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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이 ‘상업유통망’을 바꾼다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4)

 2013년 5월 27일

정창현 / 통일뉴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민족21> 대표>

<연재순서>

4.  슈퍼마켓이 ‘상업유통망’을 바꾼다

3.  비상체제에서 정상체제로 전환하다

2.  김정은시대의 ‘변화’를 준비해 놓은 김정일 위원장

1.  김정은시대는 김정일시대와 다르다

 

 

 
▲ 지난 4월 27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리설주 부인과 함께 개업을 앞둔 대동강변의 주민편의시설인 해당화관을 돌아봤다. [자료사진 - 민족21]

 

지난 4월 27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리설주 부인과 함께 개업을 앞둔 대동강변의 주민편의시설인 해당화관을 돌아봤다. 동평양대극장 옆에 새로 건설된 해당화관에는 1층에 종합안내와 상점, 8개의 식사실, 2층에 2개의 연회장과 철판구이, 10여개 식사실, 3층에 갖가지 목욕탕과 물놀이장, 4층에 갖가지 한증칸(한증막), 휴게실, 청량음료, 체력운동실, 탁구장, 당구장, 이발 및 미용실, 미안실(피부관리실), 안마실, 5층에 요리전자도서열람실, 강의실, 각종 요리실습실, 6층에 커피점이 들어섰다.
 
해당화관의 류재관 책임자는 “해당화관은 먼저 위층의 목욕탕, 물놀이장 등에서 봉사를 받은 손님들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식사실들에서 푸짐한 식사를 한 후 1층의 상점에서 자기 기호에 맞는 상품을 구매하고 돌아가도록 설계되었다”고 소개했다.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이며 커피점은 24시간 봉사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곳을 돌아본 후 “모든 것이 만점”이라고 평가했고, 북의 언론매체들도 “설계와 시공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했으며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현대적인 종합봉사기지”라며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북에 세워진 최고급 종합봉사시설인 셈이다.

 

2009년부터 평양 각 구역마다 슈퍼마켓 건설 중

 

 

 

▲ 지난해 4월 25일 보통문거리고기상점에 이어 두 번째로 평양에 건설된 만수교고기상점 준공식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과 당.정.군의 주요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곳을 방문한 시점이 미묘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와 뒤 이은 한미연합훈련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로 높아진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주민편의시설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군 간부들까지 모두 군복 대신 인민복을 입고 철판구이점 요리사의 묘기에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을 남쪽에서는 4개월 간 지속된 긴장분위기가 완화 국면으로 전환되는 신호로 주목했다. 실제로 다음 달 김정은 제1위원장은 최용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특사로 파견해 6자회담 등 다자대화에 나설 뜻을 전했다.

그러나 해당화관에서 주목할 것은 식당 안에 설치된 슈퍼마켓이다. 남쪽 언론에서는 이 슈퍼마켓 안에 한국 화장품 브랜드인 라네즈가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주목할 대목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등장이후 평양의 각 구역[서울의 구(區)에 해당]에 슈퍼마켓과 전문상점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년간 김정일 제1위원장은 전문상점과 슈퍼마켓을 자주 방문해 ‘세계적 수준’에서 각 구역별로 상점을 건설할 것을 독려했다.

 

 

▲ 2009년 평양 대동강구역에 문을 연 삼일포특산물상점 내부 모습. [자료사진 - 민족21]

 

전문상점의 경우 2009년 9월에 중구역 보통문거리에 보통문상점과 고기상점이 ‘본보기’로 처음 건설돼 문을 열었다. 보통문거리고기상점은 1층에서 물고기를, 2층에서는 육고기를 판매하며, 3층에는 불고기식당이 꾸려져있다. 보통문상점에는 수입과일이 주로 판매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장 직전에 이 상점들을 현지지도했다. 북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상점을 둘러본 후 “수도시민들의 식생활을 더욱 향상시키는데서 보통문거리고기상점의 임무와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사회주의상업의 본성적 요구에 맞게 봉사활동을 강화하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강령적인 과업들을 제시했다”라고 보도했다. “인민들이 상품들을 구하기 쉽게 가격을 더 눅게(값싸게) 해야 한다”는 것과 이같은 상점을 평양을 비롯해 전국의 주요도시에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년 뒤인 지난해 4월 2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정.군의 주요지도자들과 함께 만수교고기상점 준공식에 참여했다. 보통문거리고기상점에 이어 두 번째로 평양에 건설된 고기상점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 주도로 군인 건설자들이 지은 상점이다. 만수교고기상점 역시 보통문거리고기상점처럼 1층에는 신선한 물고기와 냉동한 물고기, 기타 가공품, 2층에는 소, 돼지, 칠면조, 메추리 등 고기와 가공품을 판매하는 매장들이 있으며 3층에는 불고기봉사를 위한 식당이 마련됐다.

이외에도 2009년 평양 대동강구역에 문을 연 삼일포특산물상점, 2012년 2월 문을 연 평양 보통강수산물 전문상점 등을 비롯해 다양한 전문상점이 독립적으로, 또는 새로 건설된 식당건물에 마련됐다.

 

북한의 첫 슈퍼마켓 ‘광복지구상업중심’

 

 

 

▲ 지난해 1월에 개장한 ‘광복지구상업중심’은 북한식 슈퍼마켓의 시초다. [자료사진 - 민족21]

 

슈퍼마켓의 경우에는 지난해 1월에 개장한 ‘광복지구상업중심’이 시초다. 이 슈퍼마켓에는 1층에 쌀을 비롯한 생필품과 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파는 매장이 있고, 2층에는 의류와 가구, 귀중품 등을 파는 매장이 자리잡고 있다. 3층에는 식당과 카페, ‘어린이놀이장’이 들어섰다. 남쪽이나 다른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대형마트다. 중국 기업이 투자해 문을 연 북의 첫 슈퍼마켓이기도 하다.

평양에 지국을 두고 있는 미국 AP통신의 진 이(Jean Lee) 한반도 지국장은 최근 미국의 한 강연회에서 “평양에 새로 생긴 광복상업지구가 쇼핑 카트나 상품 진열, 바코드 등을 선보인 것이 기존의 북 상점과는 다른 새로운 쇼핑 형태”라며 “북에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외국인으로서 일일이 환전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는 대신에 ‘나래’ 전자결제카드를 편리하게 사용한다”라고 전했다. 최근 미국 <민족통신>의 노길남 특파원은 ‘광복지구상업중심’을 방문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 ‘광복지구상업중심’은 1층에 쌀을 비롯한 생필품과 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파는 매장이 있고, 2층에는 의류와 가구, 귀중품 등을 파는 매장이 자리잡고 있다. 3층에는 식당과 카페, ‘어린이놀이장’이 들어섰다. [자료사진 - 민족21]

 

“백화점은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계산대 옆에는 외화 바꿈이라고 쓰인 조그마한 창구가 보인다. 그 유리창에는 ‘오늘의 시세’라는 안내문과 함께 미화 1달러에 조선돈 8천원, 1유로에 1만240원, 1위안(중국돈)에 1270원, 1엔(일본돈)에 8120원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러한 환율은 국제 공식환율이 아니고 조선을 방문하는 해외동포들이나 외국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이른바 ‘국내협동화폐가격’이라고 한다. 국제환율로 치면 1달러에 조선돈으로 120원 가량 된다. 북조선에서 일반 인민들이 외화를 소유한 경우 블랙마케트(암시장)를 방지하기 위해 혜택을 주면서 그러한 부조리를 없애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이러한 제도를 실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미국이나 일본, 남쪽, 중국 등에서 물건을 사는 것 보다 가격이 훨씬 싼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 학용품, 가구점, 전자제품, 자전거 제품, 생활필수품, 기념품, 어린이 놀이터 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제1백화점이나 보통강백화점(보통강상점) 모두 같았다.”

 

새로 건설된 식당마다 슈퍼마켓 조성

 

 

 

▲  2012년 8월 31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리설주 부인을 동행하고 개업을 앞둔 해맞이식당을 현지지도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이 슈퍼마켓은 연일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고 전해진다. 2012년 8월 창전거리의 해맞이식당 안에 또 하나의 슈퍼마켓이 건설됐다. 2012년 8월 31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리설주 부인을 동행하고 개업을 앞둔 해맞이식당을 현지지도했다. 이 식당에는 슈퍼마켓, 대중식사실, 개별식사실, 커피점, 육류 및 수산물상점이 있다. 이날 김 제1위원장은 과일과 남새(야채), 우유 및 고기제품, 주류를 판매하는 슈퍼마켓을 돌아봤다. 특히 그는 식당 간이매대에서 파는 “강냉이튀기(팝콘)의 냄새가 구수하다”며 부인과 함께 직접 시식하기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슈퍼마켓에는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 세계 여러 지역의 다종다양한 가공식품과 고기, 수산물, 우유제품, 과일즙, 과자, 버섯류, 콩류, 술 등을 판매하고 특히 신선한 남새(채소)와 과일이 호평을 받고 있다. …슈퍼마켓에는 조리된 반찬을 판매하는 공간에는 요리사들이 초밥 등을 조리하는 모습을 손님들이 직접 볼 수 있으며, 외국의 식료품을 처음 보는 손님들이 구매하기 전에 상품의 맛을 볼 수 있도록 무료시식도 실시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특파원이 취재한 해당화관의 모습이다. 이 슈퍼마켓에는 평양시민들 뿐만 아니라 외국손님들도 이용하고 하루 일이 끝나는 저녁 5시 이후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해맞이식당의 영업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이고, 커피점은 24시간 운영된다. 이곳에서는 코카콜라가 한 잔에 북쪽 돈 500원, 펩시콜라는 450원에 팔리고 있다. 올해 10월까지 평양 만수대지구 지하편의상점(슈퍼마켓) 건설사업도 완공될 예정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만수대지구) 주변에 살림집들이 수많이 일떠섰는데(건설) 주민들의 생활에 편리한 시설들을 잘 세워야 한다”며 이곳의 슈퍼마켓 건설사업을 지도했다고 한다.

올해 초 평양에 다녀온 중국의 한 인사는 “2009년 보통문거리에 상점과 고기상점이 들어선 후 평양의 각 구역에 잇달아 전문상점이 들어서거나 건설 중”이라며 “새로 건설된 대형식당에도 예외 없이 대형상점이나 슈퍼마켓이 조성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왜 전문상점과 식당 내 슈퍼마켓 건설 등을 통해 새로운 상업유통망을 적극 조성하고 있는 것일까? 인민들에 대한 편의봉사 수준을 높인다는 측면 외에 다양한 목적이 있는 듯하다.

 

199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장과 장마당

 

 

 

▲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장마당과 지역시장이 확대됐다. 양강도 대홍단군에 소재한 대홍단시장 모습. [자료사진 - 민족21]

 

우선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지역시장’과 ‘장마당’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과거 북한은 국영상점망을 통해 간장.된장.식용유 등의 ‘필수 식료품’과 학용품, 옷, 신발, 담배 등을 생필품을 저렴하게 공급(판매)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생산공장들의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공급이 부족하자 북 주민들은 부족한 식료품 등을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사야했고, 결과적으로 ‘시장 유통량’이 크게 증가했다.

“장마당(농민시장)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리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러니 규모도 아주 작았습니다. 인민들도 ‘충분히 배급 주는데 뭐가 더 필요하다고 장마당까지 가서 물건을 사느냐’며 장마당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또 국가에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사회주의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 장마당은 저절로 없어질 테니까요.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규모가 커지게 된 겁니다. …요즘은 기업소마다 스스로 해결해야지 예전처럼 국가가 무조건 다 챙겨주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도 이익금의 30%를 국가에 내고 나머지로 봉급 주고 농산품 등을 구입해 자체 배급하곤 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장마당을 리용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된 지 꽤 됐습니다.”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2011년 북의 라선시에 있는 시장을 방문했을 때 북측 안내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국영상점망(백화점, 공업품상점과 식료품상점, 종합상점과 전문상점, 직장상점 등)을 통한 국가의 상품공급이 턱없이 모자라게 되자 농민시장의 규모가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년 전인 2003년 2월 24일 필자는 황해도의 재령평야를 가로질러 간 경험이 있었는데, 도와 도, 군과 군 경계지점에는 어김없이 자생적으로 ‘장마당’이 개설돼 있었고, 시장 주변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떤 집에서는 ‘모든 공업제품 팝니다’란 간판을 공공연히 내걸고 불법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옆에 앉아 북측 안내원에게 “저런 행위는 불법 아닌가”라고 물으니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다 먹고살고자 하는 일인데 사실상 단속이 어렵다”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농민시장은 애초의 취지와 달리 계획경제의 보완적 역할에서 벗어나 갈수록 주민들이 먹고, 입고, 쓰는 개인 경제생활을 충족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는 거래가 금지되던 품목들인 쌀이나 옥수수와 같은 곡물들과 전자제품과 같은 공업제품, 의약품, 수입품 등이 공공연하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원래 10일장이던 것도 매일장으로 바뀌었다. 지정된 개장 장소를 벗어나 어느 곳에서나 장이 서고, 너도나도 시장에서 장사를 하게 됐다.

농민시장의 기능 확대와 국가의 통제 약화는 ‘사적 부문’의 확대로 이어졌고, 계획경제시스템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농민시장이 국가 당국의 간섭을 덜 받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용인된 사적 활동이라 할지라도 때때로 불법 활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부작용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2001년에 나온 내부 문건에서 “최근 년간에 국가가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직업마저 버리고 장사나 하면서 자기 개인의 리속을 채우는 데로 나갔다”라고 비판했다.

 

2003년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개편

 

 

 

▲ 2003년 문을 연 평양 통일거리시장에는 다양한 일상용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북한은 농민시장의 확대로 나타난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1999년 4월에 ‘인민경제계획법’을 채택해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인민경제계획법은 계획경제부문의 규율을 확립하고 그 동안 침체되어 있던 계획부문의 경제활동을 정상화.활성화하고 약화된 국가의 사회․경제 통제력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또한 북한은 현실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농민시장의 역할을 폭넓게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사실 북한에서 ‘시장’이 낯설 이유는 없다. 해방 이후 ‘인민시장’ ‘농촌시장’이라 불리던 시장이 있었고, 국유화가 완성된 이후에는 ‘농민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농민시장’이란 이름의 시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북한에서 사회주의가 완성된 1958년이다. 1958년 8월 발표된 내각 결정 140호에는 농민시장에 대해 “협동농장들의 공동경리와 협동농민들의 개인부업경리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축산물의 일부를 농민들이 일정한 장소를 통하여 주민들에게 직접 파는 상업의 한 형태”로 규정돼 있다.

당시 농민시장은 판매자인 농민들과 구매자인 도시주민들의 생활상 편의를 고려해 원칙적으로 군소재지인 읍과 노동자구, 큰 도시들의 구역 단위에 각각 하나씩 두어 10일장 형태로 운영됐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농민시장을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시장 안에 농민들이 내다 파는 상품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매대(판매대)들과 농산물, 육류, 가금, 수공업제품과 농토산물의 판매장 등을 설치했다. 농민시장에서 농토산물을 위주로 판매되었고, 공업상품은 반드시 국영상업망을 통해 계획적으로 공급하도록 제한됐다.

북한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농업협동화와 산업의 국유화가 완성되고, 국가적 차원의 공급제가 전면 실시된 1950년대 후반~60년대에 농민시장의 소매상품유통액은 전체 유통액 중에서 1%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농민시장은 국영상업망을 보조하는 대단히 제한적인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농민시장이 사실상 종합시장으로 변모하고, 국영상점망을 통해 충분한 양을 주민에게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시장의 활용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2003년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시장을 인민생활에 편리하고 나라의 경제관리에 유리한 경제적 공간으로 리용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했다. 그전까지 행정 일꾼들에게 시장이란 경제활동 방식은 부정적인 경향으로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김 위원장의 방침이 나온 이후 북한은 당국이 나서서 시장을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북한의 국가계획위원회 최홍규 국장은 2003년 4월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3월 말부터 평양에서도 각 구역마다에 있는 ‘농민시장’을 ‘시장’으로 부르게 됐다”며 “농산물만이 아니라 각종 공업제품도 거래되고 있는 현실에 맞게 이름을 고친 셈”이라고 밝혔다. 농민시장의 종합시장으로의 변화는 최 국장의 지적처럼 “시장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회주의 상품유통의 일환으로 인정”하는 조치였다. 북한 당국이 역할이 커진 농민시장의 기능을 인정해 ‘계획과 시장의 공존’으로 나가기로 공식 결정한 셈이다.

 

전국적으로 300여 개의 종합시장 운영

 

 

 

▲ 보통강상점(백화점) 상품 진열대 모습. 질 좋은 상품들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지만 충분한 물량의 상품 공급 여부가 관건이다. [자료사진 - 민족21]

 

이에 따라 2004년에 개장한 통일거리시장을 시작으로 각 구역마다 종합시장 형태의 지역시장이 새로 조성되거나 재단장했다. 지방에도 시, 군, 구역단위마다 주민수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곳에 한 개 또는 몇 개씩 지역시장이 지정, 운영됐다. 농민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종류와 판매자가 그전과 완전히 달라진 상황을 고려해 지역의 이름에 따라 통일거리시장, 평천시장 등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이다. 전국적으로 북한 당국의 승인 아래 300여 개의 시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남쪽에서는 ‘시장의 합법화’란 측면에 주목해 체제전환까지도 거론했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는 ‘계획과 시장의 조화’를 내세우며 계획경제 틀 내에 시장을 포함(통제)시키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장과 북한이 인정한 ‘종합시장’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다. 북한이 시장의 운영관리 방침을 담은 2003년 내각결정 제27호는 시장의 문 닫는 시간까지 상세히 규정하고 있었다.

2004년 개장한 통일거리시장의 경우 판매원은 모두 여성들로 1,500여 명. 상품을 파는 개별주민, 국영기업소, 협동단체는 시장사용료와 국가납부금을 낸다. 지방의 시장은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가 운영을 담당하고, 관리원을 두어 질서를 관리한다. 시장도 국영기업소인 만큼 국가납부금을 납부해야 한다. 시장 가격도 전적으로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매겨지지 않는다. 중요 품목의 경우 한도가격이 설정되어 가격의 등락 폭을 제한해 두었다.

 

‘시장’은 더 이상 ‘불온한 단어’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에서 ‘시장’은 더 이상 ‘불온한 단어’가 아니며 과거의 ‘농민시장’으로 불릴 때의 시장도 아닌 상황이 됐다. 2003년 10월 초 평양 고려호텔에서 중구역에 사는 30대 중반의 여성 봉사원을 만나 나눈 대화내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시장에는 자주 갑니까?
“중구역에는 시장이 없어 주로 인접한 평천구역 해운동에 있는 시장에 갑니다.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갑니다. 쌀, 부식물 등은 국가의 배급체계를 통해 사서 먹기 때문에 국영상점에 딸리는(부족한) 야채, 잡곡류, 신발 등을 주로 시장에서 구입합니다.”
▶통일거리에 현대적인 시장건물이 들어섰다는데 가 보았나요?
“통일거리 시장은 한달 전쯤 문을 열었습니다. 시설이 잘 돼 있고, 근처에서 온 주민들로 붐볐습니다. 판매원들은 주로 가정주부나 나이 드신 분이 많습니다.”
▶시장의 물품가격도 국가가 정합니까?
“물건가격은 품목별로 국가가 정한 기본가격이 있고, 품질에 따라 ‘합의가격’이 정해집니다. 물건값을 깎기 위해 흥정도 합니다. 시장경제를 한지가 얼마 안 돼 아직도 익숙하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주민들이 ‘시장경제’란 말을 씁니까?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시장경제 아닙니까. 아직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데 익숙하지는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2002년 사회주의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 이후 시장이 많이 달라졌습니까?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생활이 편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생활비가 농민시장의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이제는 생활비가 많이 오르고 시장에서 다양한 물품을 살 수 있게 돼 편리합니다.”

시장의 활용은 공장.기업소의 운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공장.기업소, 협동단체가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허용되면서 공장.기업소에서는 국가계획 초과분을 시장에서 팔수 있게 된 것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발간하는 월간지 <조국> 2004년 1월호에서 북한 상업성 상업국 장두길 부국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시장은 인민들의 생활상편의는 물론 경제관리에도 도움을 주고 있으며 지방예산 수입도 높여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국영기업소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다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은 정해진 30%이상의 한도를 넘을 수 없도록 제한됐다.

 

공장.기업소를 위한 물자교류시장도 등장

 

이외에도 공장.기업소들은 새로 개설된 사회주의물자교류시장, 수입물자교류시장 등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물자교류시장은 종합시장보다 먼저인 2001년 10월 지침을 통해 도입됐다. 김정일 위원장이 자재공급사업에서 계획을 기본으로 하되 보충적으로 물자교류시장을 조직.운영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생산물의 일정 비율을 자재용 물자교류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교류물자의 종류와 범위를 규정해 두었다. 계획기관은 실적 생산량의 3~10%를 물자교류에 쓰도록 지표별로 규정해 준다. 계획 외 초과생산품, 생산정상화 몫으로 받은 제품, 필요 이상의 여유분, 규격 또는 용도가 맞지 않아 놀고 있는 물자들이 교류대상으로 꼽힌다.

다만 그 비중은 크지 않다. 2003년 10월 당시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 김덕훈 지배인은 “일련의 조치들이 여러 가지 억측들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데 그것은 우리 경제의 주류가 결코 아니다”라며 “예컨대 우리의 경우 물자교류시장에 참여하거나 생산한 제품을 시장에 넘겨서 얻어낸 수입은 총수입의 2%도 안 됩니다”라고 밝혔다.

2005년 6월부터는 중국 기업과 합작한 수입물자교류시장도 운영되기 시작했다. 공장의 개건 현대화가 가속화되며 외국에서 설비를 사와야 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보통강구역에 조성된 보통강수입물자교류시장을 꼽을 수 있다. 평양 뿐 아니라 원산, 흥남, 청진, 남포 등 각 도의 중심도시에도 지방수입물자교류시장이 개설됐다. 이곳에서 공장.기업소 관계자들은 건축자재, 강재, 도색재, 농기계, 수지제품, 고무제품, 기계부속품, 비료 등 수천 종의 수입원자재와 기계부속품, 공업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2005년 10월 26일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중앙수입물자교류총회사 김응연 부총사장은 이 시장의 이점으로 “필요한 원료, 자재를 직접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구입할 수 있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원자재를 시장에서 구입할 수도 있고, 시장을 통한 주문도 가능해 졌다. 이곳에서는 무현금 유통 뿐 아니라, 물자 대 물자의 결제, 현금 유통도 허용돼 물자교류시장과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거래방식이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 부총사장은 “조선(북)에서는 시장도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일부분”이라며 “국내에서 생산된 원료, 자재들을 교류하는 사회주의물자교류시장이나 인민생활 소비품들이 류통되는 종합시장과 마찬가지로 수입물자교류시장도 국가의 유일적인 장악, 관리 밑에 사회주의 경제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즉 2000년대에 들어와 북한에는 ‘종합시장’, ‘물자교류시장’, ‘수입물자교류시장’이 등장했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통제된 시장이었다. 종합시장의 운영주체도 국가의 통제를 받는 ‘시장관리소’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국영기업이다.

 

‘장마당’ 축소, 재정 확대 등 다목적 포석

 

그러나 문제는 북한 당국이 정해준 시장 내에서의 상업활동 외에 시장 주변에는 더 큰 규모의 ‘장마당’이 형성돼 운영되고 있고, 시장 외에도 군소 규모의 ‘장마당’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영상점과 종합시장을 통한 공급이 여전히 주민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북한 내부 ‘사회주의 원칙론자’의 입장에서는 ‘종합시장’의 활성화 자체가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2005년 10월 북한 당국은 식량배급체계 정상화를 선언하면서 시장에서 곡물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경제논리가 아닌 강압적인 방법으로 시장 통제에 나선 것이다. 특히 평양시내 시장에 임의의 물가 인상 금지 등 4개항의 규제안을 마련해 시행했다. 규제 조항은 △최고가격을 제한하는 가격통제를 실시해 물가를 임의로 인상하는 것을 엄금하며, △시장 밖에서 거래를 금지하고, △자동차 등 대형 수송수단을 통한 원거리 객지 판매를 엄금하며, △판매상품을 생활용품 등에 국한시키고 국가가 통일적으로 관리하는 상품 및 생산수단의 판매에 대해서는 불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과 상품공급이 정상화되지 못하면서 이같은 조치는 오히려 역효과만 냈다. 북한은 평성시장 등 주요 도매시장을 폐쇄하고 2009년 11월 전격적으로 화폐교환을 단행해 시장 영역의 축소를 시도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역시 물자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9년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하면서부터 북한은 근본적으로 사고를 바꿨다. ‘세계적 추세’에 맞고 현대적인 대형 슈퍼마켓과 전문상점 건설을 통해 새로운 ‘상업유통망’을 조성하고, 자연스럽게 시장영역이 축소되도록 정책전환을 한 것이다. 공급을 늘리지 않고서는 시장 축소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남쪽에서 대형 슈퍼마켓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늘자 전통시장이 위축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남쪽에서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법으로 대형 슈퍼마켓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북한은 역으로 이를 통해 확대된 ‘종합시장’과 ‘장마당’을 축소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2009년부터 북한에 전문상점과 슈퍼마켓 건설 붐이 조성된 가장 주요한 이유다.

 

‘상업유통혁명’ 성공여부는 지방경제활성에 달려

 

 

 

▲ ‘유통혁명’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슈퍼마켓과 전문상점의 등장이 김정은시대 북한의 달라진 사고를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해맞이식당 간이매대에서 파는 “강냉이튀기(팝콘)의 냄새가 구수하다”며 부인과 함께 직접 시식하기도 해 화제가 됐다. [자료사진 - 민족21]

 

또한 북한은 새로운 상업유통망을 통해 세수를 증대하는 한편 고물가를 잡겠다는 구상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기존의 시장가격은 품목별 생산지표, 수요와 공급을 고려해 국가가 정해준다. 기준가격을 정해주고, 그 기준가격에 기초해 일정 범위 내에서 공장, 상점, 시장들에서 탄력적으로 최종 판매가격을 정할 수 있다. 물론 국영상점망을 통한 물자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장판매 가격은 국정가격보다 훨씬 비싼 편이다. 더구나 종합시장 주변에 형성된 ‘장마당’과 자연발생적 곳곳에 들어선 ‘장마당’들은 북한 당국의 통제(계획) 밖에 있으며, 가격도 변동이 심하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8월 31일 해맞이식당 슈퍼마켓을 방문해 “슈퍼마켓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자면 식료품 가격을 바로 정하고 영업전략을 잘 세우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쇼핑하기에 편리하고 현대적인 슈퍼마켓에서 ‘종합시장’보다 싼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재정수입도 늘리고 물가도 잡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북한의 시장에서는 돼지고기 1kg에 1만 5000원 내외에서 판매됐지만 평양의 전문상점에서는 가공포장된 돼지고기 1kg에 1천원 내외에 가격이 책정됐다. 당연히 시장보다는 슈퍼마켓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2004년 4월부터 통일거리시장에서는 ‘도매반’도 운영되기 시작했다. 도매반에서 치약, 칫솔, 기름, 사탕, 소금 등 대중소비품을 낮은 가격으로 사들여 판매해 시장 전반의 상품가격을 조정하는 것이다.

슈퍼마켓과 전문상점의 등장은 공장.기업소의 생산 활성화와 새로운 유통망 확보란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광복거리상업중심에서 팔리는 상품의 80% 정도가 중국을 비롯한 외국산이라고 한다. ‘종합시장’과 군소 ‘장마당’에서 팔리는 제품의 다수도 중국산이다. 그러나 전문상점을 건설하면서 북한은 국내산 비중을 높이고 있다. 북한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보통강거리 고기상점의 경우 “상점의 각 매대에 진열되고 있는 모든 상품은 국내산”이며, “전국 각지의 양어장과 고기가공공장들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북한은 경공업 공장들이 하나둘씩 정상화되면서 국영상점망을 통해 간장, 된장 등 기초생활품부터 의료, 가방 등 생활용품을 시장가격의 반이하 가격으로 공급하고(팔고) 있다. 또한 국내 공장 생산제품의 질을 높여 전문상점을 통해 유통시킴으로써 공장.기업소의 판매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다.

이같은 북의 구상이 성공한다면 가히 ‘상업유통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지역시장’과 ‘장마당’을 통해 일정한 부를 축적한 ‘시장세력층’도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역시 북한의 상품공급능력이다. 또한 평양 이외 지방 도시들에도 얼마나 빠른 시일 안에 전문상점과 슈퍼마켓을 건설할 수 있느냐도 핵심과제다. 지방의 경우 자체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아 ‘광복거리상업중심’처럼 해외투자를 유치해야만 슈퍼마켓 건설이 가능하다. 김정은시대에 북한이 시도하는 ‘유통혁명’의 성공여부는 해외투자 유치와 평양이 아닌 지방 도시의 경제활성화와 직결돼 있는 셈이다. 다만 ‘유통혁명’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슈퍼마켓과 전문상점의 등장이 김정은시대 북한의 달라진 사고를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한신대, 방송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연재를 담당했다.

KBS "현대사 다큐멘터리 극장",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한국현대사』(1~4),『한국역사』,『한국역사입문』등의 집필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곁에서 본 김정일』,『인물로 본 북한현대사』,『변화하는 북한 변하지 않는 북한』,『북한사회 깊이 읽기』,『북녁의 사회와 생활』,『CEO of DPRK 김정일』,『KIM JONG IL of NORTH KOREA』,『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등을 출간했다.

공저로 『발굴자료로 쓴 한국현대사』,『실록 박정희』,『WWW.한국현대사.com』,『남북정상회담600일』,『朝鮮半島のいちばん長い日』, 『박병엽증언록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등이 있다.

현재 (주)이제이컨설팅 대표,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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