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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와 헌재는 박근혜 부녀와 전생에 무슨악연 이었기에..

김제영 '일제시대 판사도 지금 헌제보다 합리적이었다'

 2015년 1월 17일

자주민보  정찬희 기자

 

지난해 12월. 헌재는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들의 직을 박탈했다.

임명직 공무원이 국민에 의해 선택된 선출직 공무원의 직을 박탈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초유의 사태였다.

 

이 사태에 대해 수많은 지식인들은 많은 의견을 내놓았다.

소설가 김재영 선생의 글을 싣는다.

 

 

<법무부와 헌재는 박근혜 父女와 전생에 무슨惡緣이었기에..>  

 

 

초목도 통곡을 하며 울부짖었던 1975년 4월 9일. 법무부와 헌재는 그 비통함과 처절한 분노를 잊었단 말인가. 아니면 제네바 국제법학자회에서 인류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한 국제적 망신을 숫제 잊고 싶어서였나.

 

법무부와 헌재가 진정 박근혜를 母情으로 감싸고 싶었다면 통합진보당 문제로 수선을 떨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엎질러진 물이다 아버지 대통령에 의해 희생당한 원혼이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따님 대통령에 의해 목이 잘린 통합진보당의 屍身을 국제법학자회에서는 뭐라고 기록을 할까.


“정당해산, 당 소속 의원직 박탈, 이미 지급된 모든 보조금 환수” 헌재의 19일 판결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사형선고임과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생명 박탈을 세계만방에 통보한 고지(告知)이기도하다.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후보는 2012년 10월 12일 “정치 쇄신과 국민통합, 국민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고 말했다.(한겨레신문) 국민통합은 박근혜 후보가 최고가치의 선거 공약으로 삼은 정치생명이다. 쇄신도 행복도 국민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갈라진 땅에는 집을 세울 수 없다고도 말 하지 않았는가. 선거기간 내내 통합을 십자가 목걸이처럼 달고 다녔다.


설사 통합진보당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하드라도 통치의 최고 정치이슈의 공약으로 통합을 국민에게 철석같이 약속만 하지 않았다면 통합진보당과 연계될 이유는 없다. 통합이란 동일한 색깔끼리의 응집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유대 하여 지향하는 바의 목적을 찾아 함께 가는 게 통합이다.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은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종북 정당으로 목적과 활동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2013년 11월 5일 헌재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을 때만해도 나는 한참 뱃살을 틀어쥐고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썼다. 코미디 소재로 무대에 올렸으면 관객의 폭소로 극장이 들썩들썩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학자는 사회주의의 맨 처음 실행자는 예수그리스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감이 간다. 경제학자요 전 서울 시장이었던 조순은 1970년 대 후반 이었던가 한국일보에 ‘사회주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칼럼을 썼다. 역시 경제 전문가다운 이론으로 해박한 지식을 전달해주었다. 피가 돌고 심장이 뛰는 인간의 지고한 이상과 양심에서 울어난 이타(利他)와 공동체적 삶의 구현이 사회주의의 기본 바탕이라고 여겨진다.


통합진보당을 없애기 위해 사회주의를 범죄시 하자니 무식꾼이라고 매도될 세계의 이목에 신경이 쓰이고 그래서 북한식(式)을 삽입한 모양이지만 기만이요 사족임을 감출 수는 없다. 통합진보당을 문제 삼지 않은 MB정부가 핫바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열리고 있다.


또한 법무부와 헌재는 통합진보당 해산의 합법성을 독일 연방 헌재가 1956년 독일공산당 해산의 판례에서 찾은 모양인데 1958년 독일 연방 헌재는 독일 공산당 해산 결정에서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거부한다고 하여 바로 그 정당이 헌법에 위반한다고 할 수 없다. 기본 질서 거부에 더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적극적 투쟁과 공격적 행위 등이 있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남경국 독일쾰른대 법책연구소 객원연구원의 시론 중에서 경향신문 12.16.)


나는 통합진보당이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룩하자”고 불끈 주먹을 휘두르며 대중을 선동하는 연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 통합진보당원이 청와대나 관공서 기타 공공건물에 수류탄 투척이나 방화를 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없다. 독일 헌재가 정당 해산의 조건으로 명시한 ‘적극적 투쟁과 공격적 행위’ 부분은 어째서 눈을 감았나.

 

내 아버님(金寬會1886~1949)의 유지

 

여기에서 잠깐 내 아버님(金寬會,1886~1949)의 기미년 3.1만세 사건을 언급하고 지나가겠다.
다음은 공주 영명중고등학교가 2007년 발간한 永明100年史 ‘영명의 독립운동편’에 내 아버님 공판 기록에서 발췌한 연루자 박루이사(UN한위 고문 영국대사 이묘묵 부인)의 판결문이다.


<-생략-피고 김관회와 위에서 판시된 바와 같이 사립 영명학교에서 회합하여 시위운동에 대하여 협의한 사실과 피고 박루이사가 동년 3월 23일 공주 대화정 소재 영명여학교의 한 교실에서.. 김양옥 외 수 명에 대하여 시위운동에 가담할 것을 선동하고 또한 피고 박루이사는 3월27일~28일 공주 상반정 거주 이원용에게 영명여학교 여학생들에게 그 가정의 선동 방법을 의뢰하여 피고 활란이 4월 1일 오후 2시경 본정 거주 김현경 집에서 여학생 김양옥 외 4,5명에게 시위운동에 가담할 것을 선동한 사실은 명백하지만 이는 비밀리에 행해져서 이 지방의 안정을 해칠만한 정도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범죄가 구성될 수 없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224조에 의하여 무죄를 언도한다.>(영명100년사 584쪽)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한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한국을 침탈한 제국주의 일본 사법부의 판사를 비교해보라. 박루이사는 공주농고 시위동원 책임을 지고 몇 번 찾아가 교섭했으나 거절당하는 등 저항이 과격했으나 판사는 눈감아 주었다. 학교 측의 청탁에 응한 내 글을 몇 부분 전재한다.

 

▲  김제영 소설가 부친의 일제때 공주3.1만세 사건 판결문   © 서울의소리


“-조선 사람들이 총칼을 등에 감추고 당신네 땅에 올라가 주인이 되겠다고.. 온갖 행패를 부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우리 학생들은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요. 그러나 그 행위와 책임은 내게 있소 내가 책임을 지겠소. 그들을 풀어주시오. 도적이 어찌 주인을 심판하려 하시오. 아버님을 심문하던 검사나 판사 취조관들이 아버님께 설득을 당했고 그들에게 미친 이러한 경위의 감동이 공주 3.1 만세 사건의 형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었다.. 공주시민을 선동 방화 파괴 교란케 한 교사죄는 사형감이다. 김관회 교사의 고고한 인격이 그 자신의 생명은 물론 연루자들을 구했다 악명 높은 왜놈 사법관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의로운 적은 비굴한 동지 보다 났다. 나를 가장 악랄하게 고문한 놈이 조선인 고등계 형사였다. 당신네들이 이 땅에서 나갈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을 때 판사나 검사는 소리치지도 않았고 일본에 협조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지식인이란 나를 상대방 입장에서 관조할 줄 아는 아량을 지닌 사람임을 그때 절실히 느꼈다.”

 

거의 100년이 다 되가는 3.1 독립투쟁 당시의 공판기록을 끄집어내었음은 RO 이석기에게 12년 형을 내린 판사나 통합진보당에 저승사자의 심부름꾼 같은 판결을 한 헌재나 내게는 그들이 밧데리에 의해 작동되는 로보트로 보인다. 이석기나 통합진보당 그들의 무슨 행위를 벌하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박루이사의 판결문을 보면 행위가 분명한 위법이지만 사회의 안정을 해칠 위험이 없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다. 재량권을 의롭게 활용한 판결문이 얼마나 근사한가. 허지만 침략의 기반을 구축하려는 일본의 흉책은 철저했다.


<나를 지키고 있던 일본 놈 형사가 “천황폐하(天皇陛下)의 신민(臣民)이 되겠다. 한마디만 하면 네 제자들도 다른 연루자들도 다 풀어주겠다”는 유혹에 “내가 너희들에게 굴복한다면 스승의 변절로 석방된 학생들이 다시 일어나 독립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했더니 일본 형사를 밀치고 내 앞에 나선 조선 놈 형사가 “건방지게 너 죽고 싶어 “나는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의 신민이다.”를 외치라고 하여 “나는 개 가 아니다.”했더니 그 대가로 살인적인 폭행이 자행되었다. 경찰 우두머리가 들어와 고문은 멈췄으나 뼈가 부러지고 코와 입에서 흘러내린 피로 나는 말이 아니었다.”>


회유로도 폭력으로도 아버님을 어떻게도 할 수 없음을 인식한 왜놈들의 흉모가 경제권 박탈과 부도덕한 누명을 씌워 공주에서 내쫓는 일이었다. 아버님을 중심으로 집결하는 애국청년들과 금융조합으로 몰려드는 금융자산이 일본 놈들은 두려웠다. 공주시민의 열망을 받아드려 금융조합이사의 업무에 임한지 3개월 만에 아버님은 공주에서 추방되었다. 제법 부자였던 부모님 재산까지 다 털리고 조합 돈 고련 한 푼 쓴 일 없으면서 금융조합 빛만 잔득 짊어지고 고향을 떠나셨다.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충남펜문학’ 2014년 통권 제10호에 실린 내 아버님의 제자 정환범(1903~1977, 초대 주중특사, 제2대 주일 대표부 대사, 청주대 총장)과의 ‘만남’ 이야기로 대신한다.


<1948년 정부 출범 시 나는 초대 농림부장관 曺奉岩선생을 모시고 있었다. 어느 가을날 풍채가 좋은 신사가 들어오면서 환하게 웃었다.


“어서 오세요.” 나도 웃음을 보이며 응접탁자의 의자를 권하고 간이 다탁으로 가 찻잔을 챙기려는데 “방금 마셨습니다.” 만류한다. 내 자리로 와 내가 하던 일(건의서와 진정서를 점검)하는데 그가 “고향을 물어도 되겠습니까.”한다. “그럼요. 공주예요. 허지만 거기서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았어요. 제주도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제 이름이 濟英이예요.” “돌림자가 아니겠군요.” “네 그래서 외톨이가 된 기분이예요.” “제주도라... 공주 하고는 꽤 먼 거리인데...” “우리 아버지가 공주에서 쫓겨났거든요. 돈 떼먹고 야반도주한 파렴치한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어요.” “네?” 부지부식 간에 그의 음성이 반올림 음정으로 높아진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아버지는 난해한 인물이세요. 풍비박산 가정은 날아가 버리고 어린 딸은 제사공장, 식모사리 보내고 어머니는 갓난아기 업고 친정으로 갔고 풍찬 노숙신세이던 아버지는 용케 지인을 만나 일본 오사까(大坂)로 가셨다가 거기에서 또 아버지를 잘 아는 제주도 분의 권유로 자리를 잡은 곳이 제주에요. 제주도민이 환영을 해주고 비로소 처자식을 거느리게 되었고 아버지의 뜻(교육사업)을 펼치게 되었으니 아버지로선 제주도가 천국이었을 거예요. 허지만 나는 아침만 되면 심난 했어요. 똥을 받아먹으려 구 몰려드는 돼지 떼가 무서워서 쩔쩔매면 아버지께서 “사람이 돼지를 해치지 돼지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 하시며 내가 용변을 마칠 때 까지 곁에 서 계셨어요. 그때 서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어린 기억에도 ‘돼지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말씀이 내게 새겨진 제주도의 인상이었어요. 제 숙부가 우리를 뭍으로 불러 청량리에서 살게 해준 게 뒷간에 혼자 드나들게 되면서 부터니까 내가 만 네 살쯤 때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공주와 고향 얘기만 나오면 때와 장소 누구를 가리지 않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마구 쏟아져 나와요. 그런데요. 우리 아버지는요. 여름밤 마당의 평상에 앉으시면은요. “한라산 정상에는 눈이 하얗게 덮였는데 마을은 온통 동백꽃이 피어 정염의 불꽃으로 빨갛게 타올랐고 먼데서 한유하게 번져오는 황소의 울음은 평화롭기가 그지없었다. 바다에서 들려오는 해녀들의 휘파람소리(숨을 내쉬는 소리)가 제주도의 잠을 깨웠다.” 별을 바라보시며 제주도를 회상하시곤 하셨어요. 어머니께서는 노상 “남들은 되글을 말글로 써먹는데 이건.. 아이구 속 터져”하시며 아버지를 무능의 대명사로 취급하셨지만 저는 달랐어요. 공주 형무소에서 출옥하실 때 공주시민들이 우리아버님을 개선장군을 맞듯 그렇게 형무소로 몰려들었대요, 공주의 3.1 만세 투쟁(4월1일)사를 들을 때면 제자신이 영웅이 된 기분이에요.”


솔깃이 귀를 기울이고 있든 손님이 찬찬이 내 얼굴을 바라다보더니 혹시 “김관회 선생님 따님이 아니십니까.”하는 게 아닌가. “아니 선생님께서 어떻게” 내 놀라움에는 반응하지 않고 곧장 내 앞으로 온 손님은 두 손을 이마에 대고 무릎을 꿇고 내게 큰 절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뜻밖이고 당황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노라니 손님은 “김관회 선생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김관회 선생님께서 손문의 개혁사상과 삼민주의를 강의 하실 때면 충격적인 감동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선생님의 격정적이었던 명 강의에 감화되어 중국으로 튀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지금 어데 계십니까.” “서산에 계셔요. 지금 이 정부 청사에 계신 문교부 박종만 차관 아시죠.” “아다마다요.” “그분이 충남 도지사로 계실 때 아버님을 예산여중 교장으로 모셔갔어요. 합덕 중학에서 정년퇴임 하셨구요.” “당장 찾아뵈옵고 싶은데 내일 일본으로 떠납니다. 선생님께 안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관께서 나오시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요.” “ 네 좀 여유가 있어요.” 우리는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이석기 문제가 터지면서 세비며 정당 보조금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내 가슴은 소금에 절인 듯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아버님의 전철을 밟아 그들 또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95년 전으로 뒷걸음 치고 있는 역사의 바퀴에 희생자가 나올까 두렵다.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헌법재판소 박한철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전생에 무슨 악연이었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끊어놓았을까.

 

▲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


대통령에게는 정치생명이 곧 통치권이다.

빈껍데기가 된 것도 모르고 오직 헌재가 고분고분 충성을 다 해준 게 고마워 생글거리는 박근혜. 승리감에 포만하여 환호하는 깡통 지식인들은 법리 따위가 우리에게는 무용지물. 우리에게는 오로지 여왕님이 계실 뿐 허우대가 면구스러운 헌법재판관님들. 김이수재판관님 고맙습니다.

 

고 조봉암선생 비서,음악저널 고정필진 김제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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