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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 거부 60년

<기고> 오인동, '정전 60년과 평화체제' (1)

 2013년 4월 29일

                            통일뉴스, 오 인동 / 6.15미국위 공동위원장

 

 

미국 LA에서 인공관절 수술 전문 정형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오인동 6.15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상하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재외동포의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를 모색하면서 남과 북 모두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귀기울 대목이 있다. 기고문은 모두 5회로 나누어 실을 예정이며, 기고문 중 일부는 필자가 이미 발표한 글을 손질하여 다시 보내왔음을 밝혀둔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평화협정 거부 60년
2. 강요된 선택 - 핵미사일

3. 조국통일대전 - 군사적 대안
4. 조국통일대전 - 외교.내교적 대안
5. 남북 평화체제의 조국

 

1. 평화협정 거부 60년

1953년 남북전쟁이 정전된 뒤 20년은 북이 남북평화협정을 하자 했고, 1974년부터 지금까지 40년은 북미평화협정을 촉구해 왔다. 통틀어60년, 북이 촉구해온 평화협정 체결에 아무런 성과가 없자 2013년 초부터 핵대핵의 실력으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평화체제로 전환해 보려는 결전에 나선 모습이다. 더불어 남과도 조국통일대전을 통해 평화체제를 이뤄 보겠다는 결심인 모양이다. 평화협정은 정전의 주당사자인 북과 미국 사이에 체결 되어야겠지만 서명국 북/중/미, 참전국 남/북/미/중 또는 최초 전쟁 상대였던 남/북 사이에 이루어져도 평화체제는 성립될 수 있다.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은 배경을 제3자적 재미동포의 입장에서 살펴 보았다. 60년 역사를 압축하려다 보니 역사적 변환에 기여한 내용을 중심으로 했다. 결과가 단순화 되고 표현이 지나쳤을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 잘못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1950년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북이 남을 선제공격한6.25전쟁은 미국이 주도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좌절 되었고, 미군의 도움을 받은 남의 북진통일도 중국군의 참전으로 이루지 못했다. 3년간 지속된 전쟁은1953년 7월27일, 유엔/미국군,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사이의 서명으로 정전되었다. 대한민국군사령관은 북진통일 없는 정전에 반대하며 참여하지 않았다. 정전협정엔 “3개월 안에 참전국 정치회의에서 외국군 철수와 평화적 해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2개월 뒤인 1953년 10월1일 미국과 남은 협정의 기본조항을 무시하고 상호방위조약을 맺어 미군의 무기한 주둔을 규정했다. 뒤늦게1954년 봄, 제네바 에서 참전유관국 정치회의가 열렸으나 양측의 의견차이로 아무 성과가 없었다. 둘러리로 참전 했던 여타국 군대는 남녘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했으나 지금도 3만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반면 북이 중국인민지원군을 북녘에서 완전 철수시킨1958년부터 미국은 정전협정을 위반 하며 핵미사일을 남녘에 배치하고 북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해방 15년을 맞은1960년 북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에서 남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그 뒤 계속 남녘에게 외국군 철수와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했으나 남도 미국도 응하지 않았다. 전쟁 이래 계속 열세에 처해 있던 남의 경제력이 북과 비슷해 진1974년 남이 북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유엔에 가입 하자고 처음 제안했다. 이에 북은 미군에게 군사통수권을 넘겨준 남측은 불가침에 대한 보장도 할 수 없고, 또 북남이 따로 유엔에 가입하자는 것은 분단을 영구화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대신 북은 ‘남의 군사통수권을 장악하고 남을 지배하고 조정해온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협의하자’ 는 제의를 처음으로 미국의회에 보냈다. 이즈음 베트남전쟁에서 패퇴하는 미국을 보며 남은 자주국방을 위한 핵개발을 하다 미국에 들켜서 중단 되었다.

북의 제의에 침묵해 오던 미국이1978년, 남북이 먼저 대화하고 미국이 참여하는 3자 회담을 제안했다. 북은 남과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실권자 미국과 협의하자고 했다. 미국의 반응이 없자 북은 1984년 미국과는 평화협정, 남과는 불가침조약을 맺는 3자회담을 역제의 했다. 그러나 미국도 남도 응하지 않았고 그 뒤 1990년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이 붕괴되는 대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미국이 유일강국이 되자 남은 북에 유엔동시가입을 촉구했다. ‘조선은 하나’ 정책을 견지해 온 북은 남북이 한 의석으로 가입 하자고 했다. 남은 반대해서 결국1991년 9월 북과 남은 유엔에 따로 가입했다. 이때 북은 유엔총회에서 유엔군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유엔회원국 앞에서 제기했다. 군사주권이 없는 남은 평화협정 대상에서 제외 되었지만 그 해 12월 남과 북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 를 했다. 나아가 남은 과거의 적국 소련(1991년), 중국(1992년)과 수교를 이룬 반면 미국과 일본은 북과의 수교를 거부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조국반도의 냉전은 계속되어 왔다.

1991년 말 미국은 남녘에서 전술핵무기를 철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이후 핵잠수함까지 참가해서 대북 미.한합동핵전쟁연습을 계속해 왔다. 1950년 전쟁이래 미국은 북을 정치,군사, 경제적으로 봉쇄해 왔다. 공산권 형제 국가들의 붕괴로 북은 구상무역 상대를 잃어 버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북은 산업동력을 마련하려고 남의 많은 핵발전소처럼 핵발전소 건설에 나섰다. 이에 미국은 1992년 북에게 핵무기개발 의혹을 제기했고 영변의 중수로 핵발전소 폭격위협까지 했다. 북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하고 미국과 대결 하다가 1994년 10월 <북미기본합의>에 이르렀다.북미관계 정상화 촉구 20년 만에 미국과 합의한 내용은 중수로를 동결하고 100 만 KW 경수로 2기 건설, 경제제재 완화, 국교정상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남은 이 합의에서도 소외 되었지만 미국의 의도에 따라 핵발전소 건설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이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경제제재는 계속되고 관계정상화에도 진전이 없자 북은 판문점 정전기구를 무력화 했다.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도 외면하고 북미합의사항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하여 북은19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시험을 함으로써 합의사항 준수를 압박 했다. 마침 2000년 6.15 공동선언으로 화해/협력/교류가 활발해 지며 통일기조도 높아져 갔다. 이에 일본 고이즈미 수상도 북일 수교를 위한 <평양선언>을 2002년 9월에 내 왔다. 놀란 미국은 곧10월 초 켈리(J. Kelly) 특사를 북에 보내서 대뜸 우라늄고농축 의혹을 제기했다. 북은 핵국가가 비핵국가를 핵으로 위협 하면 피해국은 자위를 위해 어떤 수단도 강구할 수 있는 것이 국제법이라고만 했다. 10여 일 뒤 미국은 북이 우랴늄고농축을 시인 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완공을 약속했던 발전소 건설이 31% 진척된 상태에서 <북미기본합의>를 파기했다. 기본합의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보스워스(S. Bosworth)의장 조차도 "기본합의는 서명한지 2주일도 안돼 고아가 되었다 (The Agreed Framework was a political orphan within 2 weeks after its signature)" 했다.

앞에서 본대로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도 , 북침전쟁연습을 한 것도, 북미기본합의를 파기한 것도 미국이다. 그런데도 남에서는 언제나 북이 합의를 위반 했다는 미국의 논조를 복창하고 있으니 밖에서 보면 정말 한심하고 부끄럽다. 국제관계 역학의 역사에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약속을 먼저 어기는 측이 누구인지 남녘 언론만 모르는가? 북이 매번 어겼다면 조목조목 근거를 대보라. 게다가 이런 말을 하면 남녘에선 빨갱이, 요새는 종북이라니 한심하다 못해 가엽기까지 하다. 이게 통일을 이루겠다는 경제대국 남한인가. 세계의Korea전문가들은 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북도 자체 붕괴하리라는 예상 속에 체결한 것이 <북미합의>였다고 했다.

하다 못해 합의 당사자였던 클린턴 전 대통령도‘북이 1994년 기본합의를 안 지킨 것은 없다’고 했다. 핵발전소 완공을 약속 받고 중수로를 동결한지 8년 만에 단 1 Kw전력도 얻지 못한 채 참담하게 빈손이 된 북은 NPT에서 완전탈퇴 했다. 그 다음 해 2003년 초 핵무기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국을 본 북은 자위력 구축 즉 핵무기만이 나라를 지켜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북은 이때부터 작심하고 중수로에서 꺼낸 핵폐기봉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무기화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4년 뒤 처음 핵 시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그 다음부터 어떤 일들이 일어 났는지 살펴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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