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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같은 ‘야간인생’ 한평생…통일열정 불태운 ‘휴머니스트’ 2493-07102009

1985년, 나는 처음으로 이 자루 속 같은 한반도의 남쪽을 벗어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그 해 초부터 몇몇이 논의하여 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고 이것을 책으로 내서 우리 사회에 알리고 바깥에도 알리자는 결정이 있었다. 우리는 팀을 짜서 광주항쟁을 겪은 시민들 이백여 명으로부터 목격담을...

[길을찾아서] "95년 통일원년 삼자" 에 딴죽건 재일작가 / 정경모 2492-02102009

김일성 주석과 문익환 목사의 첫번째 회담은 그날 3월 27일부터 시작되었소이다. 기록을 위한 서기 한 사람만 배석한채, 회담은 두 분의 단독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두 분 사이에 오간 이야기는 나도 나중에 문 목사로부터 설명을 들었을 뿐이나, 그날 대담에서 먼저 말문을 열고 발언을 시작한 것은 문 목사였소.....

[길을찾아서] 문 목사와 시부야서 목청껏 부른 ‘선구자’ / 정경모 2489-28092009

문익환 목사를 태운 비행기가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것은 1989년 3월 20일 오후 5시 무렵이었소이다. 무사히 김포공항을 ‘탈출’하여 나리타까지 올 수가 있겠는지, 걱정스러워 뒤에 처져 있던 유원호씨가 김포에서 비행기의 출발을 확인하고 즉시 요코하마 집으로 전화연락을 취하고, 그 시각에 우에노까지 나와 .....

[길을찾아서] 바람불고 천둥쳐도 ‘분단극복’ 가야할 길 / 정경모 2488-28092009

글방 ‘씨알의 힘’을 차린 후 최초로 발간한 저서가 <기로에 선 한국>(미래사, 1980년 3월)이었는데, 이것은 박정희 암살을 계기로 앞으로 전개될 사태의 전망을 서술하고, 또 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예언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었소이다. 지금 이 책을 서고에서 찾아내 훑어보니, 상당히 장문의 후기가 눈에 띄어 그 내용...

[길을찾아서] 키신저 급히 찾아 ‘DJ를 구해주오’  / 정경모 2487-28092009

1973년 8월 그때 납치 현장에서 번뜩 뇌리를 스쳐간 것이란 무엇이었겠소이까. 제발 제발 김대중 선생의 목숨을 건져달라고 일본 정부에다 대고 호소를 해봤댔자 별로 신통스런 반응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도 호소할 상대가 있다면 미국인데, 더 구체적으로는 국무장관 키신저가 아니겠소이까. 지구상에서 김 .....

[길을찾아서] ‘사상계’ 미 CIA 대변지에서 반독재 정론지로 / 정경모 2486-26092009

서울에 돌아온 이후 내 처지는, 나뭇가지에 앉아서도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는 비둘기를 훨씬 넘어, 덫에 빠진 멧돼지처럼 암흑 속에서 언제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사냥꾼에 대한 공포로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니, 어딘가 마음을 정해 한 구덩이를 판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소이다. 보따리장수(대학의 시간강사)도 ....

[길을찾아서] 판문점의 국군 장성 ‘일본말이 모국어’  / 정경모 2485-26092009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된 때가 1951년 10월이었고, 내가 도쿄 미군사령부의 명령으로 판문점으로 파견된 것이 이듬해 이른 봄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소이다.  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사흘 만인 6월 28일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고, 인천 상륙에 성공한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한 것이 9월 28일이지 않았소이까....

[길을찾아서] 해방공간, 치열하게 살다간 내 친구 혁기 / 정경모 2484-26092009

이왕 경기중학 38회 ‘임오군단’ 얘기가 나온 김에 동기 졸업생 중에서도 뛰어난 수재였던 이혁기군의 추억담으로 그 시절 얘기를 마감했으면 하오이다.  아마 4학년 때였나 같은 반이었는데, 혁기가 앞, 내가 뒷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소이다. 그때 나는 학교에 멀미가 나 있던 터라 영어도 그렇고 수학도 그렇고 성적이 .....

[한겨레프리즘] 정경모 할아버지 / 김경애 2483-24092009

그를 직접 만난 건 처음이었지만 사뭇 달라 보였다. 1989년 3월 늦봄 문익환 목사의 평양길에 동행한 ‘의문의 재일동포’로 언론에 등장한 이후 사진으로만 봐온 그의 모습은 조금은 각이 진 턱선 탓인지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늦여름 요코하마의 자택에서 흰색 반소매 러닝셔츠 차림으로 고국....

[길을찾아서] 황민화 세례 ‘임오군단’ 한국군 쥐락펴락 / 정경모 2482-24092009

전번 글에서 경기 5년간의 생활은 내게는 징역살이였다는 말을 했는데, 아침 조례시간에는 이와무라 교장이 자기의 선창으로 ‘시깅’(詩吟)이라는 것을 부르게 합디다. 시깅이란 한시를 일본말로 그네들 식의 곡조를 붙여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인데, 매일 아침 부르던 한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소이다.  ‘젊음은 한때이나 ....

[길을찾아서] 경기중학,짧은 ‘영예’ 긴 ‘치욕’ / 정경모 2481-24092009

소학교에서의 신사참배는 겨우겨우 모면할 수가 있었으나, 중학교에 갈 나이가 가까워지니 이게 문제가 되지 않았겠소이까. 그나마 평양 숭실학교는 그때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있던 터이니, 그럼 숭실중학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나. 그런 생각도 하시면서 선친께서도 상당히 고민을 하고 계셨지요. 평양 산정현......

[길을찾아서] ‘신사참배’ 거부한 당돌한 아이 / 정경모 2480-092009

앞 글에서 <구약-출애굽기>에 나오는 약속의 땅에 대한 신앙이 당시 기독교인들의 민족주의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사상적 배경이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여기에는 미국인 선교사들의 배일(排日)감정이 곁들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을 듯하오이다.  러일전쟁(1904~05) 이후 미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관계가   ......

[길을찾아서] A급전범을 예수에 빗땐 ‘군국의 후예들’ / 정경모 2479-22092009

“일본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전세계의 숭앙의 대상이 될 것이다.”(마쓰오카 요스케)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 겨울 무렵부터 완전 무장한 일본군을 가득 실은 경부선 열차가 영등포역에 서면 ‘애국부인회’라고 쓴 멜빵을 걸치고 마중 나온 일본 아주머니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며 군인들에게 차 ......

[길을찾아서] 선친의 ‘이백채마을’ 어린 황석영이 뛰놀던... / 정경모 2478-22092009

이쯤 해두고 맨 처음에 나왔던 흥화유치원 때 얘기로 돌아갑시다. 유치원을 거쳐 당시 보통학교라고 하던 소학교를 들어간 것이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 우리 나이로 여덟살이었다는 얘기지요. ‘만주사변’이 일어난 것은 그해 9월18일이었지만, 그 직전인 7월에는 말하자면 전주곡으로 길림성 창춘에서 만보산   ......

[길을찾아서] 이승만 총애받고 ‘친일군경’ 활개 / 정경모 2477-20092009

벌써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으니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겠으나, 6·25전쟁 초기 이승만 대통령이 ‘만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서슴없이 김일성과 손을 잡고 총부리를 돌려 일본군과 싸우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은 일이 있었소이다.  그때 이 대통령이 무슨 특수한 정보를 쥐고 있었는......

[길을찾아서] 트루먼의 외교고문 덜레스의 ‘기만’ / 정경모 2476-20092009

이왕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미·일 강화조약과 안보조약이 화제가 된 김에, 당시 트루먼 정부의 외교 고문이라는 자리에 앉아 미·일 관계의 재정립을 위해 활약하고 있던 덜레스(John Foster Dulles)가 우리에게도 직접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 무슨 소리를 했는가 한마디 하고 다음 화제로 옮기기로 하겠.....

[길을찾아서] 일본의 ‘광기’에 붓 들어 ‘항변’ / 정경모  2475-20092009

아무튼 한국이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는 시점에서 불과 5년이 지난 1950년 당시 일본 정부나 언론이 남북을 가릴 것 없이 재일 ‘조센진’에게 퍼붓는 차별과 적개심은 참으로 놀랄 만한 것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더군요. 벨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위액을 분비하는 파블로프의 실험동물처럼 강도살인 사건 같은 것이.....

[길을찾아서] 맥아더 사령부의 동량들...'문 고집'과의 만남 / 정경모 2474-18092009

1950년 6월을 맞이한 것은 미국 에머리대 대학원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식민지 시절 경기중학을 나오고 일본 게이오대학 의학부에 있다가 해방을 맞아 잠시 서울대 의학부에 적을 두고 있었으나 곧 미국 유학을 떠난 것인데(47년 8월), 에머리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화학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

[길을찾아서] 봉사씨가 검은 흙속에 묻히는 뜻은 / 정경모 2473-18092009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 1924년, 그러니까 그 5년 전에는 기미(己未) 독립운동(1919년 3·1운동)이 있었고 5년 뒤에는 광주학생의거(1929년)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반일 민족주의 사상이 팽배하게 일어나 전국 방방곡곡을 휩쓸고 있을 무렵이었지요. 그러한 민족주의 사상은 어린 자식들을 제대로 키워야 되겠다는 ......

[길을찾아서] 뒤틀린 현대사 바로잡는 ‘40년 망명객’의 증언 2472-18092009

자서전 같은 것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길을 찾아서’를 위해 회고록을 쓰다 보니 이젠 그냥 (저 세상으로) 갔으면 어찌될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써 달라고 해서 참 고맙다.”

        “한국 못간다…안간다” 민족주의 외길
           해방공간 내부서 순도높은 체험담 전개
           망명·방북…‘시대지성’의 인생역정 펼쳐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40년 ‘망명객’ 정경모(85·사진·일본 요코하마 거주)씨의 목소리는 여전히 쟁쟁했고, “이제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나이”라곤 했지만 기억 또한 펄펄 살아 있었다.   ......

정 경 모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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