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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6.15 뉴욕지역위원회 주최로 7월 16일(토)에 개최 되었던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초청간담회>에 대한 보고 입니다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초청간담회>

1. 주제: 한반도 평화와 한국 정치

2. 일시: 2011년 7월16일(토) 저녁7시

3. 장소: 플러싱 금강산

4. 주최: 6.15 공동선언실천 뉴욕지역위원회

5. 간담회 순서: 1) 강연자소개 – 사회자(김동균 사무국장)

2) 환영인사말씀 – 김명숙 대표위원장

3) 주제강연: “한반도 평화와 한국 정치” –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4) 질의응답 및 토의

5) 마침

 

 

                   한반도 평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현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1. 지나간 역사가 주는 교훈

 

1. 지나간 역사가 주는 교훈

 

      

 

 

1) 전 세계에서 전쟁이 끝이 난 후에도 60년이 넘게 이렇게 오랫동안 전쟁상태 아래 분단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버틴 나라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이 모두 합쳐 2백만에 가까운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곳도 이 지구상에 없다. 한반도에 평화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2)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1953년 정전협정을 맺어 포성이 끝난 지 불과 7년만인 1960년 4.19혁명은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려는 청년학생들의 외침, 즉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는 새로운 역사를 여는 구호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80년 광주 5.18혁명은 민주주의를 짓밟는 국가권력에 맞서서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만들고 지키려는 시민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보여준 역사였다. 그리고 또 20년이 지난 2000년에 남북정상은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북에서는 수뇌상봉이라고 한다)을 가지고 6.15남북공동선언을 통하여 마침내 “평화적 방법과 점진적 단계”를 밟아 남북이 공동으로 함께 이루어 갈 수 있는 통일시대의 문을 연 새로운 역사였다. 이 정상회담에서는 역사에서 실종되었던 “민족”의 가치와 개념을 다시 되살려 내었다. (우리는 이 회담 이전에 있었던 문익환-김일성 1989년 회담에서 채택한 4.2공동선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당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풀어 남북유엔동시가입, 남북교차승인 그리고 남북기본합의서에 이르는 일련의 한반도문제의 해결에 기초를 놓았던 문서이다.)

 

3) 4.19 혁명으로부터 매 20년마다 중대한 역사적 변화가 일어난 바 있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한지 20년이 되는 2020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때 과연 우리는 통일시대와 평화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4) 돌이켜 볼 때 1992/2000/2007남북기본합의서, 6.15남북공동선언, 10.4남북정상선언 그리고 1994/2000 북미제네바기본합의와 북미와싱턴콤뮤니케 더 나아가 2005/2006/2007 6자회담의 9.19공동선언, 2.13합의, 그리고 10.3합의 등은 대단히 중요한 남북, 북미, 국제사회의 합의였다.

 

이러한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배경에는 북에 대한 끊임없는 군사적 위협과 정치적 경제적 제재와 압박, 북의 강경한 핵 대응(1994년 1차 핵위기, 2006년 1차핵실험 2009년 2차핵실험) 그리고 부시대통령과 이명박정권의 대북강경제재 정책과 대북불신 그리고 북한 붕괴의 “급변사태” 발생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원인이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민주정부 10년”동안에 김대중 대통령은 “민족”에 대한 열정, “평화”에 대한 신념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역사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햇볕정책”으로 일컬어지는 포용정책으로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신뢰”관계로 바꾸었고 이것은 그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한반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되돌아 갈 수 없으리라고 믿었던 역사의 큰 물결도 그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2.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그리고 국제사회의 변화

 

1) 지난3년의 변화

 

  이명박 정권은 지난 3년간 “급변사태 임박론”을 내세워 6자회담의 무용론과 남북대화 불가를 외치면서도 “비밀접촉”을 통하여 정상회담을 구걸하는 “굴욕”의 결과를 초래 하였다. 이것은 국민을 기만한 것 아닌가. 한마디로 말해서 이명박 정권의 대북 기본입장은 북한 붕괴와 이를 대비한 흡수통일의 기대에서 비롯하였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이전 부터 “북한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 “원샷 딜을 하자” “북한도 ‘재스민혁명’의 바람을 비켜갈 수 없을 것이다.” “연내에 김정일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그날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이 변화의 조짐이 있기에...” “통일은 새벽에 도둑처럼 이루어질 것...” 이것은 모두 북한경제가 화폐개혁의 실패 등으로 이미 붕괴했으며 김정일의 건강악화로 정치적 붕괴도 머지않았고 김정은의 후계 체제는 북한사회도 비판적이라는 주장 아래 북한 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북한이 무릎을 꿇고 들어오리라는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은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지난 일년동안 북중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렸다는 사실에 주목) 중국의 경제적 협력과 지원을 크게 확보하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제2차 핵실험을 비롯하여 북의 핵능력만 더욱 키워주고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말았다. (1990년대 초 미국의 정보기관도 북한이 “급격히 붕괴”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제 붕괴가 1~2년내 임박했다고 했다가 수년 내 붕괴할 것이라고 예견 했던 적이 있었고 당시 김영삼 정권은 이러한 정보를 굳게 믿고 있었던 같다.)

 

2) 한반도 주변정세 변화

 

   첫째, 천안함 사건이 몰고 온 5.24 조치로 남북관계는 완전 군사적 대결국면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남갈등을 심화시키면서 사회적 대립관계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둘째,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남북은 모두 서해에 군비강화의 경쟁에 들어갔고 무력충돌의 위험한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북한이 군사적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

   셋째, 북한은 전력생산을 위한 25메가와트급의 경수로를 자체개발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경수로의 연료공급을 위한 우라늄 저농축을 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하였다. 사실상 이것은 제네바기본합의나 6자회담의 9.19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르면 핵의 “평화적 이용”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지만, 이 시설이 우라늄 “고농축”으로 발전한다면 핵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핵위협의 확대가 될 것이다.

   넷째, 북중관계가 두만강경제협력사업, 압록강지역경제개발사업 등 경제협력사업을 강화하면서 더욱 공고한 “역사적 동반자” 관계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북중간의 무역량 증가는 괄목할 만하다.

 

          

 

    다섯째, 미국은 북한과 여러 형태의 끊임없는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 뉴욕에서의 상설적인 대화창구 운영은 물론 최근에만 해도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프리쳐드, 헤커 등과 함께 빌 리쳐드슨 주지사,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디 엘더스 그룹의 방북 그리고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 등이 방북하면서 북미대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여섯째, 성김 6자회담 미국 측 대표에 대한 주한미국대사임명과 함께 6자회담 개최에 대한 압박이 강화될 것이며 우리 정부만 반대하고 있는 양상이어서 향후 동북아에서의 외교적 입장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미국은 대북 식량지원을 한국정부의 동의 없이 진행할 태세에 있다.

    일곱째, 2012년은 동북아와 연계된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과 북한의 정치지도자를 선출하는 정치적 변화의 해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 주목되는 사항이다.

 

3) 포용정책을 둘러싼 논쟁

 

   이명박 정권은 지난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면서 포용정책이 실패라고 규정하였다. 포용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못했고,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며,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 긴장관계도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포용정책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상호주의의 원칙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북한에 “퍼주기를 하면서 끌려 다녔다”는 비판을 하였다. 그런데 보수적인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의 초기에 이러한 대북강경정책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서 평가한다면 첫째, 북한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개성공단을 함께 만들어 이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평화의 전진 기지로서 남북을 연결하면서 생산교역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2년 이래 북한도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북한의 인권문제는 북한 내부의 제도 개선 문제가 아니라, 북한사회가 개혁개방을 이룩하고 일정한 정도의 경제적 활성화(대체로 국민1인당 소득이 3천 달러가 되는 수준)가 이루어 질 때 세계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그 기준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지 북한정권에 대한 끊임없는 정치적 압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셋째, 핵문제는 돌이켜 보면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가 극심할 때 더욱 강화되거나 증대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군사적인 압박이 가중되는 한 북한의 핵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넷째,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노태우 정권 이후 남북관계에서 군사적 긴장관계는 상당히 경감되었으며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 (제1,제2 연평해전)까지도 오히려 군사적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우리가 포용정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오히려 우리 내부의 인식의 문제 에서 비롯한다. 우선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북한에 대한 불안감과 경계심이다. 적화통일이라는 북한의 “도발”에 너무나 깊은 위기감 속에 살아 온 우리는 북한과 “원만한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불신이 살아 있다. 우리의 세계적인 경제규모나 군사력의 막강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안보의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다음으로는 통일은 남북이 함께 주도적으로 이루어 가야 할 우리의 과제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끼리” 감당해 가야 한다는 점을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남북대화 에 있어서 민간의 만남에서도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을 쓰기를 꺼려해 왔었다. 오랫동안의 잠재 의식 속에서 나온 결과이었다. 더구나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상황에서 불안감을 넘어 두려움이 크다.) 더 나아가 오랫동안 미국의 군사적 지원 속에 살아 온 우리는 미국의 참여 없이 우리 독자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 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전시작전권을 지금도 미국 으로부터 되돌려 받아 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에 대하여 “압도 할만한” 군사력이 있어도 안보에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천암함 사건이나 이번 민간항공기에 대한 발포 등에서 우리는 안보의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또 하나 덧붙인다면 우리 스스로 가 지금의 상황 즉 분단 상태이지만 서로 위협을 주지 말고 “평화로운 공존”을 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현상유지의 안이한 사고가 만연하다. 분단이 해결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원칙은 언제나

훼손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버리고 산다. 결국 전체적으로 우리는 통일이나 평화에 대한 진지하고도 진정한 “마음”이 없고 북한에 대하여도 그 “마음”을 바꾸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4) 이명박 정권의 실패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실패한 것은 한반도 문제를 남북이 함께 노력하여 풀거나 동북아의 인근 관련국들과 함께 풀어가려 하지 않고 철저히 한미동맹만을 강조강화하면서 그 기반에서 접근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 가는데 북한을 고립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리고 말았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까지도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제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막아버리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국제사회와의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의 최근 강경한 대남비난공격은 과거에 볼 수 없을 만큼 도를 넘어서고 있다. 비밀회담의 녹취록까지 공개하겠다고 나오는 것은 정말 심상치 않은 징조이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3.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할까

 

1)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가는데 가장 어려운 이유는 이명박 정권이 남북정상 합의로 만든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와 10.4남북정상선언을 폐기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의 체제도 북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급변사태”가 임박했음으로 이에 대한 대처를 해야 한다는 정세인식 때문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결국 북한과 회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며 남북회담도 6자회담도 무용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천안함 사건에 대하여 북의 “형식적”인 사과라도 받아야 하겠다는 “비굴하고 치사한”자세를 보임으로써 정부가 얼마나 이중적인가를 여실히 보여 준 것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남북관계에서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2)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대화와 협상을 하여야 한다. 남북이 주도적으로 “평화 프로세스”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이것을 돕고 지원할 수 있도록 설득해 나가야 한다. 합의정신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앞서 언급한 남북, 북미간의 합의사항을 존중하고 이행하여야 한다.

 

3) 우리가 또 고려해야할 것은 국제관계가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제 G2의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였으며 이것은 앞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 가는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정세변화에 따라 더욱이 우리가 올바른 통일관을 가지고 남북문제에 접근 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부터 내걸었던 “비핵개방3천” 같은 비현실적이며 북한을 무릎 꿇게 하겠다는 것은 무모할 뿐 아니라 냉전 시대로 돌아가 대결국면을 만들어 갈 것이다. “원샷 딜”이나 “그랜드 바겐”과 같은 정책도 한반도 문제를 풀어 가는데 무모한 자기 과시에 불과하며 결실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4) 따라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북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화해와 나눔 그리고 대화”의 길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0.4정상선언의 제4항에 합의된 것을 지키기 위하여 현재의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동북아의 공동안보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평화체제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만약에 지금처럼 군사적 대결과 진정성이 없는 비밀접촉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정치적인 목적의 정책을 계속한다면 북은 제3의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5) 끝으로 독일통일의 교훈에 대하여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지난 1월 독일에서 에곤 바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참고로 인용하고자 한다.

 

“여기서 나눈 이야기 중 두 가지를 간단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에곤 바는 “독일 통일은 동독사람들이 원해서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동독인들은 시민혁명을 통해서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부를 세워 서독정부와 협상을 통해 통일에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양독은 힘을 합쳐 전승 4개국과 협상(2+4)하여 통일을 쟁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독인들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해준 것이 동방정책이었다는 것입니다. ‘화해를 통한 변화(change through rapprochement)’정책을 통해 동독에 년 평균 32억달러의 경제지원을 하고, 1년에 6-7백만명이 왕래하는 과정을 통하여 동독인의 의식이 변하고, 동독인의 마음(민심)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방정책이 동독사람들로 하여금 시민혁명을 주도하고 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게 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우리도 통일을 하려면 북한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서 북한의 주권자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지난 정부에서는 교류와 협력, 접촉 그리고 인도적 지원을 했고, 조금씩 북한 사람들의 의식 변화를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계속할 때 우리도 언젠가는 북한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통일을 이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통일비용’문제입니다. 에곤 바는 통일비용이 많이 들었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 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독일이 통일할 때 양독 군대가 70여 만 명 이었는데, 통일조약에 의하여 37만 명으로 감축했고, 지금은 25만 명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는 “국방비를 포함한 ‘분단유지 비용’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분단유지비용보다 통일비용은 적기 마련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정부산하 연구기관이 발표한 통일비용 추계에 따르면, 북한이 급격붕괴시에는 30년간 매년 720억 달러가 소요 되지만, 정상 발전시에는 1/7인 100억달러가 소요될 것이라 추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작년도 국방비가 약 280억 달라(약 30조원)임을 생각하면, “분단유지비용보다 통일비용이 적기 마련”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통일비용은 통일 후 동독사람들을 위한 사회보장비가 50%이상을 차지했는데, 이것은 통일비용으로 계산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인상에 남는 이야기기라 소개해 드렸습니다.”

 

6) 우리의 경우 통일이 되어 군비를 축소한다고 할 때 2011년 국방비 약 32조원의 3분의 1정도를 감축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을 북한의 개발에 투자한다면 연간 약10조 이상의 투입이 가능할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부터라도 국가예산의 1%를 남북교류협력기금으로 사용한다면 연간 약 3조가 되고 이 가운데 인도적지원 등의 부분을 제외하고 약 2조원 정도를 북한 경제개발에 투자할 때 10년 이내에 상당한 통일기반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고 국제개발자금을 도입하게 되면 남과 북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경제적으로 연계하는 지역경제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가상이 아니다. 10.4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 제1차 총리회담에서 구체화하였으며 남북관계발전법에 의하여 정부가 고시한 “2008~2012 남북관계발전 제1차 기본계획”에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 계획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켜가는 것만이 우리 경제를 살리고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

 

*부록

 

1. 남북대화 발전과정과 군사적 충돌

    남북의 대화는 평화를 만들고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는 남북이 주체가

    되어 이룩하여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북관계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8. 01.12.  김신조의 습격사건

  1972. 07.04.  박정희대통령의 “7.4공동성명”

  1976. 08.18.  판문점 도끼 살해사건

  1983. 10.09.  아웅산 폭탄테러사건

  1987. 11.29.  KAL858기 폭파사건

  1988. 07.07.  노태우대통령의 “7.7선언”

  1989. 04.03.  문익환-김일성 공동성명

  1991. 09.18.  남북 유엔동시가입

  1992. 01.20.  남북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1992. 02.19.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 및 3장의 부속합의서)

  1994. 06.28.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예비회담개최 (김일성 1994.7.8. 사망으로 무산)

  1999. 06.15.  제1연평해전

  2000. 06.15.  김대중-김정일 정상합의 “6.15남북공동선언”

  2002. 06.29.  제2연평해전

  2004. 06.04.  6.4남북군사합의서

  2005. 08.10.  남북해운합의서 채택

  2007. 10.04.  노무현-김정일 정상합의 “10.4남북정상선언”

                   (남북총리회담합의/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위원회 구성ㆍ운영에 관한 합의/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 구성ㆍ운영에 관한 합의/ 남북국방장관회담 합의/

                    문산-봉동간 철도화물 수송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통행ㆍ통신ㆍ통관의 군사적보장을 위한 합의)

  2008. 02.     이명박 대통령 “비핵-개방-3000”대북정책

  2009. 11.10.  대청해전

  2010. 03.     대규모 한미군사훈련(키리졸브)

  2010. 03.26.  천안함 침몰사건

  2010. 05.24.  이명박대통령 “5.24조치” 단행

  2010. 11.23.  연평도 포격사건

 

2. 미국과 북한의 관계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압박은 결국 상대를 굴복시키기 보다 더욱 강력한 반발을 가져온다.   

   상대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더욱 불행한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1992. 04.10.  북한 IAEA와 핵안전협정체결

  1993. 03.      제1차핵위기/ IAEA의 특별사찰이 문제야기

  1994. 06.16.  미국 영변핵시설 폭파계획 수립 (카터-김일성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합의)

  1994. 10.21.  제네바기본합의서 채택

  1998. 08.      뉴욕타임스가 북의 금창리 지하핵시설 보도

  1999.           페리프로세스

  2000. 10.      북미 와싱턴콤뮤니케 발표

  2002. 10.03.  제2차핵위기 (제임스켈리 방북보고서 파문/제네바기본합의무효선언/

                                       대북중유지원중단)

  2002. 12.       북한은 IAEA핵시설감시시설제거/사찰단 추방

  2003. 01.10.   북한 IAEA 탈퇴선언

  2003. 08.27.   6자회담 제1차회의 개최

  2005. 09.19.   6자회담 제4차회의에서 “9.19공동선언”채택 (동일에 미국 재무성이 북한의

                                위폐불법거래를 이유로 마카오의 BDA 북한 계좌를 전면 동결)

  2006. 10.09.   제1차 핵실험

  2007. 02.13.   6자회담 제5차회의에서 “2.13합의”채택

  2007. 10.03.   6자회담 제6차회의에서 “10.3합의”채택

  2008. 10.      북핵불능화 및 자료검증과정에서 북미단절

  2009. 04.05.  북한 위성로켓 발사

  2009. 05.25.  북한 제2차 핵실험

  2010. 01.      북한 원심분리기 시설 공개 및 경수로 자체개발 계획 발표.

 

 

 

 

                            2012년, 변화의 기회

                                                           

                                                         이재정 (국민참여당 전 대표, 현 성공회대 석좌교수)

 

 

1. 2012년의 의미

 

 1) 동북아를 둘러싼 6자의 통치권이 모두 바뀌는 해

 2) G2의 새로운 세력 대결

 3) 20대의 새로운 정치적 역할과 SNS의 새로운 시대

 4) 한반도 평화와 복지국가에 관한 정치적 과제

 

2. 2012년, 정당통합만이 길인가?

 

 1) 야권의 정당통합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참으로 어렵다. 정치적대의 이외에 주고받을 것이 없다. 민주당만이 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촛불도 5백만의 조문대열도 바꿀 수 없었던 것을 오직

  선거만이 가능하다.

 2) 진보세력은 1987년 이후 끊임없이 분화 대결의 연속

  “진보대중정당”의 구상은 단순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1987년6월 항쟁 이후 진보세력의

  대중적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며 노무현대통령이 꿈꾸었던 “진보의 미래”의 실현이 목표

 3) 과거 “DJP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의 상황을 다시 보자.

    지난 6.2지방선거의 선거연합이나 정치연합은 해법이 아니다.

 4) 야권에 정말 내 놓을 수 있는 후보가 없지 않은가?

  현재 거명되고 있는 후보로서 과연 여당 후보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역대선거를 감안한다면    

  2~5%의 근소한 차이 (2007년 대선은 예외적인 결과)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친노세력이 단합을 한다면?

 5) 총선에서 정당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차선책은?

  2012년 총선에서 정당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최소한 선거연합이라도 이루어져야   

  대선에서 후보를 단일화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

 

3. 2012년의 정치적 콘텐츠는 무엇이 될 것인가

 

 1) 정치담론은 역시 “복지국가”가 주제가 될 것이다.

    이 과제에는 청년일자리문제로부터 노인복지문제, FTA로부터 국가부채문제, 그리고   

    환경문제로부터 사회정의문제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삶과 사회 공동체”과제가 중심이 될것이다.

 2) 정치개혁의 구체적인 그림을 내세우지 못하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청년층의 지지를  

    얻어낼 수 없을 것. 정치개혁은 정당개혁과 세대교체가 그 중심이 될 것이다. (“위탄”이나

   “나가수” 또는 “슈퍼스타 K" 등은 새로운 세대의 공정한 그리고 새로운 방법을 대변하고 있는 것)

3)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하여는 이미 2차의 정상회담이 내 놓은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추진

   하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고 여기에는 북미, 북일관계 정상화와 북핵문제의 해결 그리고 

   종전과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정책으로 제시하며 “하나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계획이 있어야 할 것.

4)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구체적인 “외교적” 방안과 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 할 것.

 

4. 하나의 제언

 

  1) 여러 가지 다양한 길을 열어 놓고 논의하여야 하며, 통합 또는 단일화는 필수적인 과제라는

   인식을 공유.

2) 해외 교민들의 정치참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총선에서는

   정당에 대한 투표, 대선은 후보)

3) “사람사는 세상”이나 “진보의 미래”가 정치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를 “열린자세”로

    추구하여야 할 필요 있음.

  4) 네트워크를 보다 강화하여 이해와 피드백을 통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