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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 별세

 2010년 12월 7일

2010년 12월 5일 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2001년 투병 당시 생전의 리영희 선생. [통일뉴스 자료사진]

평생 자유와 진실을 추구해온 이 시대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5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지병으로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에 입원했던 리 전 교수는 5일 오전 0시30분께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1929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태어난 리 전 교수는 경성공립공업고(현 서울공고)와 한국해양대를 졸업했다.

군 예편 후 1957년 합동통신(연합뉴스의 전신)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64년부터 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으로 일했다. 69년 베트남 전쟁 파병 비판기사를 썼다가 조선일보에서 쫓겨났고, ‘군부독재ㆍ학원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던 71년 합동통신에서 해직됐다.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던 76년과 80년에도 각각 박정희 정권과 신군부의 압력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리 전 교수는 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이사 및 논설고문을 맡았다. 방북 취재를 기획했던 89년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ㆍ기소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160일간 복역했다.

그는 근무하던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번씩 해직됐고, 모두 다섯 차례 구속됐다. 해직과 구속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2000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후 저술 활동은 자제했지만 사회참여와 진보적 발언은 계속됐다.

리 전 교수는 외신부 기자로 일하면서 얻은 폭넓은 지식과 깊은 사고를 바탕으로 한 활발한 저술을 통해 진보세력의 정신적 스승 역할을 했다. 그는 ‘실천적 지식인’, ‘사상의 은사’,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성찰의 대부’, ‘좌우를 뛰어넘는 우리의 소중한 지적 재산’, ‘비판적 계몽의 선도자’, ‘한국전쟁 후 우리 언론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 언론인’ 등으로 불리었다.


 

 

미제광란 부지기종

미제광란 부지기종
미 제국주의의 광란이 그 끝을 알 수 없고,

인류안복 즉면위난
인류의 안전과 복락이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금수강토 장변화해
삼천리 금수강산이 장차 불바다가 될 것이니,

한민고창 반미반전
한민족이여 반미반전을 소리높이 외치자!

▲ 2003년 3월 중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가까워지고 한반도 정세에 긴장이 고조되자 리영희 선생이 통일뉴스 앞으로 보낸 호소글. [통일뉴스 자료사진]

특히, 리 전 교수가 1974년 출간한 ‘전환시대의 논리’는 운동권 대학생들의 필독서이자 의식화 교재였다.

이후 그는 ‘우상과 이성’(1977), ‘8억인과의 대화’(1977), ‘베트남 전쟁’(1985), ‘역정’(1988), ‘자유인, 자유인’(1990),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동굴속의 독백’(1999), ‘반세기의 신화’(1999) 등 숱한 문제작들을 내놓았다.

이어 문학평론가 임헌영 씨가 리영희의 구술을 받아 ‘대화’(2005)를 완성했으며, 이듬해에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시작으로 아직 책으로 묶이지 않은 원고까지 망라한 ‘21세기 아침의 사색’에 이르는 12권짜리 ‘리영희 저작집’이 한길사에서 출간됐다.

리영희 교수는 투병 중이던 2001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한이 미국에 예속된 상태에서 통일은 불가능하다”, “미국식 반인간적 자본주의는 자기파멸 부를 것이다”며 미국에 대한 결기를 나타냈다.

아울러 그는 그 인터뷰에서 “내 인생 삶의 정신이 ‘심플 라이프(simple life)’야, 심플 라이프. 검소하고 단순한 생활. ‘심플 라이프 앤 하이 씽킹(simple life and high thinking)’. 물질이나 기술은 적당히 알고, 따라가려고 하면 ‘하이 씽킹’할 수 없어요. 그건 다른 분들이 하고 나는 안 해”하며, 삶의 신조로 검소한 생활(simple life)과 높은 이념적 사고(high thinking)를 든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영자씨와 아들 건일ㆍ건석 씨, 딸 미정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한편, 장례위원회는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을 공식 명칭으로 4일간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례위원회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고은 시인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고, 정ㆍ관계 인사와 언론계, 진보진영 등 각계 인사가 장례위원으로 참여한다.

영결식은 8일 오전 6시30분에 진행된다. 이어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식을 거쳐 고인의 유해는 광주 국립 5.18 민주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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