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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연평도사건은 예고된 것!!

<분석과 전망> 화염에 휩싸인 연평도 근처, 서해에는 두 개의 해상분계선이 있다.

 2010년 11월 29일

자주민보  한성 기자  

 

▲ 북에서 정치선전물로 자주 등장하는 포스터
북미대결전에서 미국이 북을 침공하면 북은 미국본토를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설명글-자주민보)    ©자주민보

 

1. 11.23연평도사건의 본질

11.23연평도사건의 본질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북방한계선과 북이 선포한 해상 군사분계선이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이른 조건에서 급격하게 충돌해 발생한 사건이다.
현시기 한반도의 긴장상태는 북미간의 대결국면이 불러온 남북간의 긴장으로부터 발생한 현상이다.
따라서 11.23연평도사건은 1차적으로는 북미간의 대결국면으로부터 비롯된 남북간의 긴장상태가 낳은 사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북미대결의 결과인 것이다.


2. 미국의 북방한계선과 북의 해상 군사분계선

북방한계선은 미국이 1953년 8월30일 당시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을 통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다.

미국이 북방한계선을 당사자인 북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그은 것은 북미간의 정전협정과정에서 지상에서의 군사분계선(MDL)과는 달리 연해수역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실패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이 북방한계선을 그은 애초의 취지는 당시 해군력이 우위에 있던 남측이 북측을 공격하거나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반도 해역에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자는 취지였던 것이다.

북은 미국이 북방한계선을 쌍방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그은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북은 미국의 북방한계선을 불법무법의 선으로 규정하고 1992년 9월 2일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

북은 이에 앞서 1977년 7월1일에는 `200해리 경제수역'을 설정한 데 이어 한 달 뒤인 8월1일에는 "동해에서는 영해 기선으로부터 50마일을, 서해에서는 경제수역 경계선으로 한다"며 해상 군사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기도 했었다.

북은 해상분계선 선포에 이어 2000년 3월23일에는 `서해 5개섬 통항질서'를 공포, 백령도 등 서해 5개 섬을 3개 구역으로 구분하고 각 구역으로 출·입항하는 2개 수로를 지정, 모든 미군 함정과 민간선박의 통항은 1, 2수로만 이용토록 하고 통항질서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경고 없이 행동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북이 11.23연평도사건에 대해 당일 7시 언론을 통해 "남조선 괴뢰들이 거듭된 경고에도 조선 서해 연평도 일대의 우리 측 영해에 포 사격을 가하는 무모한 군사적 도발을 강행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날강도적 북방한계선을 고수해보려는 악랄한 기도의 연장"이라고 규정한 것, 그리고 "앞으로 조선 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 존재할 것"이라고 강조한데 이어 "우리 조국의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며 주저하지 않고 무자비한 군사적 대응타격을 계속 가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 것도 북이 선포설정한 해상분계선과 관련된 것이다.

지상 분계선과 달리 해상 분계선이 서로 간에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그어지게 되는 이 역사적 사실은 서해가 왜 그리도 오랫동안 북미대결전에서 긴장과 충돌의 역사를 쓰게 되는지를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서해상에 미국과 북이 설정한 각각의 해상분계선   (그래픽자료 인터넷언론사에 퍼옴)    © 자주민보


 

3.북미대결과 남북대결의 정치공학

북미대결전은 북미 간에 긴장을 기본으로 하지만 국면에 따라 일시적으로나마 화해단계로 진입하는 등 긴장과 화해를 반복해왔던 과정이었다. 북미간에 긴장과 화해가 끊임없이 반복되어왔던 이 현상은 이후로 북미대결전이 종식될 때까지 계속되게 될 것이다.

북미 간의 긴장과 화해관계는 남북 간의 긴장과 화해관계를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북미관계가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한미관계가 나라와 나라들 사이에 맺어지는 극히 정상정이고도 일반적인 관계가 아니라 특수한 관계인 데로부터 비롯된다.
이에 따라 남북 간의 긴장관계는 어떤 경우에도 북미간의 긴장관계에 조응하는 현상이다. 이는 북미간의 관계가 화해관계로 진입하게 되면 남북관계의 긴장 현상은 어떤 경우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 간에 긴장관계가 조성되었을 때 남북관계도 긴장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 특히 미국 입장에서 보면 정상적이지만 그러나 남북 간의 화해협력관계가 북미간의 화해협력관계에 조응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가 있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의 시기가 그 역사였다.

북미간에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 등 화해의 기류가 있기는 했었지만 그것은 그저 기류이고 징후로서 존재했던 것일 뿐 북미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긴장관계였다.
남북관계가 화해협력관계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남북관계의 화해와 협력을 정치철학으로 조국통일을 신념으로 갖고 있었던 김대중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였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은 남북이 화해협력의 단계로 진입해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변이었다.
그 성과는 참여정부로 그대로 계승되어 2007년 10.4남북공동성명발표로 이어지는 등 획기적으로 발전을 이루어낸다.

6.15는 조국통일의 이정표이며 그리고 10.4는 6.15의 실천강령이다.
이것들은 남북관계를 화해협력단계에서 조국통일을 준비하는 단계로까지 발전시켜 놓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두 정부에 의해 발전된 남북간의 화해협력관계는 한미관계의 현실에서 정치역학상, 북미화해단계에 조응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부터 치명적인 약점 내지는 불안정성을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미국이, 자신의 구도에 조응하지 않아 미국입장에서 보면 돌출적으로 튀어나와, 모순된 이 정치현상을 바로 잡는데는 10년이 걸려야했다.
북미긴장관계에 조응하지 않은 두 정부의 10년의 집권 기간을 두고 숭미사대주의자들은 ‘읽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심경을 정확하고 제대로 대변하는 말이다.
그 10년 동안 미국은 자신의 북미간의 긴장관계에 조응하지 않고 있는 두 정부의 대북화해정책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려는 수많은 시도를 했다.

미국이 특히 2002년 북의 고농축우라늄관련 정보를 부풀려서 공개하는 것을 통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으려했다는 것은 이의 비근한 예로 된다.
이는 최근 김대중정부에서 대북화해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프레시안과 최근에 가진 인터뷰에서 확인된 것이다.
임 전 통일부장관에 의하면 당시 미 국제안보담당 차관인 볼튼이 방한해 국방부장관 등에게 "북한이 1997년부터 추진해 온 고농축우라늄(HEU) 생산 계획이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이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장애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임 전 장관은 북의 고농축우라늄에 대한 볼튼의 정보는 첩보수준으로,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볼튼이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은 당시 활기를 띠고 있었던 남북관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그 무렵 남북 철도를 연결하기 위해 비무장지대의 지뢰를 제거하려 할 때도 미국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덧붙혔다.

미국이 두 정부가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관계로 발전시켜내려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지 하는데서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삼은 것은 군사적인 측면이었다.
정치경제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긴장과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한국민들의 반북의식을 자극하는 것으로는 군사적인 것 만큼 효과적인 것이 미국에게는 없는 것이다.

미국에게 한반도의 서해와 국군은 동전처럼 양면이되 결국엔 동전처럼 한가지이다.

서해는 군사정치적으로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은 없고 미국과 북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서해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과 북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 충돌하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언제든지 군사적으로 긴장을 발생시킬 수 있고 군사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국군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전쟁 시기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에게 그 작전권을 이양한 이래 지금까지도 국군의 통수권자인 한국대통령이 온전하게 장악하고 있는 국가체계가 아니다.

미국에 있어서 서해는 군사적으로 긴장을 조성시키거나 군사적 충돌을 발생시키는데서 필요한 조건이며 국군은 그 수단 내지는  동력으로 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화해협력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서해에서는 수많은 긴장과 충돌이 발생했다. 

최근년 서해에서 발생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일지 -

 

▲1999년 6월15일 = 북 경비정 서해 북방한계선(NLL) 월선, 연평해전 발생

▲2001년 6월24일 = 해군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월선한 북 어선에 경고사격

▲2002년 6월29일 = 북 경비정 북방한계선(NLL) 월선, 제2연평해전 발생

▲2003년 2월20일 = 북 미그29기 북방한계선(NLL) 월선

▲2004년 11월1일 = 북 경비정 3척 북방한계선(NLL) 월선, 아군 경고사격

▲2009년 9월4일 = 북 경비정 1척 백령도 동북쪽 10㎞ 북방한계선(NLL) 월선

▲2009년 11월10일 = 북 경비정 북방한계선(NL)L 월선, 대청해전 발생

▲2010년 8월9일 = 북, 백령도 북방 해상에 해안포 10여발 발사


 이는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현상으로 된다.
서해에서 있었던 수많은 군사적 충돌은 당연하게도, 당시 국군통수권자의 온전한 장악력 범위 밖에 위치한 것들이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겠만 그러나 인정을 해야되는 것이 현실이다.
조국통일운동에 나선 애국자들이 지금도 즐겨 부르는 노랫말에 ‘식민지 조국’이라는 보기에 따라서는 생뚱맞다 싶은 단어가 한미관계의 특수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 ‘버젓히’ 들어가 있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11.23연평도사건에서 북의 연평도공격에 맞선 우리의 대응이 훈련 중에 있었음에도 13분이나 걸렸다는 것 또한 이와 관련 있는 것이다.

서해에서의 긴장과 군사적 충돌은 당장에야 그 무엇보다도 이번 11.23연평도사건에서도 여실하게 확인하게 되듯이 국민들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불행과 고통 더 나아가 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여러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 국민들의 아픔을 어떻게 해서든지 없애야 된다는 문제의식은 참여정부에 이르러서야 매우 구체적인 결실의 모습을 띠고 세상에 선보여지게 된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방안이 그것이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방안은 2007년 10월 4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4남북공동성명의 5항에 적시되어있는 것이다.
그때 양 정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공동어로 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한 실무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방안이 정치적으로 갖게 되는 의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그 중에서도 그것이 서해에 두 개의 해상경계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에 기초하면서도 그 경계선들이 종국에는  없어져야하는 것들이라는 전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그렇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방안이 이처럼 현실과 미래를 동시에 포괄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북미간에 두 개의 경계선을 하나로 조정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협소함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실천적 위력을 실감케하는 적절한 예로 된다.
두개의 선을 무력화해버린 이 방안을 두고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선’을 ‘면’으로 접근한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방안은 구체적으로는 서해에서의 긴장과 충돌로 인한 전 국민적 고통과 불안을 해소해줄 수 있는 매우 실효성 있는 방안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에게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방안은 치명적이었다. 미국이 시시때때로 필요로 하는 긴장과 충돌을 원천봉쇄시키는 것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방안이었던 것이다.


▲ 2007년 10월 10.4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서해를 대결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실효성있는 남북긴장완화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설명글-자주민보)     © 자주민보


‘국민과 민족의 입장에 설 것이냐! 아니면, 미국의 입장에 설 것이냐!’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과 민족의 이러한 요구에 아랑곳 하지 않고 들어서자마자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방안이 들어있는 10.4선언을 일거에 휴지쪽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남북관계를 화해협력관계에서 대결관계로 억지로 되돌려 북미대결관계에 정확하게 조응해들어간 행위였다


4.역사는 정의의 편이다.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를 '극악한 사대매국정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세계정세를 관통하고 있는 정세분석가들이 한반도정세와 관련해서 공통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11.23연평도사건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은 조국통일의 시간표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며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세분석가들은 주관을 배제하고 과학을 지향한다.
그리고 역사는 정의롭다.

따라서 그 어느 시간 쯤에서 역사는 이명박정부를 사대매국정권이라고 불렀던 사람들 편에 다정하게 서 있게 될 것이다.

                                                         -끝-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