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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사태 대비 명목으로 충돌 조장, 동맹 강화로 올인한 이명박 정권 5년

<10.4 5주년 특집> 이명박 정부 5년, 파탄난 대북정책 ④

 2012년 10월 9일  

                                           통일뉴스 /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회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회의 이 글은 통일뉴스 2012년 10월 8일에 <연재>되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실현은 어떤 정부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핵심 과제중 하나이다. 이명박 정부 임기가 거의 마무리 되는 시점이자, 대통령 선거를 70여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과연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되짚어 보면서 향후 과제를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한국진보연대

1. 민족문제 외면, 대북적대의식으로 점철된 이명박 정부 5년
2. 남북간 교류협력 철저히 파괴한 이명박 정부 5년
3. 지도부 비난, 전단살포 등 북한 자극으로 일관한 이명박 정부 5년
4. 급변사태 대비 명분삼아 선제공격정책, 동맹 강화로 올인한 이명박 정부 5년
5. ‘반북’정책을 토대로 색깔론, 공안탄압으로 일관한 이명박 정부 5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4일 국무총리가 대독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결코 북한 체제를 흔들거나 흡수통일을 하려는 의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가 그동안 공식적으로 추진해 왔던 대북 정책의 여러 면모를 보았을 때, 이는 전형적인 ‘오리발 내밀기’에 다름 아니다.

지난 5년, 이명박 정부는 ‘자유민주주의흡수통일’ 기조아래, ‘북 정권 붕괴’를 상정하고 대북정책을 펼쳐왔으며, 이같은 정책은 군사정책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임기 내내 ‘급변사태 대비’ 등을 명분으로 한 정권붕괴 기조 군사정책화, 군사적 충돌 조장하는 모험주의적 군사정책, 한미일 동맹 강화 등으로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급변사태 대비 명목으로 정권 붕괴 기조 군사정책화

이명박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북 정권 붕괴’, ‘급변사태 대비’ 등을 앞세워 군사정책을 펼쳐왔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적극 유포하며 이른바 ‘개념계획 5029’
1)의 작전계획화를 적극 추진해 왔다. 2008년 9월 이상희 국방장관은 국회에 출석하여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계획을 발전시키고 있다”며 개념계획 5029의 구체화를 공식 시인하였고, 샤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또한 “한미연합군은 전면전에 철저한 대비를 했을 뿐 아니라 북한의 불안정 사태, 정권교체와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대비를 했다”면서 급변사태 대비 계획의 구체화를 사실상 시인하는 등 이명박 정부 임기동안 ‘5029’는 사실상 ‘작전계획’ 상태로 현실화하였다.2) 또한 이명박 정부는 군사계획을 뒷받침할 행정계획 수립을 구체화하였는데, 2010년 1월, <문화일보>는 기존의 충무계획 등을 통합하여 북한 체제 붕괴시 통일부, 국정원을 중심으로 대리통치기구를 수립하고 운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비상통치계획 부흥’을 수립하였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한미 당국은 이같은 계획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한미연합 전쟁연습을 통해 꾸준히 공식화, 실전화 해 왔다는 점에서 인정여부는 이미 무의미해졌다. 한미 양국은 2009년 3월 키리졸브 훈련에서부터 ‘5029’에도 언급되어 있는 ‘대량살상무기 유출’ 상황을 대비하여 공동훈련을 시작하였고, 2010년부터는 이른바 ‘북한 안정화 작전’을 본격 실시하였다. 2010년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상세히 공개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전쟁개시 두 달 만에 평양을 포위하고, 북 고위층을 생포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훈련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제지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 스스로 “이번 UFG연습의 특징 중 하나는 군 당국의 수복지역 민사작전을 넘어 통일부가 주도하는 안정화 작전”이라고 할 만큼, 사실상 북 정권 붕괴와 접수를 공공연하게 상정한 연습이었던 것이다. 당시 샤프 주한미군사령관 또한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때 이른바 ‘북 급변 사태에 대비한 안정화 작전’ 연습을 했던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2010.09.09 기자간담회)

2011년 2월의 키리졸브 연습에서는 김정일 위원장 유고 대비 훈련, WMD 확산 저지 훈련 등을 실시하였는데,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키리졸브 연습이 기존 전면전 대비에서 ‘급변사태 및 국지도발’ 대비 훈련으로 기본 개념이 바뀌었다고 보도(2011.2.8. 조선, 동아)할 만큼 이른바 ‘급변사태 및 국지도발’ 관련 군사훈련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급기야 2012년 3월 키리졸브 연습에서는 ‘내전 발생’ 경우, 10만 이상의 한국군을 파견에 북을 점령하는 훈련을 실시하였고, 8월 을지프리덤 가디언 연습에서 역시 북한 내부 사태에 한미연합군을 투입하는 ‘안정화 작전’을 실시하는 한편, ‘선제적 자위권’을 적용하는 훈련을 진행, 사실상 선제공격 정책을 현실화하였다.

관계개선을 해야 할 상대방 정권의 붕괴를 기정사실로 하고, 더구나 이에 대해 국제법을 위반하는 군대 투입 및 대리통치기구 수립을 내용으로 하는 군사훈련을 공공연히 진행한다는 것은 남북관계를 철저히 파괴하는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언론을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면모까지 보여주었다.

확전위험 부추기는 군사적 모험주의와 전력증강

작전계획, 군사훈련에서 드러나는 이같은 적대성은 군사적 충돌을 조장하는 모험주의적 교리와 맞물려 그 위험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특히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전 이후 군사적 대결을 조장하는 군사교리는 한층 더 전면화되었고, 해를 넘길수록 그 위험수위는 매우 높아지고 있다.

의문의 천안함 침몰 이후, 국방부와 군은 서해상의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증강시키는 한편, 한미연합 해상훈련을 강화하였다. 군사분계선 일대의 선전수단 설치를 재개하면서 분계선 일대의 충돌 위기가 급격히 고조되는 한편, 서해 포격훈련 과정에서 정전이래 최초로 포격전이 발생하여 남북 양측에 희생자가 발생하는 참혹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연평도 포격전은 군사교리의 공격성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신임 김관진 국방장관은 전군지휘관회의를 개최, “도발하면 묻지 말고 쏘라. 선조치 후보고하라”, “공격 원점을 타격하라”는 공격적인 지시를 내렸다. 서해 일대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정보 취합과 판단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발포명령을 합참에서 내려왔는데, 연평도 포격전 이후에는 2함대 사령관 등 현장 지휘관에게 발포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는커녕 확전의 위험성을 높여놓은 셈이다.

‘선조치 후보고’ 지시에 따라 현장에서의 발포가 가능해지자, 해병대 초병이 정상궤도로 비행하는 아시아나 민항기를 ‘미확인 비행체’로 오인하고 K2 소총 구십여발을 경고 사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2011.6.17) 이같은 상황에 대해 외국의 한 전문가는 교전규칙의 개정이 ‘지휘부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의도하지 않은 긴장고조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면서 "최근 한국의 대북억지력은 개선됐으나 교전규칙을 수정한 것은 판단착오로 인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하였다.(2011.6.22.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정책연구소장)

뒤이어 8월에는 ‘음향탐지장비’를 근거로 북의 NLL일대 발포를 추정, 대응사격(2011.8.10.)을 하였으나, 북측이 이례적으로 ‘건설과정에서 발생된 정상적인 발포작업’을 날조했다면서 강력히 항의하는 등 그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같은 대응전략은 더욱 강경해져 2011년 들어서는 ‘지휘소타격’ 등 평양을 상정한 공격 발언으로 이어졌고, ‘적극적 억지’(2012.8 국방개혁기본계획 11~30)라는 개념으로 이를 정식화기에 이르렀다. 이는 ‘도발에 대한 대응’ 개념을 넘어 ‘공격적 전투능력을 전제로 유사시 즉각적인 공격과 무력화조치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천안함 사건 이후 구성된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이끌었던 이상우 위원장은 능동적(적극적) 억지전략에 대해 “선제 공격 능력을 가져 북한에 부담을 줘야 한다”는 말로 설명함으로써 이것이 사실상의 선제공격전략임을 명확히 하였다. 올해 8월 한미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 전쟁연습에서는 사상 최초로 `선제적 자위권` 개념을 작전에 적용‘하여 선제타격훈련이 진행되었다고 하는데.(2012.9.11. mbc 보도), 이는 전세계적으로 지탄받아 온 선제공격전략이 한반도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대북 군사력 증강도 이러한 기조아래 추진되었다.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는 2011년 3월 국방개혁 307계획을 확정하였고, 국방부는 이에 기초하여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재수립하였는데, 장기 계획인 합동성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되기는 하였지만, 상당부분의 내용은 해병대사령관이 지휘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고 ‘북한의 국지도발과 비대칭 위협에 대비’하여 잠수함 및 장사정포 대응전력을 우선 구비하도록 하는 등 단기적 과제를 위주로 치중되었다. 다분히 연평도 사태를 빌미로 한 대응조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차세대 전투기(F-X) 및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대형 공격헬기(AH-X), 해상 작전헬기, 장거리 공대지유도탄, 합동직격탄(JDAM) 등 공격형 해외도입 무기체계 비중이 급증하였고, 탄도 미사일 증강 배치 및 중,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개발 배치, 미사일 사거리 연장 추진 등의 조치가 뒤를 잇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9월에 국회에 현무 미사일을 현행 800기에서 두배 이상인 1700기로 증강하기 위해 5년 동안 예산 2조4천억 원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고 보고하였고, 최근 미국과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 협상을 타결, 현행 300km의 두배가 넘는 800km로 연장하는 데 합의하였다. 이미 MD 체제를 사실상 추진
3)해 온 데 이어 추가적인 미사일 전력 증강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와 주한미군은 이미 압도적 대북전력의 우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평화를 제도화하려는 조치보다는 군사적 긴장이 확산되는 상황을 부추기고 있다. 군사적 긴장을 빌미로 공격적 군사력을 확충하고, 이에 대한 북의 대응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 이명박 정권 집권 내내 되풀이 되었다.

한반도 긴장 고조를 자양분으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자양분 삼아 한미동맹 및 한미일 동맹 강화를 위한 미국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였다.

한미동맹의 범위를 한반도에서 동북아,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협력으로 확대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추진된 것이기는 하나, 이명박 정부 들어 그 양상은 한층 더 전격적이었다. 집권 초기 이미 ‘양자, 지역, 범세계적 범주의 포괄적 전략동맹’ 구축을 주요한 전략적 방향으로 내세우고(2009.6 한미동맹 미래비전), 한미동맹을 ‘전략적 가치동맹’으로 격상시킴으로써 ‘공동가치 실현’이라는 명목아래 미국 주도의 패권정책에 기꺼이 협력하였다. 소말리아 파병, 아프가니스탄 전투병 파병, 아랍에미레이트 파병 등은 ‘묻지마 동맹’의 현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이며, 2004년 국회 비준 당시 5조에 달하던 이전비용을 8조 9천억으로 늘려준 주한미군기지 이전비용 추가 협상 역시 맹목적 한미동맹 강화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북 위협 대비’ 명목아래 한국에서 금기시 되어 왔던 한일군사협력, 한미일 군사동맹 완성에 대한 미국의 요구에도 최대한 부응해 왔다. 2008년 11월, 한미일 3국은 차관보급 3자 국방회담을 신설하면서 한미일 군사협력과 관련한 지침을 정하고 감독하는 컨트럴 타워를 세웠는데, 그동안 국방부가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군사협력 기구는 한미동맹 관련 구조 이외에는 없었으나, 한미일 국방회담을 신설함으로써 사실상 한미일 군사동맹을 구조화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 이후에는 ‘북한 도발 억지’라는 명목아래 한미 연합 전쟁연습을 확대하고, 이 연습에 일본 자위대 참관을 보장하는 한편, 한반도 역내에서 PSI 해상차단훈련을 개최, 한미일 3국이 함께 참가하는 등 군사협력의 범위는 계속 확대되었다. 급기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및 군수지원협정 추진 등 한일군사협력의 제도화를 추진한 데 이어 한미일 군사협력기구를 정식 발족하였다.

한일군사협정은 국민적 반발을 정부가 충분히 예상하여 그 과정에서부터 철저히 비공개로 추진해 온 사안으로, 서명 직전에서야 비로소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국민 반발이 급등하자 결국 유보되기는 하였지만, 정부는 한일군사협정 체결 의지를 결코 굽히지 않고 있으며,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제도화는 한일간 군사협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민적 관심사나 반발이 덜한 편이라는 점을 노려 한미일 군사협력기구 발족을 단행하였다.

이같은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철저히 ‘북한 위협 대비’ 명분으로 하여 진행되어 왔다. 위협에 대한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대응은 위협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 즉 관계 개선과 평화의 제도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해법은 외면한 채 ‘위협 대비’를 명분으로 내세워 패권적 동맹 강화와 전력증강에 적극적으로 임해온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무엇을 낳고 있는가. 북과 중국의 반발, 동북아 역내 신냉전적 대결 격화와 연쇄적 군비증강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있다.


<주석>

1) 개념계획 5029는 자연재해, 쿠데타 등 내전, 대량 탈북사태 등 이른바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 투입 및 군사적 지원 등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군사적 공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군 등을 북으로 진주시키는 사실상의 선제공격 계획이라는 점에서 국제법, 헌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계획이다.

2) 정부 당국자도 ‘개념계획 5029는 명목상 개념계획을 유지하지만 사실상 작전계획이나 마찬가지’라고 시인한 바 있다.(2010.10.3. 연합뉴스)

3) 2010년 9월, 한국 국방연구원과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국이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 공동연구 약정서 체결하고, 2010년 10월 한미안보협의회에서는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 대응능력 향상과 확장억제정책위원회 설치를 합의하였다. 지난 6월 14일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담(2+2회담)에서 ‘미사일 위협에 대한 포괄적인 연합 방어태세 구축’이 공식화되었다. 정부의 MD 추진과 관련하여 <신동아>(2008년 3월호)가 보도한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핵심관계자의 아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이름을 반드시 MD라고 붙일 필요도 없고, 명시적으로 참여를 선언할 필요도 없다. '작은 MD'건, '포괄적 MD'건 간에 우회적인 방식으로 미사일 방어에 관한 기술을 습득하고 그 장점을 취하면 되는 것”, “잠정적으로 미국의 MD 네트워크에 협조하면서 외형적으로는 '자체적인 대비책'이라는 명분을 세우면 주변국과의 마찰을 최소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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