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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왜 하는가

 2013년 12월 4일 자주민보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김동춘 교수    

©이창기 기자, 네이버 인물 검색

 지금은 불의(不義)의 시대다. 세(勢)를 가진 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들추어 공격한 선비들을 온갖 명분을 들이대면서 숙청하던 조선 4대 사화(士禍)의 시대나 ‘왕실의 존엄’의 명분으로 반대파를 음모, 조작, 반역자 낙인찍기의 희생자로 만들던 조선 후기 노론계의 기득권 추구 행태들이 연상된다. 공직자로서 바른말 하면 명령불복종이라고 그 자리에서 쫓아내고, 원칙대로 수사한 검찰을 수사 선에서 찍어내고, 기자나 피디가 사실을 공정하고 제대로 보도하면 언론사에서 추방당한다.

국민의 종복이 되어야 할 국회의원이 밑바닥 국민들에게 “너희들에게 권리를 주면 들고일어날 것이니 계속 노예상태로 있으라”고 호통친다. ‘진실을 알리려’ 해도 명예훼손죄, 허위사실유포죄로 처벌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세를 가진 사람들은 이치를 따지는 사람들을 극도로 증오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원수’ 취급하고 있다. 지옥으로 변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면 ‘종북’, 좌빨 즉 현대판 반역자로 낙인찍힐 각오를 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권력은 야수적 속성, 즉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논리에서 움직이는지는 모르겠다. 정치나 권력은 세상의 필요악인 점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야수성을 견제할 때만 세상이 굴러갈 수 있고,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들도 죽고 정치 공동체도 무너진다. 즉 권력자들의 탐욕과 범법을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제 감시 길들이는 장치, 조직, 세력, 인물이 필요하다. 교육이 바로 그러한 임무를 갖고 있으며 교육받는 인재로 충원된 관료, 검찰, 사법, 언론이 애초부터 그 일을 하게 되어 있다.


모든 학문은 공익성과 보편성을 지양해야

이들 기관 종사자들의 일상 임무가 바로 공공의 이익 추구다. 이들 기관은 우수한 머리를 타고나 치열한 공부를 거쳐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이 움직인다. 그들은 시험 경쟁의 승리자들이다. 이들은 오늘도 날밤을 새며 공부하는 학생들의 역할 모델이다. 그런데 그렇게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은 실제 어떻게 행동하고 있나?

법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법학개론의 기초와 전혀 배치되는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거침없이 한다. 교육기관의 최상층에 있는 사람이 가장 반교육적인 교육행정의 집행자가 된다. 언론기관의 책임 선에 있는 사람들이 세를 가진 권력자의 선전 홍보요원이 되고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 우수한 머리와 다년간의 공부, 시험 통과가 결국 권력자의 서기 노릇을 하는 대가로 돈과 지위를 보장받는 자격증 얻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인가?

“인간 세상에서 배운 사람 노릇 하기 쉽지 않구나”라고 자결한 황현(黃玹) 정도의 기개를 요구하는 것 아니고, ‘나라를 잃고도 살아 있으니 부끄러운 인간’이라고 자책한 박은식(朴殷植) 정도의 높은 자성 능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학문은 공익성과 보편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저 가장 기본적인 것. 고시 공부할 때 외운 학설 중 하나라도 되새겨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그 직무의 본령에 맞는 것인지 정도 반성할 수 있으면 된다.

유형원은 조선조의 위기가 바로 과거제도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그는 과거제가 능력 특히 학력은 시험할 수 있으나 덕행을 시험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당시 관직은 실제 소수의 벌열(閥閱)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탄하면서 추천제를 시행하면 재능과 덕행을 겸비한 자를 뽑을 수 있고 관직을 서얼과 평민에게까지 개방하여 널리 인재를 널리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오늘날처럼 복잡한 시대에 추천으로 모든 인재를 선발할 수는 없고, 추천자가 사사로운 정에 의하여 불공평한 추천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을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교육과 시험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그러나 오늘의 대입, 고시와 로스쿨, 언론 입사 시험은 조선 말기의 과거와 관직 등용제도처럼 점점 유력자나 부자들의 잔치로 변하고 있으며, 재주는 있으나 공직자로서의 기본은 국민의 평균 이하의 사람이 선발되고, 일부 기관에는 사실상 세습이 이루어진다는 소문까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교육, 선발 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치열한 시험의 승리자들일수록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과거에는 권력자의 총칼에, 오늘날에는 부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가 국민의 피땀과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자신이 잘난 것의 당연한 대가라 생각하고, 불의의 희생에 눈감고 강자들의 폭력에 굴종했으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지난 60여 년, 매년 치러지는 수많은 시험에서 많은 인재가 만들어졌건만, 그들이 진정 공익에 어떤 기여를 했던가? 구한말 나라 살리자던 동학군과 개화파를 능지처사(陵遲處死)하고서,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고관대작들, 독재정권이 그렇게 횡포를 부릴 때 그들의 손발이 되어준 사람들 모두 그런 시험 선수들 아니었나?

머리 좋고 시험 잘 본 사람을 무조건 밀어온 국민들도 이제 정신 차려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과 시험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이 불의의 시대를 청산할 수 없고, 이 엄중한 주변 국제정세에 대처할 관리나 지식인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6.15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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