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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의 주도권 상실, 인도주의의 실종

: MB정권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평가한다

2012년 3월 13일

                                                           김귀옥/한성대 교수, 사회학    

 

 

2008년 MB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MB정부가 내세운 ‘비핵․개방 3000’은 남북대화에 있어서나 한반도 통일 환경에 우려를 낳았다. 그런 우려 속에서도 많은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6․15나 10․4선언이 있는 한 남북관계는 계속될 것으로 기대했다. 설령 정치적 대화는 어려워지더라도, 첫 삽을 뜬지 7년 만에 완공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2008년 8월)에서 이산가족 상봉이나 인도적 대북지원이나 경협은 계속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는 2009년과 2010년 단 두 차례 문 열었을 뿐이었다.

1990년대 경제난 시기 거의 붕괴된 산업 제반 시설이나 사회간접시설이 2000년대 들어 회복되기 시작했으나 2000년대 후반의 급속한 남북관계의 냉각이나 대결에 따른 사건들, 국제 사회의 대북경제제재는 다시금 북한의 식량난, 경제난을 가져왔다. 북한에서는 몇 차례 남한 정부에 쌀이나 물자지원을 요청했으나, MB정부는 북핵문제의 선결 해결 없이는 어떤 지원도 없다는 태도를 과시했다. 2008년 출범 초반, 정부 당국자는 남북대화가 막히더라도 ‘북한은 30만 달러만 주면 대화하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2011년에는 6월초에 밝혀졌듯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돈봉투사건에서 보듯 북핵 선결은커녕 신뢰의 구축이나 인도적 접근도 부재한 MB정부는 남북관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냉전적 퇴행현상의 길을 갔다.

돌아보면 지난 시기 경제 성장과 민주화의 성공과 함께 인권신장 국가로서 국제 사회에서 괄목한 만한 주목을 받았던 한국이 2009년에 이어 2010년에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한국인권 상황 나빠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1990년대 북한의 통미봉남 정책에 따라 꽉 막힌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는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을 통한 대북 접근이었다. 2000년대 들어 어렵게 국민들을 설득하여 인도적 지원을 통해 신뢰구축과 남북 상생의 길을 열어나가는데 혁혁한 기여를 했던 수많은 민간단체들을 인도적 지원사업에서 ‘열중 쉬어!’ 상태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과연 MB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이해하고나 있었던 것일까? 소위 ‘실용주의’적 대북전략 속에서 인도적 지원은 일종의 ‘복지포퓰리즘’인 것일까? 흔히 극우보수세력들이 말하듯 인도적 지원은 김정일 정권 유지를 위한 ‘퍼주기’에 불과한 것일까?

 

인도적 지원과 경제 논리는 반비례관계인가

 

인도적 지원 문제를 경제적 논리로 환원시키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지원을 오해하는 주장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므로 우선 경제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시장경제에게 인도적 지원은 무엇일까?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에게 있어서 대북 인도적 지원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지원국 경제의 걸림돌일까, 아니면 수혜국 경제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윤활유일까? 맬서스 같은 사람은 걸림돌이라고 보았으나 케인즈 같은 사람은 윤활유라고 보았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인도적 지원은 경제적 부를 갉아먹는 (-)적 요소가 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인도적 지원을 통해 실질 구매력(real purchasing power)을 기르게 되어 결국 경제에 (+)적 요소가 된다. 심지어 어떤 방식이건 지원국이 수혜국에 베푼 지원금은 부메랑처럼 지원국으로 되돌아가는 구조가 되어 있음으로서 지원국은 ‘꿩 먹고 알(차관 원금+이자)’ 먹는 격이 된다. 즉 지원국은 지원을 통하여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국가로서의 위신을 획득하게 될 뿐만 아니라, 차관의 원금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이득까지 챙기게 되고 장기적으로 시장 선점의 효과마저 낳아 왔다.

그렇다면 남북 관계에서 인도적 지원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해 왔을까? 지난 10년간 인도적 지원은 경제적 논리를 항상 비켜서 있었다. ‘퍼주기 논쟁’이 그 예이다. 인도적 지원은 냉전적 이념이나 남북의 대결적 구도를 떠나서 단기적으로 보면 퍼주기적인 성격이 있음은 인정할 수 있다. 왜냐면 인도적 지원이 쉽사리 실질 구매력, 또는 GDP로 나타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했듯 인도적 지원을 경제적 환원론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인도적 지원은 인간 간의 문제이다. 인간 간의 문제는 경제논법으로 1+1=2으로만 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도적 지원을 손해 보는 장사로서만 여기는 장사치적 이해타산가들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도록 한다. 인도적 지원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공한 사례의 하나가 한국이다. 미국인 가운데 한국을 떠올려 보라 하면 많은 미국인들, 특히 고령자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 당시 자신들이 주었던 인도적 지원, 성금을 떠올린다. 그 성금이 곧바로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거나 촉진제였다고 하기에는 무리는 있으나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다. 실제 1950년대 한국은 해외 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인데, 해외 원조의 98%이상을 미국이 담당했다. 그들의 지원은 한국에 있어서 전후 복구 건설 자금이 되기도 했고 일반인의 의식주 자금과 현물로도 사용되었고, 군비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막대한 지원은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의 초석이 되었고, 장기적으로는 한미동맹을 지속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되었다. 지원을 통해 한국의 전반적 경제 구조나 사회간접시설 등을 미국식으로 전변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인도적 지원은 엄청난 나비효과를 얻은 것이다.

따라서 국가 간 인도적 지원은 퍼주기, 즉 지원국에 있어서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 효과와 함께 국가 차원의 신뢰를 얻어 공고한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수혜국으로부터도 지원국이 경제적으로 이익을 얻는 ‘마중물’같은 것이다.

 

역대 정부의 대북 지원 현황

 

이제 본격적으로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에 접근해 보기로 한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우려가 많았다. ‘실용’을 앞세운 정부의 대북 비전이라고 불린 ‘비핵․개방 3000’개념 속에는 그간 남북문제를 푸는 데에 화해의 메시지 역할을 해온 인도적 문제를 논의할 여지가 적어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현 정부는 은근히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는다’와 ‘버릇고치겠다’는 입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즉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는 북한에 퍼주기만 하고 북한에 끌려갔으며 북핵을 만드는 것을 좌시했다는 뉘앙스를 보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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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제3세계에 대한 개발 원조 매니지먼트였던 존 퍼킨슨(John Perkins)의 고백에 따르면 미국은 제3세계에 대한 차관을 포함한 각종의 개발 지원비는 결국 미국으로 되돌아오는 시스템과 내용을 갖고 있다고 자신의 ‘경제저격수’수의 경험을 통해 증언한 바 있다. John Perkins, 김현정 옮김, 『경제저격수의 고백』(서울: 황금가지, 2005).

2. 김대환, 「1950년대 한국경제의 연구」, 『1950년대의 인식』(서울: 한길사, 1981), 214쪽.

 

 

 

우회적으로 추론하면 대북 인도적 지원과 북핵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직접적으로 보면 연관성을 밝히기는 어렵다. 한 예로 1998년 8월말, 극심했던 북한의 경제난에 대한 한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렸던 것을 상기할 수 있다.

이제 1995년 이래로 최근까지 대북 지원액 현황을 살펴보도록 한다.

 

정부별 대북 인도지원액 현황

(단위: 억 원(%))

구분

1995~99

김대중정부

(2000~2002)

노무현정부

(2003~2007)

MB정부

(2008~2010)

합계

정부차원

무상지원

당국차원

2,193(66.4)

2,460(33.2)

6,413(33.9)

112(5.2)

11,178

민간단체를통한 지원

-

161(2.2)

653(3.5)

339(15.7)

1,153

국제기구를통한 지원

418(12.6)

472(6.4)

960(5.1)

414(19.1)

2,264

2,611(79.0)

3,093(41.8)

8,026(42.4)

865(40.0)

14,595

식량차관

-

2,567(34.7)

6,161(32.6)

 

8,728

2,611(79.0)

5,660(76.4)

14,187(75.0)

865(40.0)

23,323

민간차원(무상)

694(21.0)

1,745(23.6)

4,721(25.0)

1,302(60.0)

8,462

총액

3,305(100.0)

7,405(100.0)

18,908(100.0)

2,166(100.0)

31,784

자료: 통일부 2010. 12월말 현재.

 

 

김대중 정부 3년, 노무현 정부 5년, 현 정부 3년간의 대북 인도지원액을 비교하면 지난 노무현 정부 당시 가장 많이 지원했음을 알 수 있다. 각 정부의 연 평균 대북 인도지원액을 비교하면 김대중 정부 1,481억 원, 노무현 정부 3,781억6천만 원, 현 정부 722억 원. 2007년 GDP 대비 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 지원 규모는 0.07%이고, 2010년의 그것은 0.006%로서 노무현 정부 GDP 대비 MB정부의 그것은 1/10에도 미달하는 규모이다.

그 가운데 정부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비교해 보면 김대중정부가 76.4%, 노무현정부 75.0%, MB정부 40.0%를 차지했다. 정부차원의 연 평균 지원액으로 나눠 보면 김대중정부 1,886억7천만 원, 노무현정부 2,837억4천만 원, MB정부 평균 지원액은 283억3천만 원으로서 김대중정부의 그것은 노무현정부의 66.5%, MB정부의 그것은 노무현정부의 10.0%, 1/10에 불과하다. 체감하듯 식량과 같은 유상 차관은 MB정부 하에서 ‘0’이다.

현재 OECD 국가의 1인당 소득(GNI) 중 정부원조 비중은 평균 0.33% 수준인데 우리나라의 해외 원조비중은 0.10%로서 OECD 국가 가운데 상당히 낮은 실정이다. 그런데 대북지원은 0.1%도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한국도 장기간 해외의 지원과 원조에 의해 배고픔을 극복했고 이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나라로서, 다른 나라도 아닌 제 민족 도와준 것에 대해 퍼주기론을 앞세우는 문제에 대해서 조금은 겸손할 필요가 있다.

1995년 북한이 국제 사회에 구원의 손을 내민 이래로 2007년까지 북한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비록 대북 지원 사업이 ‘퍼주기’논쟁에 휘말려 종종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나, 북핵문제로 인해 남북관계가 뜸해지거나 간혹 급속하게 냉각될 때, 남북 간의 대화 채널로 착실히 역할해 왔던 것이 대북 인도적 지원 단체들이었다. 1990년대 중, 후반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이 지원물품을 가지고 북한에 갔을 때만 해도 거만하기 짝이 없던 북한 당국자들이 2000년 이래로 차츰 겸손해지고, 간혹 솔직하게 자신의 현실과 문제들을 고백하며 요구사항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게 바로 불신을 넘어 신뢰를 쌓아가는 변화가 아니겠는가. 사람의 변화는 아래로부터 체제를 변화시키는 조건이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도적 지원의 철학이 필요하다: 누구를 위한 지원인가

 

MB정부 출범 3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1994년 6월 위기를 떠올릴 만큼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2008과 2009년에는 북핵 중단 없이 어떤 인도적 지원도 없다고 했던 대로 정부차원의 인도적 지원은 ‘0’원이었다. 그나마 진행되었던 인도적 지원은 민간단체와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정도에 불과하다.

남북의 특수한 민족관계에서 인도적 지원은 과연 누구를 위한 지원이라는 말인가? 한반도적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동족애를 발휘하여 굶주리고 헐벗은 같은 민족의 일원을 도와준 것이고 지구적으로 생각하면 인류애를 발휘하여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을 구해준 것이다. 그런데 지원을 경제학적으로 살펴보면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의 정신처럼, 취약해진 북한 경제의 바탕에서 노동력과 구매력을 증진시켜 북한의 변화를 아래로부터 가져오도록 하여 남북의 경제적 격차, 제도적 격차를 좁혀나갈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확실한 대안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단기적으로는 북한 주민에게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남측에 더 큰 이익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인도적 지원은 지원국의 도덕적, 양심적 행위에만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명분을 쌓으면서도 쌍방 모두 경제적 실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손해가 아니다. 더욱이 인도적 지원국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주도권을 획득할 수 있는 점에서 정치적 역량 강화에 주효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퍼주기 주장이야말로 근시안적, 단기적, 비경제학적, 비정치적 주장일 수밖에 없다.

또한 MB정부는 2008년 출범 당시 ‘인권외교 및 문화외교 강화’를 일반국정과제로 설정하였다. 그에 따라 2008년 12월 26일에는 한나라당 20여 명이 ‘북한인권법’을 제안하여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되어 있으나 민주당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2011년 8월에도 김문수 경기지사는 북한인권법 국회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2004년과 2005년의 미국과 일본의 북한인권법의 연장에 있는 한국의 북한인권법을 면밀히 검토하면 ‘북한’의 인권 없는 인권법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인권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목표로 해야 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상정된 북한인권법에서는 북한 주민 인권 개선과 직결되는 인도적 지원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제8조는 인도적 지원에 대한 분배투명성의 보장을 언급하였다. 즉 분배투명성을 위한 모니터시스템, 모니터요원의 상주 등의 문제가 선행되어야 함을 명시하여 분배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인도적 지원이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오히려 그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의 실질적 인권 개선보다는 탈북자와 탈북지원단체에 대한 지원이나 MB정부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북한인권자문위원회, 북한인권재단, 북한인권대사,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등의 설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도적 지원의 확대는 경제협력으로 이어진다

 

2000년대 중반 들어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기술”을 북한에 보내자는 주장이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 사이에서 나오면서 대북지원 내용이 바뀌기 시작했다. 때마침 북한에서도 쌀 지원보다도 비료 제공이나 차라리 기존의 비료공장을 가동하고 재건하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지원품목이 쌀, 담요, 분유, 식용유, 라면, 의약품 등에서 비료, 농기계, 농자재, 씨감자, 의료설비, 농업용비닐 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대북 지원 단체들이 과거 일회적 구호물자로부터 아동급식용 콩우유공장이나 빵공장, 국수공장, 학용품공장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인식과 정책이 바로 긴급구호성 지원에서 개발원조 정책으로의 방향 전환이다. 즉 긴급구호성 지원에서 개발 원조로 전환하자는 것은 지원을 통한 미래 통일사회를 준비하자는 데 있었다.

예컨대 빵을 지원하는 것과 빵공장을 지원해 주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빵은 한 번 먹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빵공장과 기계 설비 공여는 남북 간의 지속적인 관계를 파생시켜 나가는 조건이 된다. 남측의 기계와 자재, 기술, 기술자, 북측의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결합 과정에서 북측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남측의 기계와 일하는 방식, 기술 등에 적응하게 된다. 그 결과 빵과 같은 긴급구호품을 지원하는 것은 일회적이지만 사회간접자본이나 생산 설비나 시설, 기계 등을 지원하는 개발원조는 남북경협과 유사한 효과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남북 경제 통합의 과정으로 진입하게 되는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2009년 6월 북한의 핵 실험과 인공위성 발사 소동 등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이 주도하여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가 채택되었다. 그때 유럽연합도 대북 제재에 참여했지만, 인도적 지원 사업은 계속하기로 했다. 왜냐면 대북 제재안에는 인도적 사업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유럽연합은 대북사업을 위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모두 3천 500만 유로(약 4천 200만 달러)를 지원금으로 책정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올 한 해 동안 보건의료와 식수위생 사업을 위해 약 300만 유로(약 400만 달러)를 지원하게 된다. 2007년에도 세계식량계획(WFP) 랄프 쥐드호프 대변인은 지난 12월 1일 “독일과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이 대북지원에 잇따라 참여함에 따라 2008년 5월까지 대북지원 목표액 1억223만 달러의 50%에 이르는 5천95만4천 달러(11월27일 현재)가 모금됐으며, 앞으로 대북식량지원에 동참하는 국가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2011년 들어서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000만 유로(약 155억 원)를 대북 구호식량 지원금으로 책정했다고 7월초 밝힌 바 있다. 유럽연합은 대북지원에서 문제점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는 지원모니터링 문제도 해결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게 바로 신뢰를 통한 변화의 예라 할 수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는 유럽연합의 많은 민간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한 민간단체에는 CESVI(이탈리아), Concern(아일랜드), Children's Aid Direct(CAD, 영국), Action Contra La Faim(ACF, 프랑스), MSF(프랑스), Triangle(프랑스), German Agro Action(독일) 등이 있다. 유럽연합의 대북 식량 지원 중 2/3은 단순 식량지원이고 1/3은 농촌개발, 비료지원, 협동농장 개선을 위한 시범 프로젝트 및 기술지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1985년 창립한 이탈리아의 개발NGO인 CESVI(Cooperazione e Sviluppo Onlus,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1997년 북한 기아 구호 사업을 시작하여, 2000년대에는 강원도 지역의 보육원시설 및 생활환경 개선 사업과 식수공급 및 하수도 설치 사업을 전개하였다. 3개년간 황해북도 지역의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새로운 농법 도입과 전문지식 습득을 위한 재교육 과정과 해외 견학 등을 실시하였다. 또한 3년간 강원도 몇 개 군을 대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다양한 농법을 전수하고 질 좋은 종자 및 비료를 배급하며 새끼 염소를 사육하는 방법을 전수하는 일을 착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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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합뉴스』2007. 12. 3

 

 

 

그렇다면 악평이 나있는 북한에 대해 왜 유럽연합의 정부나 민간단체들은 꾸준히 인도적 지원과 개발 지원을 하고 있는가? 이탈리아의 예를 보듯이 그들은 인도적 지원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에 자신의 기술과 자본 시장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고 있는 것이다. 타인이 주도하는 개방을 앞세우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수혜가 아니라 개입이자, 식민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조선조 말기 대원군의 쇄국정책이나 북한의 자립경제 정책이 이와 다르지 않다. 억지로 옷 벗기기보다는 스스로 옷도 벗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바로 햇볕정책이 아니겠는가.

 

북한인권 문제의 첫걸음은 경제난 해소

 

1년 정도의 잔여임기를 두고 있는 MB정부에서 인도적 지원을 통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그 답은 대단히 비관적이지만 인권문제나 인도적 지원문제를 코앞의 손익계산법을 버리라고 충고하는 것은 더 이상 MB정부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다음 정부는 한반도를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볼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 일본 경제가 정체 일로를 걷고 있다고 할지라도 단기간에 주저앉지는 않을 자본주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중국 경제야 말로 세계를 좌지우지할 힘을 갖게 되었다. 또한 세계는 경제 공황 상태에 빠져 있고, 미국과 중국 등은 그 틈을 타서 군사비를 확장하고 있다. 주변국 누가 한반도의 통일과 번영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것인가? 오히려 한반도 분단과 대립은 주변국들의 파워게임을 할 수 있는 좋은 빌미만 될 뿐이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이나 북한이 새로운 전기를 맞기 위해서는 통일을 상정하지 않는 전망은 상호 멸망의 길일뿐이다. 통일의 길에 한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개발원조는 신뢰를 구축하고, 한국의 주도권을 획득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런데 MB정부만이 아니라 다음 정부라 할지라도, 북한의 개발 원조나 경제 회생을 일국이 전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교훈적으로 볼 때,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하고 한 후, 휘청거렸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북한 주민을 제대로 먹여 살릴 수 있고, 남북 경제 공동체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국제기금이 적절히 투입될 필요가 있다. 국제 개발원조 기금이 투입되기 위해서도 북한의 개방은 필수조건이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내외이다. 경제력이 이만큼 크기까지 한국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함께 외국의 인도적 지원과 원조가 있었던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올챙이 적을 잊어버린 개구리 격이다. 역사는 반드시 일직선 방향으로 진화되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을 그리고 있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싶다.

이제 한반도가 분단된 지 66년이 넘었다. 분단은 남북 사회에서 엄청난 질곡이고 한계로 작용했고 치르지도 않아도 될 천만금의 분단비용을 치르게 했다. 더욱이 분단은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분단만이 아니라, 남한을 ‘섬 아닌 섬’이 되도록 강요했다. 비행기나 배가 아니면 도로나 철길로는 남한을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지난 60여 년 동안 남한은 ‘반도’ 국가가 아니라, ‘섬’이 되었다. 우리는 섬으로 위치지어지지 않았지만 섬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형적 섬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60년을 이렇게 산 것도 억울한데, 우리의 후손에게도 대를 이어 분단비용을 치르고, 기형적 섬에 살도록 하는 업을 물려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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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민족서로돕기 역음, 「CESVI in DPRK」, 『NK Channel』, 2004. 4월호.

 

 

 

이러한 분단비용은 한반도 주민의 인권적 상황에 위기를 야기하다 조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경제력이 클 때에는 나눌 수 있는 떡의 크기가 일정한 정도 보장되어 비인권적 상황이 감소될지 모르지만, 분단체제 하에서 분단비용, 사실상의 군사비가 유지 또는 증대되는 형편에서는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면 인권적 조건이 우선적으로 악화될 수 있음을 지난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특히 1990년대 북한의 경제난이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 통일이야 말로 한반도 주민을 행복하게 만들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제일의 조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북한 주민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적극적인 방식이고, 인권을 회복시키는 길이며, 나아가 한반도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제 MB정부는 북한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다음 정부가 어떤 성격의 정부가 되더라도, 한반도 미래를 희망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냉전적 퇴행현상을 훌훌 털어내야 한다. 탈냉전 시대, 대북 인도적 지원은 한반도가 새로운 평화 시대로 접어들 수 있도록 하는 열쇠이자 시금석이다. 또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도덕적 명분만을 쌓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남북이 상생할 수 있으며, 북한으로 하여금 개방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길이다. 진정한 인도주의 앞에 적(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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