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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다? 미국의 환상

[정욱식의 북핵이야기] <16> 중국 역할론의 허와 실 (上)

 2013년 4월 22일

프레시안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오늘날 북핵 문제는 1960년대 중국 핵문제와 여러모로 닮았다. 북한이 핵무장의 근본적인 배경은 "미국 제국주의"의 핵 위협과 일방주의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듯이, 마오쩌둥(毛澤東)도 "우리가 핵무기를 가질 때 비로소 전쟁광(미국)이 우리의 정당하고 이성적인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있었던 덩샤오핑(鄧小平)의 말이다.

"소련은 원자탄을 갖고 있다. 그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두려워한다는 점에 있다. 제국주의자들은 우리를 두려워하는가? 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자탄과 미사일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타이완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핵보유 동기에는 중국에 대한 불만과 견제 심리도 깔려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소련에 안보를 의존하는 한, 온전한 주권 행사가 어렵다고 봤다. 두 나라 모두 핵무기를 '자주의 무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오늘날 북한이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이라고 치켜세우듯이 중국 역시 양탄일성 덕분에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고 자랑한다.

미국의 태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유사점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북한 주민들의 기아를 환기시켜왔다. 이는 1964년 10월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을 때, 존슨 대통령이 "중국 인민들에게는 비극"이라고 말했던 것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중국 정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었다.

▲ 북한 김정은(왼쪽)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핵을 가진 중국은 미국의 주적?

미국의 태도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대국(大國) 의존 현상'이다. 미국이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 역할론'을 부단히 강조해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1960년대에는 '소련 역할론'이 있었다. 1960년대 들어 중국의 핵 개발이 가시화되자 케네디 행정부는 "중국이 핵무기를 손에 넣으면 세계 정치를 뒤흔들 것이기 때문에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 케네디 대통령은 "중국은 1960년대 후반 이후에는 우리의 주적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해법 마련에 절치부심하던 케네디 행정부는 소련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렇다 할 외교 접촉도 없었던 중국과 협상을 벌인다는 것은 애초부터 정책 테이블에서 내려놓았다. 일각에서 제기되었던 선제공격론도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소련의 힘을 빌려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련을 설득할 타협안을 가다듬었다. 미국이 서독의 핵무장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테니 소련은 중국의 핵무장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소련이 중국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서독의 핵무장을 가장 우려하는 만큼 이러한 거래가 가능할 것으로 봤다.

이러한 타협안을 들고 1963년 7월 당시 케네디 행정부의 최고의 아시아통으로 불리던 해리먼(Averell Harriman) 국무부 차관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그는 스탈린 집권 시 주소련 대사로 있으면서 소련의 고위층과도 두터운 인맥을 쌓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해리먼은 흐루쇼프 총서기를 만나지도 못했고, 중국 핵문제도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소련에 중국 핵문제 해결을 요청했지만, 소련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중국과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소련이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의 핵무장을 저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련의 태도에 낙담한 케네디 대통령은 63년 8월 1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핵무장에 성공하면 10년 이내에 "2차 세계대선 종전 때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중국은 1년 후에 핵실험에 성공했고, 중국이 핵무장을 하면 주적이 될 것이라고 했던 미국은 1970년대 들어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소련을 견제하고 베트남 전쟁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백악관에서 쫓겨난 네오콘이 청와대로

1960년대 미국-중국-소련 3자 관계와 오늘날의 북한-미국-중국 3자 관계를 단순 비교하는 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60년대 중국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소련이고 그래서 소련이 중국 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은 오늘날 북중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과 너무나도 닮았다. 그리고 당시 미국이 중소관계를 오판했듯이, 오늘날의 미국도 북중관계를 오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에 의존하려는 경향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본격화됐다. 1994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와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가 잘 보여주듯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중심축은 북미관계였다. 그러나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목한 부시 행정부는 애초부터 북한과 직접 대화할 의사가 없었다. 대신에 북한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추구하면서 중국에 유인책을 제시하려고 했다. 북한이 무너져 한국 주도로 통일이 되더라도 주한미군은 현재의 휴전선 이북에는 주둔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 난민이 대규모로 중국으로 유입되면 난민촌 건설 비용을 미국이 대주겠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속삭임에 넘어갈 정도로 중국은 순진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의 노무현 정부와 함께 북미 갈등을 중재하면서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인 관리에 치중했다.

흥미로운 상황은 부시 행정부 말기에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사코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거부했던 부시 행정부는 2007년부터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응했고, 중국이 주도했던 6자회담은 북미간의 합의를 추인하는 그 수준으로 위상이 위축됐다. 그러자 중국 내 일각에서는 중국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2008년 들어 또 한 가지 주목할 상황이 발생했다. '백악관에서 쫓겨난 네오콘이 청와대로 취직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MB 정부는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흡수통일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MB 정부의 눈에는 중국이 가장 큰 걸림돌로 비쳤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에 따르면, MB 정부의 실세인 김태효 대외전략 비서관은 2008년 12월 5일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다루는데 가장 큰 도전은 중국이다. 중국은 항상 북한에 식량, 연료, 재정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손을 잡았던 한국과 중국은 MB 정부 시기에서는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로 돌변하고 말았다.

'중국 역할론'에 집착하는 오바마 행정부

1기 오바마 행정부와 2기 오바마 행정부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9년 들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을 압박할 카드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건 바로 "북한의 행동이 중국의 안보 이익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6월 초 제임스 스테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을 비롯한 고위급 대표단을 중국에 파견했다. 이들은 한-미-일 공조체계를 과시하기 위해 베이징에 앞서 서울과 도쿄를 먼저 방문했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으로 아시아 정책을 총괄한 제프리 베이더에 따르면, 미국 대표단은 중국 지도부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계속되면 미국은 아시아 동맹 및 군사 태세를 강화하고 미사일방어체제(MD)를 본격 추진할 것이며 한-미-일 군사협력도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또한 북한의 핵 개발 지속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을 부상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러한 메시지 전달이 효과가 있었다고 간주했다. 중국이 북한의 2009년 5월 2차 핵실험에 대해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담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에 동의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여겼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과 대북 제재는 '북한식 패턴'을 종식시키는 데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은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든지, 아니면 핵 개발을 지속하고 더 강력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2009년 상반기 악화되었던 북중관계는 하반기 들어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번에는 다를까?

2기 들어서 오바마 행정부의 '중국 역할론'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3차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던 3월 15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북한의 비행을 계속 참아왔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태도가 바뀌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는 없지만 중국이 다시 계산하고 '이제 손 쓸 수 없게 됐다'고 말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지가 약화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에 호전적 자세를 재검토하라고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한-중-일 순방을 마치고 4월 17일 미 의회 청문회에 나선 존 케리 국무장관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중국이 없다면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과 협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나는 중국이 우리와 협력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왔다고 생각한다."


▲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AP=뉴시스


오바마 행정부의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중국은 북한에 연료의 4분의 3을 제공하고 중요한 금융 연결고리이며 식량을 제공한다"며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국가는 중국"이라는 케리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면서 60년대 케네디 행정부가 서독 핵문제라는 미끼를 던져 소련을 설득하려고 했듯이, 오바마 행정부는 MD라는 미끼를 던져 중국을 압박하고 설득하려고 한다.

오바마는 '채찍'부터 먼저 들었다. 중국이 2012년 12월 북한의 광명성 3-2호 발사에 대한 대북 제재 결의 채택에 주저하자 중국의 핵심적인 우려를 자극해보자며 MD 배치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를 두고 2012년 12월 13일 자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 전략의 핵심은 중국에 불편한 선택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부시 행정부 2기 때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도 "MD 구축을 가속화하면 중국의 주의를 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미국이 3~4월에 MD 기능을 장착한 이지스함 2척 동아시아로 급파, 미국 서부 해안에 14기의 요격미사일 및 괌에 고고도방어체제(THAAD) 배치 결정 등 북한위협을 이유로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자 중국의 불만도 커졌다. 그러자 케리 장관은 중국에 당근을 제시했다. 중국의 역할에 힘입어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MD를 증강해야 할 논리적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국의 '중국역할론'은 짝사랑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일단 미국은 북한에 핵과 미사일(위성)이 '자주의 무기'라는 성격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북한이 '자주권'을 가장 중시하는 한, 중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 동참은 북한의 언행을 순화시키기보다는 더욱 거칠게 만든다. 실제로 북한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규탄 성명이나 제재 결의에 동참할 때마다 핵실험으로 응수해왔다. 더구나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광명성 3-2호 발사에 대해 제재 결의 2087호를 채택하자 북한은 "잘못되였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바로잡을 용기나 책임감도 없이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것이야말로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겁쟁이들의 비렬한 처사"라며 중국을 정조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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