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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북한 붕괴론은 집권세력의 영악한 계산"

"'위험한 빨갱이'→'어리석은 좌파'로 담론 진화"

 2011년 06월 05일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

 

지난 27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는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2011 한반도평화회의'가 열렸다.

광주평화재단과 한반도평화포럼, 프레시안, 광주매일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이 회의는 현재의 남북관계를 진단하고 향후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참석자들의 발표가 끝난 후 '광주의 완성은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연설을 했다.

백낙청 명예교수는 이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깔려 있는 북한 붕괴론은 북한이 붕괴한다는 믿음보다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게 자신들에게 이롭다는 계산에서 나온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백 교수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이라고 한 묶음으로 언급하는 것은 아직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는 현 정부의 프레임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백낙청 교수의 발언 전문이다. <편집자>


광주의 완성은 평화와 통일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27일 한반도평화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반도평화포럼

광주에서 한반도평화회의를 하는데 대한 감회부터 말씀드리겠다. 이런 행사는 언제 어디서 해도 좋은 일이지만,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서, 그것도 광주민중항쟁이 있었던 기간에 하게 돼서 고맙고 감격스럽다. 더욱이 이번에 5.18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직후라서 더 기쁘다.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오늘 회의와 관련된 생각을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잘못됐고, 남북관계가 파탄 지경이고, 이뤄 놓은 게 없다는데 대해서는 거의 합의가 이뤄진 것 같다. 그렇다고 잘한 게 전혀 없느냐고 물었을 때,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두 가지를 얘기했다. (쌀 지원을 차관이 아닌 무상으로 주기로 한 것과 '기다리는 전략'을 '일관되게' 견지한 것)

그 중에서 '일관성' 부분은 김 교수가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것 같은데, 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일관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까, 잘못하는 일만 쌓여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 어떤 소신을 갖고 일관되게 밀어붙인 것도 아니다. 그랬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가 대북정책이니 뭐니 참 못하지만, 완전히 바보는 아니다. 어떤 일은 참 잘한다. 자기네 개인이나 작은 집단의 잇속을 챙기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이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북한의 정세를 판단하고 어떤 주장을 할 때 한편으로는 액면 그대로 비판할 건 비판해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고지식하게 그렇게 믿고 하는 것인지를 봐야 한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붕괴론을 실제로 얼마나 믿는지 잘 모르겠다. 어떨 땐 믿는 것 같고 어떨 땐 안 믿는 것 같다. 북한 붕괴론은 북이 단기간에 무너질 것이라는 과학적인 학설만은 아니다. 안 무너지면 그만인 것이고, 하여간 북한 붕괴를 전제로 밀어 붙이는 게 이롭다는 계산도 있다고 본다. 상당히 영악한 계산이다.

과거엔 북한의 남침 위협 주장하면서 거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우리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친북좌파 빨갱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어차피 무너질 건데 화해, 교류, 지원해서 남북대결 완화함으로써 남쪽에서 자기들이 차지하고 있는 유리한 위치, 기득권을 위협한다거나 잇속 챙기는 걸 방해하려는 사람들을 친북좌파, 또 북이 곧 무너질 것도 모르는 바보 좌파라고 몰이붙이고 있다. 북한 붕괴론은 그 수단이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친북좌파' 담론이 그만큼 진화한 것이다. 과거엔 '위험한 빨갱이'라고 몰아붙였는데, 지금은 '어리석은 좌파'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 이 정부는 북한에 소위 진정성을 보이라고 한다. 북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북대화가 잘 안 된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진정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내놓는 것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다. 사과를 해야 진정성을 믿어주겠다고 한다.

정부의 이런 입장에 대해, 그렇게 하면 남북관계가 풀릴 수 없다고 지적한다거나, 진정성이란 건 만나서 확인하고 쌓는 것이지 미리 진정성을 보여 달라고 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지적하는 데에서 그친다면, 우리 정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천안함과 연평도가 똑같은 사건이냐? 천안함과 연평도를 그런 식으로 연계하는 프레임 자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나도 천안함의 진상은 모르지만, 우리가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천안함 사건에 관해 그나마 알려진 것들, 정부 발표와 그에 대해 언론과 과학계에서 제기한 의문을 찾아서 공부해야 한다. KBS <추적60분>에 나온 내용을 찾아서 공부하고, <프레시안> 같은데 들어가서 기사만 봐도 상당한 공부가 될 것이다. 내가 관여하는 창비사에서 작년에 나온 <천안함을 묻는다>나,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가 자신의 문제 제기와 경험을 수기 형식으로 쓴 <과학자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라는 책이 있다. 그런 기사나 책을 읽어 보고 나서 천안함에 대한 우리 나름의 판단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천안함-연평도 두 개를 묶어서 아무 생각 없이 얘기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한 발 더 나간다면, '천안함에 대한 충분한 증거도 없이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해서 국제사회까지 가지고 나갔으니 그건 우리가 미안하다, 그렇지만 너희들이 연평도에 포격을 한 건 사과해라' 이렇게 나가면 남북간에 얘기가 잘 풀릴 것이라고 본다.

셋째, 나에게 '5월의 완성은 평화와 통일'이라는 주제의 발언을 해 달라고 했다. 그건 맞는 말이다. '5월에서 통일로'라는 구호는 이미 1980년대 말에 나왔다.

광주민중항쟁의 의미는 단순히 전두환의 쿠데타에 항거하고 김대중 선생을 석방하라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광주항쟁을 통해 분단 정권의 군대는 우리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통일도, 광주 항쟁 당시 한때나마 이룩했던 상생의 공간이 한반도 전체에 자리 잡는, 그런 통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5월의 완성이다.

이 정부가 통일과 평화를 향해 전혀 나아가지 못하는데, 이걸 손봐줄 수 있는 사람들은 시민들밖에 없다. 5월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하는 숙제를 가진 것은 시민사회다.

여러분들이 지적했지만 한반도 정세를 좌우하는 강대국들의 힘은 크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 하나만으로 볼 때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다. 과거보다 더 많아 졌다. 미국의 힘이 점점 줄어들고, 미국과 중국이 적어도 동북아에서는 균형 상태에 있으니까 그 중간에서 우리가 잘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우리 정부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 점에 관한 한 이명박 정부도 우리에게 많은 걸 가르쳐줬다. 이명박 정부는 다른 나라들이 (한반도 문제를) 좀 잘 풀어보려고 할 때 그 발목을 잡는데 상당한 실력을 보여줬다. 이명박 대통령 개인이 유능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대한민국의 국력이 신장됐고 한반도란 공간에서만큼은 우리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역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부정적인 역할을 긍정적인 역할로 돌리는 건 누가 해야 하나? 미국이 해줄 수도 있겠지만, 미국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까지 하겠나. 중국이 해주겠나? 러시아가 해주겠나? 결국 우리 남쪽 시민들이 해야 한다.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섰던 우리 광주 시민들의 정신이 전국화해서, 다음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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