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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마당 아닌 바깥에 서서

(라인강 고성 도보여행기)                     2010.4.1.고랑

 

30년 넘도록 서로 동지요 지기로 지내는 세 쌍이 정년퇴직 후 처음으로 의기투합해서 2박3일 동안을 정치와 무관한 도보여행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라인강 서쪽에 위치한 소도시 Trechtingshausen에서 St. Goa사이에 위치한 고성들을 관람하며 걷는 약 50-60km의 거리이다.

부유한 나라 독일에서 사람들이 남들, 특히 재력이 취약한 자들에게, 자신의 재력과 위력의 오만을 그 상징물인 자동차로 거드름 스럽게 과시하는 곳이 바로 그들의 하이웨이인 Autobahn이다. 마력수가 낮은 차들이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자기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속력으로 가고 있을 때, 방해를 받았다고 여기는 마력수가 높은 큰 차 운전수들은, 상을 찌프리고 혐오의 눈총을 쏘면서, 큰 굉음을 내고 추월을 하는 일은 예사이고, 작은 차가 보다 더 느리게 가는 화물차를 추월할 경우에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쏜살처럼  바짝 닥아 와서 경적을 내지르거나,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과속으로 닥아올 때 그들이 내뿜는 매연 배출량이 더 높게 올라가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어찌 되었건 적자생존의 치열한 투쟁장이며, 큰차, 작은 차 할 것없이, 모두가  마구 내뿜는 매연으로 가득찬 이 위험한 비정의 아우토반,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현대의 필요 악인 자동차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해방 시키고, 매연과 소음과 생명의 위험이 없는 태고적인 자연 속으로 들어 가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더구나 태고적 이동수단인 도보로서 현대문명에 지치고 연약해진 몸과 마음과 정서를 새롭게 닦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오랫만의 우정을 나누려는 의도로 라인강과 그 숲을 찾게된 것이다.

 

로렐라이 언덕이 있는 강의 동쪽에서 보면 강은 대 여섯번의 굽이를 감돌며 흐른다.  굽이 안 쪽에는 서쪽에서 라인강으로 흘러 내리는 계천이나 작은 강과 계곡이 있고,  굽이 바깥 쪽 산등성 마루위에는 오랜 고성들이 마치 맹수들의 둥지처럼 얹혀져있다. 골짜기의 강변으로는 독일 전형적인 작은 집들이 줄지어서서 좁고 작은 마을을 이룬다. 집 앞의 강위에는 화물선, 관광선, 나룻배들이 분주하게 다니고, 집 뒷켠으로는 형형색색의 긴 화물열차들이 마치 꽃뱀처럼 쉴새없이 지나간다. 불행하게도 그런 집 속에서 사는 주민들은 한 평생을 밤낮주야로 기차소음을 들으며 살다가 죽어 가겠지만, 우리처럼 잠간 들리는 관광객들은, 특히 200-300m나 높은 산 등성에서 내려다 보면, 그야말로 귀엽고 앙증스러운 작은 장난감 전시장에라도 온 듯한 착각을 갖게 된다.

 

해내외 관광객이 빠짐없이 찾는 이 곳의 세계 일류 관광지는 로렐라이언덕이다. Friedrich Silcher(1789-1860)가 작곡하고  Heinrich Heine(1797-1856)가 작시한 Lorelay노래는, 특히 독일과 친한 일본관광객들이 그 바위 앞에 정지한 관람선에서 모두 기립을하고, 마치  천황 앞에라도 선듯, 엄숙한 표정으로 합창을 하기도 하고, 세계 모든 사람들의 혀에서 닳고 닳아져서, 이젠 진부한Kitsch (통속물)가  되어 버렸다. 하이네가 의도한 원래의 뜻은 맨 마지막 절에 언급했 듯, 황금색 황혼에 비친 금발의 미녀와 그녀의 금 치장물이니, 금빗이 뱃사공을 매혹시켜 물에 빠져죽게 하는 것이 아니고, 실은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 즉 일반 문학, 특히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근본 핵심중의 하나인 인간의 아름다운 시적 정감과 노래와 시였다.

옛 부터 전해내려오는 로렐라이 전설을 처음 시작화 시킨 시인은 역시 낭만주의 시인Clemens Brentano( 1778-1842)이다. 그의 로렐라이 노래는 하이네시와는 달리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극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한 비극적인 장시이다. 로렐라이의 순진무구한 미모와 마음이 마력적이어서, 자기는 원치않게도, 죄없는 젊은 청년들을 파멸로 이끌게 하는 자신의 모순, 나아가 그것이 기독교적인 범행과 죄가 되는 불행한 운명, 그리고  과거에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 연인에 대한 연민과 깊은 상처같은,  인간의 비극적인 요소들이 주 모티브를 이룬다. 추기경이 „마녀“를 종교재판으로 처형 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자기 자신도 그녀의 매력에 매혹 당한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화형시키는 대신 세 기사를 동반시켜서 수도원으로 보낸다. 수도원으로 가던 도중 그녀는 로렐라이 언덕위에 있는 그녀의 옛 사랑의 보급자리에 들렸다가, 지나가는 뱃사공을 보고는 자기 애인을 찾았노라며 강물로 뛰어든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추기경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모순을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스스로 해결하는 그녀는추기경보다도 얼마나 양심적이고 이타적인가? 호위책임을 맡은 세 기사들은 책임회피죄로 종교재판을 받고 사형이 되어야 하겠지만, 추기경에게 되돌아가 처형받기는 싫고, 그렇다고 그녀를 따라서 자살 할 수도 없고 해서,어디론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서 죽어 버린다. 후세에 뱃사공이 바위 앞에서 로렐라이 노래를 부르면,세 개의 암벽에서 „로렐라이, 로렐라이, 로렐라이“라고 세번 공명이되어 울러 퍼진다. 작가는 그래서 이 세 바위가 그 불행한 세 기사를 상징한다면서 그들을 애도한다. 하이네 시 보다도 얼마나 깊은 인간적인 미가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가?!

 

대체로 오랫 동안 뭇 대중의 입 속에서 회자되어 퇴색, 변형, 왜곡된 예술에서 벗어나서 보다 더 신선하고 새롭고 가치있는 예술을 찾는일은 학계와 예술계에 미래의 보다 더 낳은 발전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아는 불변의 진리이다. 이 진리가 비단 고매한 학계, 예술계에만 해당할가?  돈, 대중의 인기, 유행, 높은 시청율, 판매율, 조회수, 통계상의 다수와 우위 서열들을 유일한 최대 최상의 척도로 여기고 그 질적 가치를 묻지 않는 저속하고 부폐한 연예계, 흥행계, 출판계, 관광계, 인터넽 공간, 정치계등 일반사회의 모든 생활분야  문화분야는, 소수요 낯설지만,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척도라는  신선한 새 바람을 불어넣어 주는 이런 진리를 절실하고 긴급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다시 로렐라이언덕으로 되돌아 가보자. 해외의 많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던 이 언덕에 땀을 흘리며 올라오면 대부분은 큰 실망들을 한다. 그 위에서 보는 라인강의 멋진 경관을 빼놓으면, 바위위에는 로렐라이 상 하나 없고, 의미없는 국기 계양대만 우뚝 서있으며, 발아래는 위험한 바위절벽의  뒷통수만 보인다. 물론 식당과 기념품가게가 각각 하나 씩 있긴하다.

저자도 손님을 안내하러 수십 번 올라왔으나 일종의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특히 한국이나 아시아 관광객들은 그들 나라의 일반 관광지처럼 화려한 광고판,  저속한 조형물, 요란한 음악, 시끄러운 오락시설, 흥청거리는 사랍들로 붐비는 분위기를 못내 아쉬워한다. 그들은 차라리 이 곳에서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라인강변에 있는, 역시 라인강의 일류 관광지로 손 꼽히는, Rüdesheim시의 Drosselgasse(지빠귀 골목)를 선호한다. 그 곳은 좁은 골목에 술집, 선물가게, 먹거리가게, 시끄러운 음악, 그리고 사람들로 하루종일 붐비는 재미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중들에게는 지겨운 로렐라이 언덕이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진정한 관광지가 아닐가? 이 곳은 소비와 여흥문화재가 아닌 정신과 자연 문화재이기 때문에, 역사나 자연문화재를 가능한 원형에 충실하게 복구하고 관리하는 건전한 독일문화정책이 그 배경에 숨어있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않은 채, 서둘러 내려가 버린다. 관광에도 질의 차이가 있으며, 더구나 요즈음은 테마관광, 건강관광같은 건전한 대안관광이 개발되고있지 않는가?

내친 김에 관광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고  걷기 시작 하겠다.

이번 여행에는 복구한 성들의 내부와 전시 방들을 시간 상 방문은 않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관광객들은 고성에서 과거의 영주나 기사들의  침실, 가구, 무기, 고문기구, 정원, 예술품, 골동품들을 관람하게 되지만, 관광주들은 그 전시물 원형의 순수도를 자신들의 영업목적을 위해서 마음껏 왜곡 위조하면서도 원형이라고 선전하고 있고, 또한 휴가를 골치 썩히지않고  그저 편안히 즐기기만 할려는 관광객들도 대부분 비판없이 그 왜곡과 기만술에 같이 동조해서, 돈을 내어 가면서까지, 그 가짜전시품을 그대로 믿으며 관광을  즐기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이번 도보여행에서 정원과 마당과 탑만을 관광한 Burg Sooneck은 그런 거리낌이 없는 자그마한 성으로 손에 쥐고 소유하고 싶을 정도로 이쁜 성이었으며, 경관 역시도  빼어 났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첫날 길을 잘못들어 경사높은 산등성들을 진 땀을 흘리면서 두번 씩 오르 내렸다가, 옛날 숯 굽던 넓은 초원에 앉아서 싸가지고 온 점심으로 배를 채운 후, 계속 걸어서 찾아간, Bacharach(박하락흐)라는 이쁘고 작은 마을에 자리잡은, 오늘의 우리의 숙소Burg Stahleck(슈탈액 성)은 우리의 기대를 몇배 이상이나 채워준, 우리 생애에서 가장 마음에 든 숙소요 성이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숙소인 독일의 유스호텔 Jugendherberge가 바로 이 성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몇백년 닳고 닳은 바위들을 밟고 들어간 성과 성탑 안에는 수십개의 조그마한 방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사방으로 난 조그마한 창문들은 라인강, 포도밭, 성의 연못과 다리같은 꿈에서나 볼 아름다운 정경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들은 몇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마치 이 성에서 살았던 성주나, 기사들이나, 공주들이 된 꿈들을 꾸면서 하루의 피곤을 잠에서 풀었다.

 

그러나 자기 전 우리들은 이 지역( terroir)출산의 아주 좋은 Riesling포도주를 즐기면서 브렌타노와 하이네의 로렐라이노래들 뿐만 아니라, 하이네의 미완성 소설인 Der Rabbi von Bacharach(박하락흐의 랍비)이야기도 들었다. 내용은 몇 백년 전 이 박하락흐 마을 유대교당의 랍비부부가 그들의 최고 축제인 유월절 예배를 하던 도중, 두 독일 괴한들이 젊은 소년의 시체를 가져와 내던지면서 유대인들이 유월절 제사를 위한 희생양으로 이 애매한 독일 소년을 칼로 찔러 그 피를 받아 먹고 하나님앞에 제사를 지냈다는 핑계를 대며, 모인 유대인들을 학살 했다는 전설을 소설화한 것이다. 랍비부부는 다행스럽게도 피신해서 작은 뗏목을 타고 밤새껏 강을 거슬러 올라가 그 당시 부터 벌써 자유무역항이요 박물도시인 프랑크푸르트시에 있는 유대인 격리 게토에 입주할 때 까지의 이야기다. 나치 때의 유대인 학살(Pogrom)은 이처럼 벌써 옛날부터 있어 왔었다.

그 소설 속에서 희생되었다는 소년의 이름은 Werner(베르너)였고, 이 지역 출신이며, 나중에 구교의 성자로 추대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그를 기념하는 반 쯤 폐허가 된 교회를 우리가 약 50m나 높은 경사진 계단을 밟고  성을 향해서 올라가던 길 목에서 관람했다. 기독교와 유대교가 공동으로 과거의 잘못을 서로 후회하고 미래를  경고하는 뜻으로 복구한 한 작은 교회이며, 40여년 전 어느 교황이 화해의 뜻을 담아서 기증한  헌증판도 벽에 걸려 있었다.

유대족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의 속박에서 해방된 이후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거쳐서 근세에 이르기 까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각 유럽 나라들에 산재해서 나라없이 살아왔었다. 그래서 그들은 강한 종교심, 돈과 이자놀이, 그리고 막강한 재력때문에 생존력도 강했지만, 역시 각 지역 민족들의 시기와 증오, 보복과 학살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유대인 문제는 역사적으로 오늘날 까지도 세계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서 중요한 문제가 되고있다. 저자 개인에게는 그들의 우월민족주의,현금의 이스라엘의 잔인한 반 인종적이고, 반 인간적인 팽창정책,  그리고 미국을 움직이는 세계자본주의 조종자라는 악한 이미지를 제외 하고는, 그 민족의 기구한 역사는 증오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독일과  러시아 강대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통 받았고, 더구나 이차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기에 나치에 의해 많은 희생을 당한 폴랜드나, 역시 주위 강대국들의 식민지국이 되어온 우리 한국처럼, 역사적으로 쉴새없이 주위의 강대국들에 의해서 시달림을 받던 고난과 고통의 상징민족이기 때문에 ,  고난의 동지국이라는 연민과 연대의식마저 불러 일으켜 주기도 한다.

 

우리 모두들은 이 고성 속에서 옛날 이 고성의 영주, 기사, 공주들이 된 어지러운 낭만의 꿈을 꾼 후, 아침 새벽에 눈을 떠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맑은 정신이 되 돌아 오자, 우리가 꿈꾸었던  영주와 기사들의 참 존재를 냉정하게 다시 의식하게 되었다. 개중에는 현명한 영주와 기사들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그들 대부분은 남의 성과 마을을 침략, 방화 약탈을 일 삼았고, 생포한 적들을 성의 탑 속에 가두어 모진 고문도 했으며, 강 한가운데 서있는 삼각주 위의 Mäuseturm(쥐탑)이나 Pfalzgrafenstein(팔츠그라펜슈타인)성에 설치한 세관소에서 지나가는 뗏목 나르는 배와, 포도주나 곡식, 또는 생필품 운반선에서 엄청난 세금을 징수해서 재정을 꾸려 나갔던 잔인하고 흉악한 Raubritter(도둑기사)들이었다. 그래서 고성에서는 영주들이 자주 바뀌었었다. 근세에 와서는 불란서와 독일 프러시아 사이에 몇번의 전쟁으로 그 주인들이 여러번 서로 바뀌면서 많이 파괴되어 폐허로 남게 되었고, 쓸만 한 성은 복구를 해서 호텔, 식당, 회의장, 또는 결혼식장, 그리고 관광지로 탈바꿈을 한 것이 이 고성들의 어제와 오늘의 역사다.

아침식사 후에는 오늘의 장거리 도보여행을 위한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을 했다. 날씨는 해가 난 쾌적한 날씨였다.주로 어둡고 변화없는 숲길이 어저께의 도보길이었다면, 오늘은 포도밭과 초원과 경작지들을 옆에 끼고 걸어가는 밝고 쾌적한  도보길이다. 정남향을 하고 가파르게 서있는 언덕에는 어저께 우리가 마신 포도주를 생산한 포도밭도 있었다.

포도주의 질은 대개 포도가 자라는 땅의 질과, 위치, 햇볕, 그리고 재배자(양조자)의 기술에 달렸다. 특히 독일 백포도주의 백미요 최고의 향을 지닌 리스링의 양조는  남향의 높은 경사지가 여분의 물을 빨리 내려 보내고, 낮에 받았던 태양열을 많이 흡수했다가, 추운 밤에도 열을 잘 보관해주는 검은 석판의 많은 함유량이 그 전제조건이다. 가파른 밭에서 분주히 손질하는 청년과 약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상기후로 불규칙하게 내리는 비때문에 골치를 썩히고 있단다.

일반적으로 독일 슈퍼마켙에 판매되는 포도주는 다량생산물이기 때문에 저렴은 하나, 질은 위조행위때문에 저조하다. 그 대신 작은 밭에서 소량으로 생산되는 포도주는 약간 고가이긴하나,  믿을 수있는 좋은 질을 소유한다. 그래서 포도주 맛을 아는 이들은 이런 작은 포도양조소를 방문하고 시음도 하면서 구입을 한다. 불란서나 독일의 악덕 포도주 상인들이 갑자기 돈을 많이 가졌으나 포도주 상식이 없는 한국시장에서 그들의 저질 포도주를 다량으로 고가에 팔아먹는 사기행각에 분노를 느낀 적이 있었다.

 

오후에는 기나긴 먼길을 걷는 동안 우리 일행 중, 잘못된 신발 때문에, 혹은 체력부진 때문에, 한 패는 기차를 타고 오늘의 숙소로 먼저 가고, 남은 한 패는 남은 구간을 계속 강행군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그 동안 걸으면서 본 라인강의 모습은 실로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검은 숲에 덮혔다가 갑자기 나타난 강은 검은 구름에서 갖 나온 해말간 햇님같이 환하게 비쳐 주었고, 언덕 뒤로 숨었다가 다시 나타난 강은 햇빛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은빛 비늘을 번쩍이는 거대한 물고기가 되어 유유히 헤엄쳐 갔었고, 어느 골짜기에서 본 강은 A자를 거꾸로 세운듯한 골짜기 속에 정지해서 담겨져있는 호수가 되기도 하고, ㄴ자의 아랫 모퉁이같은 곳에 서서 본 강은, 우측에서 흐르다가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가는 성난 바다의 파도처럼, 들리지 않은 우뢰소리를 내며, 흘러 갔으며, 어떤 언덕에서는 마치 도도히 흐르는 넓은 폭의 강이 보는 사람을 향해 세차게 밀려와서 그들을  삼켜 버릴것같은 위압감을 주기도 했다.

양 언덕 사이로 굽이치며 도도히 흐르는 강은 과연 독일인들이 즐겨 호칭하는 Vater Rhein(아버지 라인강)의 늠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렐라이전설 뿐만 아니라, 그 로렐라이 바위 밑에 숨겨져 있다해서,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Richard Wagner(1813-1883)가 오페라 극 Ring des Nibelungen (니벨룽겐의 반지)에서도 다룬, 저 유명한 니벨룽겐의 보물에 대한 전설 등, 수많은 전설을 가슴에 품었기에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꽃피게 하면서 흘렀던 독일의  위대한 아버지 강이다.

 

저녁 무렵 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어느 정자에 겨우 올라 왔을 때에, 우리 모두는 한 놀라운 정경을 눈앞에 보게 되었다. 로렐라이 바위 언덕위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고, 사진에서나 그림으로 보아온 로렐라이 언덕의 실물 전체가 바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강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온 언덕, 과연 위험한 바위 절벽들, 그 밑으로 흐르는 급살의 강물들이 손에 잡힐 듯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비록 우리는 약간은 춥고 철 이른 3월에 도보여행을 하고 있는 탓으로 사흘의 도보여행동안 여행객이나 산보자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한 여름에도 로렐라이의 참 모습을 보겠노라고 로렐라이 언덕에서 그  반대편 마을 상 고아까지 배를 타고간 후, 강변에서 부터 약 150m나 되는 가파른 산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와서 이 곳에서 로렐라이를 구경할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랴? 로렐라이 언덕에는 여전히 관광객들이 서성거리고 있지만, 이 곳에는 우리를 빼 놓고는 쥐 새끼 한 마리도 없다.  모두가 시간이 없는 글로벌 시대에 돈 보다 더 가치가 있는 사치품인 시간을  넉넉히 가진 우리같은 행복한(?) 정년 퇴직자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로렐라이를 독차지한 즐거움이었다.

가파른 길을 내려와  상 고아 마을의 강을 따라서 한참을 걸어간 후에 우리는 다시 오늘의 숙소인 유겐트헤르베르게에 도착했다. 이 집 바로 뒤켠 위에는 약 천년 전에 벌써 한 통 큰 영주가, 그 이후의 독일 성 건립의 모형이 되었던,  크고 화려하게 건립한  Rheinfels(라인펠스)성이 절반은 폐허가 된 채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부자호텔과 고급 회의장이 들어섰기 때문에 유스호텔은 그 밑의 초라한 집으로 만족해야만 된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마지막 구간을 향해서 출발했으나, 이틀동안 우리를 어여쁘게 보아준 독일의 날씨가 다시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참았던 비를 오전 내내  쉬지않고 뿌려주었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서서 박흐락흐와 상 고아 중간에 있는 Oberwese(오버베젤)이라는 동네로 비를 흠뻑 맞으며 걸어 들어 갔었다. 라인강은 뿌연 안개와 비에 쌓여서 얼굴조차 내보여 주지 않았다. 어두운 숲을 더듬고, 초원과 언덕의 질척이는 흙길과 센 바람과 싸우면서 오버베젤 가까이 가다보니 Günderode Haus(귄데로데 집)가 우리를 잠간 쉬어가라며 유혹을 한다. Karoline von Günderode(1780-1806)는 독일 낭만주의 시대에  젊은 철학자요 여류시인으로서 브렌타노, 아킴 폰 아르님, 그와 결혼한 브렌타노의 누이 베티나, 사비니등의 낭만주의 작가들과 교류를 했다. 남성이 갖는 강한 정열의 소유자로서 자신의 여성적인 제한과 속박과 늘 투쟁을 했고, 그 당시에 벌써 현대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적 역활을시도한, 독일 „낭만주의의 Sapho“란 칭호를 가졌던, 여성작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이델베르그의 언어학과 신화문학 교수였던 기혼한 Kreutzer와 이룰 수없는 사랑을 하다가 실망을 한 그녀는 Rüdesheim근처 Winkel에서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고 라인강에 몸을 내 던졌다. 그녀 문학의  중요 관심테마는 속박과 자유, 사랑과 고독과 죽음이었다. 그녀는 횔더린, 클라이스트, 바이론과 함께 19세기 초엽 유럽의 „균열 문학“(Zerrissenheitsliteratur)을 대표한 작가였었다.

19세기식 가옥문화를 재현한 채 라인강 언덕위에서 비를 맞으며 홀로 서 있는 그 집이  지나가는  여행객더러 그 집에서 잠시 쉬면서 그녀의 불운한 운명에  대해서 잠시나마  애도하고 가라는 청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쉬면서 마음 속에 우러나오는 그녀에 대한 애절한 연민의 정과 회포를 역시 그녀를 위해서 슬피울며 흐르고 있는 듯한  비와 함께 울먹이면서 같이 나눈 후, 우리는 우울한 남은 길을 끝까지 걸어서 오버베젤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어느 조그마한 시골 카페에 들러서 그동안의 피로와 추위를 오래간만에 마시는 한잔의 따끈한 차와 커피로 깨끗이 씻어 버리고 우리는 드디어 귀가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이번 도보여행을 오만과 거짓, 악과 폭력, 금전과 부패, 오염과 질식같은 온갖 현란하고 어지러운 조화들이 만발하게 피고 있는 안 마당을 벗어나서 진실과 겸손, 사랑과 존경, 자연 미, 안정과 평화, 창조와 미래가 장미 꽃처럼 맑고 밝고 아름답게 피는 안 마당 바깥에 있는 자연의 품 속에서 했었다. 그 곳에서 비로소 우리가 매일 살고있는 안 마당의 참된 모습을 더 똑똑하게,  더 정확하게 볼 수가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를 깊히 생각케하고 용기를 주는 곳이 다름 아닌 바깥인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기차에 몸을 싣기 전 마지막으로 본 라인강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낮고 육중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하는 경고의 말을 여기 전한다:

 

„나는 우선 당신들 나라에 있는 나의 4대 형제 강들에게 위로와 애도의 인사를 전하고 싶소. 당신 나라의 정신나간 정치가들처럼 내 나라의 정치가들도 200년 전에 벌써 내 몸을 파헤치고, 자르고, 곧 바르게 교정하고, 보나 둑을 쌓으면서 나를 괴롭혔었소. 그러나 100년이 지난 후에야 정신이 든 그들이 다행히도, 비싼 돈을 쓰가면서까지, 나를 다시 원상회복을 시키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오. 나는 이따금 당신 나라의 역동적이고 신축성있고 융통성있는 민족성에 감탄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신중성, 합리성, 논리성 부재에서 오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와 손해는 어떻게 처리하고  그 책임은 누가 지는지 의문이 가오.

당신 나라 현 정부가 나에게서  암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완전 착각과 오해와 무지의  짓을 했고, 오히려 어떤 딴 음험한 목적을 위해서 나를 악 이용해 먹은것이 아니라면, 당신 나라의 학자, 교수, 전문가들, 그리고 온 국민의 반 이상이 격분해서 반대하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소?

그래서 당신들은 지금도 아직 늦지는 않았기에 온 힘을 다해서 그 미친 4대강 짓을 제발 저지 하도록 노력을 해주십시요. 높고 낮은 산들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당신 나라의 오목 조목하고  귀엽고 수려한 4대강의 독특한 산하의 미는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아니오?

다시 한 번 부탁이오. 시대를 역행하면서 세계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범죄적인 4대강 사업을 제발 중단 시켜 주십시요.“

 

사흘 동안 라인강을 수십 번을 보면서 속 마음으로는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고국의 초미의 4대강 걱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차에  라인강의 고마운 경고는 그동안 억제하고 억눌렀던 정치 이야기가 다시 우리의 뇌를 아프게 눌러 주었다. 이 삼일 동안 잠시 잊고 지냈던 침묵에 자괴심마저 불러 일으키게 해주었다. 그 며칠 사이에 바깥에서 산다는 심오하고 귀한 의미를 인식한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몸을 새삼스레 도사리고 4대강 저지운동에 우리의 조그마한 힘을 더욱 모아야 하겠다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한 채 아버지 라인강에게 작별을 고하고 지옥같은 그 안 마당으로 다시 되 돌아왔다

2010.4.1.고랑

 

산행 + 생일축하

    70. 생일을 축하합니다.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