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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특사, 클린턴 부부 중 한 사람이 될 것”

방미 마친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

 2009년 09월 29일

통일뉴스 (2009년 9월 25일) 김치관/박현범 기자

 

 

▲ 25일 '시민운동 방미대표단'으로 미국을 다녀온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오은진 통신원]

“결국은 (미국) 대통령 특사급이 가야지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담판을 한다고 할까, 포괄적인 어떤 이해를 공유해 문제가 풀릴 것이다.”

지난 12일부터 22일까지 ‘시민운동 방미대표단’ 일원으로 미국을 다녀온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는 “보즈워스 대사도 (북한에) 가고 케리 위원장도 갈 모양이다. 거기까지는 확실시 되는데, 사실 그 다음에 얼마나 더 적극적으로 하느냐가 문제다”며 이같이 말했다.

 

존 케리(John Kerry) 미 상원 외교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오재식 전 월드비전 회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문숙 전 교회여성연합회 총무와 함께 미국 의회에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에 참석하고 국무부 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유례없는 ‘민간외교’를 펼치고 돌아온 백낙청 공동대표는 24일 오전 9시30분부터 서울 공덕동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실에서 첫 인터뷰를 갖고 방미 결과를 상세히 밝혔다.

 

 

▲ 그는 미국은 북미대화 의지가 분명하다고 전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은진 통신원]

백낙청 대표는 “우리가 가기 바로 직전에 미국에서 양자대화 용의를 밝혔고, 그런 것이 우리가 돌아온 뒤에 구체화됐다”며 “자기들 나름으로는 ‘능동적인 외교를 이제부터 하겠다’, 양자대화는 겉으로 내놓은 명분이 어떻든 간에 꼭 6자회담 틀에 구애받지 않고 일단은 시작하겠다는 태세가 분명했다”고 미국 측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의 방북 이후 상황에 대해 “그 사람들이 예비적인 접촉을 해서 어느 정도 전망이 섰을 때 그들보다 더 급이 높은 특사가 갈 수 있을 것”이라며 대북특사로 “결국 클린턴 부부 중에 한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런 전망을 내놨다.

특히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소위 인도주의적인 미션이 아니라 대통령 특사로 갈 수 있을 것”이라며 “클린턴이 그동안에 축적된 경험이나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본 걸로 봐서 적임자”라는 기류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방미 대표단이 미측에 제기한 ‘포괄적 접근’에 대해 “북미 간에 모든 주요 관심사를 한번 털어놓고 고위급에서 대화를 해서 거기에 대해 막연하지만 원칙적인 합의에 도달하라는 얘기”라면서도 “우선 급한 것은 역시 불능화 단계까지를 완료하는 것이고 그와 더불어 북에 대한 제재가 풀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북미가 다시 대화에 나설 경우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되, ‘고위급 대화’를 통해 원칙적 합의를 마련한 뒤 북측이 1단계 폐쇄와 2단계 불능화 조치를 한꺼번에 복구하고 미측은 제재를 해제함으로써 3단계 핵폐기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지다.

그러나 “3단계가 빨리 완료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3단계가 완결되려면 평화협정 문제가 맞물려 있고, 국교정상화 문제도 맞물려 있고, 더 나아가서 한반도 통일과정의 획기적인 전진과도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3단계로 가려면 그 전에 수많은 대화가 있어야 하고 여러 해에 걸친 실무적인 세부적 검토도 있어야”하지만 “불능화가 이룩된 상태에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라며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면서 풀어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불거진 북측의 ‘우라늄 농축’ 문제에 대해 “비핵화 원칙에 합의하고 9.19공동성명을 존중한다는 것을 재확인한 다음에는 플루토늄 문제하고 우라늄 문제가 결정적으로 다를 것은 없다”며 “플루토늄은 당장 원폭을 만들 수 있는 단계고, 우라늄은 이제 농축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게 고농축인지, 또 그 이후에 무기화 단계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백낙청 공동대표는 “미국이 언제까지 한국 정부에 발목 잡혀 있을 생각은 없다”고 미국 측 기류를 전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은진 통신원]

최근 한미 양국 간에 대북정책에 있어서 손발이 맞지 않는 듯한 상황에 대해 “우리 정부는 미국하고 완전히 공조가 잘 돼서 물샐틈 없는 공조가 되고 있다고 하고, 일각에서는 미국이 바뀌는데 한국 정부가 안 따라가고 배기겠냐는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그 중간쯤인 것 같다”고 평가하고 “미국이 언제까지 한국 정부에 발목 잡혀 있을 생각은 없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변했고, 미국도 ‘맹방에 대한 성의는 그만큼 표시하면 됐다. 더 이상 발목 잡히진 않겠다’는 시점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발언이 불거진 데 대해 그는 “현실성도 없는 얘기를 해서 심지어는 미국으로부터 냉소적인 반응을 얻어내고 있으니까 참 아직까지 우리 정부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며 “철없이 굴면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이제까지 해온 것이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 약간의 유연성을 보이는 것 같지만 아직 크게 변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변화에 매우 부정적인 인사들이 정부 안에 잔뜩 포진해 있다”며 “정부에만 맡겨놔서는 이게 잘 바뀔 것 같지가 않고, 역시 우리 국민들이 나서가지고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고 견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예상과 달리 북미 관계가 악화됐던 데 대해 그는 “그동안에 일이 꼬인 것은 양쪽이 다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다”며 “캠벨 (국무부 동아태 담당)차관보가 일을 시작한 건 몇 주 되지만, 공식 취임식을 한 건 우리가 국무성을 방문하는 날이었다”고 저간의 사정을 전했다.

미국 신 행정부의 대북정책팀이 6,7개월이 지나서야 가동됐고, 그 사이에 비확산전문가들이 한반도 정책 실무를 담당해 북측의 강경한 반응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북측에서는 불만을 갖고 일종의 충격요법 같은 것을 시도”했고, 오바마 대통령 측은 ‘내가 잘 해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처음부터 골탕을 먹이려고 하나’라는 반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 6.15남측위 상임대표를 역임한 그는 6.15미국위원회의 통합분위기를 반겼다. [사진 - 통일뉴스 오은진 통신원]

그는 자신이 제안한 ‘포용정책2.0’에 대해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무관심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안 나올 것”이라며 “국가연합으로 가는 통일과정이 지금 진행 중에 있는 것이고 이것을 유지하고 촉진하는 가운데서만 북핵문제도 완전한 해결을 볼 수 있다는 게 내 주장”이라고 말했다. “핵문제 해결이라든가, 평화협정 체결 문제라든가 또 지금 진행 중인 통일과정을 촉진해서 남북연합 건설까지 가는, 이런 데 대한 더 구체적인 비전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부터 4년간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은 뒤 지금은 명예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기본적으로 6.15남측위는 6.15민족공동위로 묶여있는 것이 강점인 동시에 당국간 관계가 나빠져서 공동행사 같은 것이 어려워졌을 때는 동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라며 “그것을 우리 남측위원회 지도부나 구성원들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진단했다.

또한 “지금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6.15남측위라는 틀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며 “일상적인 사업은 진보연대는 진보연대 식으로 하고, 민화협은 민화협 식으로 하고, 종단이나 시민진영은 또 각기 그들 나름대로 하고, 그러다가 큰일이 있을 때 모여서 공동행사를 한다든가 공통된 입장을 정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LA에서 동포들을 한데 모아 강연한 그는 “(6.15)미국서부위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 다시 통합이 됐다”며 “이번에 LA에서 교포강연회 할 때도 사회와 진행, 마무리 인사 이런 역할을 양쪽에서 골고루 나눠 맡아서 아주 화기애애하게 진행했다”고 전하고 “내용상으로 아직까지 화학적 결합까지 갔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어쨌든 물리적으로 결합이 됐다”는 것.

또한 “(미국)동부 쪽은 아직 통합이 안 됐지만, 10월초에 미국위원회 전체회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까지 마무리짓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그는 “북미관계가 풀려갈수록 재미 한인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한국의 통일운동이나 평화운동을 그런 식으로 지원하는 데 그치지 말고 미주 한인사회가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소수민족 집단으로 성장하면서 미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고 미국 정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된다”고 말했다.

 

 

▲ '민간외교'를 표방한 '시민운동 방미대표단'의 이번 방미활동에 대해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한 백낙청 공동대표. [사진 - 통일뉴스 오은진 통신원]

이번 ‘시민운동 방미대표단’ 활동의 성과에 대해 그는 “시민사회가 국제활동도 독자적으로 하는 길을 텄다는 것과 미국 측의 의회나 국무부 또는 워싱턴의 싱크탱크 등의 중요인사들과 대화의 길이 트였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성과”라며 “우리와 생각이 많이 다른 외국의 전문가들, 이런 사람들과 토론하고 대화하는 어법이나 화법을 배우는 기회가 됐다”고 평했다.

지난 9월 7일 출범한 ‘한반도평화포럼’에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아 ‘한반도평화’를 위해 앞장에서 뛰고 있는 백낙청 대표는 남북문제와 북미문제 등에 두루 막힘없이 뚜렷한 주견을 제시했으며, 특유의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 인터뷰 전문>

“시민사회 독자적 대표단 간 건 처음”

□ 통일뉴스 : 굉장히 드문 경우로 보이는데, 민간외교를 표방하고 ‘시민운동 방미대표단’의 이름으로 미국을 다녀왔다. 미국 의회에서 토론회를 갖기도 했는데, 이번 방미가 어떻게 성사됐을까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성사 배경을 설명해달라.

■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 : 사실 그전에 민간사절단이란 것이 가긴 했는데, 정부에서 주선해서 정부의 외교를 뒷받침하는 성격이었다. 우리 민간사회, 시민사회의 독자적인 이니셔티브로 대표단이 간 건 처음인 것 같다.

원래 발상은 미국에 계신 이행우 선생이 지난 4월쯤 한국에 왔다가 이런 걸 한번 해보자고 나에게 제의를 했고 내가 동의했다. 미국서는 주로 이행우 선생 중심으로 계획이 짜졌고, 한국 쪽은 내가 주도한 셈이다.

실무적으로는 민화협의 이승환 집행위원장, 시민평화포럼의 김제남 운영위원장 등이 많이 도와줬다. 그리고 이번에 주된 행사가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이 초청자가 된 한반도평화포럼이었는데, 그걸 준비하는 과정이나 다른 여러 가지 워싱턴 일정을 마련하는 데는 케리 위원장실 전문위원 프랭크 자누지의 역할이 컸다.

□ 이미 보도들은 많이 됐지만, 비공개 회의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주요 일정을 짚어달라.

■ 워싱턴의 한반도평화포럼이나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 포럼은 공개행사였다. 브루킹스연구소라든가 뉴욕대학에서 학자들과의 만남, 이런 것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선 비공개지만 특별히 ‘오프 더 레코드’는 아니었다.

국무부 방문이 특이했는데, 종전처럼 국무부를 예방해 가급적 높은 사람을 만나서 사진 찍는 그런 행사보다는 한국문제를 직접 다루는 실무자들을 만나서 비공개 토론을 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 성 킴을 비롯한 실무진들과 국무부 근무시간 후인 5시반에 만나서 사진도 찍지 말고 발언내용을 공개하지도 말자는 전제하에 토론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밀담할 게 뭐가 있겠나. 그쪽은 실무자고 우리는 아무런 권한 없는 시민사회 인사들인데. 그러나 우리 쪽 얘기를 진솔하게 전달했고, 그쪽도 그쪽 입장을 밝혔고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개인으로는 워싱턴과 뉴욕 일정을 마치고 LA에서 동포강연, 간담회를 가졌다.

□ 언제 돌아왔나? 공개일정은 보도가 됐고, 비공개 회의들의 일정을 확인해달라.

■ 12일 출국해서 22일에 들어왔다. 국무부 방문은 15일이었고, 뉴욕대학 세미나는 17일이었다. 그리고 동포행사들이 있었다.

□ 가기 전에 미리 '한국시민사회 입장'을 작성해서 전달을 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미 의회나 행정부에 실제로 전달이 됐나?

■ 국무부를 찾아가서 공식적으로 전달했고, 참고자료로는 의회 측 인사 등 여러 군데 배포를 했다.

□ 미국은 로비도 활발하고 각국에서 많은 의견도 제기될 텐데. 이번 방미단의 ‘한국시민사회 입장’이 비중이 있거나 의미 있게 전달됐다고 보나?

■ 짐작하겠지만, 미국의 일반 국민들은 한국문제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연구자들이나 정책관계자, 전문가들 쪽에 이런 문서나 자료들이 전달이 돼서 축적되는 과정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약간의 보탬을 하고 왔다고 생각한다.

□ 오랜만에 미국에 간 것 아닌가?

■ 2007년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6월항쟁 20주년 기념강연을 LA에서 했다. 그때 LA만 잠시 다녀왔고 동부 쪽은 오랜만에 갔다. 요사이 미국은 별로 못 다녔다.

“양자대화, 6자틀 구애받지 않고 시작하겠다는 태세 분명”

□ 미측 주요 인사들과 실무 관계자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 미국 쪽에서는 현재의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방미단은 특히 미국 측에 '적극적 협상'과 '능동적 외교'를 주문했고, 해결법으로는 '포괄적 접근'이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강조한 것으로 안다. 만나본 주요 인사들의 반응, 관심은 어땠는지?

■ 만나본 사람들이 워낙 많고 다양하니까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우리가 처음 방문을 기획할 때는 한반도 상황이 상당히 암담했다. 그래서 반응을 못 얻더라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심정으로 기획을 했는데 다행이도 우리가 방문하기 얼마 전부터, 8월 4일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이런저런 풀리는 조짐을 많이 보였다.

우리가 가기 바로 직전에 미국에서 양자대화 용의를 밝혔고, 그런 것이 우리가 돌아온 뒤에 구체화됐다. 그래서 거기서 농담조로 "일주일만 먼저 왔다면 우리가 와서 바뀌었다고 생색을 냈을 텐데, 조금 늦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웃음)

방미는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우리가 하는 얘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의회 관계자나 국무부 사람들이 원칙적으로는 동의하는 자세였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인식의 차이도 있고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어쨌든 자기들 나름으로는 '능동적인 외교를 이제부터 하겠다', 양자대화는 겉으로 내놓은 명분이 어떻든 간에 꼭 6자회담 틀에 구애받지 않고 일단은 시작하겠다는 태세가 분명했다.

□ 국무부도 역시 그런 입장이었나?.

■ 국무부도 말로는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서 북미대화를 한다고 했지만, 처음에는 6자회담 틀 안에서만 하겠다고 했다가, 그 다음에 6자회담에 돌아오겠다는 결심만 밝히면 하겠다고 했다가, 또 그 다음에는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서 하겠다고 했다.

사실 '6자회담이 죽었다', '안 하겠다'는 사람들을 상대로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려면 온갖 얘기를 다 해야 하지 않나? 그건 양자대화를 일단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사표시나 다름없고, 실제로 그런 방침은 확고한 것 같았다.

□ 궁금해지는 것 중 하나가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면서 북미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상당기간 오히려 교착 내지는 악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미국 측은 어떤 평가를 하고 있던가?

■ 한반도평화포럼에서 한 기조연설의 제목이 '한반도의 변화에도 예스를 말하자'(Say yes to change in the Korean Peninsula too) 이런 제목이었는데,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표현하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미국 가서는, 처음 우리가 구상할 때에 비해서는 미국이 전향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니까, 그런 변화에 대해서 인정하고 환영하면서 그러나 앞으로 정말 '오바마 외교'를 보여달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그동안에 일이 꼬인 것은 양쪽이 다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이 정리가 되기 전에 주로 과거의 비확산전문가들, 이런 사람들이 한반도 정책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위에서 특별한 정책적 지침이 내려오지 않는 한 과거의 타성 그대로 주로 핵문제에 집착해서 ‘어떻게든 이 문제만 풀고 넘어갈까’ 하는 태도가 강했던 것 같다.

거기에 북측에서는 불만을 갖고 일종의 충격요법 같은 것을 시도한 것 같은데, 북측은 체제의 성격상 '최고지도자가 바뀌면 당장에 바뀐다'는 기대가 좀 지나치게 강하지 않았나 싶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상원의 승인을 받아서 일을 시작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쯤 되니까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고 반년 동안 실무사령탑이 없었다는 얘기다. 보즈워스 대사가 있지만, 그는 파트타임이다. 그리고 사실은 캠벨 차관보가 일을 시작한 건 몇 주 되지만, 공식 취임식을 한 건 우리가 국무성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이렇게 미국은 오바마가 취임하자마자 그날부터 그가 대북정책을 지휘하는 게 아니고, 더군다나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훨씬 다급한 이슈가 많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보좌진이 갖춰져야 돌아가기 시작하는 건데 6개월, 7개월씩 걸린다는 것을 북으로서는 실감하기 어려운 일이다. '무슨 놈의 정책을 이렇게 하나'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과도하게 압박을 했는데, 부시처럼 처음부터 북을 깨부수겠다든가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대통령이 아닐 경우에 오히려 더 반발할 소지가 있다. '내가 잘 해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처음부터 골탕을 먹이려고 하나' 하는 반발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거의 다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대북특사, 결국 클린턴 부부 중에 한 사람이 될 것”

□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결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접한 소식은 없나?

■ 구체적인 얘기는 못 들었다.

□ 오바마 정부가 앞으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은 것 같고 구체적 일정을 펼쳐 갈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느 정도의 내용까지를 구상하고 움직이려고 하는지가 궁금하다. 특히 보즈워스 특별대표가 방북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데 실제 분위기는 어떻게 느꼈나?

■ 구체적 일정은 우리가 알 수가 없고, 보즈워스 대사도 가고 케리 위원장도 갈 모양이다. 거기까지는 확실시되는데, 사실 그 다음에 얼마나 더 적극적으로 하느냐가 문제다.

결국은 대통령 특사급이 가야지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담판을 한다고 할까, 포괄적인 어떤 이해를 공유해 문제가 풀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많이 만났다. 물론 국무부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안 한다. 책임있는 관료들이니까 함부로 말을 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또는 상원 등 의회 주변에서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과연 거기까지 갈지, 또 언제 거기까지 갈는지는 나로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

□ 케리 위원장은 상당히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 알고 있다. 보즈워스 특별대표나 케리 위원장은 특사자격은 아니라고 보나?

■ 보즈워스는 대사니까 특사는 아니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서 중대한 결정을 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케리 위원장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특별히 마음먹고 그에게 권한을 위임하면 그럴 수 있는 급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아마 정부 인사보다는 의회 인사로서 방문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 두 인사의 방북일정 이후에 뭔가 좀 더 깊이 나아가기 위한 특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그렇다. 그 사람들이 예비적인 접촉을 해서 어느 정도 전망이 섰을 때 그들보다 더 급이 높은 특사가 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클린턴 부부 중에 한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힐러리 국무장관이 가거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소위 인도주의적인 미션이 아니라 대통령 특사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 얘기는, 클린턴이 그동안에 축적된 경험이나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본 걸로 봐서 적임자라고 하기도 하던데, 어떻게 될지 물론 내가 알 수는 없다.

□ 방미단이 한미동맹에 관해서 ‘포괄적 호혜적 동맹 재구축’과 ‘미래지향적 동맹’ 이런 의제를 던진 것으로 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미국측 인사들의 인식은 어땠나?

■ 방미단의 입장을 전달하면서 그런 표현을 집어넣은 것은 이제까지 한미관계가 특별히 호혜적이지도 못하고 포괄적이라기보다는 군사동맹 위주로 가 있다는 상당히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담은 이야기였다. 또 지난 6월의 한미 정상회담이 한미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군사동맹 위주로 되돌아가는 면모를 보여줬다는 비판의식이 있어, 그런 표현을 문서에 담기도 했다

그런데 그쪽에서 나중에 문서를 자세히 검토하는 사람들은 그 점이 눈에 띄겠지만, 이야기는 거기까지 안 갔고 당장에 북미교섭 문제라든가, 특히 북핵문제, 더러는 북한인권문제를 얘기했다. 그래서 한미동맹 문제에 대해서는 깊은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핵문제 해결에만 집착해서는 북미관계가 해결이 안 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라든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처럼 큰 틀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는 많이 했으니까, 한미동맹이 그런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 보즈워스 대표의 경우 방북을 하겠다고 이미 발표한 셈인데. 미묘한 게 있는 것 같다. 이르면 9월말, 10월초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 고위당국자는 최근 10월말, 11월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상당히 엇갈린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시기에 대해서는 내가 전혀 예측할 능력이 없다. 다만 우리 정부는 되도록 늦게 갔으면 할 것이고, 미국 측은 한국하고 가급적 보조를 맞추려고 이제까지 노력해 왔는데, 이제 할 만큼은 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맹방에 대한 성의는 그만큼 표시하면 됐다”

□ 미국 국무부나 정부측 인사들도 그런 분위기가 있던가?

■ 국무부와 주고받은 얘기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자세한 것은 말할 수가 없다. 전반적으로 미국 측에서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맹방을 따돌리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모양새를 피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미국하고 완전히 공조가 잘 돼서 물샐틈 없는 공조가 되고 있다고 하고, 일각에서는 미국이 바뀌는데 한국 정부가 안 따라가고 배기겠냐는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그 중간쯤인 것 같다.

미국이 언제까지 한국 정부에 발목 잡혀 있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외교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면서 집권한 사람이기 때문에 설혹 우방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에도 우방을 외면하고 '자기 혼자서 앞서서 막나갔다'는 소리는 안 들으려고 그동안 많이 애썼던 것 같다.

그러나 변화가 있다면 한국과 일본이 손을 맞잡고 미국을 자기들 나름대로 견제.견인해 왔는데, 그 사이에 일본이 변했다. 미국도 ‘맹방에 대한 성의는 그만큼 표시하면 됐다. 더 이상 발목 잡히진 않겠다’는 시점까지는 오지 않았나 본다.

□ 우리 정부가 방미단 활동을 뒤늦게 알고서 발칵 뒤집혔다는 후문도 있다. 이번 방미에 대해 정부의 협조나 반응이 있었는지, 특히 현지 대사관의 협조는 있었나? 그리고 다녀온 결과에 대해서 정부 측과 어떻게 공유를 할 계획인가?

■ 다녀온 결과에 대해서는 정부 측에서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공유할 용의가 있는데, 가기 전이나 다녀온 후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고 또, 우리 쪽에서 먼저 연락하지도 않았다.

내가 첫머리에서 얘기했듯이 이번 방미의 특징은 과거처럼 정부가 주선해서 보내는 방미사절단이 아니고 시민사회 독자적 결정으로 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굳이 정부에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워싱턴에 있는 동안 한덕수 대사가 대표단을 오찬에 초청해줘서 점심을 함께 했다.

만약에 뒤늦게 알고 소란스러워졌다는 게 사실이라면 평소에 시민사회 움직임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고 살았다는 얘기가 아니겠나.

□ 큰 틀에서 이번 방미단 활동에 대한 의미와 성과, 또 직접 느낀 과제나 한계가 있다면?

■ 우선 이게 전에 없던 일이다. 이런 일을 한 번 함으로써 앞으로 시민사회가 국제활동도 독자적으로 하는 길을 텄다는 것과 미국 측의 의회나 국무부 또는 워싱턴의 싱크탱크 등의 중요인사들과 대화의 길이 트였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성과라고 본다.

또 우리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공부가 됐다. 안 하던 일을 해보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이 아니고, 늘 우리끼리만 대화하고 토론하던 국한을 넘어서서 외국 사람들, 때로는 우리와 생각이 많이 다른 외국의 전문가들, 이런 사람들과 토론하고 대화하는 어법이나 화법을 배우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 이번에 통역을 사용했나?

■ 통역사용을 안 하는 것을 전제로 대표단을 구성했다.

□ 실무진도 동행했나?

■ 이쪽에서 실무진은 가지 않고 우리 네 사람만 갔다. 물론 현지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실무급에서는 워싱턴에 이재수 국장이 있었고, 마침 도미 연수중인 김창수 씨도 심부름을 많이 했다.

□ 다른 나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는데,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아무래도 접근법이나 문제의식이 달랐을 것 같다.

■ 많이 다르다. 능동적인 외교를 하려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그동안에 잘 안 되던 것을 이제 미국이 큰마음 먹고 풀어보겠다'는 쪽이지 잘 안된 데 대한 미국의 책임이라든가 이런 인식은 별로 없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어쩌다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북한과 미국이 오랜 대립관계에 있지 않았나. 수십 년의 역사가 쌓였기 때문에 한 쪽이 하는 행동이 다른 쪽에서 볼 때는 늘 도발이고 그런 것 아닌가. 누가 먼저 도발했냐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 있다.

사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보면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이 더 잘못한 게 많다고 생각하는데 미국 사람들은 그런 인식은 없고, 그런 얘기를 하면 대화가 잘 안 될 수가 있다. 정면으로 얘기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구사할 필요도 있었다.

어쨌든 북이 한 모든 행동은 도발이고, 자기들은 꾹 참고 있다가 '이제는 그래도 풀어보기로 했다'는 자세가 강하다. 이에 대해 학자로서 학문적 토론을 할 경우에는 까놓고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민간외교를 하는 상황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어떨 때는 하고, 이런 간을 맞추는 것도 우리로서는 하나의 훈련이라고 본다.

“통일문제에 무관심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안 나올 것”

□ 이번 방미단 활동에서의 문제점이나 과제가 있다면? 앞으로를 위해 참조할 만한 평가가 있다면?

■ 우리 이야기가 저쪽에 잘 안 먹히는 게 미국 사람의 인식부족이라든가, 그들 특유의 오만한 전제 이런 것들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끼리 얘기하는 데만 너무 익숙해져서 남이 들을 때 어떻게 들리는가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논의하는 훈련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는 이런 접촉을 자주하면서 현장에서 배워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과제라고 하면,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을 우리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 강조한 것 중 하나는 핵문제에만 집중해서는 핵문제도 안 풀릴 것이고, 평화협정이나 북미 간 국교정상화 이런 게 다 따라와야 된다고 주장했다.

거기에 덧붙여서 한 가지 더 얘기한 것은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무관심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안 나올 것이라는 거다. 왜냐면, 북이 표면상으로는 요구하는 것이 군사적인 안전보장 그리고 관계정상화,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경제지원이지만, 사실은 통일과정이 어떻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북의 체제가 생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게 밑에 깔려 있는 관심사다.

이것을 나 몰라라 하고 그냥 '안 쳐들어가겠다고 약속하면 되지 않느냐. 국교정상화 해주고 경제지원 좀 해주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할 테니 당신들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 해라'라고 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본다. 왜냐면 중국이나 베트남은 통일을 한 뒤에 비교적 안전한 처지에서 개혁.개방을 했다.

중국이 물론 대만문제가 있어서 완전통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우리 분단과는 성격이 다르다. 중국은 어떻게 보면 1949년 국공내전에 승리하면서 본토 통일을 했다. 그렇게 통일을 이룩하고 그런 뒤에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을 때 마음 놓고 개혁.개방을 할 수가 있었는데, 북의 경우는 설혹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미국과의 국교가 성립된다고 하더라도 분단은 그대로 남아있다.

남쪽이 쳐들어가서가 아니라, 남의 존재가 위협적인 상황에서 베트남이나 중국 식 개혁.개방을 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하면 경제발전에 제약이 오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당장에 통일을 할 수도 없고, 분단상태를 그대로 유지해도 안 되는데 답이 뭐냐?

사실은 답이 6.15공동선언 2항에 나와 있다. 그런데 미국 사람은 그런 게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내가 그런 얘기를 하고, 국가연합 얘기를 하면 좋은 얘기라고 하면서도, 굉장히 순진한 이상주의자 내지 낙관주의자 취급을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것 없이 뭘 해결하겠다는 사람이야말로 이상주의자고 순진한 낙관주의자라고 본다.

국가연합 건설이라는 게 간단치는 않겠지만, 국가연합으로 가는 통일과정이 지금 진행 중에 있는 것이고 이것을 유지하고 촉진하는 가운데서만 북핵문제도 완전한 해결을 볼 수 있다는 게 내 주장이다.

이번 기회에 그런 얘기를 처음 들어본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젊은 대학원생들이나 세미나 하는 데서는 "그 얘길 처음 들었는데 참 그렇겠다"고 공감한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 학생일수록 그런 것을 잘 받아들인다.

대개 통일이라고 표현하면 그런 과정이 아니라 일회적으로 완성되는 통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도대체 가능한 일이냐"하는 물음이 있다. 정당한 물음이다. 또 하나는 "그거야 한국인의 문제지 미국이 알 바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데 그것도 정당한 지적이다. 통일은 기본적으로 남북이 그야말로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일시에 완성되는 통일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대신에 전혀 다른 성격의 통일과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인이나 한반도 주민에게만 절실한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미국이나 6자회담 다른 당사국들에도 아주 절실한 문제라는 것을 계속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우리들 스스로가 통일 개념에 대한 정리를 해야 한다.

□ 일부에서는 시민운동 진영에서 가장 대표적인 백낙청, 박원순 선생이 시민운동의 본령을 젖혀두고 미국에 가서 쉽게 말해 ‘언론 플레이’를 해가면서 한반도 문제를 거론하는데 대해 "저게 뭐냐"고 갸우뚱하는 기류도 있다.

■ 정부하고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는 미국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면서 온갖 분야 사람들하고 만나는 이가 부지기수인데 우리라고 한국 안에만 처박혀 있으란 법이 어디 있나? 더구나 지금은 세계화 시대 아닌가? 국내활동과 국외활동 사이에 엄격한 벽이라는 게 없어지고 있는 시대다. 거기에 부응해서 시민사회가 대외활동을 한다는 걸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언론플레이는 우리가 이번에 별로 안 했다. '로우 프로파일'(low profile)로 움직였다. 특파원 간담회도 했지만, 기자들이 쓰기 좋은 기사거리를 일부러 마련해서 부각시키지 않았다. 기자들하고는 상당히 깊이있는 논의를 했는데, 해설기사를 쓰려는 기자들에게는 도움이 됐겠지만 '스트레이트 뉴스'로는 '꺼리'가 없는 회견이었다. 그래서 별로 기사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플레이를 특별히 했다는 비판은 맞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의 본령이 국내활동에 있다는 말은 맞다. 국내에서 원래 하던 국내개혁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문제를 제대로 풀고 심지어 북미대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국내사업을 제대로 잘 해서 우리 정부가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하는 것, 이게 결정적인 것 같다.

부시 정부 초기 6년 동안은 미국과 북측의 대립이 한반도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됐다. 물론 최근에도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 북미관계가 삐걱거리는 것이 크게 장애가 됐지만, 기본적으로는 부시 행정부 마지막 2년 이래로 미국이 입장을 바꿨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제 남아있는 변수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한국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이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이제까지 해온 것이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 약간의 유연성을 보이는 것 같지만 아직 크게 변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변화에 매우 부정적인 인사들이 정부 안에 잔뜩 포진해 있다. 그래서 정부에만 맡겨놔서는 이게 잘 바뀔 것 같지가 않고, 역시 우리 국민들이 나서가지고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고 견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시민사회의 우리가 해야 될 주된 임무는 바로 이 땅, 이곳에 있다는 말은 맞다고 본다.

“6.15남측위 틀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
6.15미국위 10월초 전체회의 준비 중, 통합 마무리 예상


□ 그런 점에서 6.15남측위원회가 남측에서 가장 포괄적인 통일운동단체라고 볼 수 있는데, 현 정부 들어서 좀 무기력해졌다고 할까,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보일 수 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보는지?

■ 지금 내가 6.15남측위 명예대표로 있지만, 상임대표를 그만뒀으니까 개인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6.15남측위 상임대표를 하는 동안에 6.15남측위 또는 6.15민족공동위 전체의 사업이 잘 됐던 시기도 있었고 어려움에 봉착한 시기도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6.15남측위는 민족공동위로 묶여있는 것이 강점인 동시에 당국간 관계가 나빠져서 공동행사 같은 것이 어려워졌을 때는 동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을 우리 남측위원회 지도부나 구성원들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고. 6.15민족공동위의 특성상 그러하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6.15남측위라는 틀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다. 물론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이 활발하지 않을 때 이런 기회를 공부하는 시간으로 알차게 보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6.15남측위의 일상적 사업, 일상적 남측 국민들을 향한 사업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지?

■ 6.15남측위는 네 개의 큰 세력의 연합체 아닌가? 진보연대, 민화협, 7대 종단, 시민진영, 이 네 집단의 최대공약수를 찾아서 일을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것을 억지로 6.15남측위가 해야 된다고 요구하는 것은 공연한 분란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일상적인 사업은 진보연대는 진보연대 식으로 하고, 민화협은 민화협 식으로 하고, 종단이나 시민진영은 또 각기 그들 나름대로 하고, 그러다가 큰일이 있을 때 모여서 공동행사를 한다든가 공통된 입장을 정리하고, 또 행사를 안 하더라도 서로 의견을 교환해서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

□ 이번 방미 기간에 6.15미국서부위원회 초청으로 강연을 했는데, 직접 가서 보았던 6.15미국위원회 쪽 상황도 전해 달라.

■ 알다시피 미국서부위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 다시 통합이 됐다. 그래서 이번에 LA에서 교포강연회 할 때도 사회와 진행, 마무리 인사 이런 역할을 양쪽에서 골고루 나눠 맡아서 아주 화기애애하게 진행했다.

내용상으로 아직까지 화학적 결합까지 갔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어쨌든 물리적으로 결합이 됐다. 그리고 이번 행사 같은 것을 같이 거듭할수록 더 융합이 돼 갈 것이다.

동부 쪽은 아직 통합이 안 됐지만, 10월초에 미국위원회 전체회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까지 마무리짓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내가 상임대표로 있을 때 6.15해외측위가 분열돼 있는 것이 굉장히 부담이었고, 또 해외측 분열에는 미국에서 벌어진 사태가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게 해결된다는 게 좋은 일 같다.

그리고 단순히 기계적으로 결합한 것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미국위원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 것 같다. 북미관계가 풀려갈수록 재미 한인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방미단의 방문만 하더라도 사실 그쪽 재미동포들이 나서서 알선해주고 준비 안 해줬으면 우리가 그럴 실력이 없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예지만, 한국의 통일운동이나 평화운동을 그런 식으로 지원하는 데 그치지 말고 미주 한인사회가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소수민족 집단으로 성장하면서 미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고 미국 정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과정에서 한반도 통일을 우리가 종전의 어떤 고정관념으로 생각하지 말고 6.15공동선언 제2항에 나와 있는 그런 통일과정으로 파악한다면 이것은 통일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소수인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동북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데도 중요한 사안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미주동포가 '현지에서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면서 고국의 동포들과 연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퍼져가는 것 같다. 이런 인식을 공유할수록 6.15미국위원회도 더 활발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인식을 해외측의 다른 지역에서도 공유하게 되기를 바란다.

북미 정상급의 포괄적 합의 필요

□ 막상 한국에 돌아오면 현 정부의 태도가 중요한데, 케리 위원장 발제문에 보면 한국이 '핵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지당한 말씀’이 있다. 현 정부가 실제로 그러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는 것 같고,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 제안을 내놓기도 했는데, 우리 정부에게 촉구하고 싶거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핵심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말을 우리가 잘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동맹국에 대한 대접으로 하는 말이고, 또 하나는 당연히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한국이 가장 직접적 당사자의 하나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되는데, 그것을 못하면 미국이나 다른 데서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뜻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모르고 '아 한국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라고 했으니까, 우리 소신대로 미국이 무슨 적화통일의 위험도 모르고 너무 나가는 것을 우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서 막아보겠다'든가, ‘핵문제 완전해결과 동시에 원조도 하고 국교정상화도 하는 그랜드 바겐을 추진하겠다'든가 이렇게 철없이 굴면 안 된다고 본다.

우리도 이번에 가서 포괄적인 접근을 요구했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북미 간에 모든 주요 관심사를 한번 털어놓고 고위급에서 대화를 해서 거기에 대해 막연하지만 원칙적인 합의에 도달하라는 얘기지, 그 해결을 한방에 한다고 생각하는 건 극히 순진한 발상이거나 아니면 착실한 진전을 방해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포괄적 접근을 하면서 진행을 가능한 일부터 차근차근 하는 선례가 이미 9.19공동성명에 나와 있지 않나. 포괄적인, 그러나 아직은 막연한 어떤 틀을 만들어서 거기에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밝혔고, 그게 2.13합의, 10.3합의를 통해서 핵문제 해결로 가고 있었다.

이것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 특히 미국이나 우리 정부 측에서도 북측이 이걸 깨고 핵무기를 만들었다고만 생각한다. 물론 북이 핵무기를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9.19공동성명의 비핵화 원칙,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2년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위배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9.19공동성명이 나오자마자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를 들고 나와서 실행을 방해한 것이 미국이었고, 10.3합의 이후에는 불능화단계 이후에 진행되어야 할 검증문제를 미리 꺼내 들어서 결국은 불능화가 중단된 데도 미국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그 무렵에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그전에 BDA 문제만 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어떻게든지 이걸 풀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는데, 사실 검증문제 같은 것은 절묘한 타협을 이룰 소지가 없지 않았다. 그전처럼 한국이 중간에서 중개자 역할을 했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는데 해결이 안 되고 결국 2차 핵실험까지 온 것 아닌가.

어쨌든 지금은 다시 시작해서 9.19공동성명의 원칙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막연하지만 포괄적인 합의를 함으로써 단계적이고 실질적인 진행이 가능해지는 또 하나의 선례가 6.15공동선언이다. 2항의 합의라는 게 굉장히 모호하다. 그렇지만 정상이 만나서 어쨌든 통일을 우리가 하기는 하는데 서두르지 않고 단계적으로 하겠다고 합의를 한 것이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온갖 좋은 구체적인 협력조치를 합의하고도 실행이 안 되던 게 6.15공동선언 이후에는 대대적으로 실행에 옮겨지게 되지 않았나.

미국과 북의 관계에서도 그런 식의 모호하지만 막연한 합의가 이루어진 가운데 다시 구체적인 실행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선 급한 것은 역시 불능화 단계까지를 완료하는 것이고 그와 더불어 북에 대한 제재가 풀려야 하는 것이고 이렇게 포괄적이면서 점진적 접근이 중요한 건데, 이걸 '그랜드 바겐'이라고 현실성도 없는 얘기를 해서 심지어는 미국으로부터 냉소적인 반응을 얻어내고 있으니까 참 아직까지 우리 정부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 논쟁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또다시 9.19공동성명과 같은 포괄적이면서도 단계적 접근에 합의해서 다시 이행해 갈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 미국 측에도 그런 정서가 많이 있더라. "이제 그 지겨운 짓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건데, 9.19공동성명이 나오기 전에 북미 간에 상당히 깊이있는 대화가 오갔지만 정상급이나 대통령 특사와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포괄적인 합의는 없었다.

이번에 우리가 능동적인 외교를 주문한 것은 그런 원칙적 합의를 전제하고 다시 구체적인 실행과정을 시작해야 된다는 거다. 지금은 제1단계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 아닌가. 이번에 그 과정을 시작하게 되면, 1단계 폐쇄는 물론이고 불능화를 완료하는 것도 질질 끌면 안 된다. 빨리 해야 된다. 빨리 그걸 해놓고 나면, 거기서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동력이 그때 생기는 거다.

그러면 처음에 이걸 가능하게 했던 막연한 포괄적인 이해나 합의를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구체화된 그림을 전제로 제3단계로 진행할 수 있게 되는데, 3단계가 빨리 완료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건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그게 해결되면 다 해결되는 것이다.

3단계가 완결되려면 평화협정 문제가 맞물려 있고, 국교정상화 문제도 맞물려 있고, 더 나아가서 한반도 통일과정의 획기적인 전진과도 맞물려 있다. 시기적으로 그 모든 것이 꼭 동시에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연합 건설에 대해서도 남북 정상 간에 어느 정도 이해, 합의가 됐을 때, 6.15공동선언 당시와 같은 좀 애매모호한 합의가 아니라 이제 그쪽으로 향해서 같이 움직이자는 의지가 확인됐을 때에 해결되는 것이다. '그랜드 바겐'이 현실성이 없다는 게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제3단계로 가려면 그 전에 수많은 대화가 있어야 하고 여러 해에 걸친 실무적인 세부적 검토도 있어야 되는데, 지금 불능화도 안 된 상태에서 "아이고 그 지겨운 걸 어떻게 견디나" 싶지만 불능화가 이룩된 상태에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면서 풀어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통일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 우라늄 문제가 새로이 제기됐는데, 미국 측 시각은 어떤가?

■ 그런 기술적인 문제까지는 논의하지 않았다. 비핵화 원칙에 합의하고 9.19공동성명을 존중한다는 것을 재확인한 다음에는 플루토늄 문제하고 우라늄 문제가 결정적으로 다를 것은 없다고 본다.

우라늄 고도농축 기술이 완성된 상태라면 검증하기도 더 어렵고, 플루토늄 문제보다 더 까다롭지만 그러나 플루토늄은 당장 원폭을 만들 수 있는 단계고, 우라늄은 이제 농축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게 고농축인지, 또 그 이후에 무기화 단계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는 상황이다.

‘포용정책2.0’, “남북연합 건설까지 구체적 비전 나와야”

□ '포용정책2.0'을 제기했고, 한반도평화포럼도 구성했는데, 향후 계획은? 특히 이번에 미국을 다녀와서 내용이 풍부해진 것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 '포용정책1.0'의 문제점은 기본적으로는 한반도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었지만 충분히 포괄적이지 못했다는 거다. 가령 6.15공동선언 제2항 문제도 ‘일단 그 정도로 합의했으니까 통일문제 가지고 싸울 필요 없이 다른 실절적인 문제에 치중하자’, 이렇게 돼서 우리 정부는 어떤 의미에서 과거의 기능주의적 접근으로 되돌아간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일부의 머릿속에는 기능주의적인 접근을 하다보면 흡수통일이 가능해지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일방적인 흡수통일은 불가능하고 발상 자체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을 우리가 새삼스럽게 다시 해야 되고, 그걸 전제로 핵문제 해결이라든가, 평화협정 체결 문제라든가 또 지금 진행 중인 통일과정을 촉진해서 남북연합 건설까지 가는, 이런 데 대한 더 구체적인 비전이 나와야 한다. 그런 것이 포함된 것을 ‘포용정책2.0’이라고 보고 있다.

또 그러려면 시민사회의 참여가 훨씬 더 확대되어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확대라는 것이 단순히 양적인 확대만이 아니고 수준 높은 참여라야 된다. 통일문제나 핵문제, 또 그와 관련된 국제적인 역할, 이런 데 대해서 우리가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개인적으로는 얻은 게 많다고 보고, 앞으로 동지들하고도 공유했으면 한다.

한반도평화포럼의 경우는 6.15남측위원회가 6.15민족공동위원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갖는 강점이 없는 대신에, 남북해외의 3자 구도에 묶여 있지 않기에 남쪽 안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그야말로 그 나름의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데 유리한 면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 면을 더 잘 활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 이홍구 전 총리가 ‘2009화해상생마당 심포지엄’ 기조발제를 통해 지난 20년간을 하나의 큰 흐름으로 묶어서 말했는데, 그런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 좋은 발제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의 통일방안이, 이미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남북연합으로 기본방향이 잡혔다. 6.15공동선언에 대해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김대중 대통령이 멋대로 하루아침에 만들어놓은 게 아니고 사실은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그동안 남북 간에 있었던 모든 합의를 ‘예외 없이’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좋았다.

다만, 나는 남북간의 모든 합의 중에서도 6.15공동선언이 갖는 독보적 위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입장에 대해 그날 어떤 토론자는 정파적인 시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홍구 전 총리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뭐가 부족했는데 6.15공동선언이 비로소 채워줬다는 말은 없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라는 건 우리 정부의 일방적 안이고, 그게 남북 간의 합의로 옮겨진 게 기본합의서인데, 그 둘을 합쳐서 보더라도 6.15공동선언과 결정적 차이는 우선 정상 간의 대면과 서명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런 점을 떠나 내용을 보아도 남북기본합의서에는 통일방안에 대한 남북 간의 합의가 없다. 그리고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는 평화공존하고 교류해서 그 다음에 남북연합으로 갔다가 거기서 완전통일로 직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북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북이 주장하는 연방제 안을 탈락시키기 위한, 그것을 안 들어주기 위한 하나의 구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기조에서는 남북 간의 합의가 불가능했다고 본다.

포용정책이라는 게 우리말로 포용정책이지만 영어로는 ‘인게이지먼트 폴리시’(engagement policy)인데, 그것은 일방적인 포용이 아니라 상호 포용하고 접촉하는 것이 돼야 한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가지고는 상호 포용은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북은 북대로 연방제를 ‘느슨한 연방제’, 그러니까 문익환 목사하고 허담의 성명에서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했다가, 그 다음에 김일성 주석이 ‘느슨한 연방제’ 얘기를 했다. 그게 6.15공동선언에 와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하는 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와야지 이른바 근본문제에 대한 대립이 해소되고 포용정책이 제대로 출범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강조를 이홍구 전 총리 같은 분이 더 해주었더라면 아주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명박 정부가 '남북 간의 모든 합의를 존중하자'는 관점에 서 있고, 시민운동은 다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이홍구 전 총리의 제안은 정부에서도 받아들일 만하고 양자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런지?

■ 나는 개인적으로 그분이 앞으로 할 역할이 많다고 기대를 갖고 있다.

□ 최근 '창작과비평'에 신라통일에 관한 논문과 베너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비판적 글이 실린 것을 봤다.

■ 민족주의에 대한 ‘창비’의 입장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민족주의를 절대시하는 것도 반대하고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반대하는 입장인데, 최근에 탈민족주의 쪽으로 학계의 유행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글을 실었다.

그런데 앤더슨을 비판한 라디카 데싸이도 소박한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사람은 아니고 민족주의가 너무 경시되는 데 대해서 반박을 한 것이다. 톰 네언이라는 스코틀랜드의 평론가랄까 학자가 있는데, 사실 톰 네언은 내가 80년대에 '민족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편집하면서, 그 논의의 종착점 비슷하게 실었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80년대 우리가 소개한 톰 네언의 지점까지 되돌려놨는데 우리는 거기서 더 나가야 한다. <끝>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