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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시대의 열쇠, 한국인들이 쥐고 있다"

[백낙청 발표문] 한국이 '저강도 대재난'에서 벗어나려면

 2011년 10월 3일

프레시안  

 

다음은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이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9월 25일 일본에서 발표한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하여'란 글이다. 백낙청 명예교수는 일본의 '21세기 사회동태연구소'(소장 키무라 토모요시)가 주최한 북동아시아동태연구회 간담회에서 이 글을 발표했다. 필자의 양해를 얻어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하여

제목에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하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새 시대가 저절로 열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열자'는 것이 연구소 여러분의 취지라 믿고 공감하여 감히 이런 제목을 택했습니다. 그런 실천적 의지를 빼고, 시대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이라면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도인 저는 자격미달의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목에서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말하면서 '일본'이 빠진 것은 첫째는 오늘 이 자리에서 동아시아를 논할 때 일본이 포함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테고, 둘째는 그렇더라도 제가 일본에 대해 너무 무지하기에 일부러 주목을 덜 받으려고 피해간 면도 있습니다. 어쨌든 발표는 일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는데, 다만 외국에 사는 동아시아인으로서 일본사회에 거는 기대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동아시아인으로서 일본사회에 거는 기대

1.1. 동아시아 이웃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사회에 기대보다는 불신과 우려, 심지어 적대감을 품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차적으로 이는 19세기 중반 동아시아의 근대가 시작된 이래 일본이 이웃나라를 침탈하고 압제한 역사에 기인할 것입니다. 나아가 군사적 침략을 더는 범하지 않은 1945년 이후에도 지난날 이웃람들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못 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을 빼고 동아시아의 새 시대를 여는 길은 없습니다. 올해 들어 GDP 기준으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중국에 뺏긴 것은 사실이지만, 제3의 경제대국이라는 지위도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는 중국에 가마득히 앞서 있고, 면적과 인구에서도 유럽의 최강국 독일을 능가합니다. (면적의 경우 영토뿐 아니라 영해와 전관경제수역(EEZ)까지 포함하면 독일과의 차이가 더욱 벌어지지요)

또한 일본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길을 걸으면서 축적해온 학문과 기술, 제도 상의 자산도 엄청납니다. 탈아입구 노선이 이웃나라뿐 아니라 일본사회에도 커다란 불행을 가져왔고 그에 따른 일본과 여타 동아시아 사이의 분열이 아직껏 치유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아시아복귀가 원만하게 이루어질 경우 일본사회가 축적한 온갖 자산이 곧 동아시아의 자산이 되며, 아시아가 유럽과 아메리카 등 바깥 세계와 협동하여 새로운 인류문명을 건설하는 데 결정적인 이바지가 될 것입니다.

1.2. 일본이 그 경제적 비중과 문화적·기술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에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무기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믿습니다. 그런 상황에 뜻있는 변동을 가져온 것이 2009년에 이룩된 54년만의 정권교체였습니다. 이후 민주당정권의 무능과 표류로 당시의 기대가 환멸로 바뀐 바 많습니다만, 일본에서도 시민들의 힘으로 정권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2009년 선거의 의미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게다가 하또야마 유끼오(鳩山由紀夫) 수상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개별 논객이 아닌 국정책임자가 '탈아입구' 노선의 수정을 선포한 최초의 예였습니다. 이 또한 지금은 한때의 구상으로 끝나버린 형국이지만 언제든지 새로 싹틀 수 있는 씨앗을 심어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아도 일본의 정국은 당분간 혼미상태가 지속될 듯합니다. 반면에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로 보면 3·11 대지진(大震災)과 지금도 지속중인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로 8·15패전에 버금가는 전환기를 체감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실감이 일본 근대화의 주도이념인 탈아입구·부국강병 노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어쨌든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저로서는 일본사회에 대한 기대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한반도 주민들의 관건적 역할

2.1. 일본사회가 제 몫을 하기 위해서도 한반도 주민들의 역할이 관건적이라고 말하면 한국인 특유의 한반도중심주의적 발상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컨대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십시오. 이는 물론 역사의 영역에서 가상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이야기입니다만, 1910년 일본에 의한 강제적 병합을 저지할 만한 역량이 대한제국에 있었더라면 일본인들의 운명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렇다고 일본이 서구 열강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테고, 오히려 작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평화포럼에서 사카모도 요시카츠(坂本義和) 선생이 제기하신 대로 "20세기 초부터 3국[한·중·일]이 협력하여 동아시아 공동 내셔널리즘을 만들어내"(坂本義和, "東アジア共生の條件—21世紀に國家を超えて", 世界別冊 no. 816 , 岩波書店 2011, 164面)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며, 거듭된 전쟁을 거쳐 드디어 원자탄폭격마저 당한 일본민중의 극심한 수난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패전 이후 일본사회가 구체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탈아입구' 노선을 '탈아종미'(脫亞從美)로 변주하여 지속해온 데에는 8·15 이후의 한반도 민중이 통일국가를 건설하지 못하고 한국전쟁의 참화를 막지 못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게다가 일본정부가 식민지지배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반성하고 사과한 이후에도 식민지 조선의 절반이었던 북조선에 대해 사죄는커녕 강압적인 배제정책을 견지할 수 있는 것도 분단체제 남쪽 당국의 동조 내지 적극적인 부추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2. 하또야마 수상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지닌 결정적인 약점도 한반도문제의 핵심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었다는 점입니다(졸고 "동아시아공동체와 한반도, 그리고 한일연대—일본의 한국병탄 100주년을 맞아", 2010년 5월호 참조). 그나마 그 정도의 구상조차 실질적인 파국을 맞이하는 과정에도 한반도 정세가 직접적으로 기여했습니다. 2010년 3월의 천안함 침몰사건은 남북간의 긴장뿐 아니라 동북아 전역에 걸쳐 미·중대립을 격화했고, 그 와중에 하또야마 수상은 오끼나와 기지문제에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할 계기를 찾았으며, 이는 다시 하또야마 내각의 붕괴와 미일동맹의 일방적인 강화로 이어진 것입니다.

천안함사건에 관해 길게 말씀드릴 계제는 아닙니다. (일본어로 발표된 『世界』2011年3月号、67~70頁 등 참조). 어쨌든 천안함의 침몰이 한국정부가 주장하고 미국 및 일본 정부가 동조한 대로 북조선 어뢰공격의 결과라 해도 한반도 정세가 일본사회의 향방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논지는 유효합니다. 그런데 한·미·일 당국의 발표가 과학적 근거가 부실하거나 심지어 증거가 일부 조작된 의혹마저 있다면, 이는 한국사회가 자신의 국내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일본을 포함한 관련국의 부의·부당(不義·不當)한 선택을 유발한 또하나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2.3. 어쨌든 한반도에서의 남북간 충돌을 계기로 한·미·일이 한편에 서고 북·중·러가 다른 편에 서는 '신냉전구도'가 성립하리라는 관측이 한동안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왕년의 동서냉전체제에 비견할 대결구도가 재연될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고 미국은 중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이라는 사실부터가 지난날의 미·소관계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게다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보더라도 한국은 미·일뿐 아니라 중국 및 러시아와도 수교한 상태이고 이 두 나라와의 경제관계도 돈독한 편입니다. 특히 중국하고가 그렇지요.

이런 상황에서 위해 말한 '신냉전구도'가 성립한다면 이는 극도로 비대칭적인 구도 속에서 북조선의 고립을 심화시키는 길밖에 안되며, 남한에서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북에 대한 우위가 강화된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적 열세가 심해진다 해서 그것이 곧 북조선의 '붕괴'를 뜻하지 않음은 최근 몇 년의 대북제재 국면에서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북측이 이런 열악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곱게 지켜만 보고 있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미·중간 갈등과 마찰이 지속되더라도 큰 틀에서 타협하고 협력할 것은 분명하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미국측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정부가 '신냉전구도'에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다가는 어느 날 문득 한국은 주변 강대국들이 노는 장기판의 '졸'(卒)로 전락할 공산이 큽니다. (한국정부도 지금은 그 위험성을 뒤늦게나마 알아채가는 기미가 보입니다) 일본정부 역시 미국과 손잡고 중국에 맞선다는 정책에 너무 매달렸다가는, 정작 미국은 일본의 지지를 적절히 이용하여 중국과 한층 유리한 타결을 해내는 꼴을 당할지 모릅니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에 다 중요한 것이고 지혜롭게 발전시켜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일(그리고 대만) 모두 스스로 변하며 상호 연대함으로써 동아시아가 미국과 중국이 제멋대로 다투다가 제멋대로 손잡기도 하는 무대가 아니라 무엇보다 동아시아 민중의 의사가 존중되는 지역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3. 한국에서의 '2013년체제'

3.1. 그동안 한국에서는 천안함 침몰 같은 대형사고나 남북간의 이런저런 충돌, 그리고 기후변화를 실감케 하는 태풍과 홍수 피해가 있었습니다만, 일본에서와 같은 대지진과 쓰나미 또는 치명적인 방사선 유출사고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4대강 살리기'로 포장된 무리한 토건사업으로 천재지변이 아닌 정부주도의 대대적 환경파괴가 진행되었고, 노년층을 비롯한 서민들의 생활난이 재해 수준에 근접했으며, 원전사고 없이도 주민들의 자유와 기본권에 대한 제약이 대폭 증대했습니다.

남북관계도 마치 쓰나미에 휩쓸린 듯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흐트러졌습니다. 어찌 보면 일본의 '3·11'에 견줄 '저강도대재난'(저강도대재난)이 일어난 셈입니다. 그 결과 아무리 저강도라 해도 시민들의 간헐적 저항을 억누르며 4년여 동안 지속된 인재(人災)가 재앙(災殃) 수준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고, 이명박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13년에 한국사회가 새로운 출발을 해야겠다는 정서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3.2. 이러한 인식과 정서에 바탕한 기획 중 저 자신이 제기한 '2013년체제'론은 그렇다고 오늘의 혼란상이 온통 이명박정부의 실정(失政) 때문이라는 입장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2013년 '체제'를 말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1987년 6월항쟁 이후에 성립된 87년체제가 제때에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의 건설적 동력을 적어도 노무현 정권 중반부터 대부분 상실하고 말기적 혼란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인식을 전제합니다. 이명박정부가 비판받아야 할 점은 이런 혼란을 처음으로 야기했다는 것이 아니라, 87년체제를 극복하고 2008년을 '선진화 원년'으로 삼겠다는 이명박씨의 약속이 애당초 실현성도 없고 시대정신에도 어긋나는 발상이었던 데다가, 실제로 87년체제의 말기국면을 더욱 연장하고 그 혼란상을 '재앙' 수준으로 확대했다는 점입니다.

2013년에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87년체제의 동력과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는 저 자신의 견해를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데 머물 수밖에 없겠는데, 흔히 87년체제를 '민주화시대'로 일컫습니다만 저는 민주화 이외에 두가지 동력이 더 가세했다고 믿습니다. 그중 하나는 경제적 자유화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신자유주의 국면에 들어선 세계자본주의의 입김도 작용했습니다만, 적어도 87년체제 초기는 개발독재국가로부터 기업의 자유와 노동자의 권리를 동시에 얻어내는 긍정적인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한국내의 진취적인 87년체제 논의에서도 곧잘 망각되는 점이기도 한데—6월 민주항쟁진영 일각에서 특히 중요시되었던 '자주'와 '통일'에 대한 요구입니다.

1987년 이후 약 20년간 한국사회는 그 세가지 영역 모두에서 뜻깊은 성취를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세가지 동력이 원만히 결합하여 지속성과 상승효과를 확보함으로써 너무 길지 않은 시간 내에 87년체제 자체의 한계를 돌파하는 일이었는데, 2008년의 새 정권 출범이 그러한 계기가 되기는커녕 대대적인 역행의 시기로 귀결했던 것입니다.

3.3. 그러면 87년체제의 기본적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민주화의 성취가 어디까지나 한반도 남녘에 국한된 성취였고 따라서 1953년 휴전 이후 굳어진 분단체제를 흔들기는 했을지언정 '53년체제'의 틀을 바꾸지는 못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민주세력은 분단체제 고수세력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고, 경제적 자유화 과정은 점차 신자유주의에 의한 국가의 공공성 축소, 재벌기업의 시장지배 확대, 노동운동의 사회적 혁신능력 상실 등의 퇴행현상을 낳게 되었으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획기적 남북관계 개선작업도 국내개혁 의제들과의 상승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결국 2007년의 대통령선거에서 '비핵·개방·3000'이라는 터무니없는 구호를 내세운 세력에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2013년체제의 주요 과제는 87년체제와 더불어 그 본질적 제약으로 작용한 53년체제를 타파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통일로 간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명박정부가 파탄상태로 몰고간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교류협력을 재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더불어, 통일은 아니지만 완전히 별개 국가로 분립한 상태도 아닌 '남북연합'이라는 분단현실의 공동관리장치, 그러면서도 한반도의 맥락에서는 '1단계 통일'로 간주할 수 있는 단계(2006년 1월호 인터뷰, 일역본 14-17면)를 성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남북문제'라는 별개의 차원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한편으로 베이징(北京) 9·19공동성명이 제시한 동북아평화체제 건설과 병행하면서 다른 한편 시민이 동의하고 참여하는 남한사회의 총체적 개혁과 결합된 작업인 것입니다.

3.4.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 이 목표를 지향하는 세력이 2012년의 양대 선거, 즉 4월의 국회의원선거와 12월의 대통령선거를 모두 이겨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2013년체제에 대한 경륜이 뚜렷하고 그것을 집행할 실력을 갖춘 세력이 아니라면 집권하더라도 또 한번 국정의 난맥상을 보여주기 십상입니다. 아니, 실제로 선거에 승리할지도 의문입니다. 이명박정부에 대한 민심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정당지지도에서 여전히 민주당을 크게 앞지르는 거대세력이며, 박근혜씨라는 높은 여론지지율을 고수해온 후보를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의 당연한 선택은 '연합정치'입니다. 이는 2010년의 지방선거 이래 성과가 고르지 않으면서도 야권의 성공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고 이제 누구도 그 당위성을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2012년 총선에 관해서는 야권의 '대통합' 즉 연합적 단일 통합정당을 주장하는 민주당 및 상당수 당외 인사들과, 민주당을 뺀 '진보정당'들의 통합 후에 민주당과 '연대'한다는 또다른 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그 문제를 두고 서로 만나 소통하는 일조차 꺼리는 정도였지요.

이런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데도 2013년체제론이 일조를 한 셈입니다. 지난 7월 26일에 출범한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는 '2013년 이후'의 비전을 공유하는 가운데 '2012년 선거승리'의 방안도 차츰 논의하자는 합의 아래 견해를 달리하는 시민사회의 인사 21명이 한자리에 모였고, 9월 5일에는 야4당 대표와의 회동을 성사시켜 2012년 양대선거와 다가온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공동대응한다는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후의 진전사항이나 전망에 대해서는 나중에 토론과정에서 부연할 기회가 있겠지요.

4. 맺음말

4.1. 앞서 20세기 초 일본의 한국강점을 방지하지 못하고 세기 중반에 동족상잔의 전쟁을 자초한 한반도 주민들의 역사적 실패가 일본 민중의 고난을 가중시킨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한국에 진 빚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한국 역시 일본에 갚을 빚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2013년체제를 출범시키고 1953년체제를 대체할 한반도의 국가연합체제를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그러한 부채상환의 첩경이라 믿습니다.

제가 일본사회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3·11의 교훈을 제대로 살려 기존의 탈아입구·부국강병 노선을 청산하고 새로운 동아시아, 나아가 새로운 인류문명 건설에 적극 나서는 일이 한국에서의 2013년체제 성취 없이도 가능하리라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당장에 '탈원발'(脫原發) 문제만 해도 한국정부가 지금처럼 태연자약하게 기존의 원전 건설 및 수출 계획을 밀고 나간다면 일본경제는 한국측의 '부당경쟁'으로 더욱 힘겨워질 것이며 '탈원발' 세력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지기 십상입니다. 더구나 일본이 아시아 나머지와의 역사적 분열을 치유하고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일은 한반도 분단의 해소 내지 완화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4.2. 중국의 대두가 동아시아와 세계를 위해 행복한 사태가 되기 위해서도 한국과 한반도의 새 시대가 긴요합니다. 요즘 적잖은 사람들이 'G2'를 운위하고 심지어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세력전이(power transfer)'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마추어적인 추측이긴 합니다만) 중국이 아무리 인구가 많고 GDP가 급속히 늘어난다 해도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승계하는 일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국력에서 미국과 단독으로 맞먹는 일도 불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일본이 미국 편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이나 그렇지요. 하기는 중국과 일본이 협동하는 경우라면 미국과의 세력균형이 한결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화해·협력 및 점진적 재통합의 과정에 들어선 한반도의 존재가 필수적이 아닐까 합니다. 직접적인 중재자로서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테지만 새로운 공생의 원리와 분위기를 전파하는 위력이 더욱 결정적일 것입니다.

4.3. 새로운 공생의 원리를 존중하는 한(=한반도연합)·중·일의 협동이 아닌 한·중·일 3국공조는 현실적으로 정착하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여타 국가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달성된 호혜적 지연연대만이 미국의 힘으로도 섣불리 참견하고 훼방할 수 없는 실력과 도덕적 권위를 지닐 것입니다. 이는 중국이 단독으로는 새로운 패권국가가 될 수 없으므로 유럽연합 식의 동아시아연합을 형성하여 세계체제의 새로운 패자(覇者. hegemon)가 되자는 발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 필자 백낙청 편집인 ⓒ프레시안 자료사진

현존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그것을 구성하는 국민국가들의 배타적이고 이론상 대등한 '주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국가가 패권국가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무정부상태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의 패권국가가 쇠락할 때 전쟁을 거쳐서라도 패권승계가 이루어져야 유지되는 세계질서인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의 패권이 몰락하면서 새로운 패권국가(또는 패권적 국가연합)의 대두마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지구적 질서유지 방식이 창안되지 않는다면 근대세계체제는 무질서밖에 기대할 게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그러한 새 질서유지 원리의 발견과 실현에 동아시아가 앞장설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고, 이를 위해 3·11을 겪은 일본과 수년간 '저강도 대재난'을 겪어온 한국의 민중이 힘을 합쳐 남다른 이바지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백낙청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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