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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는 대화국면, 고립되는 MB정부

<기고> 스타인버그는 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나? - 문경환

 2011년 01월 29일

문경환  통일뉴스

 

문경환 (전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


 

 

▲ 26일 방한한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악수를 나누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26일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을 다녀갔다. 미중 정상회담에 따른 대북정책을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시종일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고 심지어 악수할 때도, 기자회견을 할 때도 시건방진 태도를 유지했다. 마치 이명박 정부를 멸시하기 위해 온 사람마냥 행동했다. <조선일보> 이하원 기자는 ‘기자수첩’에서 “남을 불쾌하게 만드는 독특한 습관”이라며 그의 결례를 비난하기까지 하였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누고 간 것일까?

중요한 이야기는 식사 중에 나온다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19일(현지시간) 미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한반도 문제였다. 톰 도닐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4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안보 및 정치현안 가운데는 북한문제가 단연 최고 의제(top topic)가 될 것”이라며 경제 분야보다 한반도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언론들도 북한문제가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왜냐면 양국 관계에서 우호 증진이야 계속 진행되고 있기에 특별히 핵심 이슈가 될 만한 게 없고, 경제 문제는 이미 작년 G20 정상회의를 통해 다툴 만큼 다퉈 협상을 해봐야 특별이 진전을 이룰 게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반도 문제는 연평도 포격 사건과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로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 19일(현지시간) 미국을 국빈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기자회견에 나란히 참석했다. [사진출처 - 백악관 홈페이지]

그런데 정작 공동성명을 보면 전체 41개 항 가운데 18번째 항목 하나만 한반도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양으로 따져도 비중이 높지는 않다. 또 해당 항목의 내용도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내용만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즈> 등 미국 언론들도 북핵 문제의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며 정상회담 성과에 부정적 반응을 내놓았다.

이는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이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거나, 구체적 합의를 했지만 대외에 공개할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가 핵심 의제였는데 여기서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 사실상 정상회담은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하는데 정상회담 후 두 정상의 표정을 보면 실패한 정상의 표정은 아니었다. 따라서 구체적 합의는 했지만 공동성명에 넣기에는 부담이 되는 그런 뭔가가 있지 않았겠는가 유추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18일 저녁 비공식 만찬을 주목해야 한다. 공식 정상회담 하루 전날 백악관 2층 ‘올드 패밀리 다이닝룸’에서 진행된 비공식 만찬에 대해 백악관은 “만찬 회담록 작성이나 대화 내용 브리핑 등은 하지 않는다”고 사전에 못을 박아두었다. 이는 여기서 공개할 수 없는 정상간의 긴밀한 이야기가 오고갈 것임을 암시한다. 이 만찬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보좌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톰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이 배석했고 후진타오 주석의 보좌로 다이빙궈 국무위원과 양제츠 외교부장이 배석했다. 경제 문제가 아닌 외교안보 문제가 이슈임을 짐작케 한다. 특히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북한에 자주 왕래한 중국 내 북한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공동성명에 담지 못한 이야기, 즉 한반도 문제는 여기서 다 논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합뉴스 1월 28일자 보도 ‘美中 정상, 비공식만찬서 北UEP 가장 많이 논의’를 봐도 확인할 수 있다.

공동성명에 담지 못할 이야기라면 둘 중 하나일 텐데 미국이 겉보기와 다르게 북한에 수세적이었거나, 중국이 겉보기와 다르게 북한을 버리고 미국 편을 들었거나다. 즉, 대국으로서 체면을 차리기 위해 공개하지 못할 입장을 누군가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 주석은 평소와 다르게 자주 웃음을 터뜨리고 농담을 주고받아 화제가 되었다. 후 주석이 정상회담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는 의미다. 정상회담 결과에 만족한다는 것은 정상회담 핵심 의제인 한반도 문제에서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며, 이는 비공식 만찬의 승자가 중국이란 추측을 불러온다.

사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일 처지가 아니었다.

북한이 핵개발하는 동안 오바마는 뭘 했나

작년 11월 초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포드대 교수가 북한을 방문하고 와서 북한의 우라늄농축시설에 대한 발언을 하여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11월 20일자 <뉴욕타임즈> 보도 “북한이 새로운 핵시설을 공개하다(North Koreans Unveil New Plant for Nuclear Use)”에 따르면 헤커 교수는 북한의 우라늄농축시설 제어실을 두고 초현대적 제어실(ultra-modern control room)이라고 표현했으며, 원심분리기의 정교함에 놀라 정신을 잃을 정도(stunned : <뉴욕타임즈>는 이 단어에 따옴표를 붙여 강조했다)였다고 하였다. 북한의 우라늄농축기술이 상상을 초월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이 아직 우라늄농축시설을 다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북한이 국가기밀이나 다름없는 기술을 한꺼번에 다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시설은 조금씩 순차적으로 보여줘야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하는 동안 북한의 핵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북한이 핵개발하는 동안 오바마는 뭘 했나” 하는 비난이 쏟아질 법 하다. 실제로 북한이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한 후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앞으로 북한이 생각나면 한 번씩 그간 진전된 핵시설을 공개할 텐데 오바마 정부가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북한의 뒤를 이어 이란이, 그리고 다른 제3세계 반미국가들이 핵개발 도미노를 즐긴다면 미국의 핵독점 전략은 파산선고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그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을 어떻게든 제어해야 한다. 그런데 경제적 압박은 별 소용이 없었다. 헤커 교수는 방북 보고서를 통해 “(그 동안의 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평양의 경제적 상황은 오히려 개선된 것으로 확인”되었다며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 강화도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최근 방북한 미국 인사들도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군사적 압박 역시 부작용을 불러왔다. 작년 한 해 내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통해 북한을 압박했지만 돌아온 건 연평도를 겨냥한 포탄이었다. 북한은 연평도 포격을 통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미국은 전면전을 피하고 싶다. 전면전의 피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6월 <시사in> 기사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해봤더니…하루만에 240만명 사상’에 따르면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북미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 150만 명이 사상하며 1주일 내에 남북한과 미국의 군인 최소 100만 명 사망, 남한 민간인 500만 명 사상, 1000억 달러 손실과 3000억 달러 피해 복구 비용 예상 등 어마어마한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또한 10년이 지난 2004년 합동참모본부가 실시한 ‘남북군사력 평가 연구’에 따르면 피해 규모가 1.5배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그 1년 전인 2003년에 미국이 실시한 워게임은 미국이 참패(doomed)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모두 북한의 핵공격이 없다는 가정 아래 이뤄진 결과다.

이처럼 진퇴양난의 수세에 몰린 미국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더 이상 미국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도록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상에 나서는 것뿐이다. 일단 협상장에 나간 다음 다른 대책을 찾는 게 상책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뀌는가

이에 반해 중국은 이른바 G2로 급성장한 자신의 국력에 걸맞게 미국과 대등한 높이에 올라서고 특히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데 여기에 북한이 최적의 파트너가 되고 있다. 지난 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차례 방중으로 북중 우호관계는 최상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이를 강조했다. 이런 속에서 북미 사이의 대결 역시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중국은 북한과 미국 가운데 북한의 손을 들어 승부에 쐐기를 박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중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북미 대결이 북한에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미국의 동북아 영향력이 급감할 것이라는 중국 나름의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에 중국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참석했을까? 작년 말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중국의 다이빙궈 특사가 평양을 방문했는데 여기서 북한의 입장을 전달받았을 것이다. 그는 이번 백악관 비공식 만찬에도 참석했다.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북한이 미국에 보내는 특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통해 볼 때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단 북한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여기에 덧붙여 중국은 북한의 제안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혀 미국을 압박하고 끝으로 조속히 6자회담에 나올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을 통해 미국에 보내고자 한 북한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연말 북한을 방문한 리처드슨 미 뉴멕시코주 주지사의 발언으로 유추할 수 있다. 미국 <CNN> 방송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리처드슨 주지사와 핵연료봉 해외 반출을 위한 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또 미사용 핵연료봉 판매 협상에도 동의했다. 그런데 핵연료봉 관련 협상을 주지사와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는 북한과 미국이 앞으로 이와 관련한 협상을 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리처드슨 주지사보다 먼저 방북했던 미국 사회과학원의 리언 시걸 박사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이 2000년 10월 합의한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존중하면 북한은 폐연료봉을 제3국으로 이전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고 한다. 종합하면 리처드슨이 말한 핵연료봉 반출 협상 합의 이면에는 미국의 북미 공동코뮤니케 존중 약속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번 정상회담 공동성명 18항에서 세 차례나 언급된 9.19 공동성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북미 공동코뮤니케는 한반도 평화체계 수립, 상호 존중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북한이 시종일관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한은 리언 시걸 박사, 리처드슨 주지사 등 방북한 미국 인사들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를 요구하였고 이에 대한 촉구 혹은 진일보한 제안을 중국을 통해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국도 이에 대해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뀌었다기보다 미국으로서는 당장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월 7일 <자유아시아방송>도 보도를 통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전격 공개로 이제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된 탓”에 “기존의 ‘전략적 인내’ 대신 이제는 실질적으로 이 문제를 관리해 나가야(managing problems) 할 때라는 공감대가 (미국 내에) 형성”되고 있다고 하였다.

일단 국면은 대결에서 대화로 전환되었다.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도 1월 6일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가 대화 쪽으로 전환중이라고 일제히 보도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언제든 대화국면은 대결국면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물론 지금과 같이 전쟁 위기가 고조된 속에서 다시 대결국면으로 돌아가면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미국도 함부로 나서지는 못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한반도 관련 미국 관료들이 조만간 대거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제임스 스타인버그 부장관,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 아시아국장이 물러나며 클린턴 국무장관의 자리 이동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온 이들이 물러나는 것이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이명박 정부가 좋아할 내용이었을까

이제 공은 이명박 정부에게 넘어갔다. 미국이 시종일관 남북대화 선행을 요구했듯이 이번 공동성명에도 ‘남북대화가 필수적’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미국이 남북대화 선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북미대화를 미룰 수 있는 명분이 되면서 동시에 북한의 요구에 밀려 북미대화를 하더라도 자신의 체면을 그나마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은 6자회담 전에 남북미 3자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 역시 북미 직접 대화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를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편 공동성명 중국어판을 보면 ‘매우 중요한 한 걸음(非常 重要的一步)’이라고 하여 영문판의 ‘필수적 조치(essential step)’와는 미묘하게 다른 표현을 쓰고 있다. 미국은 6자회담에 앞서 남북대화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남북대화가 선행되면 좋지만 안 돼도 6자회담은 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은 이명박 정부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북한은 연초부터 이명박 정부를 향해 쉴 새 없이 대화공세를 펼쳤고 미중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에도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했고 마침내 이명박 정부도 대화 제의를 수용하였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엉뚱하게도 정상회담 결과에 놀란 북한이 급히 대화제의를 했다는 해석을 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정반대다. 오히려 대화 제의를 계속 피해온 이명박 정부가 정상회담 이후 무슨 이유에선지 입장을 바꾼 것으로 봐야 한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정부가 가장 큰 성과라고 주장하는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공개에 우려를 표명’한 부분을 살펴보자. 보도에 따르면 애초 미국은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 부분을 ‘규탄한다’로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중국의 완강한 반대로 ‘우려를 표명(expressed concern)’하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는 공동성명 영문판의 경우고 중국어판은 아예 ‘관심을 표시(表示 關切)’했다고만 하여 중립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을 피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했는데 정작 몇 시간 뒤에 공개된 공동성명에는 ‘북한’, ‘도발’ 같은 단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겉보기와 달리 청와대가 당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 미국이 이명박 정부에게 남북대화를 요구하면서 고위급 군사회담이 합의된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명박 정부는 ‘믿을 수 없는’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남북 군사회담에 어떤 입장으로 참여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미 국무부 부장관인 스타인버그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스타인버그는 이명박 정부를 남북 대화의 자리에 떠미는 행보를 보였다.

이명박 정부는 고립을 피할 길이 있을까

보도에 따르면 26일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과 스타인버그 부장관의 회동 직후 정부 고위당국자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가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정부의 판단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직접적 전제조건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불과 12일 전인 지난 14일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해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하기 전에는 공식적인 남북대화를 재개하지 않겠다”고 한 것과 사뭇 대비된다.

아마도 미국은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천안함, 연평도 문제가 풀리지 않아도 6자회담을 재개할 것이며, 나아가 6자회담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적당히 넘어가야 할 것이라는 주문을 던진 것 아닐까? 나아가 스타인버그는 미국이 대북식량지원을 재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일단 반대했다고 하나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이 고립될 처지가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스타인버그가 왜 한국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기분 나쁜 태도를 보였는지 짐작이 간다. 일단 북한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한심했을 것이며, 또 그런 상황도 모르고 대북강경책에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에 짜증도 났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상대편에게 굴복한 조직폭력배 보스가 철모르고 복수하자는 중간보스에게 화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랄까.

사실 지금 상황은 이명박 정부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남북대화를 계속 촉구하고 있는데다 대화가 지속되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만 소외된 채 6자회담이 개최될 분위기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남북대화에 뛰어들 수도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천안함, 연평도 문제로 판을 키워놨기 때문이다. 이걸 적당히 넘어가면 정부에 대한 반발이 심각한 수준으로 쏟아질 것이다. 특히 연평도 문제는 북한이 이미 민간인 사망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재발 방지 대책을 찾는 방향으로 적당히 묻어갈 수 있지만 천안함은 적당히 넘어갈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북한이 자신들은 천안함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북한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천안함 문제를 풀 방법이 없다. 게다가 북한은 작년 11월 2일 진상공개장을 발표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을 계속 문제 삼으면 앞으로 2차, 3차 발표도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 발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북한이 추가로 반박증거들을 발표하면 이명박 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참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노릇이다.

정부가 발만 동동 구르는 지금도 북한은 조국전선을 통해 국회회담을 제안하고 있다. 국회회담은 2007년 10.4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한 것이다. 북한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통해 서해 충돌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할 것인데 이 역시 10.4선언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6.15, 10.4선언을 부정하는 조건에서 10.4선언을 하나씩 나누어 현실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전쟁의 위험은 작년에 충분히 겪었다. 이제는 평화를 위한 해법을 찾을 때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명박 정부가 반북대결정책을 버리고 6.15, 10.4선언을 존중하면 된다. 이번 남북대화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민족의 생존과 평화, 번영을 위해 마지막 기회를 소중히 다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미중 정상회담 직후 ‘중미 협력을 위한 5대 주장’을 40자로 표현하였는데 남북 사이에도 절실히 필요한 문구로 보이기에 옮겨본다.

着眼大局 立足長遠 장기적 안목으로 큰 그림을 보자
抓住機遇 開拓創新 기회를 잡고 혁신을 펼치자
加强溝通 密切磋商 소통을 강화하고 긴밀히 절충하자
加深友誼 面向未來 우의를 강화하고 미래를 향하자
相互尊重 平等相待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자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