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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행기

 

1) 스위스, 스위스 농부와 농가

 

이웃도시 S시에 사는 B씨가 하루는 타고가던 자전거를 갑자기 멈추고 길 가던 나에게 인사를 하며 뜬금없이 9월에 같이 스위스 여행을 하지 않겠느냐고 건의를 해왔다. 그는 키가 거의 190센티나 되는 50대 중년의 건장한 독일인이고, 그 도시 신교교회 여자목사의 남편이며, 그 교회와 교회소속의 모든 시설의 관리인이다. 아들 놈이 다니던 합기도 도장에 연수생이기도 하며,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나는 그와 그 부인, 그리고 내 아들 놈과 나이가 비슷한 그의 아들을 한번은 집으로 초대한 이후로, 나는 그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었다. 일 주일 동안 생각 끝에 둘만 가기가 멋 쩍어서 친구인 P형과 함께 셋이서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목적지는 그가 몇 십년 동안을 휴가 철마다 다니고 있다는 라우에넨(Lauenen) 이라는 스위스의 한 작은 마을이다. 베른 고원지대(Berner Oberland)의 남쪽 끝에 있고, 알프스의 높은 고산들이 바로 등 뒤에서 시작하는 곳이다.

해내외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잘 알려진, 취릭히, 제네바, 루체른,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봘리스주의 마터호른, 테신, 그라우뷘덴주의 상트 모리츠, 다보스같은 유명한 관광지역 무리에 속하지 않아서 우리를 처음엔 약간 당황 시켜 주었던 이 지역은 여행이 시작 되자마자 벌써 우리를 사람들이 흔히 갖는 스위스의 표면적이고 진부한 관광 이미지들로 부터 해방시켜 주었고, 또 숨겨진 스위스의 참 모습들도 보여주었다. 해발1500미터 높이의 분지에 놓여있고, 고속도로가 끝나서 관광객들이 많이 짓 밟지 않은 푸른 숲과 경사진 초원, 눈 덮힌 산과 호수와 폭포같은 풍성한 자연과 젖소와 농부들만이 모여사는 아늑한 고원지대의 한 한적한 작은 농촌이다. 스위스 전문가인 B씨가 유명하고 번잡한 관광지역에서 실망하고 오래 동안 수소문해서 찾아내어 자기의 평생 휴가지로 정한 이 지역은 과연 소음없고, 조용하고, 깨끗하며, 여유있고, 한가하다. 그의 덕분으로 우리들은 스위스의 숨은 자연과 스위스인들, 특히 농부들의, 일상생활과 농가를 가까이에서 피부로 느끼면서 알게 되었다.

라우에넨 마을에서 이 삼백 미터 높은 넓은 언덕위에 드문 드문 자리잡은 수 십채의 농가들 중, 숲 언저리에 약간 비켜서 서 있는 스위스의, 특히 독일어권 스위스의, 한 전형적인 나무 집이 바로 우리를 일 주일 동안 잠 재워 줄 집이다. 집 전면은 거무틱틱해서 초라하게 보였지만, 정 남향을 한 집 앞에는 해를 한 아름 가득 안고있는 벤취가 놓여있고, 창문들은 화분 꽃으로 장식되어져 있어서 오히려 다정 스러웠다. 스위스에서 오래된 집이라면 다들 일 이백 년은 되었고, 거뜬히 사 오백 년된 집들도 많이있다. 울창한 재목들을 다루는 제재소에 놓여있는 통나무의 나이 테와 집 면전에 써 놓은 격언 문구와 년도 수가 증명 해 보여 주었다. 농부들은 처음에는 한 가족 살림 집을 지었다가 식구와 젖소들이 늘어나면, 지붕과 벽을 손쉽게 연장해서 살림 집이나 외양간을 하나씩 더 늘리는 것이 그들 가옥건축의 전통이라고 한다.

방에 들어서자 발 자국 띌 때마다 목재집이라 바닥이 삐그득 거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고있고, 천장은 겨우 1미터 90 높이의 작은 집이다. 농부의 집은 긴 겨울과 연료절약 때문에 작고 낮게 짓는 것 같았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비오고 궂은 날씨가 아니라도 습기와 먼지가 늘 우리 몸을 엄습하는 찬 독일의 콩크리트 집 속과는 달리 아침에 일어나니 방안 공기가 건조하고 훈훈한 탓으로 몸이 개운했고, 또 산업시설이 없는 고산지대인 탓으로 온 집안에 먼지 하나 쌓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목재가 방안 온도와 습도를 쾌적하게 조절해주고, 먼지도 막아주기 때문이다. 같은 스위스 이지만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프랑스어권의 집들은 콩크리트 집들이었다. 그래서 인구의 64%가 넘는 독일어권 지역으로 관광오는 그 지역 사람들이나 프랑스 관광객들 수가 해마다 는다는 이유가 납득이 갔었다. 물론 프랑스어권 지역은 숲과 나무가 적은 저지대 탓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근엄한 자연보다는 편하고 즐거운 방임적 삶(laisser-faire)을 중시하는 프랑코인들과 자연보호나 준법정신에 빈틈없는 까다로움(Pingeligkeit)을 중요시 하는 게르만족들 사이의 서로 다른 맨탈리티들이 갖는 상대방의 가치와 매력에 대한 동경의 표시이리라. 마치 독일인들이 편하고 자유로운 이태리, 스페인, 프랑스를 꿈 속에서도 동경하 듯 말이다.

우리가 묵고있는 이 오래되고 소박한 농촌 집의 가격이 거의 백만 유로나 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첫째는 누구나 다 갖고 싶어하고 그래서 값 비싼 목재건물 때문이고, 둘째는 집의 앞뒤로 너르게 펼쳐져있는 푸른 목장지 때문이다. 우리가 도착한 초 가을 오후, 강한 햇볕을 받으며 손자, 며느리 등 온 집안 식구가 총동원되어 낫을 들고 땀을 흘리며 풀베기를 하고 있는 곳은 축구장 만큼이나 크고 넓은 경사가 진 초장이었다. 그들은 햋볕 좋은 날 하루 종일 베어 낸 풀을 말려서 둥근 꾸러미 덩치를 만들어서 젓소들의 겨울 먹이감으로 사용 될 풀을 베고 있던 것이다. 겨울 사료감을 위해서 짧게 자른 거친 풀들을 큰 발효통(Silo)에 넣고 젖산으로 발효시킨 저장 사료 제조도 그들의 가을 작업 중의 한 큰 몫이다. 이 지역의 농부들은 고산 지역인 탓으로 곡식재배가 아닌 목축업과 낙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낙농 농부가 그들의 정확한 업종 명이라 하겠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새벽 일찍 일어나 몇 백미터 높은 고산 방목장에서 한 여름 높은 온도와 땅의 빠른 신진대사로 그 곳에서만 풍성히 자라는 오염안된 연하고 싱싱하고 맛있는 수영(승아 Sauerampfer)이나 산여뀌(Bärenwurz )같은 향초 풀과 꽃을 만끽한 젓소 7-8마리들이 만든 우유를 짜내어 마을 우유 집산장으로 운반 공급하는 일로 시작한다.

젖소의 겨울먹이 준비작업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외양간의 소 잠자리용으로 프랑스나 독일에서 수입한 짚을 베고 말려서 저장하는 일이다. 이 짚은 소의 잠자리용 이외에도, 소 배설물을 손쉽게 제거시켜 주는 작용을 하며, 또 외양간 앞의 땅에 파놓은 부패장에서 겨우 내 배설물과 함께 부식되어 봄에 목장지에 뿌려져서 풀의 거름으로 사용되는 중요한 역활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농가 건축비 부채를 다 갚고 여유가 있는 농부들은 대개는 독일의 농업학교 실습생들이나, 장래의 농부 지망생들을 고산 방목장 낙농농부(Senner)로 고용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농부들은 그 곳에서 치즈재조 작업도 손수 해야 한다. 부업으로서는 염소나 닭이나 돼지도 사육하며, 시청 관리나, 전기 미터기 판독자, 산지기, 사냥군, 목재소나 식당의 보조원 일을 하거나, 스스로 만든 바이오 치즈와 순대를 딴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에게 팔면서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저녁에는 집 지하실 선반에 익어가는 스무 개 정도의 원반 형 치즈 덩이들을 부패방지와 숙성촉진 목적을 위해서 솔과 소금물로 일일이 씻고 닦는 일을 하면서 하루 일과를 끝낸다. 현재 스위스 전 인구의 3.8%가 농부이고, 산악지대, 고임금, 엄한 법조문이라는 조건들 때문에 농업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저지의 저질 농산품 다량생산기업에 흡수 제거 당하는 추세이며, 국가의 엄청난 보조금이 없다면, 스위스에서도 순수하고 건강에 좋고 맛 있는 바이오 식품들이 자취를 감출 지경에 놓여있다.

산악지대에 같혀서 살고있는 스위스인들, 특히 농부들은, 마치 그들의 집들이 서로 드문 드문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서 있 듯이, 전통적으로 자존심, 독립심, 애국심이 강한 민족이다. 많은 집들이 국기를 일년 내내 계양하고 있다. 스위스는 역사적으로 주위의 강대국들인, 켈트족, 로마제국, 독일과 프랑스왕국 들에 의해서 많이 시달려 왔었지만, 그러나 13세기 말, 쉴러의 희곡인 „윌리암 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최초의 세 스위스 주들이 강대국들과 싸우면서 그들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약간은 신화적으로 채색된, 국가건립을 했었고, 신성로마제국과 로마 교황으로 부터도 중립적인 독립국으로 인준을 받았으며, 1798 나폴레옹은 스위스를, 프랑스의 위성국이요, 여러 주가 연합된 현대식 국가인, „헬베치아 공화국“(Helvetische Republik)으로 명칭하고 독립을 선포시켜 주었다. 1848에 드디어 헌법을 제정하고 베른을 수도가 아닌 정부 소재지(4개국어인 독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레토로만어를 쓰는 각 주들의 균형유지라는 이유 때문)로 결정한 후 현재까지 26개주가 연합된 „스위스 연방국“(Schweizerische Eidgenossenschaft)이라는 공식 국가명을 채택하고 중립을 유지하면서 오늘까지 지속시켜 오고 있다. 스위스는 자국 방어용 군대인 민병대(제대한 모든 남자들은 매년 이 삼주동안 훈련의 의무가 있다)도 가지고 있고, 직선 투표제로 국내 제반 어려운 문제를 전체 국민에 물어서 풀어나가는 민주주의 국가요, 또한 중립국이며, 오염 안 된 아름다운 고산 낙원국이라는 점 등으로 자부심이 강한 나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이 자랑하는 점은, 뉴스윅지가 2010년 8월에 건강, 안전,부등의 총체적인 표지에 따라 그 곳에서 살고싶은 세계 복지국 서열에서 한국을 15번 째 국가로 평가 시켜준 랭킹표에 의거 하면, 스위스는 핀란드에 이어 제 2의 세계 최고 복지국으로 인정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년 GNP는 58,084불 이나 된다. 그러나 필자 개인이 보는 스위스 복지국 평가의 기준은 남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스위스인들의 풀뿌리 민주주의(Basisdemokratie)의식, 강한 준법정신과 사회적 신뢰도,투명도, 강한 책임감과 정직성, 평화사랑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인권과 자유의 부재, 금권이해관계위에 벌어지는 부패한 정치와 사회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남한은 아마도 100개국 중의 중간 쯤이나 되지 않을가 한다. 스위스는 남한처럼 권력집중형의 대통령도, 경제성장 일변도라는 광적인 정책없이도 고도의 사회적인 질서, 균형, 부와 안정을 누리는 나라이다. 경제적인 부가 전부가 아님을 믿는 나라다. 물론 아프리카나 제 3국 독재정치가들의 부정재산을 스위스 은행에 비밀리에 보관해서 부를 축적하는 불의나 강한 인종차별 정책등은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고있고, 또 받아야 될 스위스의 오점들이긴 하지만.

 

2) 스위스의 자연과 젖소와 치즈

 

남한 전체 면적의 반도 채 되지 않고 인구 8백만이 사는 좁은 땅 스위스는 아프리카 암반층과 유라시아 암반층이 서로 충돌해서 수 많은 주름을 지으면서 솟아 올라와 만든 고산악 지대이다. 계곡과 높은 산맥들이 밀집되어있는 스위스는 그래서3-4천 미터 이상의 높은 산들이 물경3천개가 넘고, 호수가200개 이상이나 된다. 계곡의 마을이나 도시에 살고있는 스위스인들은 타 지역과의 교통과 왕래를 위해서 자고로 고트하르트, 상트 베른하르트, 룃취베르크, 심플론과 같은 높고 긴 협로와 턴넬을 수 십개나 건설해 오고 있다. 기차선로망과 도로망의 밀집도는 세계 1위이고, 자동차 보다는 기차를 선호하는 이용도도 세계의 1위이다. 그리고 500개 이상의 저수지가 있어서 전체 에너지 공급량의 2/3를 수력 발전소가 하고 있다. 화력이나 핵 발전소들은 아주 극 소수이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화학, 약품, 정밀기계, 시계산업, 식품가공 업체들은 바젤이나 베른같은 주변 저지에 있고, 국민의 반 이상이 삼 사차 산업들인 은행, 보험, 건강, 교육같은 서비스업에 종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스위스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해가 거의 없는 친 환경적이고 안정된 나라임을 확인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공해없는 스위스도 지금은 지구 온도의 상승으로 점점 녹아가는 빙하(Eisgletscher), 특히 알레춰 빙하가 가져오는 자연의 여러 재해를 피할 수는 없어서 심히 두려워하고 있는 실정이긴 하다.

인류의 존속과 복지는 자연의 정복과 이용없이는 불가능한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자연 또한 인간의 친 자연적인 개입없이는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쓰여 짐 없는 혼돈과 무질서 상태에 방기되게 되고 또인간에게 삶의 위협도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은 서로 존중하고 상부상존하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법이며, 인간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의 생리를 무시하고 자연에게 지나친 폭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우매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은 자신들이 가하는 자연과 환경파괴가 무서운 자연의 재앙을 초래할 것임을 아직도 인식 못하고 또 하지도 않으려하고 있음은 한탄스럽다.

서너 차례 높은 산에 도보여행을 하면서 B씨의 자세하고 자상한 자연관, 동식물의 종별과 생태, 보호 관리등에 대한 유익한 강의와 토론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과 인간과의 깊은 종속관계를 다시 확인하였고, 현재 자연을 거스리고 번개처럼 성급하고 무리하게 진행 시키고 있는 남한의 4대강 사업같은 비 자연적, 반 자연적인 행위에 대해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자연을 선용은 하되, 현재의 짧은 자신의 관직임기나 개인의 이해관계, 오만하고 위험한 초급속 국가 경제성장 대신, 우리 세대를 이을 후세대와 국가의 안전한 미래 발전을 목표로 삼고, 자연에 폭력과 무분별한 파괴를 가함없이 자연의 법칙과 순리를 존중하면서, 다각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밟으면서 장기적이고 면밀한 과학적인 계획, 인내와 현명함과 겸손의 태도로 다루어야 할 줄 안다. 스위스나 독일의 자연에 대한 외경과 친환경적인 자세는 아무리 성급한 한국인들이라도 후세대를 위해서 진지하고 겸손하게 배우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다.

계곡 속에 자리 잡은 라우에넨이나 이웃의 좀 더 큰 도시인 그스타트에서는 산악지대에서 도보여행, 자전거 여행, 스키 스포츠를 하기 위한 교통 연결망이 사방팔방으로 나 있어서 여행하기 아주 편리하다. 값 싼 사흘 치 활인 승차권을 사면 버스, 기차, 케이블 카, 스키 리프트등을 이용해서 높은 산악지대에 자유자재로 올라 갈 수가 있다. 스위스는 버스와 기차가 연결 안된 곳이 없는 나라다. 사행곡선 많은 산길에서도 민첩히 움직이는 우편버스(Postbus)는 전방에 좁고 위험한 꼬불 길이 나타나면 미리 녹음해 놓은 알프스 호른의 경적을 크게 불어 상대편 차들에게 미리 경고를 한 뒤에 조심스럽게 돌아 나간다. 매우 인상적이고 현명한 교통 신호 방법이다.

2500미터나 높은 로트탈(Rothtal)분지에 혼신을 다해서 올라 와보니 3천 미터 이상이나 되고 눈이 덮힌 산들 아래로 200미터나 높은 바위병풍이 좌우 전면으로 빙 둘러서 서있는 분지가 나타났다. 그 한 가운데는 200미터나 되는 긴 폭포가 흘러 내린다. 우리들은 마치 거대한 옥외에 세운 어느 신전 앞에 콩알만한 인간이 서 있다는 착각과 그 거대한 규모때문에 위압감과 경외감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문명 속에서 인간만능주의라는 오만과 자신감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따금 와서 자연과 우주 속에서 자신의 보잘 것없는 왜소함과 위치와 겸손을 한번 씩 와서 배워갈 만한 곳이다. 돌아오는 길은 발 아래로 평지와 호수가 까마득하게 멀리 내려다 보이는 위험한 비탈길을 밧줄이니 사닥다리에 의지하면서 사생결단의 각오를 하고 조심 스럽게 내려 왔었다.

우리가 라우에넨 계곡에 들어서면서 우리를 감탄 시켜 준 것은 온 마을과 주위의 동산 전체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짙은 초록일색이라는 점과, 역시 우리의 귀도 즐겁게 해주는 젖소들의 평화로운 종 소리 울림이었다. 푸른 초록색 초원에는 황색, 갈색, 또는 흑백색의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고, 소들이 풀을 뜯을 때나 자리를 옮길 때마다 목에 건 종소리가 동당거리며 온 계곡에 공명되어 울러 퍼졌다. 마치 전원의 평화로운 심포니를 끊임없이 듣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지천으로 널려있는 풀을 쉴새없이 뜯어 먹고 누워서 새김질을 한 후 배설하는 것이 소들이 고작 하는 일의 전부라면, 그들은 얼마나 단순하고 둔하고 무의미한 생명을 사는 존재일가 하고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 처럼 둔한 동물은 아니다. 거의 60도나 경사진 위험한 언덕 위에서 그들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그리고 추락사도 거의 없이, 안전하고 유유하게 움직인다. 그 비결은 그들이 풀을 뜯어 먹을 때는 상하로 움직이지 않고 좌우로 움직이며, 한 이랑의 풀 뜯기가 끝나면 그다음 이랑을 따라 다시 되 돌아오면서 온 언덕을 체계적으로 계단(Terasse)화 시켜 놓으면서 풀을 뜯어먹는 그들의 지능이다. 물론 그들은, 비록 고산의 위험한 절벽지대를 평지처럼 거침없이 뛰어 다니는 알프스 염소나 영양은 아니며, 저지대의 소들이 갖지 않는 넓고 편편한 특수한 발바닥을 가진 소 종류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거대한 몸에 비해서는 영리한 동물이다. 동물적인 본능과 적응을 통해서 위험 앞에서도 두려움없는 여유를 보여주는 그들은 그들 보다도 훨씬 발달된 두뇌를 가졌지만 공포와 불안에 벌벌 떠는 겁쟁이 인간보다는 적어도 그 점에서는 우월한 지능과 그 지능에 대한 의심없는 확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젖소가 가진 가장 중요한 존재 의미는 아마도 우유와 치즈와 고기를 인간에게 제공하는 그들의 이타성에 있을 것이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수컷은 2-3년 키워서 정액과 고기만 제공하면서 짧은 삶을 마치지만, 암컷은, 그들을 마치 자신의 자식이나, 상품제조기계처럼 다루는 주인의 사랑과 배려와 희생심에 대한 대가로,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싱싱하고 맛있는 향초 풀을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행복에 대한 보답으로, 인간에게 매일 우유와 간간이는 송아지를 제공 해주면서, 오래동안 이 지상의 삶을 즐긴다. 과거 가난한 시절 보잘것 없는 먹이를 먹고 평생동안 밭갈이 혹사를 당하던 뼈만 앙상한 한우와는 비교가 안되는 행복한 삶이다.

이렇게 스트레스도 없이 오염도 안된 맛있는 먹이를 먹고 짜여지는 스위스의 우유와 치즈는 그야말로 최상급 바이오 식품이 아니 될 수가 없다.

치즈는 소세지와 함께 서양인의 식생활에 빼 놓을 수없는 중요한 식품이다. 그 영양소와 다양한 맛과 향기 때문에 포도주 처럼 미식가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고 있다.

치즈는, 마치 동양의 김치나 된장, 두부처럼, 몸에 좋은 서양의 대표적 발효식품 중의 하나요, 고기 못지 않게 애호되는 음식이다. 서양 슈퍼마켓의 고기와 치즈 가게 앞에 사람의 줄 행열이 끊어질 사이가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30-40년 전 김치나 마늘을 늘 먹는 한국과 터키 노동자들을 자기 나라로 초대 했던 독일인들이 그들의 악취에 온 갖 상을 찡그렸 듯이 한국인들도 특히 악취나는 치즈를 싫어했던 옛날이 생각난다. 이 모두는 개인의 식성 차원을 넘어 음식이 인간에게 주는 성스러운 의미와 타 문화와 전통에 대한 존경을 모르는 오만한 인간의 자세들이 아닐가?

이제는지방과 당과 화학제들이 흘러 넘치는 저가격 다량생산 식품이 지배하는 위험한 글로벌 시대에 자신의 건강과 자본주의의 악 영향들을 생각하는 독일인들도 마늘과 바이오 식품을 점차로 먹기 시작하고 있고, 한인들도 좁은 민족주의나 국수주의, 또는 이기주의적인 성향에서 벗어나서 치즈와 친해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치즈 제조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두부제조 비슷하게, 데운 생 우유에 응고제인 송아지 위 속의 응유효소인 랍(Lab)을 넣고 응고 시킨 뒤, 소금물에 목욕시켜서 수분제거와 양념 입히기와 표피형성을 시킨 후, 면포로 짜서 눌러 원판 형을 만든 다음, 지하실에서 적당한 온도와 습기 속에서 짧게는 석달, 오래는 삼년 동안 발효 시켜서 만든다. 온도의 높낮이, 수분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하드 치즈, 하프 하드 치즈, 소프트 치즈가 구별된다. 발효 시키지 않고 저온처리를 한 우유에 젖산균을 넣어서 프랑스 요리에 필수 불가결하게 사용하는 생 크림(creme fraiche), 요구르트, 우유산(Kefir), 생 치즈(fromage frais), 크봐크(fromage blanc)등도 만든다. 물론 생 우유를 휘저어서 만든 버터는 서양인에게 없어선 안 될 중요한 낙농제품 중의 하나 임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 치즈 생산국은 미국, 독일, 프랑스, 홀랜드요, 치즈 종류가 일년의 날자만큼이나 많다는 나라는 역시 그들의 포도주 종류도 그 처럼 많은 프랑스이며, 스위스는 하드 치즈, 특히 그뤼에르, 엠멘탈, 바케렝, 아펜첼러가 유명하고, 프랑스는 소프트 치즈, 그 중 특히 깡망베어, 브리, 꽁떼, 레브로숑, 로끄포. 뮌스터등이 유명하다. 깡망베어는 두 지역이 그 때문에 옛날에 서로 전투를 했을 정도로 프랑스인이 좋아하는 최고의 소프트 치즈이다.

치즈의 질은 오염안된 싱싱하고 좋은 소 먹이, 열 처리 안한 생우유, 저온살균한 우유, 온도, 수분함량, 최적조건으로 단백질과 향을 이상적으로 숙성 시키는 노 하우등에 달려있다. 라우에넨같은 고산지대에서 공동판매 조합에 속하지 않은 농부들이 자체 소비 목적으로 생산하는 소량의 알프스 고산지대 치즈(Alpenbergkäse)는 최고급 치즈에 속하면서도 저렴하다. 물론 치즈의 질이, 마치 포도주처럼, 해마다, 먹이 지역마다, 우유의 질마다, 숙성과 보관기술마다, 치즈 덩이 하나 하나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치즈는 늘 심심한 농부들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토론의 소재가 되고 있다.

이제까지 풀을 뜯어먹고 되새김질을 해서 우유를 거쳐서 마지막 단계인 치즈생산까지의 순환을 하는 젖소가 그들의 삶의 중심에 서있고, 또 그것이 그들 삶의 자본이되는 농부와 젖소와의 밀접한 상생관계를 지금 까지 잠시 살펴 보았다.

 

3) 자연과 인간과 정치

 

독일 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의 소설 „마의 산“은, 괴테(1749-1832)의 „빌헬름 마이스터“나 스위스 작가 고트프리드 켈러(1819-1890)의 „풋내기 청년 하인릭히“처럼, 젊은 청년이 사회적 환경이나 인간들과의 접촉과 갈등을 통해서 정신적, 영혼적인 성숙과정을 그리는 교육과 교양소설과는 반대로, 그 이상세계에 대립되는 공허와 무질서와 죽음의 세계를 제시하면서 교양소설을 조소하는 아이러닠한 교양소설이다. 그 소설의 무대는 독일의 저지대가 아닌 스위스 고산지대에 놓여있는 다보스의 결핵 요양소이다. 토마스 만이 생생한 삶과 현실이 지배하는 독일의 저지대가 아닌 고산지대를 택한 이유는 무엇 보다도, 그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정적과 병과 죽음이 지배하는 마술적인 세계, 동화같은 비현실 세계를 그리고자 한 것이다. 병없고 건강한 젋은 주인공 (Hans Castorp)의 3주 계획의 방문이 원치않던 결핵환자로서의 7년의 체류가 되어 버렸다. 인문주의와 과격사회주의라는, 유럽의 두 가지 철학과 세계관과 정치이념을 각 각 대표하는 두 멘토들( Settembrini, Naphta), 관능적인 여인, 건강과 환자치료 보다는 돈과 사업에 더 눈을 파는 돌팔이 원장의사, 무기력하고 의미없는 병과 사색과 지성보다는 돈, 사업, 행위, 술, 마약, 모험에 더 가치를 두는 생활인같은 여러 주인공들과 해후를 하면서 젊은 주인공은 과거의 교양소설의 이상세계와는 반대영역인 무질서하고 방탕적이고 감성적인 병과 죽음의 영역을 경험한 후, 마지막에는 그는, 이 죽음의 잠 속에 놓여있는 요양소를 천둥처럼 깨우는 일차대전 사건이 터지자, 모두 해산해 버리는 주인공들과 함께 그도 저지로 하산해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현실 속으로 어가 버린다. 작가는 주인공이 죽음과 삶, 건강과 병, 현실과 꿈, 인도주의와 과격 사회주의, 진보와 보수같은 이원론, 그리고 죽음의 마력적인 유혹등과 접하면서 그 이원론과 초자연적인 죽음의 세계를 뛰어넘어서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아이러니의 차원에서 그리고 있다.

우리가 매일 하는 도보여행이나 관광일과가 끝나는 저녁 6시 이 후 부터는 이 곳 산골과 우리가 머무는 집에는 오직 정적만이 무겁게 누르기 시작한다. 한 두어 번 요란하리만큼 맑게 비추는 별들과 하늘을 쳐다 보았거나, 간간히 쏜살처럼 날라가는 박쥐들을 본 것 이외에는 „마의 산“에서 처럼 살아있는 삶과 현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죽음같은 정적만이 지배하고 있다. 방안에는 텔레비도 라디오도 없고, 침대와 탁자와 전등 빛만 비추고 있다. 무겁게 누르는 기나긴 겨울 밤같은 정적의 긴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이겨내어야 할가 하는 것이 매일 저녁 고민거리 였었다. 어린 애들이나 어른들이 노는 게임들을 몇 번 해보았으나 재미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무기는 역시 대화와 토론이었다. 우리가 본 자연,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정치와 사회문제,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재들과 대화차원이 있지만, 우리는 쉬운 문제부터 시작해서 서로 공감과 이견교환과 의견 대립을 했다.

그러나 한 두어시간 열띤 대화를 하고 난 우리들은 대화도, 말문 마저도 자주 끊기었고 대화 사이로 무서운 침묵과 정적이 여전히 침범해 들어 왔다. 무거운 병과 죽음의 소재를 직면하면서 거의 천 페지나 되는 소설을 쓴 토마스 만은 그 소설에서 과연 엄청난 사색과 사고와 대화를 과시했다. 우리는 두 서너 시간이라는 대화밖에 못하는 상상력이 빈곤한 일반 소비대중이다. 더구나 우리는 객체 세계 속에서 객체만 근엄하고 지겹게 인식하는 데 비해서 토마스 만은 그런 객체의 인식차원에서 벗어나서 높은 주체적 차원에서 조감하면서 객체와 주체들과 유희를 즐기는 아이러니의 대가이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만, 우리들은 상상력과 대화력 부족으로 정적이 주는 중압감과 시각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시간은 정지한 것 같고, 정적은 우리를 무겁게 누르고만 있었다. 자연을 살아있는 생생한 진리라 여겼던 동양의 철학자들이 존경스러웠고, 정적과 맞붙어서 유희하는 토마스 만이 부러웠다.

앞서 언급했지만, B씨는 전형적인 독일인이면서도 동시에 좀 보기 드문 성격의 사람이다. 그는 우선 도시의 소음과 정치가들처럼 오만하고 아는 체하며 거짓말 하는 사람의 지꺼림과 법질서를 안지키는 사람의 무례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순리에 따라 조용하고 겸허하게 움직이는 자연을 무엇 보다도 좋아한다. 나나 P형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처럼 자연을 좋아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B씨는 지나쳐서 그가 혹시 인간을 불신하고 혐오하는 인간 혐오자(Misanthrop)나 아닐가 하고 의문이 날 정도다. 그는 좋아하는 인간 이외는 딴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려하는 인간 불신자인 것 같다. 이렇게 인간사회의 일반적인 문제에는 과묵한 사람이 공해, 자연보호,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열열한 토론자였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혹시 정치, 사회, 경제문제같은 인간세계에서 벗어나 스위스와같은 자연속에서 살려는 현실 도피자가 아니냐라는 나의 질문에 약간 화난 듯한 얼굴을 하다가도 금새 자신감있는 어조로 답을 했다: „나는 불만스럽고 불완전한 인간과 정치와 사회에 실망했으며, 그 사회의 정치적인 개혁 대신 도덕적인 자기완성을 추구하면서 남에게 모범과 감동을 통한 간접적인 정치활동, 사회활동, 자연보호활동을 한다“ 라고.

간디의 성실한 도덕적인 실천중심사상이 생각나고, 노자의 무위자연철학이 생각났다. 그도 이런 철학가나 사회운동가들 처럼 그 자신의 시대에 실망하고 비판내지 개혁과 이상사회를 많이 생각했음에는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에게 답했다: „스위스와 같은 아름다운 자연은 현실에 실망하고 상처받는 인간에게는 필요한 요양처요 휴양처이지만, 인간들은 동양의 은자들이나, 미국의 은둔 사색가 쏘로(Thoreau)처럼 자연 속에서 도인이나 은둔자로서만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며, 따라서 당신의 정치개혁의 방법은 소극적이고 비효율적이지 않소? 사람들과의 조직과 연대를 통해서 힘과 용기와 희망을 약속하는 적극적인 개혁 방법이 더 낫지 않을가요?“ 라고.

우리는 행위와 실천없는 지식이나 숙명에 안주하는 식의 무위자연적인 인생관과 정치관은 피해야 하겠지만, 또 그렇다해서 서양식의 양분론적이고 양자택일적이며 자아의 이익과 자연의 파괴를 추구하는 정치관은 더 더욱 삼가해야 하리라 본다. 동양철학과 종교가 가르치듯 인간과 자연을 겸허와 애타심으로 대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불의와 부정을 보고 자연에서 뛰처나와 폭력아닌 비판과 저항과 개혁으로 대항하는 적극적인 사고와 생활자세를 가져야 하지는 않을가? 물론 참여와 연대도 종국에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던가, 혹은 인간의 지속적인 개혁이 불가능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참여는 침묵과 무관심과 방관 보다는 보다 더 인간적이고 또 의의가 있는 긍정적 자세라고 나는 확신한다.

젊었던 청년시절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또 우리와 함께 반독재 민주운동과 통일운동에 주역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하고 고민했던 P형은 지나간 한 세대동안 엄청난 독서와 사색과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고민의 과정을 거친 후 이제는 인간과 사물과 우주를 통달하고 도를 통했는지 내향적인 침묵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날 저녁 토론에도 시종일관 침묵으로 대하고 있었다. 과거의 그의 정열과 비판과 저항이 빛과 결산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매우 아깝고 유감스러웠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리라.

그러나 이런 그의 침묵의 뜻과 자세는 나와같은 풋내기 정치관심자들에게는 아직도 이해와 근접이 불가능하다. 언어는 노자에 의하면 실은 믿을 수없고 위선적이고 헛된 것인지라 진리도달을 위해서는 차라리 침묵보다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침묵 이전에 진지한 언어수련과 언어를 통한 진리접근이 전제 된 연후에라야 언어 자체와 그 본성의 진위를 판단할 수가 있고, 또 참다운 진리의 참 모습과 본질로 향한 인간적인 이해접근과 보편 인간으로서 하는 진리규정도 할 수가 있지 않을가? 마치 악을 모르거나 증오를 모르면 선이나 사랑의 참된 모습도 이해하기가 어렵 듯이 말이다. 우리와 같은 보편적인 인간은 그런 과정 이후에라야 혹은 그런 과정 속에서라야 비로소 선과 악, 애와 증의 합일이라는 고차원의 진리를 겨우 예감이라도 할 수있지 않을가?

어렵고 끝없는 인간, 정치, 자연이라는 문제를 좀 더 깊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루어 보고 싶었지만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서 우리는 더 이상 토론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녁 10시를 겨우 넘긴 우리들은 저지대의 지루하고 따분한 속물처럼 곧바로 침대 속으로 들어갔었다. 그러자 인간의 이해의 피안에 있는 파악하기 어려운 자연이 이제는 정적이라는 너무나 크고 무서운 목소리로 나의 귀 속에 침투하기 시작을 하자, 하잘것없는 상상력을 펴며 대들다가도 겁이난 나는 자연에게 항복을 고하고는 생각도 입도 다물어 버리고 벼개로 귀마저도 막고는 잠을 청해 버렸다. 자연이 말은 해야한다고 우기는 나에게 복수를 하려 든 것이었을가?

귀가하는 다음 날 B씨는 오염안 된 바이오 고산지대 치즈를 10킬로나 싸게 구입해서

차 짐칸에 숨기고 국경 관세지역을 통과하면서 약간 얼굴을 붉히고 불안해 했었다. 노련한 세관원들은 스위스 은행 비밀구좌에 숨겨둔 몇 백만 유로를 빼내어가는 독일의 부정 자본가들에게나 눈독을 들이지 그 까짓 치즈 10킬로에 무슨 관심을 가지랴?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독일시민 B씨는 우리의 존경을 오히려 받아야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아우토반 귀갓 길 동안 어떻게 하면 이런 불의한 자본주의 이리 떼들을 제거할 수있을가하는 생각을 줄곧 하면서 스위스를 떠나 독일로 되 돌아 왔었다.

비 정치적이지만 그러나 비판적인 자세를 가진 작가 토마스 만은 100년 전 한스 카스토르프를 1차대전 전쟁 터로 보낸다는 분명한 이야기 없이 스위스에서 세상으로 내 보내었지만, 100년 후의 우리 모두는 스스로 만든 자신의 감옥에서 용감히 뛰쳐 나와서 현대의 타락한 자본주의 맹수들, 자연파괴범들과 벌이는 정의로운 전쟁에 어떤 형태로던 각자가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분명한 자기참여와 공동참여를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2010.10.5. 고랑

산행 + 생일축하

   70. 생일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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