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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인, 박원순 변호사

[기고]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넘어

 2011년 10월 23일

장시기 동국대 영문과 교수 / 프레시안

 

 

I. "안철수 현상"과 탈근대성

국민의 50 퍼센트 지지를 받는 안철수 교수가 국민의 5 퍼센트 지지를 받는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이후로 "안철수 현상"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은 단지 2011년 9월 느닷없이 온 것이 아니다. 지난 1998년 "IMF 위기"와 더불어 시작된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대중가요에서 이루어진 문화 "한류"의 탄생,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 미순이ㆍ효순이의 죽음으로 시작된 "촛불문화제", 그리고 인터넷과 트위터의 등장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든 시민과 국민들의 친구와 연인의 대명사로 등장하고 있는 "시골의사 박경철", "소설가 이외수", "조국 서울대 교수", "'나꼼수' 김어준" 등등의 무한한 자가생산성의 서로서로 삶을 즐기는 문화는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문화적 현상이다. 이러한 문화적 현상의 즐거움이 만드는 생산성과 창조성은 과거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진보와 보수의 정치 이데올로기나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경제적 손익계산서를 훌쩍 뛰어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이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뉴시스


21세기의 문화적 현상이 만드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의 한 가운데에 박원순 변호사가 있다. 그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적 기업"을 대표하는 선구자이며, 진보와 보수의 정치 이데올로기나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경제적 손익계산서를 뛰어넘는 시민운동의 대명사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안철수 교수는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 시장 후보를 양보한 것이다. 따라서 박원순 변호사는 시골의사 박경철, 소설가 이외수, 조국 서울대 교수, '나꼼수' 김어준 등등과 함께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탈근대 문화 르네상스의 한 중요한 인물이다. 이들과 함께 문화 "한류"와 "붉은 악마", "촛불문화제"와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 북을 사용하여 서로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바로 탈근대의 대한민국이다. 이것은 "안철수 현상"을 논의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합의하는 특질들이다. 그들은 "안철수 현상"이 근본적으로 "소모적인 좌파-우파 이념대결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소모적인 좌파-우파 이념대결"은 대한민국을 식민지적 근대성으로 이끌고 가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이와 더불어 안철수 현상이 대표하는 것은 "권력과 자본의 유착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의 "내곡동 사건"처럼 신자유주의 정권은 국가의 권력을 부동산 투자와 같은 자본의 축적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이 대표하는 것은 서울시장이나 대통령과 같은 권력은 시민이나 국민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기업"처럼 탈근대 문화 르네상스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사적인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현상"은 "지역적인 대결과 분열의 정치구도 청산"을 의미한다. "지역적인 대결과 분열의 정치구도"는 전 지구적으로 탈근대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식민지적 근대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지역적인 대결과 분열의 정치구도"는 한국 사회를 왜곡된 좌파와 우파 혹은 진보와 보수의 식민지적 근대를 만들고 있다.

II. 한나라당은 보수정당이 아닌 수구정당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살펴보자. 한나라당의 전신인 이승만의 자유당과 박정희의 공화당 그리고 전두환의 민정당은 보수정당이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와 군사 쿠데타 등등의 외부적 강압으로 만들어진 권력에 눈이 먼 패거리 집단이다. 그들은 독재자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1 퍼센트를 구성하는 자신들만의 권력과 이익을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강화시키고자 하는 수구파들이다. 식민지 근대의 수구파들과 대항한 한민당과 민주당을 보자.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지주 세력이거나 근대적 친일파 지식인들 그리고 중소 기업인들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당 정권, 박정희 유신정권, 그리고 전두환 파쇼정권에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건강한 보수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화 세력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들어가지 그와 단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현재의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이유가 바로 한나라당의 수구정당 패거리들 때문이 아닐까?

대한민국을 근대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바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수구세력과 보수세력의 대결을 마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대결인 양 왜곡시키는 식민지적 근대성이다. "안철수 현상"과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이러한 식민지적 근대성을 타파하면서 21세기의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진정한 근대적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을 결합시키는 탈근대적 "미래와 희망을 향한 소통과 통합"에 기여하고 있다. 문화 "한류"와 "붉은 악마" 그리고 "촛불문화제" 등등의 탈근대적 문화에 익숙한 대한민국의 탈근대인들이 민주당도 민노당도 아닌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지지한 "안철수 현상"과 수염을 시커멓게 기르며 세속을 떠나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던 박원순 변호사가 시민후보로 추대된 것, 그리고 민주당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와 민노당의 최규엽 서울시장 후보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 경합하여 건강하게 박원순 변호사를 대한민국 진보와 보수의 대통합 후보로 추대한 것 등등은 대한민국 탈근대성의 가장 뚜렷한 징후들이다.

▲ 안철수 원장(오른쪽)이 박원순 상임이사와의 단일화 선언 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을 1970년대와 80년, 혹은 해방정국의 미군정 치하, 심지어 정말로 치욕스러운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로 되돌리고자 하는 한나라당 수구파 패거리들의 노력 또한 만만치 않다. 그들은 먼저 "서울시장 후보도 내지 못하는 민주당"이라고 공격한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답게 만들고자 하는 민주당의 건강한 보수성에 흠집을 내고자 하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 과정 동안 지속되었던 수구(한나라당)-보수(민주당)의 대립구조를 왜곡된 보수(한나라당)-진보(민주당)의 대립구조로 지속시키지 않으면 탈근대적 대한민국에서 그들의 존립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가장 건강한 보수주의자들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 그리고 한나라당의 수구세력 패거리들 때문에 민주당에 입당한 손학규 대표와 함께 하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근대적 속임수에 넘어갈 리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과 민노당 그리고 시민운동 진영이 함께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근대적 보수와 진보를 통합시키는 진정한 탈근대인이다.

이와 더불어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공격하는 것은 정말로 식민지적 근대성의 전형이다. 그들은 박원순 후보가 자신의 저서에 서울대 "사회과학대 중퇴"인데 "법대 중퇴"라고 기재한 것에 대하여 공격한다. "사회과학대"면 어떻고 "법학과"면 어떻단 말인가? 당시에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법학과는 사회과학대 소속의 한 과였다. 그리고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대학교를 중퇴한 것은 유신반대 데모를 하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퇴학당한 것이다. 1970년대 근대 식민지 수구세력은 서울대학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저항하여 퇴학당한 박원순 변호사의 희생과 용기는 이야기하지 않고 지엽적인 이야기에 공격의 칼날을 세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가지고 있는 식민지적 근대성의 전형이다. 그들이 박원순 후보를 공격하고 있는 핵심은 서울대학교 출신도 아니면서 '왜, 서울대라는 이름을 썼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서울대 중심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짜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얼마나 비난하였는가?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의 기간 동안 서울대학교를 나왔다는 것은 명예가 아니라 치욕이다. 대부분의 서울대 출신 교수들이나 진보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서울대 중심주의가 대한민국을 망국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근대적 환상의 대표적 환상이라고 이야기한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처럼 여전히 서울대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식민지의 권력, 군사독재 시대의 권력에 대한 식민지적 근대성의 향수로 인하여 정부관료, 검찰, 국회의원, 교수 등등의 지위를 식민지적 근대 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역할로 이용한다. 탈근대적 교육개혁, 반값등록금, 대학체제개편 등등은 바로 그러한 근대의 망령, 서울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박원순 후보는 스스로 서울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있는 탈근대인이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박원순 후보를 공격하는 또 다른 하나는 박원순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 등등의 사회적 기업이 부정부패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둑놈의 눈에는 모두가 도둑놈들로 보인다"는 옛말이 있듯이, 혹은 영화 <도가니>의 근대적 사립학원 구조에서 보았듯이, 심지어 대통령이 되어서도 "부동산 땅 투기"를 하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에서도 드러나듯이 식민지적 근대의 권력구조로 이루어진 기업과 사립학원의 부정부패에 익숙한 식민지적 근대인들이 탈근대인 박원순 변호사와 탈근대적 사회적 기업을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나 "희망제작소"와 같은 탈근대적 사회적 기업은 후원자와 시민이 함께 경영 재무재표를 만드는 곳이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등의 북유럽 국가들에서 시작한 사회적 기업은 부정부패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탈근대적 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미 중고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탈근대적 상식이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심지어 박원순 후보와 "희망제작소"의 사회적 기업이 대기업의 후원을 받았다고 비난한다. 대한민국의 그 어느 곳에서 대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 곳이 있는가? 대기업이 사회적 기업과 대학의 학문발전, 사회적 복지를 후원하는 것, 그리고 박원순 변호사처럼 그러한 후원을 조직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 진정한 탈근대적 기업인이라고 칭송받을 수 있는 현대그룹 정주영 전 회장은 엄혹한 시절에 5000 마리의 소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남북대화와 금강산 관광의 물꼬를 틀지 않았는가? 기업과 노동자, 혹은 기업과 시민은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대상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상생의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이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은 식민지적 근대의 정치적 권력구조가 식민지적 근대의 경제적 권력구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기업과 시민, 기업과 노동자의 대립과 갈등으로 존립근거를 삼는 식민지적 근대의 수구세력임을 잘 입증하고 있다.

III. 탈근대인,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만드는 "아름다운" 미래와 희망

▲ 박원순 변호사 ⓒ프레시안

근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건강한 진보와 건강한 보수는 끊임없이 상호 수렴된다. 근대 국민국가의 틀을 만든 영국과 프랑스가 그렇고, 그것에 도전한 독일과 이태리가 그러하며,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미국과 러시아가 그러하며, 아시아의 근대를 주도했던 일본과 중국이 그러하다. 미국의 공화당은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진보세력이었고, 오늘날 미국의 진보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민주당은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보수세력이었다.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당은 오늘날 그들 내부의 보수세력이 아닌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탈근대적 미래의 지구촌 사회를 구성할 새로운 모델은 노르웨이와 스웨덴과 같은 서구 유럽적 근대의 주변부 북유럽 국가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와 같은 미국적 근대의 주변부 중남미 국가들, 한반도와 대만 그리고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일본식이거나 중국식 근대의 주변부 아시아 국가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탈근대의 기업인, 안철수 교수가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안철수 교수와 마찬가지로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민주당과 시민진영의 건강한 보수세력과 민노당이나 진보진영의 건강한 진보세력, 서울과 지역, 기업과 시민(혹은 노동자)의 통합과 협력을 모색하는 박원순 변호사는 진정한 탈근대인이다. 우리는 마침내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근대 속의 탈근대인들이었던 백범 김구, 만해 한용운, 단재 신채호 등등이 꿈꾸었던 제국주의도 아니고 식민주의도 아닌 지구촌 여러 나라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탈근대의 "아름다운 나라"를 꿈꿀 수 있다. 근대 속에서 탈근대인으로 살았던 백범 김구와 만해 한용운 그리고 단재 신채호 등등은 식민지적 근대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의 근대적 이분법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꿈꾸었던 것이 바로 근대적인 제국이나 식민지 혹은 아류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탈근대의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러한 탈근대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지름길은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탈근대의 "아름다운 서울"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미래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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