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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을 거슬러가며

 

017   제 2 부, 제 9 장.  조국을 위한 반독재투쟁과 통일운동

           5. 민주민족 연합운동

앞서 지적한대로 필자는 독일의 대표가운데 끼여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게 되었다. 8월의

일본 하늘은 무더운 습기를 내뿜어 질식할 것같이 답답했다. 아스팔트를 스쳐 올라오는

화끈한 더운 공기가 코를 찔렀으며, 우리나라의 8월보다 훨씬 더 덥다고 느껴졌다. 동경시내

는 비행장에서 많이 떨어져 있었다. 복잡한 시내를 통과하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꽃으로

장식 된 회의 장소에는 검은 양복으로 차려입은 재일민주동포 남성들이 ........

 

016   제 2 부, 제 9 장.  조국을 위한 반독재투쟁과 통일운동

          4. 여 성 운 동

여성문제에 각성 된 재독여성들은 독일역사에서 처음으로 하이델베르크에서 여성 세미나을

가졌다. 학업에 열중하는 여학생들과 간호사들이 중심이 되어, 장차문제에 관한 해결을 위해

이론 작업이 우선 필수라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재독여성의 모임이 필요 있다고 입을

모았다. 모여 앉으면, 곳 소리소리 지르는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차분하게, 오순도순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만나는 것만도 행복하게 느껴........

 

015   제 2 부, 제 9 장.  조국을 위한 반독재투쟁과 통일운동

           3. 민주사회건설협의회 (민건회) (1974년)

앞서 누누이 언급한대로 독재정치로 인한 캄캄하고 난폭한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며, 민감하

게 비판적인 뜻을 가지고 있던 학생, 종교인, 직업인들인 재독동포들은 이때까지 산발적

으로 반독재운동에 대하여 고민해 왔었다. 그때 바로 국내에는 1.8 긴급조치로 반독재항거

투쟁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해외에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외에서 이 투쟁을 효과적

으로 전계해 볼 것을 토론한 결과, 반독재투쟁에 결심한 동지들을 규합하여 ........

 

014   제 2 부, 제 9 장.  조국을 위한 반독재투쟁과 통일운동

           2. 퇴 수 회  (退修會) (1961년)

당시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약 3,4백 명의 유학생이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본다.

이승만독재정권 같은 그런 독재정권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특별히 지식인들의 각성이

필요하며, 따라서 나라에 대한 책임감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하다고 몇몇 유학생들은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직 동포들의 아무런 조직체가 없었다. 그러므로 공동적으로

토론하고 연구하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조직체구성의 필요성을 절감........

 

013   제 2 부, 제 9 장.  조국을 위한 반독재투쟁과 통일운동

           1.  4.19학생 혁명의 함성 (1960년) ㅡ 국제 신문기자 좌담회

필자가 독일에 온지 꼭 1년하고 일주일이 지난 4월19일이었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 온

남편은 평상시와 달리 심각한 모습이었다. 혹시 서울 친정 집에서 어떤 소식을 받은 것은

아닐까. 조바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울에서는 학생들의 데모가 매일 같이 확대해가면서

격화되던 그날, 학생들과 민중들은 대통령 관저 <경무대> (청와대)를 처 들어가는 과정에

경찰들의 폭력으로 수많은 학생들과 민중들이 희생 되었다는 비보를 남편은........

 

012   제 2 부, 제 8 장. 목 회,  3. 프랑크푸르트(Frankfurt) 독일교회 목회와 사회활동

뮌헨대학교목의 임기가 끝나는 1974년 가을 남편은 헷센-낫싸우(Hessen–Nassau) 지방교

회 마틴 니묄러(M. Niemoeller) 총감독의 추천을 받아, 프랑크푸르트 (Frank furt.a.M)시에

속해있는 니다라드(Niederrad)지구의 파울-게어하르트-교회 (Paul- Gerhardt-Gemeinde)

의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학생목사들은 그당시 일반적으로 과격한 좌익목사들이라는 평이 돌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학생목사들 자신도 지방교회 단임목사로 취임........

 

011   제 2 부, 제 8 장. 목 회,   2. 뮌헨(Muenchen) 대학교목 시절과 출국명령

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교회본부에서 뮌헨대학교목으로 남편은 초빙을 받고 우리가족

은 뮌헨으로 이사하게 되었다.(1969.11) 69년12월 초부터 학생목사로 시무하게 돼 있었다.

사실 우리는 후계목사를 보지 못하고 떠나게 돼, 마음이 편치 못했다. 더군다나 남편은 계속

수고해 달라는 독일교회의 간청을 거절하게 되어서 매우 미안했다. 솔직히 우리는 초창기

목회를 위해 있는 힘을 다 소모하고 심신이 매우 피곤해 있었다. 더욱 필자는........

 

010   제 2 부, 제 8 장. 목 회,   1. 두이스부르크 (Duisburg) 시절

박사 논문을 끝마치는 대로 귀국하려고 우리는 정신 없이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때가 1964년 말인것같다. 뜻밖에 독일 노트라인지방의 개신교아헨지방 감리사에서 속달

편지가 날아 왔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었다. “한국광부 3천명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ein-Westfahren)지방에 파견 되 왔습니다. 이 광부들은 주일 마다 성경책을 끼고 독일교회에 참석합니다. 물론 우리는 매우 반갑게 생각합니다....그러나 말이 전혀........

 

009   제 1 부, 제 7 장 독일 행,  1. 새 생활

3일이 걸려서 우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스코필트박사의 큰 염려로 초행

길을 아무런 걱정 없이 무난히 이겨낼 수 있었다. 감사함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른 체,

그와 작별인사를 했다. 공항에는 꽃송이를 들고 다정하게 반겨주는 두 남자가 있었다.

남편과 절친한 신일 친구였다. 낮 선 이국 땅에서 혼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과 친구가

마중나와 환영해 주어 무엇이라 이 기쁨을 표현하리오!! 황홀한 순간을 그만 ........

 

008   제 1 부, 제 6 장 피난 생활,  1. 맏 아들

이런 피난생활 와중에 나는 첫 아들 경택을 해산했다.(51년.7월3일) 우리가 거처하는 집의

현관문은 파괴 되어 없었다. 그래서 이 현관의 사방을 몇 십장의 쌀 가마니로 가로 막아

해산 실을 만들어서 첫 아들을 보게 되었다. 방들이 있었지만 많은 친척들, 친지들, 식구

들이 방들을 점령하고 있어서 부득이 현관을 이용 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첫 해산

이라 10시간 이상 고생 했지만, 순산 했다. 어머니는 첫 손자를 보시고 매우 ........

 

007   제 1 부, 제 5 장 결혼과 한국전쟁,  1. 갑작 결혼

부모님은 대전 감리교선화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계셨다. 어머니는 어데서 살던지 목사님과

그 가정에 신경을 많이 쓰시며 교회성장에 무척 노력하고 계셨다. 이영빈은 감리교신학교를

나오자 곧 대전 선화교회의 부목사로 취임하였다.(1948) 나의 부모님은 민족교회를 꿈꾸며

고생하시던 이풍운목사님 내외분을 둘도 없는 귀한 목사님이라고 항상 말씀 하셨다. 따라서

두 가정은 두터운 애정을 가슴에 간직하고 진정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해방 후........

 

006   제 1 부, 제 4 장 해방과 38경계선, 1. 해방의 그날

운영하시던 아버지의 우체국은 협곡 화통리 중앙거리에 있었다. 한 달에 두 번 우리 집 앞

에서 장이 서게 되면 주변 촌락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모여 들어 행길을 꽉 메우고

있었다. 장날을 빼놓고, 보통 날은 무척 한적한 동네다. 그런데 1945년8월15일 점심때쯤

해서 밖에서 갑작스럽게 만세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가! 제대로 신발도

신을 사이없이 나는 행 길로 뛰쳐나갔다. 순간 가슴이 뭉클 해지며 울음이 터져........

 

005   제 1 부, 제 3 장 교회와 외할머니,  1.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길고 긴 겨울 밤이오면 할머니는 손녀딸인 나를 옆에 불러놓고 앵~앵 물레를 돌리시며 많

은 말씀을 해주셨다. “너는 아직 어려서 내이야기를 다 이해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너도 철이 들면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너의 삶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야기할 테니 잘

귀담아 들어두어라! 이조 500년 동안 유교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 유교는 우리들의

생활에 필요한 윤리를 규정했다. 즉 백성은 왕을 하늘 같이 섬겨야 하고, 자식은 ........

 

004   제 2 장 학교 시절,  1. 황해북도 사리원의 물 소동

우체국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1935년경 평양북도 강계에서 황해북도 사리원으로 전근

하시게 되었다. 강계를 떠날 때 부모님은 우리 4남매를 다리고 사리원 우체국 부국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아픈 동생 때문에 고생하시던 어머니는 왜 그런지 사리원에 이사

오자마자 자주 아프셨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오랫동안 우리 집에 오셔서 살림을 돌봐 주셨

고 나는 여전히 할머니를 도우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특히 나에게 가장 ........

 

003  제 1 부, 제 1 장 어린 시절, 1. 유치원의 어느 날 아침

아버지 김병식과 어머니 이인식의 6남매 중의 맏딸로 1928년 5월 28일 평양시 경창리에서

나는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정시대 고학하여 조선사람으로서 처음 우체국 주임으로 평양에

서 시무하다 1930년 평안북도 강계읍으로 전근하였다. 강계 읍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추운

지방이며, 겨울이 되면 눈이 하도 많이 내려서 유치원과 학교는 문을 닫는 날이 수두룩하

였다. 며칠 동안 쏟아 내린 함박눈은 길 은 물론, 온 세상을 온통 하얀 눈으로........

 

002  추천사, 자신과 민족을 찾아가는 긴 여정, 우어줄라 트라우트바인 (Ursula Trautwein)

김순환선생은 <거센 흐름을 거슬러가며>란 자서전을 내놓았습니다. 우리 세대의 많은사람들은 그들이 겪어온 삶의 체험을 서술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서술작업은 자신을 위해서 중요한 과정일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과 사회를 위하여 적지 않은 공헌이며, 큰 선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감순환 선생과 저는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친하게 사귀어 온 친구입니다. 그가 아시아와 유럽의 두 대륙을 넘어 다니면서, 여러........

 

001  책을 내면서

<나>와 <우리>를 찾아가는 길손 사람들이 제 손으로 지은 집에 들어가 살겠고, 제 손으로 가꾼 포도를 따먹으리라 제가 지은 집에 남이 들어와 사는 것을 보지 않겠고, 제가 가꾼 과일을 남이 따먹는 것도 보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65장 21절)

보통 가정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필자자신은 철이 들어가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많은 의문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에 대한 어떤 물음은 아니었다고 ..... 

김 순 환 여사

거센 바람을 거슬러가며

분단의 멍에를 끝장 못 내고 조국통일의 그날을 후대의 어깨로 넘겨야 하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에 몸부림치며….,

안녕하십니까?

재독 통일운동 원로 김 순환 선생님이 < 거센 바람을 거슬리며 >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냈습니다.

1928년 생인 선생님이 "자신과 민족을 찾아 가는 긴 여정"을 "<나>와 <우리>를 찾아가는 길손(이사야 65장 21절)"의 이야기로 비유하여 서술하였습니다.

1959년 독일에 유학온 후 4.19를 맞이 하게된 필자는 4.19를 계기로 재독유학생들의 의식발전을 위한 모임인 퇴수회 에서 부터 시작하여 부당한 조건으로 파독한 광부와 간호사를위한 목회.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반대와 민주사회건설을 위한 연대모임(민건회).
여성의 권익과 정체성 확립을위한 모임(여성모임). 해외민주통일 단체들의 연합조직(한민련).  북녘과의 화해대화를위한 모임(기통회).  통일을위한 남북해외의 연합단체(범민련).  재독동포들의 정착과 통일을위한 모임(재동협).  비전향 장기수귀향촉진모임(귀촉회).  6.15공동성명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위원회 (6.15 공동위원회) 까지  현재 50년 동안 독일 동포 운동에 가담하였습니다.

한 개인의 인생사 속에 재독 동포 운동사가 고스란이 엮여진  이 자서전은 재독 운동사 나아가서 해외운동사에 소중한 자료집이 될 것입니다.

 

"...우리 세대의 많은사람들은 그들이 겪어온 삶의 체험을 서술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서술작업은 자신을 위해서 중요한 과정일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과 사회를 위하여 적지 않은 공헌이며, 큰 선물이라고 하겠습니다.(Ursula Trautwein)"

 

후배들에게 남길 선물로 방대한 문건, 자료, 편지등을 정리하여 400 쪽 이상의 책을 집필하신  그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앞으로 막힌 담을 헐고 화해와 통일의 길을 넓혀 가야 할 젊은이들에게
민족화해운동에 연대해 온 작은 삶을 잊혀가는 재독동포 화해운동 초창기 역사에
한점의 흔적으로.." 남기고자 한 필자의 희망이 이루어 지기 바랍니다.

<거센 바람을 거슬리며>자서전 구입을 원하시는 분들은 박소은 6.15 유럽 공동위 위원장에게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615 유럽공동위원회