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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두율 교수

 “내 영혼은 갈라진 강토의 어느 한쪽에만 갇혀 있지 않을 것”

 2017년 5월 4일

경향신문 /  최미랑 기자  

 

 

 

지난 1월 스페인 테네리페(Tenerife) 섬에서. 송 교수는 이 섬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을 고려했었다고 책에 썼다. 송두율 교수 제공

 

ㆍ영원한 ‘경계인’ 한국사회를 말하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73)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대 대통령 선거와 남북문제에 대한 분석, 그리고 이역만리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고국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털어놨다.

- 최근 출간한 회고록 제목이 <불타는 얼음>이다. 

“절제할 줄 아는 낙관주의를 은유적으로 ‘불타는 얼음’이라고 불렀다. 삶을 돌아보니 낙관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낙관과 함께 스스로를 긴장시키고 타성에서 벗어나는 절제가 필요하다.” 

- 책에서 ‘경계인’을 강조했다. 

“경계나 경계선은 전투적 개념이다. 적군과 아군이 대치하는 최전선이다. 그러나 이 선이 면이 되고, 면이 공간이 되면 ‘제3의 공간’이 열린다. 경계나 경계선은 ‘이것이냐 아니면 저것이냐’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이것이면서도 저것일 수 있다’는 새로운 발상을 열게 만든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한반도는 남에서 북을 발견하고 북에서 남을 발견할 수 있는 창조적인 ‘제3의 공간’이 없다면 하나의 거대한 출구 없는 방일 뿐이다. 이 제3의 공간을 찾고자 경계인들이 모여 ‘집단적 단수’인 경계인이 될 때, 남북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으로 믿는다.” 

- 한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처음으로 대선후보 토론회를 봤다. ‘이게 한국 정치 수준이구나’ 하고 좀 실망스러웠다. 인신공격만 있을 뿐 정책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구체적인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인맥에 따라 정당이 이합집산하는 모습이 내가 한국에 있었던 5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 교수님을 옥죄던 국가보안법 폐지는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자신은 보안법의 피해자가 아니라 생각하고, 분단 상황에서는 이 법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정치의식으로는 사상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민주사회가 이룩될 수 없다. 이런 문제가 주요 이슈로 언급되지 않는 것은 역사가 퇴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고라고 생각된다.”

- 대선에 대해 우려했는데 그럼에도 낙관할 수 있는 지점은. 

“촛불혁명이 낙관주의로 갈 수 있는 길목을 마련했다. 어떤 의미에서 ‘최순실 사태’는 반동의 저항을 혁파할 수 있는 돌파구다. 절대 잊지 말고 그 위에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 한국 사회 진보의 추동력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나. 

“대학을 나와서 고학력 실업자로 고생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미래세대를 이끌어 가야 한다. 좌절하면 안된다. ‘젊음과 지성은 반항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젊은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 대선에서 또다시 대북정책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남북관계 개선의 문제가 있는데도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북한인권결의안을 어떻게 했다는 얘기나 하고 있으니 여전히 답답한 노릇이다.” 

- 북한이 핵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어 포용정책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핵을 소유한 북한은 이전의 북한과 질적으로 다른 상대다. 그러나 핵포기를 절대적 전제로 놓고는 결코 북한을 움직일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손을 놓거나 미국 눈치를 보면서 중국에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넣어달라’고만 간청할 수도 없는 처지 아닌가. 과거의 햇볕정책을 넘어서야 한다. 미·중의 헤게모니 쟁탈 시대에 걸맞은 평화정책의 동력을 남북한이 함께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다.”

- 북한을 내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사회를 내재적으로 보자는 것은 북한의 모든 것을 옹호하는 것이라는 비난이 많았다. 그러나 내재적 관점은 일방적으로 타자의 모든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재적’이라는 말에는 ‘경험적’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타자를 스스로가 그린 추상적인 대상으로 대하지 말고 직접 경험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만 타자가 지니는 긍정성과 부정성이 함께 드러나고 타자에 대한 비판적 지평도 보이게 된다.”

- 남북 간 대화가 이해를 위한 핵심이라는 말인가. 

“한국 언론은 북한에 대한 몇 가지 소문만 가지고 ‘북한 사회가 이렇다’고 쓴다. 만나지 않고, 실천적 검증 없이 북에 대해 하는 얘기는 결국 머릿속에서만 상상한 것 아닌가. 책임감을 지닌 언론과 지식사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입장은 더욱 복잡해진 것 같다. 

“전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이럴수록 한국 언론과 지식인의 책임성과 방향성이 더욱 중요하다. 중국과 미국은 21세기에 어떻게 G2(주요 2개국)로서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우리는 남북이 서로 어떻게든지 상대의 힘을 약화시키는 제로섬게임을 하고 있다.”

- 트럼프 미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트럼프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선언한 것은 역설적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환영할 만하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 기간에 오히려 핵무력을 키웠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는 트럼프 행정부가 차라리 그보다 낫다.” 

- 14년 전인 2003년의 한국 방문은 어떤 의미였는가. 

“그때 귀국하지 않았다면 내가 아는 한국 현실은 여전히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가정보원, 검찰, 구치소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만 보았다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친지와 동료, 그리고 그때까지 안면도 없었던 ‘달리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잃어버린 것 못지않게 얻은 것도 많았다. 구치소에서 공판정을 오가면서 호송차의 차창 너머로 젊은이들이 나의 석방을 위해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장면을 봤다. 가슴이 뭉클했다. 석방 후에 이 청년들을 만나면서 사회정의를 향한 젊음의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당시 머물렀던 서울구치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들어갔다. 

“구치소에서는 밖에서 체험할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의미에서 2003년 당시 37년 만에 귀국했던 나보다도 한국 현실을 더 모를 수 있다. 낮은 곳에서의 삶을 배울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진정성이 없다면 저절로 터득되는 것이 아니다.”

- 제주도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다는 꿈은 영원히 접었나. 

“부모님의 고향인 제주도, 그곳에서 낚시라도 하며 말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 윤이상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말년의 희망은 고향인 통영에 두셨지만, 그것은 꿈이었을 뿐…. 어떤 경우에도 내 영혼은 갈라진 강토의 어느 한쪽에만 갇혀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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