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으로

 전체기사 | 소식615정신615유럽공동위 | 유럽운동사 | 문화 | 자료 | 인명자료 | 산행 | 건강관리+음식 | Deutsch

 

하이네의 „하르츠 여행기“

시대의 파도들 한 가운데에서

 

독일 작가들 중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가들은 아마도 괴테(1749-1832)와 하이네(1797-1856)일 것이다. 괴테는 그의 비극 „파우스트“요, 하이네는 그의 노래 „로렐라이“ 때문일 것이다. 전자는 독일 고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요, 후자는 독일 낭만주의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 대한 이런 초보적이고 대중적인 소비지식 차원에서 벗어나서 그들에 대한 우리의 교양과 사고와 인식을 드 높혀 줄 좀 더 전문적이고 생산적인 고찰을 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 두 작가들은 인간적, 작가적인 측면, 그리고 사회적인 역활면에서도, 서로가 이질적이고 상반되는 작가의 원형적 유형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작가로서의 근본적인 존재의 차이와 모순들을 전형적으로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그 차이와 모순들의 인식과 비교는 우리로 하여금 이상적인 작가의 상에 대한 인식과 모색에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작가들을 한 마디로 짧게 정의 한다면, 괴테가 인간과 자연, 이상과 현실의 균형과 조화와 합일을 추구하는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였었다면, 하이네는 꿈과 현실, 인간과 사회,문학과 정치 사이의 균열, 분리, 양극화와 같은 과도기 시대의 현상들이 제공하는 상극과 병존의 아픔과 고통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그 극복을 위해서 고민하고 투쟁을 했던 낭만주의 작가였다. 후자는 그 당시 시대의 무대에서 이미 작별을 고했던 낭만주의와 새롭게 등장하는 사실주의 시대가 마찰하는 중간지역에서 살았던 작가였다. 괴테가 인간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긍정적’ 시각의 작가였다면, 하이네의 인간상과 문학상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특징 짓는다. 이 때의 긍정과 부정이라는 표현은 그들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언어가 아니고, 그들이 살았던 조화와 균형의 고전문학 시대와 현대사회의 균열과 부조리가 시작하는 사실주의 시대의 밝고 어두운 양면성을 단지 가리키기만 하는 가치 중립적인 표현들이다.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유럽의 정치는 큰 지각변동을 맞았고, 봉건사회의 몰락, 산업혁명, 자본집중, 노동자착취 현상들은 사회와 경제의 격동기를 연출시켰으며, 예술과 문학도 꿈과 이상과 환상세계에서 벗어나서 적나라한 현실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었다. 이런 시대의 전과 후에 각각 살았고 그 시대들을 대표하는 괴테와 하이네의 시대와 문학의 인식적 시각과 방향들은 그렇게 서로 달랐다.

변혁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야만 했던 하이네는, 만족스럽고 행복한 인생의 조건들을 소유했고 안정된 시대를 살았던 행운의 괴테와는 달리(괴테의 간추린 생애와 그의 작품, 특히 파우스트에 대해서는 저자의 졸고 „튀링겐주의 문화와 문학기행“을 참조하기 바람), 자신의 불우한 개인적 삶의 상처와 고통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현실과 정치와 사회가 주는 모순과 고통을 미모사처럼 예민하게 느끼고 함께 아파했던 작가였다 (하이네의 상처와 고통의 생애, 그의 비판과 이로니와 풍자적인 작품 일반에 대한 소개는 저자의 졸작 에세이 „꾀꼬리와 가시 밭과 이로니“를 참조 하기 바람). 그는 유럽의 반유대주의 사상이 가장 극심했던 독일에서 유대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태어났다. 그 낙인은 한 평생 상흔으로 남아 그를 괴롭혔다. 그는 부정적인 시대와 불의하고 낡은 전통을 거부하고 비판했으며, 새로운 사회와 현실과 미와 예술을 창조하려는 독일의 진보 지향적이고 지성적인 시인이었다. 복고적이고 보수적인 프러시아정권은 진보 성향의 유대인 작가를 허용하지 않고 추격하고 배척했기 때문에, 그는1831 자신의 고향인 독일을 버리고, 빠리로 도피해서 그 곳에서 죽음까지 맞이한 독일의 망명작가였었다. 그는 독일과 빠리에서 1830년의 7월혁명과 1848년의 2월혁명을 두 차례씩이나 몸소 체험을 했었고, 봉건 자본주의에 반기를 들고 태동했던 초기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체험한 중요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살았던 작가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처럼 격동하는 시대와 조류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던 하이네의 정치적, 문학적, 종교적인 정체성이 어디에 있었을가 하고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가면을 쓴 이중적 작가, 기회주의자, 이기주의자, 배신적 작가라고 동시대나 후세의 작가와 평론가들로 부터 비난을 많이 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의 인간적이고 문학적인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가? 시대의 흐름인 혁명을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시종일관 추종한 정치적 참여작가였을가, 아니면 진보성과 복고성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비정치성 예술 작가이었을가? 이 본질적이고 큰 질문은 차라리 그의 후기 작품들인 „독일, 겨울동화“, „루드빅히 뵈르네, 회고문“, „아타 트롤“, „로만체로“나 그 외의 수 많은 정치, 문화, 역사를 다룬 신문기사들에서 정답을 얻기가 더욱 쉽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의 초기 작품인 „하르츠 여행기“ 속에서도 그의 정치와 문학의 정체성을 어느정도 미리 예견하고 감지할 수가 있다.

그의 출생 도시 뒤셀도르프의 한 카톨릭 고등학교를 졸업한 하이네는 함부르크에 사는 부유한 사업가요, 은행가인 삼촌 살로몬의 제안으로 프랑크푸르트와 함부르크에서 상인 직업을 시도 했었다. 그러나 모두 실패를 하자, 삼촌은 그에게 3년간의 학비를 제공하며, 법학공부를 추천했다. 하이네는 본 대학에서 법학강의 대신 문학강의만 듣다가, 1820년 괴팅겐 대학으로 옮겨서 다시 법학강의를 듣기 시작했었다. 첫 학기에 학생교우회(Verbindung)에서 어느 학생과 결투사건을 일으키고 정학처분을 당했다. 베르린대학으로 적을 옮기기 직전 그는 약 4주동안 하르츠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 여행결정의 동기는 우선은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 때문에 지속적으로 받는 심리적인 압박감, 자기의 첫 사랑인 함부르크의 사촌누이동생 아말리아에게서 받은 아픈 실연, 그리고 독일의 진부하고 편협한 교육기관인 대학과 그 학생들에 대한 회의와 실망감같은 정신적, 심리적, 사회적인 갈등과 고통, 그리고 병약한 그의 체질을 자연의 품 안에서 잠시나마 치유하며 위로를 얻으려는 필요성, 아울러 자연으로 부터 새로운 시적영감을 찾아 보려는 작가적 요구 들이었다.

그의 여행노정은 브록켄산의 서쪽인 오버하르츠, 브록켄정상, 그리고 동쪽의 운터하르츠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괴팅겐에서 오스테로데, 클라우스탈 첼러페르트, 고슬라, 브록켄산 정상, 일젠계곡, 일젠부르크까지 몇 날 몇 일을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끼고, 동행인들과 담화하고, 사색하고, 상상한 모든 것을 풍자, 이로니, 조소로 일관하는 하이네적인 문체와 어법으로 표현해서 적은 것이 바로 이 여행기이다. 1826년 출판 된 이 여행기는 이듬 해에 출판 된 그의 유명한 „노래 책“과 함께 독자 들의 인기를 끈 그의 초기작품이다. 재미있는 그의 풍자, 이로니, 휴모어 때문일 것이다.

 

하이네의 자연

사람들이 자연 속을 거닐면서 자연을 보는 시각은 제 각기 다르다. 자연이 주는 외적인 감각을 단순히 일차원적으로만 받아 들이는 감정적인 수용이 그 대부분일 것이다. 실용주의자들이나 실리주의자들은 자연 속에서 자신의 건강치유나 관리 혹은 정신적인 위로에만 치중 하거나, 또는 인간의 물질적인 행복이라는 이름하에 자연의 자원과 재원의 착취행위에만 집착을 한다. 예술가들은 그와는 달리 자연의 미를 감상하고 심취하며 자연으로 부터 직관과 암시를 받아서 시, 음악, 그림들을 재창조 해낸다. 그러나 하이네의 자연관은 적어도 그의 초년기에서는 단순히 자연의 미와 순수함만을 찾는 순수예술적 시각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의 자연은 순수한 미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 정치, 사회, 역사라는 현실과 그 과거의 모습들을 연상시키고 기억하게 해주는 장이었다. 자연은 그가 그려내는 사회, 인간, 자연의 상상화들이 투영되는 일종의 화폭이다. 그가 보고 느끼는 감성적인 자연을 상상화 시켜서 부정적인 시대와 사회를 노출시키게 하거나, 새로운 인간과 사회를 문학적으로 재 창조하게 하는 동기를 제공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그는 자연 자체 보다는 인간사회에 더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괴테에게 자연이란 인간과의 이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조화와 질서의 세계를 구성하는 대우주의 한 부분이지만, 하이네에게 있어서의 자연은 이미 인간사회와의 조화에서 균열 분리되고 소외된 자연이다. 그에게는 현실을 초월하고 이상과 신비와 영원의 세계를 동경하던 과거의 낭만주의가 보았던 꿈 속의 자연은 이미 상실된지 오래이다. 물론 자연의 미와 신비와 영원성을 중요시하는 낭만주의가 그의 문학의 고향이고, 또 그 전통을 전수받은 하이네는 이 여행기의 후반 부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감성미에 빠져서 아름다운 시들도 삽입시키고 있지만, 그 자연에는 그 자신의 참다운 자아가 부재하고, 자연과 자아의 진정한 혼연일치가 아닌 허위적이고 유희적인 일치만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자연의 묘사 보다는 자연에 비추어진 자기 자신과 시대와 정치와 문학이 처한 제반 현실의 노출과 반영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괴테의 자연이 형이상학적이고 이상적인 세계의 상징이라면, 하이네의 자연은 이 지상 현실세계의 문학적인 재현과 반영이다. 하르츠 지방 자연 속의 여행을 다룬 여행기가 자연 보다는 당대의 시대와 사회와 문학을 묘사하고 있다면, 하이네는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와 문학을 이야기 하고 있고, 그들을 어떤 문학적 수단과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을가?

 

하이네의 무기 풍자와 이로니

하이네는 동시대의 유명한 작가 장 파울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자들인, 아익헨도르프, 브렌타노나, 영국의 바이런들과 함께 공감하고 느꼈던 세계균열(Weltzerrissenheit)이나 세계 고(Weltschmerz)를 그들처럼 고통과 비탄과 애도로만 수용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과 멜랑콜리의 차원을 넘어서 전통적인 꿈과 환상의 낭만주의를 문학적 수단들인 이로니, 위트, 휴모어, 풍자, 패러디를 통해서 현실적 낭만주의로 과감히 전환시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세계의 허위와 가식, 편협과 옹졸, 우매와 타성, 그리고 썩은 타협들을 통쾌하게 폭로 고발하고 비웃는 낭만주의 문학, 현실통찰, 비판,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낭만주의 문학을 더 중요시 했다.

휴모어는 장 파울이 잘 규정한 것처럼, 영국적인 웃음과 익살을 통해서 적도 따듯하게 감싸안는 포용력을 지닌 문학의 평화적인 표현방식이고, 풍자는 독자들의 도덕지양이나 훈계의 목적으로 세상의 현실, 정치, 사회의 악과 불의와 우매성을 희극적으로 폭로, 비판, 조롱하는 공격적인 문학의 자세를 말한다. 풍자는 세상의 모순이나 가치들을 과장, 왜곡, 부적절한 비교와 대조라는 형식과 수단을 통해서 야유를 한다. 패러디는 공격대상을 조소하고 비판할 목적으로 대상을 흉내내고 모방을 하지만, 그러나 그 대상과는 전혀 다르거나 반대적인 형태의 모방형식을 사용하면서 그 대상을 조소하는 문학형식이다.

이로니는 작가와 독자가 서로 공유하는 암묵적인 인식의 장을 우선 전제 한다. 그 전제 하에서 작가가 독자들이 소유하고 감지하는 이상과 현실, 의도와 결과, 필연과 불충분사이의 균열, 모순, 불협화음들을 독자의 의도와는 전혀 달리 왜곡 과장하고, 거리감을 두면서 폭로, 조소, 냉소하며 상처를 주는 문학의 형식이다. 이로니는 작가가 독자에게 하는 말을 자기가 의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거나 반대적인 말로 표현 하기 때문에 반어적이다. 예를들면 상대를 허위로 거짓 칭찬을 하지만 그 것은 간접적인 질책과 비난이다. 이로니는 높은 위치에서 차고 날카로운 지적 비판과 유희를 하는 고차원의 문학형식이기도 하다. 이로니는 풍자나 패러디처럼 분명한 공격대상을 반드시 소유 할 필연성은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로니에서 비난과 공격의 대상은 주로 부정적인 타자이지만, 그 이로니는 타자의 부정적인 차원을 비약 해서 비공격적이고 철학적이며 우월적인 시각으로 조망하는 특성도 지녔고, 또 타자를 그렇게 비난하는 자기 자신을 조롱하는 자조적 이로니도 있기 때문이다. 이로니는 자기 자신이 비난과 공격의 대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을 냉엄하게 제외 시키는 우월감도 가졌지만, 그 반면 독자가 그 대상을 이해하고 불편한 심정을 갖게될 때, 그 이로니는 비로소 효용성과 현실성을 얻은 성공한 이로니가 되는 것이다.

하이네의 이로니는 작가의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독자에 의해서 뚜렷히 인식되어 질 수있는 풍자성 이로니이다. 하이네는 공격대상을 정확하고 분명히 포착한 후, 의도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희화화시키고 조소 야유 하면서, 그 대상들로 하여금 자신이 그 조소의 대상임을 의식할 수가 있도록 명확하고 분명히 표현하는 계몽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의 이로니는 낭만주의적인 철학의 형이상학적인 사색이 아니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이비 이성과 계몽주의를 부정하고 질책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위요 투쟁이었다. 그가 그의 전 생애 동안 독일과 빠리에서 집필한 수많은 신문기사들이나 문학작품들이 독일 정부의 가혹한 검열과 삭제의 희생이 되었던 이유가 바로 그의 구체적인 현실비판 행위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그의 정치관, 종교관, 인생관, 문학관과 대립되는 수 많은 작가, 정치인, 문화인들과 끊임없는 논쟁의 전쟁을 벌여야 했던 이유도 그의 집요한 현실참여와 개혁의식때문이다.

진보적인 정치관, 문학관을 소유한 하이네는 1830년 7월혁명 이 후 독일에서 형성된 자유와 민주공화국이념을 신봉하는 정치참여 문학가들의 모임인 „독일 청년“(Junges Deutschland)파나 „3월혁명 전 시대“(Vormärz) 파들에게 반기를 들었던 보수작가 멘첼, 또는 이 들 진보그룹들 속에서도 과격파 작가들인 뵈르네, 라우베, 구츠코, 륙커트, 우란트들도 조롱 힐난했기 때문에, 그들 보수와 진보작가들 모두로 부터도 비난과 배척을 당했다.

그러나 하이네는 타자를 비판하는 타자 이로니에 늘 자신을 관조 비판 조소하는 자아 이로니를 동반시키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의 자아 이로니의 진행과정은 우선 작가 자신이 부조리하고 불충분한 현실을 인지하고 고통을 받는다. 제 2의 단계는 그 고통을 받는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서 바라 본다. 그리고 거울에 비추어진 상처받고 아파하는 자신을 다시 신의 위치와 같은 고차원의 위치에서 조소하거나 동정하면서 조감하고 관조하는 세 단계의 자아인식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마지막 단계가 하이네에게는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하이네는 왜 그렇게 남과 자기를 늘 빈정거리고 조롱하는 이로니의 작가가 되었을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고통과 아픔의 작가이다. 수려하고 꿈꾸는 듯한 얼굴과 냉소하는 듯이 올라간 입 언저리, 약간 가는 몸매, 그리고 예민하고 날카로운 지성미를 소유하고 태어난 하이네는 병약한 체질과 늘 지속되는 두통, 그리고 만년에는 척수폐결핵으로 한 평생 병마와 싸워야만 하는 육체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괴팅겐대학에서 법학학위를 받고, 1825년 신교로 개종을 하고, 하리라는 유대 명을 하인릭히라는 독일 명으로 개명을 한 후, 법율가의 직업을 찾았지만, 유대혈통 때문에 모두가 좌절되는 쓴 경험을 했다. 그는 또한 신교와 유대교 두 종교들 모두와도 대결을 하게 되었다. 신교로 개종한 그가 아직 계몽되지 않은 전통 보수유대인들을 비난 했을 때에, 그는 그들로 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그가 독일의기독교 보수주의자나 국수주의자들을 편협하고 교조적이며 가식적인 종교주의자들이라고 비난을 했을 때에는, 그는 그들로 부터 반유대주의의 공격 뿐만 아니라, 이중적 배신자요 적이라는 보다 더욱 심한 공격도 받게 되었다. 그는 또한 그를 에워싸고 있는 중과부적의 적들인 보수 반동적 작가나 과격주의 애국작가들과는 늘 혈혈단신으로 대적을 했다. 그들과 나누는 정치와 문학논쟁에서 그는 그의 정확하고 날카로운 지성과 방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독설, 재치, 비꼬는 이로니나 풍자라는 지적인 무기로 상대방과 싸웠다. 이렇게 태생이 조용하고, 친절하며, 말을 아끼고, 꿈꾸기 좋아하는 작가를 그의 시대와 사회는 그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싸우는 싸움의 작가로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길 수가 없었던 하이네는 풍자와 조소와 이로니라는 우월적이고 지적인 문학적 수단으로 그들을 조롱 야유하고 제압했다. 이 방법만이 그들을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면서 승리할 수있는 그의 유일한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로니와 풍자의 소설 동끼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를 존경한 이유도 그와 공유하는 이러한 문학적인 친화성 때문이었다. 하이네는 본질적으로 연약하고 생을 즐기려는 감성적, 향락적, 귀족적인 작가이었지, 그의 친구이면서도 적수인 애증의 작가 뵈르네(Ludwig Börne)처럼 확고한 원칙과 의지와 투쟁정신을 소유한 정치적 작가는 아니었다. 그는 재능은 있지만 성격이 없다는 비난을 늘 받았다. 그러나 그가 처했던 인간적이고 작가적인 불리한 상황은 우선 그를 그의 문학적 재능이요 무기인 풍자와 이로니로 남을 공격하고 자신도 방어하는 정치적 작가로 만들어 준 것이다.

 

독일의 속물 근성

풍자와 이로니로 충만된 하이네의 여행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조소하고 있는지 이제 살펴 보기로 하자. 하이네가 평생동안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적은, 한 편으로는 그 당시 독일을 지배하고 있었던 반 혁명적, 비정치적, 보수적인 독일 지성인들과 일반 대중들의 속물 근성(Philistertum)이요, 또 달리는 혁명과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이성을 잃은 채 맹목적이고 획일적으로 신봉하며 선동을 부리는 폭력적이고 과격한 사이비 진보주의자들이었다. 하이네는 이 두 무리들과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두고 대적을 하며 싸워야만 했었다.

하르츠 여행기는 괴팅겐 대학과 그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속물성에 대한 강한 풍자와 조소로 시작된다. 허위와 가식, 옹색하고 온정없는 인간사회를 벗어나서 자유와 따뜻한 사랑과 경건한 움막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비웃겠노라는 내용의 „서두 시“는 그의 여행기의 목적과 의도와 서술방식을 미리 예견시켜 준다.

1730년대에 창설된 이후 오늘 까지 수많은 유명한 인문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들을 배출했고, 또 그 당시 독일의 계몽과 자유운동에 기여했던 명망있는 괴팅겐 대학에서도 1812 나폴레옹이 러시아전쟁에서 패배하자, 학생들은 자유전쟁을 통한 자유, 혁명, 민족독립사상에 심취되었다. 그들은 대학에서 여러 학우회(Burschenschaft) 를 조직하고 자유주의 정치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그 운동은 1815이후 독일 복고주의 정부의 강력한 보수정책 때문에 금지되었고, 점차적으로 쇠태 타락하고 세속화되어 갔으며, 학우회들도 저속하고 유치한 학생들의 사이비 정치유행단체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이네는 애초의 자유와 혁명운동의 참된 의미를 상실하고 현실과의 대결의식조차 상실한 단체와 학생들에게서 참을 수없는 절망과 분노심을 품게 되었다. 부유한 귀족자제들은 학문대신 방탕한 주색생활에 젖어 있었고, 교수들도 정치개혁이나 자신의 새로운 학문과 학설개발대신 안이한 전통답습의 타성 속에서 남의 글만 인용하는 사이비 지식계급으로 전락했으며, 하이네가 그 토록 싫어하는 법학대학 역시 참다운 법정신과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추구하는대신 사소하고 옹졸한 법조문만 꼬치꼬치 캐묻는 문구노예 카주이스트들의 집단이었을 뿐이다. 하르츠 여행기간 동안 하이네는 자기가 싫어하는 법학의 흉칙스럽고 무서운 악몽들로 여러 밤을 지새웠으며, 그 꿈들을 그는 기괴하고 흉칙한 풍자로 희화화 시켰다.

하이네는 괴팅겐의 시민들은 학생, 교수, 속물, 그리고 짐승들 네 무리들로 구성되어 있고, 속물들의 수는 바닷 가의 모래, 아니 똥 덩어리들 처럼 많으며, 괴팅겐 도시 자체는 아름답지만 등을 돌려서 볼 때에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라고 과격하고 조소적으로 풍자한 후 괴팅겐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다. 광산도시 클라우스탈 첼러페르트에서는 철광산의 깊은 갱 속을 구경하고, 광부들도 방문했고, 그들의 어려운 삶과 그들이 전해주는 동화들, 특히 백성공주 동화를, 머리에 떠 올리며 전설과 동화의 세계에 몰입도 했다. 아름다운 시골 골목길을 걷다가 창문가의 아름다운 처녀를 보면서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낭만의 꿈도 여러 번 꾸었다. 낮에 묘지를 보았던 어느 날 밤 무서운 유령 꿈을 꾸면서, 비록 계몽이 되었으나 여전히 반동적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이성주의자들이 유령이나 영을 믿지않고 무미건조하고 냉정한 이성만 믿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유령을 믿지않는 칸트도 빈정 거려 주었다.

중세의 아름다운 고 도시 고슬라 성의 폐허지와 아름다운 자연에 심취한 후 하이네는 드디어 브록켄 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 있는 여관과 전망대는 각 지방에서 온 대학생들, 수공업자들, 지식인들로 붐볐고, 저녁의 식당에는 술취한 학생들과 관광객들의 방자한 객기들로 시끄러웠다.

전망대에서 아래로 펼쳐진 광대무변한 파노라마를 내려다 보면서 하이네는 브록켄산을 „독일적인 산“이라고 표현했다. 아래에 넓게 퍼져있는 도시들, 산, 숲, 강들을 모두 보여주는 이 산이 독일의 철저성, 완벽성, 정확성, 정직성, 그리고 독일적인 침착성, 이해심, 포용성까지도 보여준다는 인상을 준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독일 민족성은 독일의 아름다운 자연이나 인간 개체들이 가진 개성 미를 간과, 무시, 배제하는 부정적인 면도 가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작가들처럼 이 산을 속물적이라고도 표현을 했지만, 그러나 하이네는 이 산은 또한 자유분방한 5월1일밤 마귀들의 축제같은 독일의 전통적이고 낭만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한다. 따라서 그의 „독일적“이라는 브록켄산의 묘사는 그가 독일을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그의 전형적인 양면적인 시각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하이네의 독일 속물성 비판과 조소는 독일인의 우직성과 추진력을 칭찬하면서 옛 독일의 영웅 헤르만에 대한 송시 작업을 한다는 한 스위스 작가와의 대화에서 계속 되었다. 하이네는 독일의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를 잘못 인식한 그 작가의 우매성을 힐난하며 비웃어 주었다. 그는 또 술취한 학생들이 독일의 보수 과격 애국주의 작가들인 륙커트, 우란트, 아른트의 애국시를 외우고 독일 애국가를 큰 소리로 합창하면서 브록켄정상의 정적과 자연의 순수함을 더럽히자, 그들의 조야한 사이비 애국주의, 우직성, 편협성, 옹졸, 비진취성과 무비판성을 힐난하고 조소해 주었다.

 

낭만주의의 마지막 기사

하이네가 고슬라주위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에 심취되어 걸어가다가 고슬라 사람 한 명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성주의 신봉자요, 자연의 낭만적인 미 대신 실용성만을 믿는 메마른 정서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이네는 자연에 심취된 자신의 시정과 상상세계를 방해하고 파괴하는 그에게 강한 혐오감을 표시해 주었다.

하이네는 클라우스탈에 사는 친구의 동생 집에서 묵으면서 „산 위의 목가“(Bergidylle) 라는 긴 시를 만들어 산문 속에 끼워 넣었다. 이 시는 하이네가 그 시대에 인기 있었던 괴테의 비극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파우스트와 그렡헨을 하르츠 산위의 아늑한 움막 집으로 초대해서 자기 식의 낭만적 서정시 속에 등장을 시킨 시이다. 파우스트와 그렡헨은 늙은 광부와 젊은 소녀역으로 등장하며, 그 광부는 다시 젊은 하이네 자신, 그 소녀는 그가 사랑하는 연인의 역활로 바뀌어지고, 그들은 서로 낭만적인 사랑의 밤을 보내게 된다. 하이네의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꿈은 다시 그 소녀를 중세의 공주 역으로, 자신을 그녀의 수호기사 역으로 바꾸고, 움막도 화려한 성으로 전환시킨 후, 꿈 같은 결혼식으로 끝을 낸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낭만적인 시이지만, 그 속에는 자연에 대한 그의 진지한 감탄과 감동이 결여되어 있고, 자신과 자연의 일치감도 부재한다. 더욱이 이 시는 그의 문학의 모범이면서도 적수였었던 괴테와 그의 파우스트를 패러디하고 비웃는 시다. 하이네는 괴팅겐으로 오기 전 벌써 운율 드라마들인 „라트클맆“, „알만소“를 출판했으나, 괴테와 같은 인기를 수확하지 못한 것을 애통스럽고 유감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하이네는 이 시에서 그의 낭만주의 문학의 우월감, 괴테와의 대결의식과 고전문학의 극복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하이네는 바이마르의 괴테를 방문했을 때 그로부터 푸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하이네는 이 시에서 자기가 존경하고 경외시하는 괴테의 작품에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꿈과 상상력이 결여되고 있다는 사실을 패러디와 이로니를 통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르츠 산의 일출장면과 아름답고 우람찬 햇빛장면을 본 하이네는 이 산의 산 신령이 유능한 작가인 자신을 알아보고 이 산위에서는 아주 드문 햇빛을 선물하고 있다고 자신의 낭만주의 작가로서의 방자한 자만감과 우월감을 자랑했다. 하이네는 나무가지와 이슬과 햇빛을 즐기고, 또 양 떼들의 종소리를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로 착각을 할만 큼, 꿈과 상상의 세계에 침잠해서 걸어 갔다. 양 떼들과 양치기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서 그의 꿈을 깨웠다. 가난한 양치기가 그를 도시락 점심에 초대를 하자, 그는 고마워서 „목동“이라는 시를 하나 읊어 주었다. 푸른 언덕을 왕좌로, 태양을 황금의 왕관으로, 소년을 왕으로, 발치의 양 떼를 살가운 환관들로, 소 떼를 장중한 기사들로, 염소들을 궁의 광대들로, 양과 소의 종소리를 궁내 실내악으로 희화화 시켰다. 기분 좋은 왕은 잠이 들고, 그 사이 나라는 대신의 역활을 하는 번견이 지키고 있다. 왕은 꿈결 속에서 그리운 자기의 여왕 곁으로 가서 그 품에서 쉬고 싶노라고 중얼 거린다. 꿈의 작가 하이네의 낭만주의에 대한 동경과, 꿈과 현실의 건널 수없는 깊은 심연속에 감금되어있는 자신을 목동으로 일치 시키면서 자신을 자조적으로 비웃어 보는 휴모어적이고 이로니적으로 표현한 시다.

브록켄 산 정상에 올라온 하이네가 산 위에 흩어져 있는 큰 바위들을 본 순간, 그는 5월1일 전야에 벌어지는 이 산의 전설인 마녀의 축제(Walpurgisnacht)가 머리에 떠 올랐다. 그 바위는 마녀들이 서로 던지며 놀던 공들이라고 상상을 했다. 또 이 산은 그에게는 무엇 보다도 괴테의 파우스트가 참가했던 마녀들의 축제를 연상 시켜주었다. 그러나 그는 인기없는 작가인 자신의 아픈 현실을 또 다시 상상해서 그려보는 일을 잊지 않았다. 축야제가 열리는 밤 무대 한 구석에 베르린에서 온 여류작가들이 그들의 문학간담 자리인 차 모임 (Teegesellschaft)을 벌리고 대화를 하고 있었고, 그 들이 하이네의 작품 보다는 인기있는 괴테의 작품을 더 선호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젊은 하이네는 솟아 오르는 시기심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말 채찍을 치면서 도망가는 치기어린 자화상을 아이러닉하게 조소하며 그려 본다.

관광객들 중에 두 명의 문학청년들이 „질풍과 노도“나 낭만주의의 작가들, 그리고 나폴레옹과 괴테마저도 감동시킨 북구 켈트 족 민족신화의 영웅이면서 음유시인인 오시안을 찬양하는 송시를 줄줄이 낭송을 하자, 하이네는 또 다시 비판의 비수를 번떡이었다. 특히 그는 젊은 괴테가 그의 초기 작품 베르테르에서도 예찬한 바가 있는 이 작품의 거대하고 환상적인 자연 예찬, 인간의 생성과 소멸의 비장한 운명, 영웅의 격정과 비극, 세계고 묘사의 과장성, 신비적인 환상때문에 괴테도 비판하고 조소했다. 하이네에게는 숭고함이란 부재하고, 모든 것이 가소롭게 보여지기만 하기 때문이다 (Du sublime au ridicule il n’y a qu’un pas, madame!( „이념. 영웅의 책“)). 더구나 이 서사시는 고대의 전설이 아니고, 실은 영국의 작가 멕퍼선의 자작시가 인위적으로 전설화된 위조문학임을 아는 하이네이기에 그의 분노와 비웃음은 극에 달한 것이다. 그가 존경하는 괴테가 이 송시를 독일어로 번역할 만큼 예찬을 했고, 후세의 봐그너도 이 작품의 환상적인 마력과 멜랑콜리와 사이비 낭만성에 심취되어 그의 독일가극 창작에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우리는 하이네의 분노를 충분히 짐작할만 하다.

아침일출을 구경하고 식당에서 아라비아산 커피를 마시자, 하이네는 자신도 아랍문화 에 취했다면서 당대의 지나친 아랍문화 유행을 풍자했다. 학생들은 사막의 낙타로 보여지고, 식당여급들은 통속작가 류커트가 묘사한 정열적인 눈초리를 한 마호메트 종교의 천국 처녀들로 돌변하고, 세속인간들의 코는 아랍사원의 탑으로 희화화 시켜졌다. 그의 문학 공격의 조준은 곧 이어 또 다시 이 유행에 경도되어 창작했던 괴테의 „동서 시가“(Ost-west Divan)로 향했고, 이 것을 패로디와 이로니로 비꼬아 주었다. 이 들 문학들은 하이네의 눈에는 환상적이고 사이비 낭만주의적인 싸구려 유행물 그 이상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록켄 산장의 식당에서 자기 방으로 들어 온 하이네는 프랑크 푸르트에서 온 동숙자가 프랑크푸르트 유대인들은 미와 예술의 고상함을 모르는 수전노와 같은 장사꾼이라고 욕을 하자, 침대 머리에 권총을 놓아두고, 자기는 몽유병 환자이므로 조심하라고 장난 조로 넌짓이 위협을 해주었다. 겁에 질린 그는 밤새 한 숨도 못 잤었고, 분노한 하이네조차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브록켄산의 일출장면을 놓친 하이네는 한 친구가 태양이 안개구름과 싸우다가 드디어 안개를 이기고 솟아 올랐다고 전하자, 하이네는 곧 그 당시 온 사회를 지배하던 과격 진보주의자 들의 선동정치는 무질서하게 몰려오는 안개와 같았고, 진정한 자유와 정의로운 사회가 그 안개를 이기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렇게 장려하게 떠 올라 주었으면 하는염원을 머리 속에 상상해서 그려 보았다.

당대에 유행하는 세속적인 문학에 대한 하이네의 마지막 불만은 산장에 비치된 방문록에 기록되어 있는 유치하고 진부하며 사이비 낭만적인 통속문학 글 귀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폭발되었다. 독일의 어중이 떠중이같은 사이비 시인들이 끄적거려 놓은 브록켄산의 조야스러운 묘사와 주석들은 그를 구역질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방명록 전체가 독일의 썩은 치즈와 맥주와 담배냄새에 쩔었으며, 그 당시 통속소설가 클라우젠을 읽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비꼬았다.

그 대신 하이네는 „브록켄 산위에서“라는 제목의 순수한 낭만적 시를 그 대안으로 삽입 시켜 놓았다. 태양이 안개를 걷고 찬란히 떠 오르자, 주인공은 축지법을 쓰고 바람을 타면서 산 봉우리들을 넘어 그의 연인이 있는 방으로 날라 들어가서 그 녀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춘 후, 우리들은 꿈 속에서 서로 사랑했었고 그래서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라는 귓전 말을 백합화같은 그녀의 귀에 조용히 속삭여주는 내용의 시다. 그는 이러한 그의 시들에서 속물의 반대개념이고 낭만주의의 정수개념인 천재성과 순수성을 과시하고 있다.

브록켄 산장에서 만나 하이네의 마음을 끈 아름다운 여인이 하산 하려 하자, 하이네는 들꽃 꽃다발을 만들어서 작별선물로 주었다. 그러면서 세상 속물들은 꽃을 꽃 술의 특징이니 꽃의 정신이라 부르는 향기같은 이성적이고 학문적인 기준으로만 구별 하려는 현학성을 조소하면서, 자기는 꽃의 구분을 차라리 식용의 유무로 구분한다고 빈정거려 주었다. 낭만적인 상상력이 부재한 이성주의를 비판한 그의 풍자 대목이다.

브록켄산을 떠난 하이네는 꿈 같이 아름다운 일제, 보데, 셀케 샛강들이 흐르는 일제계곡과 보데계곡을 따라서 하산을 한다. 운터하르츠는 앞서 다룬 오버하르츠나 브록켄산 에서와는 달리 타자에 대한 비판과 풍자나 조소의 독침은 모두 가시고, 아름다운 샛강과 계곡과 자연, 그리고 그 속의 하이네 자신이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상상과 이로니와 자아 이로니의 시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일제, 보데, 셀케 세 강 들을 그리스의 파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명의 여신으로 묘사 시키고, 자신을 세 명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선택해서 금 사과를 선사하는 미남왕자 파리스로 변신을 시킨다. 세 여신 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과 같은 일제 강을 보면서 하이네는 남자들이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 이성, 오성, 기지, 유치한 기지, 그리고 헤겔 이념의 노예들이라면, 여성은 현상세계와 인간의 감성세계를 잘 조화할 줄 아는 현명한 존재들이라고 예찬한다. 그는 진정한 낭만주의를 자연과 세상을 영적으로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서 아름답게 채색할 줄 아는 이런 여인들로 비유했다. 이러한 여성적 마력을 가진 참다운 낭만주의가 바로 딴 이성위주 문학조류들과 구별시 되는 점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일제 강을 보면서 „일제“라는 제목의 낭만적인 긴 시 한 수를 적어 넣었다. 그는 이 시 속에 일제 강의 여러 전설들, 특히 이 곳 하르츠 지방 출신이요, 옛 중세 게르만 족의 통일 왕 하인릭히와 요정 공주 일제가 일제 강에서 만나 서로 나누던 아름다운 환상적 사랑의 전설을 되 살려 놓았다. 일제 공주가 옛 날엔 하인릭히 왕을 사랑했으나, 이제는 하이네를 사랑하기에 그를 일제 바위위에 있는 수정으로 된 자기의 화려한 사랑의 성으로 데려다 주겠다는 달콤하고 유혹적인 초대가 이 시의 내용이다. 상처, 불만, 절망 속에서 고통 받는 작가가 자기 치유와 보상과 자아 상승을 위하여 자신을 낭만적인 상상의 세계로 몰입 시키고 위로와 작가로서의 자만감, 우월감, 허영심을 한 껏 누려보는 하이네의 낭만적인 자화 상이다.

그러나 옛 성터가 있는 일제 바위에 올라온 하이네는 발을 헛 디뎌서 떨어질 번 했으나, 다행히도 정상에 세워 진 십자가를 붙잡고 위험을 모면했다. 이 장면은 1825년 괴팅겐 근교에서 있었던 은밀한 그의 신교개종에 대한 풍자적인 자아이로니이고, 그가 독자들에게 발 조심하라고 하는 부탁은, „일제“ 시 속의 꿈과 환상의 세계는 비록 하이네나 독자들에게는 위로와 치유를 제공 해주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 속에는 냉기 서리고 차디 찬 꿈 깨어남과 환멸과 고통의 위험한 현실 세계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고이다. 이 현실세계는 환상적인 낭만의 세계와 서로 모순과 이율배반의 관계를 맺으면서 늘 함께 병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이네는 아침 햇빛이 빛나는 5월 1일 아침에 아름다운 일제 강과 일제 강의 전설적인 요정 일제를 생각 하다가, 또 다시 일제를 아그네라는 자신의 새로운 상상의 연인 이름으로 바꾼 후, 그녀와의 상상적 사랑을 그려본다. 그는 그녀에게 자기의 가슴은 흔한 싸구려 꽃이 아니고, 100년 만에 한 번씩 파열음을 내면서 피는 알로에 꽃과 같으며, 바로 오늘 그녀를 만나서 큰 소리를 내면서 꽃을 피웠노라고 고백을 한다.그 꽃 향기는 자신이 의식을 잃을 만큼 강해서 자신의 이로니가 어디에서 끝나고 어디에서 현실이 닥쳐 오는지를 모르며, 다시 고통스러운 현실이 닥쳐 오면, 밤에는 하늘에서 가장 불행한 별들이 나타나서 그를 다시 괴롭힐 것을 두려워한다고 고백한다. 그 꽃은 그의 시와 노래를 상징한다. 자신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실연과 불행한 작가의 심정을 낭만적인 시와 노래로, 그리고 이로니를 통해서 극복하려는 하이네 자신의 자화상이다.

여행기의 마지막 글에서 하이네는 우선 세상의 하찮은 상점의 점원같은 세속인들도 5월 1일에는 축제기분에 빠져서 감상적으로 되기가 일수인데, 자기와 같은 고매한 작가도 이 처럼 유치한 감상에 빠질 자유가 왜 없다는 말인가하고 자문을 한다. 그 것은 그가 이 여행기의 후반부에서 몰입 되었던 진부하고 멜랑콜리한 낭만주의 세계와 그 자신을 자조와 우월감 섞인 이중적인 자세로 합리화 시켜보는 대목이다.

이제는 하이네가 이 여행기에 삽입시켜 놓은 낭만적인 시들 속에서 사용한 언어들을 잠시 관찰하면서 그의 낭만주의의 실체를 다시 한 번 물어 보고자 한다.

이성을 앞 세우고 사납게 몰려오는 사실주의의 새 시대 조류에 부딪혀서 상처를 입은 낭만주의는 하이네에게는 마치 상처입고 붉은 피를 흘리며 낙조하는 태양과 같았다. 낭만주의의 마지막 기사 하이네는 운명을 다하고 지는 해와 같은 낭만주의와 마지막 작별의 춤을 이 여행기의 여러 서정시들 속에서 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들 시 속에서 사용한 언어들을 살펴보면, 그의 춤은 단순히 슬프고 멜랑콜리한 작별의 춤만은 아니었다. 이 여행기의 문체는 대부분 하이네를 위시한 „청년 독일“파, „3월 혁명 전 시대“파들이 그 시조가 되어 오늘 까지도 전수 기록되어지는 신문 문예란(Feuilleton)의 수필체식 서사문장으로 쓰여졌다. 각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인 현상들을 거침없이 자유분방하게 분석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실주의적인 문체이다. 그가 빠리에 체재했던 생애 내내 당시의 유럽의 정치, 사회, 문학, 문화와 역사 전반을 지배하던 불의와 허위를 조소와 풍자 및 비꼼으로 비판한 수사법이다. 우리는 하르츠 여행기에서도 그 당시 독일의 속물성, 우매성과, 사이비 애국작가들의 과장된 격정과 위선, 그리고 복고주의의 독일이 주는 공포와 불안과 암담한 미래들이 풍자 되고 조소 되었음을 이미 관찰했다.

이 처럼 거칠고 사나운 시대의 모습들을 묘사한 여행기의 산문속에 삽입된 서정시와 그 언어들은 그 산문 부분과는 전혀 다른 목적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 시들은 서사적이고 산문적인 시대와 문학에 대한 하나의 서정적 대안의 기능을 하고 있고, 또한 하이네에게는 정신적 도피처요, 위로와 치유의 공간을 제공하는 영역이다. 이 곳에는 낭만주의적인 아름답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서정적 분위기와 언어들만 존재한다.

둘째, 형식적으로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안겨주는 이런 시들의 이면에는 사라진 낭만주의뿐만 아니라, 그 마지막 기사인 자신을 동정과 애도감의 시각으로 관조하는 이로니와 자아이로니가 숨겨져 있다. „산의 전원가“에서 하이네 자신으로, 그리고 성스러운 기사로 변신된 시의 주인공은 산 속 움막에서 사는 하찮은 늙은 광부에 지나지 않았고, 일출 때에 축지법을 써서 애인한테 달려가던 „브록켄 산 위에서“ 라는 시의 주인공은 실연을 하고 상처를 받아서 마음의 치유를 위해 산행을 하는 초라한 법과 대학생 하이네였고, „일제“의 시에 등장해서 요정 공주 일제와 화려한 결혼식을 하는 그 녀의 수호 기사는 당대의 수 많은 적들로 부터 공격을 받고 상처투성이 뿐인 연약하고 가련한 일 개의 시인 하이네를 일컫고 있기 때문이다.

세째, 시에 사용된 낭만적인 언어들은 자아와 객체가 하나가 되는 혼연일치라는 낭만의 정수와 내용을 이미 잃은 낭만주의의 빈 껍질 „쓰레기“ 언어들이다. 하이네의 시들은 „밤 꾀꼬리, 장미, 백합, 중세의 기사와 공주, 요정, 사슴, 해와 달, 꿈“과 같은, 아도르노도 비판한, 도식적, 상투적, 대중적, 비창조적인 상품화가 된 단어 일색으로 지루하게 도배되어 있다. 이런 언어들은 실종된 낭만주의와 그 기사를 동정하고 조소하는 비극적인 이로니의 언어들이요, 동시에 사실주의와 하는 낭만주의의 승리없는 거짓 허위 전쟁(Spiegelfechterei) 의 무기들이다. 상실되고 쓰레기화된 낭만주의, 그러나 사실주의와 싸우는 낭만주의에 대한 비극적이고 조소적인 이로니가 그 시와 언어들의 세번 째의 숨겨진 의도요 기능이다.

투쟁의식과 용기가 부족한 하이네에게는 이미 패배당하고 퇴색된 낭만주의와 몰려오는 쓴 환멸감, 멜랑콜리를 풍자와 이로니, 자조와 비웃음으로 극복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하이네는 당시의 독자들이 케케묵은 낭만문학을 원치않는 것을 잘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와 싸우는 낭만주의의 마지막 기사역을 맡은 하이네는 낭만의 빈 껍질 단어들을 사용하는 낭만주의의 이로니적이고 유희적인 통속화(현대적인 용어로 Kitsch)를 통해서 잃어버린 참다운 낭만의 세계를 오히려 반사현상적으로 불러 일으키려는 전투를 하게 된 것이다. 사실주의라는 그의 적과 그 독자들을 낭만적인 최면의 세계로 유혹을 하면서 시도하는 그의 승리없는 비극적 투쟁이요 마지막 안간힘이었다. 그의 그 달콤한 언어들은 그가 „올바른 말을 찾아서 사용하면 세상은 노래하기 시작한다“라고 말한 아익헨도르프의 낭만주의 시학의 핵심사상을 아이러닉하게 흉내내면서 잃어버린 진정한 낭만의 세계를 다시 열수있는 열쇄로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그 가식의 언어들로 독자들의 뇌리 속에 진입해서 그들을 낭만적으로 공명화 시키고 제압하려고 한 것이다. 그 것은 이미 슈만, 슈베르트, 멘델스존 바르톨디, 리스트, 마이어베르, 봐그너등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그의 6,800개의 달콤하고 낭만적인 시와 노래들이 실지로 잘 증명해 주고있다.

우리들 독자들도 그의 아름다운 시와 노래가 주는 마력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최면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하이네는 자신의 마력적이고 달콤한 낭만주의 적인 시는 그 진정성이 결여된 채 다만 낭만적인 언어와 하고있는 유희일 뿐이다라고 아이러닉하게 조소해서 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만약 그의 낭만주의에 대한 사랑과 환멸, 사실주의에 대한 강한 공격과 좌절감이라는 그의 모순과 이율배반의 갈등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의 이로니의 시각없이 그의 시와 노래를 단순히 낭만적으로만 소비 한다면, 우리는 그의 시들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이네는 세상의 균열과 세계 고가 자기 가슴에 지나가고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 시대의 균열과 모순과 부조리가 더욱 심화된 절망의 세계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감할 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그의 거짓되고 유희같고 아이러닉한 낭만주의 시에 대한 참다운 이해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여행기는 미완성으로 끝이 났다. 이 작품이 하이네가 속물적인 시대를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의도적으로 제작한 낭만주의적인 작품인 것은, 그가 고전주의 작품이 완성품을 생산한다면, 낭만주의 작품은 이 여행기처럼 미완성으로 끝난다라고 말한 하이네 그 스스로가 잘 증명해 준다. 단지 그것은 그의 의도적인 거짓 낭만주의일 뿐이다.

 

하이네의 가장 술

모순과 이율배반이 지배하는 시대의 파도 들 한 가운데에서 자신을 수 많은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형용사들로 성격지우는 하이네의 참된 정체성을 발견하기란 매우 힘든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는 그 당시 정치, 사회, 종교, 문학, 역사등 제반 문화에 지배하고 있던 이율배반적인 양극성과 그 깊은 간극 속에서 시달렸던 작가였다. 그는 자신을 결박하는 양극들이 자신의 삶의 생존권을 허락하지 않음을 몸소 체험했다. 유대교뿐만 아니라, 그가 개종한 기독교도 학위를 한 유대출신 법학도 하이네에게 직업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성과 현실을 주장하면서 거세게 몰려오는 사실주의는 물론이요, 시대에 이미 추월당하고 밀려나간 낭만주의도 그에게 작가로서의 생존권을 허용해 주지 않았다. 그가 젊은 시절 자유, 평등, 인권을 추구하던 나폴레옹의 혁명은 그에게는 꿈이요 이상이었으나, 그 꿈은 점차로 조야하고 선동적인 폭력정치로 변모 되어갔고, 그가 사랑하는 독일은 오히려 보수적인 복고주의로 후퇴하면서 그를 진보주의 선동작가요, 혐오스러운 유대작가로 단정하고 검열 추적 체포할려고 했다. 하이네가 뮨헨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기회는 보수작가요 교수인 플라텐이 그의 유대혈통을 공개적으로 폭로 함으로서 좌절된 것이 그 좋은 한 예이다. 그에게 인류의 자유와 평등과 행복에 대한 희망을 약속했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과 괴리를 여지없이 노출시켜 주고 있었다. 한 때에 친했던 막스, 엥겔스와의 교류관계도 소원해지게 되었다. 하이네는1844년 슐레지아에서 일어난 직조공 폭거사건을 접하고 기독교의 신과 자본주와 정부에 대한 비난과 노동자들이 당하는 불의와 빈곤을 „슐레지아 직조공“이라는 시에서 묘사했다. 이 시는 삐라로, 나중에는 엥겔스에 의해서 공산당 당지 „전진“에 발표되었다. 구 동독은 이 시를 근거로 그를 사회주의 작가로 높이 평가 했었다.

그러나 하이네 자신은 단순하고 저속하며 개인의 자유대신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과격한 정치를 신봉하는 정치적 작가의 상에 불만을 품고 거리감을 두면서 자신을 낭만과 예술의 귀족적 작가로 가장하고 격상시켰다. 그 것은 문학의 질 때문보다는 그의 정치적이면서도 비 정치적인 이중성 때문이다.

그의 삶 전체를 회의와 절망과 불안 속으로 몰아갔던 진퇴양난적인 처지와 불우한 생의 여러 조건들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하이네는 어떤 자세를 취했을가? 이중적, 복합적, 가식적, 이기적인 삶의 방식이 자신의 실존유지, 자기방어, 자기보상과 자기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하이네의 가면적인 삶의 자세, 그리고 그 문학적 형식인 이로니가 절망적인 시대에 저항할 수가 있고, 또 시대가 주는 환멸과 고통을 극복 할 수있는 그의 유일한 길이요 그의 전략과 전술이었다

그는 유대교와 기독교, 공화국과 군주제, 독일과 프랑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양극 사이에서 마치 카멜레온처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이중적인 삶을 택했다. 그 자신도 자기는 마음 속에 두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그는 자유 공화주의자, 애국주의자, 기독교인, 유대교인들, 독일인, 프랑스인들의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는다면서도,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그 각각을 긍정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를 낭만주의의 탈영병이라고 주장도 한다. 그는 자기 조국인 독일을 무척 사랑 하면서도, 자신은 짧은 순간이나, 좁은 단체나 민족이 아닌, 전 세기, 전 세계, 전 인류를 위해서 존재하며, 인간해방과 자유를 추구하는 코스모폴리탄이라고 고백도 한다. 하이네는 작가적인 높은 자부심,우월감, 명예심을 소유한 작가였지만, 재정적인 해결을 위해서 거부들인 자기 삼촌이나, 또는 로트쉴트에게 아부하고 자기비하를 서슴치 않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아픈 실연을 했고, 또 사랑의 경험이 많지 않았으나, 그는 시 속에서는 자신을 사랑의 왕자요, 연애의 달인으로 묘사한다. 그는 패배한 낭만주의의 부상병이요 패잔병이면서도, 승리자인 사실주의를 비웃고 조소하는 낭만주의의 투사였다. 그는 이 여행기에 삽입된 시어들은 낭만적 감정의 표현이면서도 동시에 낭만의 쓰레기들이라 불렀다. 그는 보수주의자 들에게는 좌향적이고, 진보좌파 들에게는 보수적이며, 독일민족주의자 들에게는 조국의 반역자요, 지식인들에게는 유치하고 대중적이라고 동시대인들이나 후세들에게서 평가를 받는다. 그의 이 이중적인(Ambivalenz) 모든 행위들은 그의 의도적인 연출이요, 가장 술이다. 그가 자신의 변장을 위해서 가장 선호한 문학 형식은 물론 풍자, 패로디와 이로니들이다. 이 형식들은 공격대상의 부정적인 면을 거짓으로 이중적으로 긍정하거나 모방하고 흉내를 내면서 그 실체를 간접적으로 노출시키고 조소하기 때문에 그의 비판과 공격의도에 가장 적합한 문학형식이고, 그가 애호한 문학수단이었다.

가면과 위장을 통해서 자기방어와 자아구원을 시도하는 그의 가장 술은 그의 언어선택과 구사법에서도 적용되었다.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이미 낭만의 내용과 정수를 담은 진지한 언어들 대신 추월되고 퇴색된 낭만의 파편 언어들을 사용했다. 그 것은 그가 살던 사실주의 시대를 이기기 위해서 자신을 낭만주의의 기사로 패러디하고 낭만의 빈 껍질 언어들을 유희적으로 사용하는 그의 문학적 가장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의도적이고 이로니적으로 표현한 사이비 낭만주의마저도 사실주의 못지 않게 싫어하고 저주했다. 따라서 그의 이 이중적인 자세는 그의 문학성향마저도 분명하게 규정짓기 어렵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뚜렷한 자신의 신념없이 가볍게 부화뇌동하는 저속하고 비열한 기회주의자들 부류와는 달랐다. 그의 여행기와 그 이외의 서사체 기사나 산문들, 예를 들면 „루드빅히 뵈르네. 회고문“은 직접적이고 저 차원적인 풍자, 이로니와, 조소적인 공격과 비판으로 충만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여행기에 삽입된 서정시들이나 그 이외의 시들은 고차원의 이로니와 풍자로 노래 하면서 그의 정신적인 고고함과 우월감을 과시한다. „노래의 책“의 수 많은 이로니적인 시들이나, 속물국가 독일을 조소하는 그의 „독일.겨울동화“ 속의 풍자와 이로니 시들, 또는그의 만년의 „로만체로“시집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톱니바퀴 속에 빠진 자신과 그의 만년의 육체적인 고통과 비극적인 운명을 애도하는 숭고한 애가 조의 자아이로니같은 시들은 비록 낭만적인 껍데기 언어로 쓰여졌지만, 문학의 질적인 면에서는 독일문학에서 그 유례가 드문 성공한 그의 자랑스러운 이로니 문학의 창작품들이다.

우리는 그가 그의 여행기 속에서 불만과 증오로 충만 된 서사체의 공간에 그와 대조되는 아름다운 낭만의 세계를 연출하는 서정 시들을 삽입시켜 놓은 것은, 그가 메마른 이성과 현실에만 집념하는 사실주의문학, 사이비 낭만주의문학, 저속하고 조야한 통속문학을 단호히 거부하고, 꿈, 상상, 감성과 서정 미가 넘쳐 흐르는 참다운 낭만적인 문학을 선호하는 그의 귀족적인 문학성향과 그 의도에 반사효과를 제공하려는 문학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도 인식할 수가 있었다.

하이네는 임종 전 세상의 모든 모순들의 원인을 제공하는 기독교의 신 하느님에게로의 귀환을 분명하게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그리스적인 미와 예술이 그의 최고의 신이라는 사실은 뚜렷이 밝히고 임종을 했다. 그가 고차원적인 미와 예술과 차원높은 이로니의 언어를 구사하는 위대한 시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에 대한 신념은 그가 거짓과 가장없이 솔직히 고백했고, 또한 우리도 신뢰할 수있는 그의 유일한 가치관이었다.

끝으로 우리가 그의 여행기를 읽고 얻은 간단하고 명백한 결론 중의 하나는 그의 하르츠 여행기는 적어도 자연예찬기는 아니고, 그의 시대에 대한 비판기이면서도, 동시에 하이네 자신의 차원높은 미적, 예술적인 정치관, 문학관, 종교관, 인생관에 대한 고백이요, 낭만성을 띈 자서전적인 기록문학이라는 사실이다.

 

부록: 괴테의 „겨울 하르츠 여행“

이제까지 하이네의 하르츠 여행기를 살펴 본 우리는 괴테도 같은 산을 세 번씩이나 등반하고 읊은 „겨울 하르츠여행“이라는 시를 이 글의 첨부물로 추가해서 잠시 살펴보고 하이네의 여행기와도 간단히 서로 비교해 보면서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1779년 바이마르 궁의 높은 행정관리로 막 부임한 젊은 괴테는 한 편으로는 광산개발, 광물학 연구의 목적으로, 달리는 그가 그 당시에 유행한 감상주의(Empfindsamkeit)에 영향을 받아 창작한 인기 작품 베르테르의 슬픔 속의 세계 고와 환멸감, 고독, 염세감 속에서 지내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방문할 목적으로 12월 추운 겨울에 하르츠의 브록켄산을 등반 하고 이 시를 지었다.

시의 내용은 인간은 신에 의해서 인생의 성공과 행운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불행과 고통을 받는 사람(작가)도 있다. 이 시의 주인공 작가인 괴테 자신은 후자에 속했다. 그는 속세의 부와 정욕에 젖어서 편안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인간에게 쏟은 지나치게 정열적인 사랑때문에 오히려 벌을 받고 고독과 절망과 고통을 얻게 되었다. 그는 브록켄 산 정상위에서 마치 맹금이 먹이를 찾듯 세상의 권세와 영화와 명예를 찾는 작가가 되고 싶고, 그런 작품을 쓰고 싶은 꿈에 현혹되어 혹독한 추위와 쌓인 눈 속을 헤치고 험한 등산 길을 찾아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나 이 시는 그에게 아직은 성공을 허락하거나 약속해 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편같은 시나 노래가 고통받는 수련 작가 괴테를 위로해 주기를 바랐고, 고통을 이기고 드디어 산 정상에 도달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성공한 작가로서의 행운이 닥아오기를 그리스의 신들에게 신탁을 묻고 도움도 청해본다.

하이네에게 브록켄 정상이 자기가 비판하는 독일의 구체적인 현실을 연상시켜주는 산이었다면, 괴테의 브록켄 등반과 그 정상은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작가의 상, 즉 고독, 자아가치의 소모, 부족한 자아쟁취, 인간증오같은 여러가지 심리적인 병들이나, 또는 사랑을 통한 치유와 같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훈련과정을 거치면서 목표를 향하여 올라가는 수련작가의 길과 목표를 비유하는 상징들이다. 그는 하이네처럼 현실개혁의 꿈이 좌절되자 현실과 자아를 풍자와 이로니로 비판 조소하면서 현실에 머물려 하지않고, 상징을 통해서 현실상승과 이상추구를 문학적으로 표현하려는 작가였다.

하이네 문학에는 균열, 환멸, 멜랑콜리, 꿈과 이상의 상실, 저주스러운 현실의 풍자, 패러디, 이로니 때문에 현실의 부정성이 그 특징이라면, 괴테는 그의 문학에서 인간의 이상은 아직은 현실과 분열 파괴되지 않은 채 자연과 인간과 우주와의 조화 속에 현존하고 있으며, 비록 그 조화에 균열이 가더라도, 그는 훼손된 현실을 상징과 비유라는 매체를 통해서 문학적으로 이상화 시켰다. 이 것이 그의 문학의 현실 긍정성이다. 하이네는 현실을 벗어나 이상과 관념주의로의 승화를 혐오했다.

괴테와 하이네는 모두 청년시절 프랑스혁명과 정치개혁에 열광하고 붓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그러나 혁명의 과격주의, 폭력주의, 체바퀴 회전에 모두 실망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 도피자는 아니었다. 괴테는 상징으로 이상세계 건설을 제시하며 추구했고, 하이네는 이로니로 현실을 부정 비판하고 그 개혁을 촉구했다. 괴테가 불만족 스러운 정치와 현실에서 벗어나서 소우주와 대우주의 사이의 승화와 반영을 문학에서 모색하고자 했다면, 하이네는 실망스러운 정치와 사회와 시대의 집요한 분석과 개혁과 같은 현실에 천착하고, 풍자와 이로니와 상상력을 통해서 미화된 현실을 문학에서 추구하고 갈망했다. 그의 풍자와 이로니는 단순한 유희나 자아 만족이 아니고, 미화된 새로운 현실세계 추구를 위한 도발, 자극, 수단과 몸짓이었다. 그는 뵈르너처럼 미와 예술이 탈락된 정치문학, 선동문학대신 미와 예술과 상상력에 여과 된 새로운 정치와 현실의 개혁과 그 실현을 그 나름대로 추구한 진정한 정치적 문학작가였었다.

하이네는 소외된 현대 인간과 인간성 상실을 이미 두 세기 전에 체험했던 현대적 감각을 지녔고, 낭만주의의 현대화에 첫 출발을 시도한 작가였다. 근세기의 신 낭만주의 철학자, 작가, 또는 보수주의 독일과 나치정부로 부터 해외로 망명했던 저항 작가들인 니췌, 토마스 만, 브렉히트, 베데킨트, 뮤잠등, 그리고 현대는 하이네의 „독일. 겨울 동화“와 동일한 제목의 풍자시를 쓴 정치적 시인이요 음악가인 볼프 비어만이 그를 존경한 그의 추종자들이었다.

19/ 20세기 오스트리아의 보수 독설 비판가 칼 크라우스는 하이네가 독일의 고전과 낭만주의의 성스럽고 이상주의적인 독일 어의 성역을 더렵혔다고 비난 했지만, 하이네가 시도한 아름답고, 달콤한 음악성의 언어와 날카롭고 기지에 찬 현실비판적인 풍자와 이로니 언어의 이상적인 배합은 독일문학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없는 전무후무한 문학형식이다. 그의 시의 우아한 어조는 모든 독자의 심금도 울리고 있다.

하이네는 독일을 누구 보다도 사랑했기에 독일을 가장 많이 비판한 작가였었다. 그 때문에 그는 20세기 초 까지 독일에서 가장 거부되고 기피 당했던 작가였었다. 20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그는 건전한 이성을 되 찾은 독일인들로 부터 서서히 새로운 인식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그가 독일로 부터 받았었던 깊은 상처와 상흔들이 드디어 아물어 질 수있게 되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2012.4.18. 고랑

산행 + 생일축하

   70. 생일을 축하합니다.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