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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 외면, 대북적대의식으로 점철된 이명박 정부 5년

<10.4 5주년 특집> 이명박 정부 5년, 파탄난 대북정책 ①

 2012년 10월 4일  

                                                                            통일뉴스 / 김준성

 

김준성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정책실원) 선생의 이 글은 통일뉴스 2012년 10월 2일에 <연재>되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실현은 어떤 정부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핵심 과제중 하나이다. 이명박 정부 임기가 거의 마무리 되는 시점이자, 대통령 선거를 70여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과연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되짚어 보면서 향후 과제를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한국진보연대

1. 민족문제 외면, 대북적대의식으로 점철된 이명박 정부 5년
2. 남북간 교류협력 철저히 파괴한 이명박 정부 5년

3. 지도부 비난, 전단살포 등 북한 자극으로 일관한 이명박 정부 5년

4. 급변사태 대비 명분삼아 선제공격정책, 동맹 강화로 올인한 이명박 정부 5년
5. ‘반북’정책을 토대로 색깔론, 공안탄압으로 일관한 이명박 정부 5년

 

1.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선핵폐기, 체제붕괴, 흡수통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전부터 ‘비핵.개방.3000’ 구상을 발표하며 선핵폐기를 주장하였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북한 체제가 곧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흡수통일을 준비했다. 이런 확신은 제재강화, 대화거부, 위기고조라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어렵게 개척해온 남북화해협력의 성과를 파탄냈다. 남북관계는 노태우 정부 시절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남북기본합의서 수준보다 더 후퇴했다. 역대 정부가 이어온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 구축이라는 대명제 역시 사라져버렸다.

2.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배경

국정운영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국정운영 철학이다. 대통령의 철학은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통일, 남북관계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국정운영 철학이 중요하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민족과 국제사회, 평화와 안보, 국내정치와 국민여론 등을 감안한 수많은 선택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일관된 국정운영 철학은 남북 간에 신뢰가 중요한 대북정책에서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강조하며 6.15, 10.4선언 시대를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표명해왔다. 이런 인식에 기초한 이명박 정부 5년은 남북관계의 암흑시기였다.

민족의식 부재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첫 번째 배경은 민족의식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이명박 정부는 2007년 2월 6일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발표한 ‘한국외교의 7대 과제와 원칙’에서 민족의식의 심각한 왜곡을 보여주었다.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MB독트린’ 성격의 기조 발표문을 통해 “원칙은 없고 일방적이기만 한 대북유화정책에서 벗어나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적인 대북개방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 발표문은 외교 과제 속에 통일문제를 포함시킴으로서 남북관계를 ‘민족 대 민족’의 문제가 아닌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입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통일부 해체 시도에서도 드러난다. 전 정권들이 통일문제를 민족문제로 중요하게 다룬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이다. 민족의식 부재는 독도, 위안부 문제와 같은 대일정책 후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한일군사협정 체결까지 추진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한미 전쟁훈련과 작전권이양 연기, MD체계 편입, 미국산 무기구매로 미국편향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다.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성향은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다.

북한을 ‘악’으로 생각하는 적대의식

두 번째 배경은 대북적대의식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근본적인 악’으로 인식한다. 부시행정부 당시 네오콘의 ‘악의 축’과 비슷한 인식이다. 대북적대의식은 체제우월의식에 기초하며, 체제우월의식은 비현실적인 북한체제 붕괴론을 야기한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 역시 적대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비핵.개방.3000 구상은 북한이 핵 폐기의 결단을 내리면 국제사회도 그에 상응하는 결단을 내린다는 정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머지않아 통일이 가까운 것을 느낀다”,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며 북한붕괴론을 믿어왔다.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설과 국제사회의 대북재제에 따른 경제위기 심화로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인식에 기초하여 이명박 정부는 남북대결, 전쟁훈련으로 일관해왔다.

3.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평가

적대의식에 기초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굴복’이라는 허황된 목표를 향해있었다. 기초부터 잘못된 대북정책은 당연히 아무런 성과를 찾을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발전, 북한 핵문제, 한반도평화, 통일준비 등 남북관계 모든 분야를 후퇴시켰다. 2012년 6월 통일부 정책협력과는 ‘이명박 대북정책 4년 성과’에서 4가지 주요 성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실질적 성과가 없는 허황된 자화자찬일 뿐이다. 통일에 대한 철학도, 능력과 의지도 없는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전쟁 직전으로 남북관계를 되돌려 놓았다.

남북관계 파탄

이명박 정부는 ‘정상적인 토대위에서 남북관계 발전 추구’를 성과로 발표했다. 그러나 결과는 철저한 ‘상호주의’에 입각한 남북관계 파탄정책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 경제협력이 체제유지수단으로 사용된다는 판단아래 대북고립.압살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이는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공통점을 중심으로 협력해 나가자는 6.15 선언을 정면으로 배척하는 입장이다.

6.15, 10.4 선언을 무시한 정책은 남북관계 발전에 전혀 실효성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반발만 살 뿐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실제로 금강산 관광 사업은 억지요구를 주장하다가 실제 중단되어 버렸다.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지원문제, 조문 파동까지 남북이 교류협력으로 쌓아온 신뢰는 파탄나고 극단의 대립만 남았다.

이명박 정부는 미소냉전 해제 이후 남북 간에 고위급 회담 한 번 못한 유일한 한국 정부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이 가져다준 통일의 물결을 거스른 반통일 정책이다.

북한 핵문제 후퇴

‘북한 핵문제 해결에 주력’한다는 정책은 비핵.개방.3000 구상 때부터 이명박 정부의 주된 과제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비핵화 측면에서 볼 때도 완전히 실패했다. 북한은 2차 핵실험을 실행하여 핵능력을 향상시키고,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명문화했다. 지금은 국제사회가 북한을 비핵화 시키기는커녕 핵보유국으로 인정할지 말지 고민해야할 상황이다. 북한은 후계구축을 안정화하고 핵능력과 인공위성발사 기술을 과시하며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핵문제는 근본적으로 북미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북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정착 속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미 간에 대화를 재개하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북미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한미관계를 주도했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라는 일괄타결안만 제시할 뿐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핵문제 해결에 주력’한 것이 아니라 ‘북한 핵문제 방해에 주력’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 파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한반도 평화는 심각하게 후퇴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 한다며 안보태세를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조치를 정권 출범과 동시에 시작하여 천안함 사건 이후 훨씬 강화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부터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를 동원하여 북한을 자극하였다. 2008월 3월초 외교부는 ‘북한 인권문제와 남북관계는 별개사안’이라며 대북 유엔인권결의안에 찬성할 의사를 밝혔다. 통일부 역시 비핵개방3000을 1순위에 놓고 10.4 선언 이행사업은 제외시켰다. 결정적으로 당시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북핵시설 선제타격 발언을 하여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다. 이명박 정부는 파란색 매직글씨가 써진 어뢰를 증거로 북한의 소행이라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석연치 않은 조사결과는 많은 국민들의 의구심을 낳았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극도로 경색되고 서해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결국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남북한 양국이 서로 영토 안에 포격을 가하는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하고 만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일변정책이 결국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을 낳은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이후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도발원점 응징, 지도부 응징, 선제타격 등 더욱 호전적인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더욱 대북강경 몰입정책을 강화했다. 심지어 초상 모독사건, 국기 표적사격훈련까지 일으킨다. 이에 북한은 최고사령부 특별행동소조의 특별 행동, 성전포고, 최후통첩, 통일대전 선포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보다 북한을 자극하여 전쟁위기를 고취시키는데 5년을 허비했다.

위기모면용 반통일 행각

남북관계를 완전히 파탄 낸 이명박 정부는 ‘실질적 통일준비에 착수’ 정책으로 ‘통일세’를 제안한다. 이명박 정부는 통일준비 노력을 통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고, 국제사회에 우리의 의지를 알리고자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통일세’ 정책 역시 북한이 갑자기 붕괴할 때를 대비해 미리 재원을 마련하는 흡수통일 정책의 일환이다. 경제 협력과 상생으로 차근차근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붕괴만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 파탄으로 대내외 여론의 지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꼼수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봉급을 통일 항아리에 넣는 쇼까지 보여준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베를린 선언을 한다.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면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상회담 비밀접촉까지 언론에 공표하며 비상식적 태도를 보였다. 결국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말을 구걸하며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정상회담 제안 전말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남북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되어 비밀접촉까지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4. 남북관계 전환을 위한 2012년 대선

6.15 공동선언 이후 국민들은 화해와 평화협력의 통일시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6.15를 역행하고 역사상 최악의 남북관계를 만들었다. 많은 국민들은 남북관계 개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2012년 2월 현대경제연구원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화를 통한 유화정책’(79.8%)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2012년 대선을 통해 남북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실제 이행하고 더 높은 통일 단계로 진입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선에서 올바른 통일 철학과 비전을 가진 후보,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유능한 후보, 장기적 의지를 가지고 통일을 추진할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민족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2012년 대선,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이다.

 

6.15정신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