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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수 칼럼]히틀러에 동조했다 해산의 길을 간 독일 야당의 교훈

 2013년 11월 12일  

                                                                                        민중의 소리

 

김행수 전 사학개혁운동본부 정책국장

 

34년만의 내란음모죄 부활, 헌정 사상 최초의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이어, ‘시민단체 강제해산법’까지 만들겠다고 나섰는데 민주당은 너무 무력해 보인다. 종북몰이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민주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여 존재감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NLL 정상회담 문제도 얼마나 답답하면 문재인 의원이 개인적으로 나서는 모양까지 와버렸다. 연이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에 ‘유감’이라는 입장 표명과 국정원 대선개입 특검 수용 요구 외에는 강 건너 불구경 모양새다. 자신들은 종북주의에 명확히 반대한다고 한마디 덧붙인다.

무능한 야당의 정략적 선택의 결과는 민주주의 질식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유명한 금언이 있지만 우리는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백범 김구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등 수많은 역사적 가정을 하기도 한다. 현실이 될 수는 없지만 역사적 가정에서 교훈을 얻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파괴와 자유와 인권의 후퇴에 야당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서, 2013년의 종북몰이 국면에서 야당의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따져보자.

○독일 야당이 히틀러의 수권법에 반대표를 던져 함께 막았다면

20세기 인류 최악의 독재정권이라 불리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의 합법적 독재를 가능하게 한 중심에는 수권법[授權法, 또는 전권위임법]의 통과가 있었다. 수권법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권한인 법률제정권(입법권)을 행정부에 위임하는 법률인데, 행정부가 포괄적으로 법률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권법이 1933년 독일 의회를 통과하면서 가장 이상적이라고 일컬어지던 바이마르헌법은 사문화되었고, 독일 민주주의의 후퇴뿐 아니라 유대인 학살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 초래되었다.

어떻게 이런 법이 (형식절차상으로는) 의회에서 합법적으로 통과될 수 있었을까? 무기력한 독일 야당들의 잘못된, 정략적 선택이 큰 기여를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1933년 3월 제1당인 나치당과 독일국가인민당의 공동 법안 형식으로 수권법이 제출되자 제2당 사회당과 제3당 공산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독일공산당은 2월의 의사당 방화사건과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체포수배령이 내려져 출석도 못했고, 사민당만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나치당은 집권당이었지만 이 법의 통과에 필요한 2/3에는 미달이었는데, 공산당과 사민당 의원들은 체포령을 내려 궐석으로 만들고, 독일국가인민당과 중앙당, 바이에른 인민당 등 다른 야당들을 회유와 협박으로 수권법에 찬성하도록 했다. 결국 찬성 441:반대 94(찬성률 82.4%)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수권법이 통과되었다.

수권법에 대한 독일 정당의 투표 결과

           수권법에 대한 독일 정당의 투표 결과ⓒ민중의소리

 

 

 

120석의 사민당은 출석의원 94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81석을 가지고 있던 공산당은 체포와 수배로 1명도 출석하지 못하고 전원 기권 처리되었다. 나치는 수권법이 통과되고 1주일 만에 가장 먼저 독일공산당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권법에 따라 행정부 입법으로 나치당 외의 모든 정당을 불법화하는 정당법을 시행한다. 그 결과 수권법 통과에 협조하였던 중앙당과 국민인민당 등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정당해산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1933년 7월 독일 내의 모든 정당은 사라지고 나치당은 ‘합법적’으로 일당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1934년 힌덴부르크 대통령 사망 후 대통령과 총리를 겸직해 수권법에서 불가침 영역이던 대통령 권한까지 장악한 히틀러는 총통 자격으로 행정, 입법, 사법부를 통할하는 합법적 독재자가 되었다. 이로써 유대인학살과 2차 대전이라는 세계사적 대재앙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만약, 1933년 3월 국회의사당에서 독일 야당들이 정략적 판단으로 수권법 통과에 협조하는 대신, 죽을 각오로 함께 수권법을 막아냈다면 히틀러가 합법적인 1당독재를 할 수 있었을까, 2차대전과 유대인 학살이 그렇게 쉽게 일어났을까하는 가정을 해본다. 히틀러가 다른 방법으로 독재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독일 역사가,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수권법을 통하여 수립된 히틀러 나치정권은 독재에 협조하였던 야당의 잘못된 선택이 자신과 민족, 나아가 세계에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질식사시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당시 혼자 살겠다고 잘못된 정략적 선택을 한 독일 야당들이 2013년 대한민국의 민주당 등 야당들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매카시즘에 미국 민주당이 동조하지 않았다면

민주주의의 발전과 후퇴에 있어서 정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건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이다.(민주당은 여당이었다가 매카시즘으로 야당으로 전락한다.)

전 세계를 매카시즘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매카시는 처음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는 등 민주당 지지자였는데 태평양전쟁 참전 후 공화당으로 갈아탔다.

그는 공화당 후보로 처음 나간 1944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후 1946년 재출마한 선거에서 진보당의 거물 정치인인 라폴레트가 2차대전에 자원 입대하지 않았다며 ‘비애국자’라고 몰아붙였다. 또 민주당의 맥머레이에게는 ‘공산주의 냄새가 난다’며 색깔론으로 공격했다. 정치 초년병인 매카시는 반공과 색깔론을 무기로 워싱턴 정가에 입성한 것이다.

‘반공 코스프레’로 워성턴에 입성한 매카시는 뇌물수수, 경력위조, 명예훼손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더 센 ‘국무부의 공산주의자 명단’이라는 폭탄선언을 내놓았다. 이후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친 미국에서는 미국판 국가보안법인 매캐런 법(McCarran Act)이 만들어지고, 의회에 비미활동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가 구성돼 청문회가 열렸다.

수많은 인사들이 청문회에 소환 또는 지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혔다. 공산주의자로 찍힌 수백 명이 수감되었으며, 수만 명이 직업을 잃어야 했다. 진보 성향의 정치인과 외교관, 공무원뿐 아니라 무고한 교육자,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으며 직장을 잃었다.

미국 핵개발의 아버지라 불리며 ‘맨해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오펜하이머 박사와 같은 과학자, 아서 밀러와 베르톨트 브레이트 같은 세계적 문인들, 모던 타임즈나 독재자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세계적 거장 채플린 등이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곤욕을 치렀다.

정치, 과학, 문화, 예술계, 노동조합을 가리지 않은 매카시즘 광풍이 미국 민주주의를 질식하게 만든 이면에는 민주당의 협조가 있었다. 매카시 등 공화당이 포문을 열면 민주당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 현대판 마녀사냥에 동조하였다. 이렇게 해서 1950년대 초반 5년은 미국 민주주의의 암흑기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민주당은 정략적 판단으로 매카시즘에 동조하였지만 1952년 대선에서 20년간 지켜온 정권을 공화당에게 빼앗겼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와 관련이 없다며 매카시즘에 동조해봤자 국민들이 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어줄 리는 만무했다. 반공이 선거 이슈가 되는 순간 미국 국민들은 민주당보다 보수적인 공화당을 지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매카시즘에 대한 정치공학적 접근으로 정권이라는 정치적 실리도 잃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데 동조하였다는 역사적 비난까지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저만 살겠다는 정략적 선택이 정치적 실리와 역사적 명분을 모두 잃은 채 민주당을 야당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만약, 매카시가 처음 국무부 공산주의자 명단이라며 가짜 명부를 흔들던 그 순간 민주당이 사실 확인부터 하자고 했다면, 매카시즘 광풍에서 마녀사냥에 동조할 수 없다며 맞섰다면 미국 민주주의가 그토록 후퇴하지 않았을 것이며, 어쩌면 정권을 공화당에게 빼앗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매카시가 2013년 우리나라 민주당에 보내는 경고는 아닐까?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자료사진

 

 

 

○야당을 비웃음거리로 만든 유정회와 민한당의 교훈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는데 있어서 강력한 야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역사적 교훈은 우리나라의 정치사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대선에서 두 번이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조봉암과 진보당을 제거함으로써 다른 야당을 겁박하여 종신대통령을 획책한 이승만과 자유당은 강력한 야당이 독재정권에 얼마나 큰 장애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5.16쿠데타와 유신을 통하여 종신 집권을 꿈꾸었던 박정희는 야당을 무력화시키는데 기상천외한 방법을 개발했다. 유신정우회(유정회)라는 친위조직을 국회에 만듦으로서 강력한 야당의 형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유정회는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들에 대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찬반투표로 뽑는 국회의원의 조직이었는데, 사실상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세계 어느 민주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괴한 제도였다.

이렇게 뽑힌 유정회 의원 73인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여 박정희의 친위대 역할을 함으로써 박정희 1인이 입법부까지 장악하여 야당, 나아가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박정희 역시 강력한 야당의 존재가 독재체제 구축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 고 있었던 것이다. 유신치하 독재정권에 의해 대의민주주의는 이렇게 유린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어용 야당이 독재정권에 어떻게 악용되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5공화국의 민주한국당(‘민한당’)이다. 대통령의 국회 친위조직이었던 유정회는 유신의 몰락과 함께 막을 내렸고, 전두환 정권은 유정회를 대신할 새로운 꼼수 ‘무늬만 야당’을 기획했다.

전두환은 광주를 총칼로 짓밟고 김대중, 김영삼 등 야당 지도자들의 정치권을 박탈하면서도 다당제라는 모양새를 갖추는 동시에 강력한 비판 야당의 출현을 막기 위하여 안기부 자금을 지원하여 사실상의 관제야당인 민한당을 창당하도록 하였다.

민한당은 5공을 인정하여 5공의 정치규범을 수용하는 선에서 정책대결을 내세워 1981년 2월 12대 대선에서 유치송 총재가 7.7% 득표로 2위를 기록하고(1위 민정당 전두환 90.2% 득표), 3월 11대 총선에서는 득표율 21.6%로 81석을 확보하여 5공화국의 제2당이 되었다.

사실상 전두환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무늬만 야당인 민한당에 의하여 정권을 견제한다는 야당 본연의 기능은 사라져버렸다. 그 결과는 단군 이래 최대의 권한을 가진 절대군주라 불리는 전두환 정권의 전횡이고, 민주주의의 질식이었다.

1984년 정치활동 금지에서 해제된 김대중, 김영삼 등을 중심으로 신한민주당이 창당되고, 어용야당 성격이 폭로된 후 민한당은 명맥만 유지하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국민의 버림을 받아 후보 전원이 낙선하면서 등록이 취소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민한당은 사실상의 관제야당으로 5공군사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되면서 민주주의에서 야당의 존재를 희화화시키는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으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 와중에 민주주의는 후퇴되고 국민은 군사독재 정권의 전횡에 신음해야 했다.

독재정권에 맞서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는데 강력한 야당의 존재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역사 속 장면을 민한당이 보여주고 있다. 2013년 현재 정권의 독주 속에 민주당과 야당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히틀러와 매카시의 경고 ‘야당이 혼자 살려하면 민주주의도 죽는다’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야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이 청구되고, 군사정권의 잔재인 노조 해산명령권이 부활했다. 내란죄,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자격을 정지시키는 ‘이석기법’이 제출되고, 시민사회단체까지 강제로 해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제출되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라면서도 새누리당이 전매특허처럼 되어버린 성범죄 관련자, 선거법 위반으로 감옥에 간 국회의원, 수억의 수백억 차떼기와 공천헌금으로 대표되는 정치자금법 위반자의 특권에는 말이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변명이 너무나 궁색해 보이는 이유이다.

특히 내란죄는 민주당이 배출한 최초의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군사정권이 사형선고를 내린 죄목이고, 국가보안법은 두 번째인 노무현 대통령이 박물관으로 보내야할 유물이라며 폐지를 추진한 악법 아닌가?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유인태, 정청래, 김기식, 이학영 등 민주당의 수많은 현직 국회의원들을 감옥으로 보낸 법이 국가보안법이다. 이런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유죄선고도 내려지지 않은 국회의원을 미리 정치적으로 죽이겠다는 법을 민주당이 찬성하는 것은 궤변이다. 박근혜 정권의 독주에 대해서도 민주당 등 야당의 존재감이 거의 없는 가운데 심지어 민주당이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역행에 동조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는 이유다.

수권법 통과에 협조하였다가 스스로 정당 해산서를 제출해야 했던 독일의 중앙당, 국가인민당의 최후가 나치의 일당독재와 세계대전을 불러왔다는 것, 그리고 매카시즘이라는 공화당의 반공 코스프레에 자신만 살겠다며 동조하고 나섰던 미국 민주당의 정권 상실과 미국 민주주의의 후퇴에서 2013년 대한민국의 민주당 등 야당들을 교훈을 얻어야 한다.

또한, 야당을 강제로 야당을 해산시켰던 이승만의 진보당 사건, 그리고 국회 내 친위조직이라는 꼼수로 탄생한 박정희의 유정회, 전두환의 관제 야당 민한당에게서 강력한 야당의 존재가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히틀러와 매카시, 유정회와 한민당이 2013년 민주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야당들에게 던지는 ‘정당이 자신만 살겠다는 정치공학을 내세우며 정략적 선택을 일삼으면 민주주의도 죽고, 결국 자신도 죽는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일 때다.

 

6.15정신

615 유럽공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