진영을 합리적인 중도의 자리로 모을 수 있는 소통과 연대의 '언어'를 새롭게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기계적인 중립노선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3의 대안을 지향하는 변혁적인 중도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박순경 교수님이 일찍이 제시한 바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사회를 지향하는 모델과도 깊은 관련성을 가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소통의 언어는 바로 어떤 이념적인 잣대나 진영논리를 갖다 댐으로써 서로에게 상처만 안겨다 주는 소모적인 수준을 극복해야 할 것이며 대안 없는 공상의 수준을 벗어나서 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방향을 지향해야 함과 동시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내가 대접받으려는 만큼 상대를 대접하려고 노력하는 원칙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소통과 연대의 과정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경계인의 층이 더욱 두터워짐과 동시에 오늘 한반도의 현실 안에서 화해의 길을 지향하는 경계인들이 더욱 많아질 때에 한반도의 통일과 번영을 향한 희망도 그만큼 커진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바로 이러한 꿈을 함께 품는 일을 시작으로 우리의 모임도 한층 더 성숙해지고 연대의 폭을 넓혀가게 되길 바라며 제가 늘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로써 부족한 졸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개인의 꿈(Dream)은…

함께 꿈꾸면 비전(Vision), 공동체가 꿈꾸면 운동(Movement), 백성이 꿈꾸면 역사(History)가 된다.

 

6.15유럽공동위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