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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세계전략’에 따른 남북대화 제안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6)

 2013년 6월 10일

정창현 / 통일뉴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민족21> 대표>

<연재순서>

6. ‘포괄적 세계전략’에 따른 남북대화 제안

5.  휴대전화 200만대 돌파, 북한은 지금 ‘통신혁명’ 중

4.  슈퍼마켓이 ‘상업유통망’을 바꾼다

3.  비상체제에서 정상체제로 전환하다

2.  김정은시대의 ‘변화’를 준비해 놓은 김정일 위원장

1.  김정은시대는 김정일시대와 다르다

 

북한이 6.15선언 발표 13돌을 맞아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위한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의하면서 무려 6년만에 남북장관급회담(‘남북당국회담’)이 열린다. 지난 6일 북측의 당국간 대화 제안→남측의 남북장관급회담 제안→북측의 실무접촉 제의→남북실무접촉→‘남북당국회담’ 개최 합의로 이어지는 3일간의 속전속결 과정은 지난 달 말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우리를 핫바지로 보는 것 아니냐”며 북측의 태도변화를 촉구할 때만해도 생각하기 어려운 변화다.

 

북한의 대화 제의 배경은?

 

그러나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 정부는 북측이 당국간 대화를 제의할 것이라는 점을 사전에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류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당국간 대화 제의를 하기 전날인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2013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실현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면서 “제1차 남북정상회담 성과물인 6.15공동선언을 비롯한 과거 남북간 합의사항을 존중할 의사가 있다”며 “지금의 엄중한 상황이 지나가면 그때는 보다 유연한 노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게 될 것이다. 북한의 화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취임사에서 했던 ‘6.15공동선언의 존중’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북측이 당국간 대화에 나올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셈이다. 특히 이날 류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현재 남북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갖고 너무 걱정하고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조만간 바빠질 것이라는 암시를 줬다. 박근혜 대통령도 남측의 실무접촉 수석대표를 실장급으로 격상시키면서 남북대화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의 당국간 회담 제의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전향적’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그 배경에 대해서는 “한미중 3각 공조를 바탕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궁지에 몰린 북한이 출구전략으로 남북 대화 카드를 꺼내든 것”, “국제사회 제재를 남북대화 무드로 희석시키려는 의도”, “대북제재를 완화시키면서 남북관계 및 6자회담 등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 “미국의 강경한 대북 입장에 중국 동의할 가능성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경제난 극복이 어렵다는 점” 등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이 태도를 바꾼 배경에 대해서도 “정부의 일관되고 단호한 대북 정책의 결과”, “박근혜식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승리”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한겨레조차도 “북한이 6일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의한 것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지속적인 요구 사항을 폭넓게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원칙있는 대북 정책’에 북한이 사실상 고개를 숙였다”고 평가했다.

과연 이러한 평가나 분석이 맞는 것일까? 일면 그런 측면도 있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 등장이후 지속적으로 비공개접촉을 통한 ‘포괄적 협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내심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요즘 남쪽에서 많이 쓰는 ‘대화의 진정성’을 탐색하고 싶었던 셈이다. 통일부는 물밑접촉에 나설 의사가 있었던 것도 같지만 모든 것을 ‘공식회담’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청와대의 의지는 확고했다. 결국 북한은 당국간 실무접촉을 제안함으로써 남측의 요구를 형식적으로 수용하면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남북 민간교류 등 주요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해 내용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켰다. 이런 점에서 남측의 ‘원칙’이 통했다고 볼 수 있다.

 

한.미.일 중 가장 늦게 대화 물꼬

 

 

 

▲ 북한은 지난 3월 31일 노동당 전원회의(3월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후 ‘전방위 대화 공세’에 나서기 시작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그러나 한.미.일 3국 중 가장 늦게 대화의 물꼬가 트인 점은 심각하게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북한은 지난 3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후 ‘전방위 대화 공세’에 나서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미국과의 접촉이 진행됐다. 북한은 4월에 들어와 미국과 접촉을 시작했고, 5월에는 리용호 외무성 부상 겸 6자회담 수석대표가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독일 베를린에서 회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국무부대변인은 이 사실을 부인했지만 5월 중순 킹 특사가 공식 통보까지 했던 한국 일정을 갑자기 취소한 것은 갑작스럽게 잡힌 북미접촉 일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이미 북미간에 원칙적 합의가 이뤄진 인도적 차원의 영양 지원 문제가 테이블에 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양측은 지난해 3월 베이징에서 영양보조 식품 24만톤의 전달 시기와 방법, 분배 모니터링 방식 등을 협의했으나 이후 북한의 로켓 발사로 이 계획이 무산된 바 있다. 6월 초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다음 달부터 1년간 북한 주민 240만 명에 식량을 지원하는 계획을 승인한 것도 주목된다.

미국에 이어 북한은 일본과 대화의 통로를 열었다.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일본 내각관방 참여가 아베 총리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것이다. 회담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온 이지마 참여는 “북측과 북.일 수교 협상 재개 등과 관련한 사무적 협의를 모두 끝냈다”라고 밝혔다. 남은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일본 외무성 통로로 북.일 수교 교섭이 진행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데 대해 “(외무성에서) 왜 교섭할 필요가 있느냐. 앞으로 서로 어떤 생각으로 임하느냐일 뿐”이라고 말해 ‘일본인 납치문제’ 등과 관련해 북.일 양측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지마 참여의 이같은 발언은 평양에서 북측 요인들과 회담을 가졌을 때 북.일 양측의 주장과 입장, 제안 등에 대한 의견 교환이 충분히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북한은 아베 총리의 친서가 없었다는 점에 ‘실망’했지만 북일교섭 재개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한 셈이다.

북일 접촉에 이어 북한은 최용해 총정치국장을 특사로 중국에 보내 ‘6자회담을 포함한 각종 형식의 대화’를 원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시진핑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최 총정치국장은 “조선(북)은 유관 각국과 공동 노력해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조선 측은 적극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경제 발전, 민생 개선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며 이를 위해 평화로운 외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평화번영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중국 측에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명의로 최용해 특사가 중국을 방문한 5월 22일 6.15 13돌 민족공동행사를 개최할 것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제안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강조하자 북한은 당국간 회담 카드를 꺼냈다.

 

새롭게 개념화된 김정은시대의 ‘포괄적인 세계전략’

 

 

 

▲ 김정은 제1위원장의 대외전략은 ‘포괄적인 세계전략’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3월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북한의 이같은 행보는 ‘포괄적인 세계전략’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포괄적 세계전략(대외전략)’이란 용어는 2009년 12월 20일 방북중인 미국의 빌 리처드슨 주지사에게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언급한 것이다. 북미.남북.북일 대화를 병행해서 전방위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다. 2010년 1월 13일자 〈중앙일보〉에 실은 칼럼에서 서울대 장달중 교수는 북한의 ‘포괄적 세계전략’에 대해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이고 대신 남한과 일본을 공략하는 1990년대 초 김일성의 남방정책을 모델로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김일성의 유훈외교 부활은 김정은 후계체제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북한에서 김정은의 후계체제 구축 및 등장과정은 새로운 지도자에 맞는 새로운 정책 방향 수립과 맞물려 진행됐다. 특히 대외전략과 관련해 북한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 동북아에서 G2로 부상한 중국과의 관계 설정문제, 6자회담와 평화협정 문제, 남북관계 등 에 대해 폭넓은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론은 1990년대 초 김일성 주석의 마지막 대외노선을 기본정책으로 삼고, 2000년대에 들어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운 ‘신한반도 구상’을 계승한다는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까지 북한은 냉전질서 하에서 소련을 비롯한 동구 등 사회주의권과 제3세계 국가 외교에 치중했으나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자 한국.미국.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는 ‘신외교전략’을 채택한다. 이에 따라 1990년부터 남북 고위급회담이 개최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년 12월)으로 이어지고, 그해 9월 일본 자민당 대표 가네마루 신의 방북을 계기로 북일교섭회담이 진행됐으며, 1992년 1월에는 김용순 비서-아널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보 간 북미 고위급 회담이 처음으로 열렸다. 특히 김용순 비서는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동북아에서 북한과 미국이 동맹을 맺어 세력 균형을 이룩하자’라는 파격적 제안을 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즉 김일성 주석의 마지막 대외노선은 적대관계였던 한.미.일과 관계개선 및 수교를 통해 근본적으로 동북아에서 냉전을 해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핵문제를 제기(1차 북핵위기)하고, 일본에서 가네마루 대표가 실각하고, 김영삼 정부시절 ‘조문파동’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이 대외노선을 더 이상 진전이 되지 못했다.

 

번번이 핵문제에 발목잡힌 대외전략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노동당 총비서(1997년)와 국방위원장(1998년)에 추대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강성대국론’를 내세우며 1999년부터 다시 전방위 외교공세로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5월), 남북정상회담(6월), 북미 특사교환(10월)이 성사됐고, 이러한 흐름은 2002년에는 첫 북일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2002년 10월 미국 부시행정부의 핵문제 제기로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조성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다시 중단됐다.

2005년 9.19공동성명이 나오고, 다음해 부시 대통령이 ‘한반도 종전선언’을 언급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한반도 구상’은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한반도 구상’은 대외정책적 측면에서 두 가지 핵심내용을 담고 있었다. 첫째는 북미관계를 빠른 시일 내에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진전시켜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중간선거 패배 이후 적극적인 북미대화로 선회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활용해 대북 경제제재를 풀고 2000년 하반기와 같은 ‘북미관계 정상화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둘째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병행 발전시킨다는 원칙하에 남북협력을 전면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공동선언 이후에도 ‘매우 불안전한 초보적인 상태의 공존관계’에 머무르고 있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확고한 평화공존관계’로 전환시켜 나가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07 남북정상선언’에서는 이것이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한다는 표현으로 담겨 있다. 특히 이 선언에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기로 명기해, 북측에서도 남측에서 제기하는 조선로동당 규약 개정 의사를 내비쳤다. 김영삼 정부이후 남쪽에서는 북한의 대남정책에 대해 ‘통미봉남(通美封南)’이란 용어를 유행처럼 사용했지만 북한은 2000년대에 들어와 ‘통미봉남’정책에서 ‘통미통남’노선으로 확고하게 전환한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등장이후에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병행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단절돼 있는 상황에서도 여러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러한 정책방향은 2011년 1월 4년 만에 발표된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에서 잘 드러났다. 이 성명을 통해 북한은 “실권과 책임을 가진 당국 사이의 회담을 무조건 조속히 개최할 것을 주장”하며, “우리는 대화와 협상, 접촉에서 긴장완화와 평화, 화해와 단합, 협력사업을 포함해 민족의 중대사와 관련한 모든 문제들을 협의.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북한은 “어떻게 하든 6.15의 흐름을 이어나가 21세기의 새로운 10년대를, 민족의 비극을 끝장낼 희망의 연대로, 통일과 번영의 연대로 빛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대화 제안이었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한 후 1990년대 초부터 추진돼온 대외정책을 평가한 후 확정한 ‘포괄적 세계전략’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2011년 6월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이 최종 결렬되고, 남측의 대화의지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자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11년 12월 ‘조문논쟁’을 계기로 김정은 후계체제 안정화에 주력하면서 대남 강경입장을 확고히 했다.

 

남북관계 전면적 복원 필요

 

북한이 ‘북미.남북대화 병행’ 기조를 수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2012년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 제1비서에 공식 선출된 후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 경축 열병식에서 한 첫 공개연설에서 잘 드러났다. 이 연설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에 있어서 평화는 더없이 귀중하다”라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며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임적이고도 인내성 있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발언해 남북대화에 나설 의사를 피력했다.

사실 김정은시대 북한의 대내외정책 기조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첫 공개연설에 함축돼 있고, 그런 점에서 4월부터 시작된 북한의 대화국면 전환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시대의 대외전략인 ‘포괄적 세계전략’은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김일성시대나 김정일시대와는 다르다. 수세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핵 보유’를 전제로 추진되는 김정은시대의 대외정책은 지난 20년간 번번이 미국의 ‘북핵위기’ 조성으로 발목잡힌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핵이라는 ‘황금도끼’는 집에 걸어두면 좋지만, ‘황금도끼’로는 경제 건설이라는 ‘나무’를 벨 수는 없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첫 공개연설에서 “우리에게는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이 더 귀중하다”라고 발언했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논의과정에서 미국이 ‘상호 존중의 정신’에 기초해 ‘자주권’을 보장할 의사가 있다면 ‘황금도끼’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리용호 부상도 “조(북)미관계는 미국이 주권존중과 평등의 원칙에서 관계를 개선하기를 희망한다면 우리도 기꺼이 화답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비핵화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역시 평화협정이 한반도비핵화의 핵심이다.

유동원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미.중연구센터장은 최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 역시 강대국들의 흥정에 끌려가지 말고 오히려 주도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비핵화 노력 없이 대화 없다’는 근본주의적 태도로는 리스크만 커지고, 북.미 간 타협이 궤도에 오른 후에는 막대한 경제지원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평양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대신 적극적인 태도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위협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라고 조언했다.

이번 남북장관급회담 개최를 ‘원칙 있는 대북정책의 성과’라고 자화자찬하기에 앞서 박근혜 정부는 김정은시대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포괄적 세계전략’을 제대로 읽고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복원, 확대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한반도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한신대, 방송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연재를 담당했다.

KBS "현대사 다큐멘터리 극장",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한국현대사』(1~4),『한국역사』,『한국역사입문』등의 집필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곁에서 본 김정일』,『인물로 본 북한현대사』,『변화하는 북한 변하지 않는 북한』,『북한사회 깊이 읽기』,『북녁의 사회와 생활』,『CEO of DPRK 김정일』,『KIM JONG IL of NORTH KOREA』,『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등을 출간했다.

공저로 『발굴자료로 쓴 한국현대사』,『실록 박정희』,『WWW.한국현대사.com』,『남북정상회담600일』,『朝鮮半島のいちばん長い日』, 『박병엽증언록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등이 있다.

현재 (주)이제이컨설팅 대표,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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