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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a통신11-17]: 이젠 평화협정 할 때다!

 2011년 12월 12일

                                           오 인동 / 6.15미국위 공동위원장

 

9. 평화협정 거부의 역사와 오늘

 

조국분단을 해소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협정이다. 북핵 때문에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북핵 없었던 40년, 핵 의혹만 있었던 10 여 년 동안에도 평화협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북이 핵보유국을 선언한 이제 평화협정 체결은 오히려 가까워진 것은 아닐까? 북.미 건, 남.북 이건 또는 남.북.미.중 사이건 어느 형태로 체결되어도 분단해소에 가까워진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이래 58년 동안 평화협정체결이 거부 되어온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고 오늘의 현실에서 내일의 길을 모색해 보자.

 

배경 – 정전협정은 유엔군총사령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 사이에 이뤄졌다. 전쟁당사자 남측국군총사령관은 북진통일 완수하지 않고 멈추는 정전에 반대하며 참여 하지 않았다. 협정엔‘3개월 안에 참전국정치회의에서 외국군철수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하기로’되어 있었다. 그러나 2개월 뒤 남과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미군의 무기한 주둔을 규정했다. 뒤늦게1954년 봄, 제네바에서 20개 참전국 정치회의가 열렸으나 의견차이로 아무 성과가 없었다. 그 후 더 이상 참전국회의는 없었다. 1958년 북은 중국군을 철수시키고 1961년 7월 소련.중국과 우호협력. 호상 원조조약을 맺었다.

 

1960과 1962년 북은 남에게 먼저 민족자결주의 원칙에서 남북평화협정을 하자 했다. 그 뒤 계속 외국군철수와 평화협정체결을 제의했으나 남도 미국도 응하지 않다가 1974년에야 남은 북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유엔에 동시가입하자고 응답했다. 이에 북은 유엔동시가입은 분단을 영구화하자는 것이므로 거부하고 대신 미국의회에“여러 차례에 걸쳐 남에게 제안한 군비축소, 외국군철수, 평화협정체결에 응하지 않았고 군비증강만 해 왔다. 미군이 아직도 남에 주둔해 있고 남의 군사통수권마저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남이 북과 불가침조약을 맺자는 것은 평화에 대한 아무런 담보가 없음으로 남을 지배하고 조정해온 미국과 평화협정체결을 협의하자”했다.

 

미국은 이에 답하지 않다가 1978년에 남북이 먼저 대화하고 미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을 제의 했다. 북은 1974년 제안 대로 남의 실권자 미국과 해야 한다 했고, 1984년 남과 미국 국회에 미국과는 평화협정 남과는 불가침조약을 맺자는 3자회담을 역제의 했다. 이번에도 남과 미국은 응하지 않았다. 1990년 공산권 붕괴로 남이 소련, 중국과 수교한 반면 북은 미국, 프랑스 등과 수교할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1991년 유엔에 남과 동시가입 했다. 그 해 9월 북은 유엔총회에서 아무런 실효성 없는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 미군철수와 북미평화협정체결을 다시 제기했다. 국제정세 변화로 남북은1991년 12월 기본합의와 더불어 불가침선언을 했다.

 

과정 - 정전 이래 40년을 줄기차게 제의해온 평화협정체결에 아무 진전이 없자 북은 1993년 4월, 중립국감시위원회의 체코 대표단을, 1995년 2월엔 폴란드 대표단을 철수시켜 정전감시위원회의 기능을 무력화 시켰다. 대신 북은 1994년 5월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하고 미국에 통고했다. 또 그해 12월에는 중국군사정전위원회대표단마저도 철수시켰다. 그리하여 군사정전위원회의 정전협정을 규정대로 준수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졌다. 이로 인해 판문점에서는 북과 미군 장성이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상대방이 되고 남은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미군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북은 중국군을 철수 시켰으나 남은 미군 철수를 절대 반대했다. 미국은 계속 주둔을 원하던 터였다.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견제할 동아시아의 군사기지가 필요했고, 평화협정을 하게 되면 미군도 철수하는 것이 큰 고민이었다. 다행하게도 남이 미군기지의 무상제공, 미국에 유리한 SOFA(주둔군지위협정)과 각종 직.간접 비용의 부담도 해 주기로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전쟁 때 이양 받은 남 군사작전권도 미군이 계속 행사하게 되어 국제관계에 유례 없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게다가 고맙게도 남의 경이적 경제발전으로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신무기구입비가 북의 군사비 보다 더 많아졌다. 지난 10여 년에 남의 경제력은 북의40배, 국방비는5-6배나 되며 북 GDP보다 높다. 그래도 남은 미군철수는 상상도 못하고 환원 받기로 한 작전통제권마저 연기해 달라고 했다. 미국으로선 참으로 충직한 남이 기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여 북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정보를 적절한 때에 발표해 주거나 구미에 맞게 북을 악마화해 주며 한반도에서의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하고 있다. 한편 북에서는 수백만이 굶고, 수십만이 탈북하고 있어 곧 붕괴한다고 조롱하는 남이다.

 

현실 -그런데 2010년 세계판도에 변동이 생겼다. 중국이 미국과 비등한 경제군사대국(G-2)이 되었고 한반도 안에서도 군사력에 변동이 생겼다. 북이 핵미사일 국가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고 북이 남에게 핵공격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무기는 인류사상 최초로 미국이 일본에 쓴 이래 그 인명살상의 가공성을 본 뒤, 쓰지 않고도 위협적이어서 상대방의 양보로 이득을 선취하기 쉽다. 그러나 핵 대 핵 국가의 경우엔 무력행사 보다는 실리적인 협상의 단초를 마련한다. 그런 점에서 남북이 통합해야 할 상대의 하나인 북이 핵국가가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동맹인 남.미와 북 관계의 재정리가 불가피해 졌다. 이 틈새에 재래식 군장비가 월등한 남이 북을 공격하지도 못 할 것이다. 어느 쪽에서든 공격을 하면 남북은 공멸할 것이다. 한반도에 그런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아시아의 베트남, 이라크, 아프간에 침공한 미국이 그 예이다. 허나 결국 모두 패퇴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역사를 현세에도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한반도는 분단된 두 나라인 것이 위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동안 미국은 평화협정 할 필요도 뜻도 없었다. 가만이 있어도 국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경제군사적 상황이 더 이상 미국 의도대로만 할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막대한 국가부채로 해외주둔군을 축소시켜야 할 처지에 있다. 미국이 북/남미간의 적대적 상황에서의 국익이 아니고 정상적 관계에서의 상호이익을 추구할 때가 되었다. 남북은 이런 변화를 미국이 알게 해 줌으로서 분단을 해소하고 민족중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즉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할 때이다. 이렇게 남북평화협정의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앞으로 -그런데 미국이 그럴까? 세계최빈국 북핵미사일이 미국과 남에 심대한 위협이라며 안보위기감을 조성하며 미군주둔의 명분을 합리화 하려 할 것이다. 주변국은 6자회담 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또 기다려야 할까? 이젠 그만 기다리자! 우리 겨레끼리 얘기하는 게 얼마나 더 쉬운가? 만나서 한번 트고 나면 무슨 얘긴들 못 하겠는가? 털어놓고 모두 해 보자. 국제관계의 역학을 모르는 정형외과의사의 이상적 꿈이라고? 그래 꿈이다! 남의 꿈 따라 살지 말고 우리 꿈 따라 해 보자. 남과 북 모두 정신차리고 해 내자. 우리민족에게 씌워진 분단의 멍에를 우리 밖에는 벗어 제낄자가 없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로 가능하다. 우리의 역사는 뜻 있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남들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조국의 남.북과 재외동포, 이렇게 진짜 통일연습 해 보자.

 

오 인동

(2011-12-11)

 

추신: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기념원고에 따른 각론으로 6편의 글을 보내 드렸습니다. 다음 통신은

년 말에 [2011년 Corea통신을 되돌아 보며]로 이해를 마감하고 새해 다시 시작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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